1. 배우니 기쁘고, 찾아오니 즐겁고, 인정욕이 없으니 군자로다
此爲書之首篇. 故所記多務本之意, 乃入道之門, 積德之基, 學者之先務也. 凡十六章.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說, 悅同.
○ 學之爲言效也. 人性皆善, 而覺有先後, 後覺者必效先覺之所爲, 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 習, 鳥數飛也. 學之不已, 如鳥數飛也. 說, 喜意也. 旣學而又時時習之, 則所學者熟, 而中心喜說, 其進自不能已矣. 程子曰: “習, 重習也. 時復思繹, 浹洽於中, 則說也.” 又曰: “學者, 將以行之也. 時習之, 則所學者在我, 故說.” 謝氏曰: “時習者, 無時而不習. 坐如尸, 坐時習也; 立如齊, 立時習也.”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樂, 音洛.
○ 朋, 同類也. 自遠方來, 則近者可知. 程子曰: “以善及人, 而信從者衆, 故可樂.” 又曰: “說在心, 樂主發散在外.”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慍, 紆問反.
○ 慍, 含怒意. 君子, 成德之名. 尹氏曰: “學在己, 知不知在人, 何慍之有.” 程子曰: “雖樂於及人, 不見是而無悶, 乃所謂君子.” 愚謂及人而樂者順而易, 不知而不慍者逆而難, 故惟成德者能之. 然德之所以成, 亦曰學之正, 習之熟, 說之深, 而不已焉耳.
○ 程子曰: “樂由說而後得, 非樂不足以語君子.”
해석
此爲書之首篇.
이편은 『논어』의 첫 장이 되었다.
故所記多務本之意, 乃入道之門, 積德之基, 學者之先務也.
그렇기 때문에 기록된 것들이 대부분은 근본에 힘쓰라는 뜻으로, 곧 도에 들어가는 문이고, 덕을 쌓는 기틀이니 배우는 사람은 급선무로 삼아야 한다.
凡十六章.
모두 16장으로 되어 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서 항상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說, 悅同.
○ 學之爲言效也.
배운다는 말은 본받는다는 말이다.
人性皆善, 而覺有先後, 後覺者必效先覺之所爲, 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
사람의 본성은 다 선하지만 깨우침엔 선후가 있어 후각자는 반드시 선각자의 하는 것을 본받아야 곧 선함이 분명해지고 처음의 선함을 회복할 수 있다.
習, 鳥數飛也. 學之不已, 如鳥數飛也.
습(習)은 새가 자주 날갯짓하는 것이니, 배우면서 그치지 않는 것은 새가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
說, 喜意也.
열(說)은 기뻐하는 뜻이다.
旣學而又時時習之, 則所學者熟, 而中心喜說, 其進自不能已矣.
이미 배웠는데 또한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배운 것이 성숙해져 마음속에서 기뻐지기에 나아감이 스스로 그칠 수 없는 것이다[욕파불능(欲罷不能)].
程子曰: “習, 重習也. 時復思繹, 浹洽於中, 則說也.”
정이천이 말했다. “습(習)은 거듭 익히는 것이니 때에 다시 생각하고 연역하여 마음속에 배어들면 기뻐하게 된다.”
又曰: “學者, 將以行之也. 時習之, 則所學者在我, 故說.”
또한 말했다. “배우는 사람은 장차 실천하려 하니, 때에 맞춰 그것을 익히면 배운 것이 나에게 있게 되기 때문에 즐겁다.”
謝氏曰: “時習者, 無時而不習. 坐如尸, 坐時習也; 立如齊, 立時習也.”
사량좌(謝良佐)가 말했다. “시습(時習)이란 때에 익히지 않음이 없으니, 앉아선 시동 같다는 것은 앉았을 때의 익힘이고 서서는 재계(齋戒)하는 것 같다는 것은 서 있을 때의 익힘이다.”
○ 논어(論語) 첫머리의 이 문장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하지만 뜻은 녹녹하지 않다. 대체 배울 학(學)과 익힐 습(習)의 관계는 무엇인가?
학(學)은 본받을 효(效)나 깨달을 각(覺)과 관계가 있다. 곧, 배움이란 앞 사람을 본받는 일에서 시작해서 스스로 깨닫는 일까지를 가리킨다. 이(而)는 앞의 일과 뒤의 일을 이어주는데 어떤 일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무엇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하고 난 뒤에 다른 일을 한다는 뜻이다. 시(時)는 ‘때때로’ 또는 ‘그때그때 늘’이란 뜻에 가깝다. 습(習)은 깃 우(羽)의 글자가 들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새가 자주 날아서 반복을 통해 익히는 일을 가리킨다. 학습(學習)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조선의 신동 김시습(金時習)의 이름도 이 구절에서 따왔다. 지(之)는 앞에 나온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학(學)의 내용, 곧 배운 내용을 가리킨다.
불역(不亦)은 ‘또한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는 뜻이다. 문장 끝에 호(乎)가 있으면 반문의 어조가 더 커진다. 역(亦)은 ‘또한’이라고 풀이한다. 이 글자는 감탄의 의미를 지니며 어조를 고르게 해준다. 열(說)은 기쁠 열(悅)과 같다. 공부한 것을 반복해 익히면서 마음속 깊이 기쁨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학습(學習)은 어떤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배운 것을 스스로 깨닫고서 반복하여 익혀 자기 것으로 삼는 체득(體得)의 일을 말한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으며 배움을 싫증내지 않았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또 발분망식(發憤忘食)하여 늙음이 이르러 오는 것도 알지 못했다고도 회상했다. 배움에 분발하여 밥 먹는 일조차 잊었다는 뜻이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의 어록이다. 우리가 보는 ‘논어’는 모두 20편인데 첫 편이 바로 이 구절에서 이름을 정한 학이(學而)편이다. ‘논어’ 첫머리에 배움에 대한 말이 놓여 있는 의미를 곰곰 생각해 보아야 ‘논어’를 제대로 읽어나갈 수 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있어 멀리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樂, 音洛.
○ 朋, 同類也.
벗은 같은 뜻을 지닌 이다.
自遠方來, 則近者可知.
멀리서부터 왔다면, 가까이 있는 이들이 (얼마나 찾아왔을지) 알 만하다.
程子曰: “以善及人, 而信從者衆, 故可樂.”
정이천이 말했다. “선으로 남에게 미치니 믿고 따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즐거워 할 만하다.”
又曰: “說在心, 樂主發散在外.”
또한 말했다. “열(說)은 내면의 마음에서의 표현이고 락(樂)은 발산되는 것을 주로 하니, 외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열(說) | 락(樂) |
재심(在心) 내면에만 있는 즐거움이란 감정. |
주발산재외(主發散在外) 외면으로 발산되어 표현된 즐거움. |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가 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慍, 紆問反.
○ 慍, 含怒意.
온(慍)은 화남을 품은 뜻이다.
君子, 成德之名.
군자는 덕을 이룬 이의 명칭이다.
尹氏曰: “學在己, 知不知在人, 何慍之有.”
윤순(尹淳)이 말했다. “배우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고,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음은 남에게 달려 있으니 어찌 화낼 게 있으랴.”
程子曰: “雖樂於及人, 不見是而無悶, 乃所謂君子.”
정이천(程伊川)이 “비록 즐거움을 남에게 미치려 하나, 옳다고 여겨지지 않아도 근심하지 않아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愚謂及人而樂者順而易, 不知而不慍者逆而難, 故惟成德者能之.
내가 생각하기로 남에게 영향이 미치기에 즐거운 것은 순행(順行)이기에 쉽지만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은 역행(逆行)이기에 어렵기 때문에 오직 덕을 성취한 사람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
然德之所以成, 亦曰學之正, 習之熟, 說之深, 而不已焉耳.
그러나 덕을 성취하려는 까닭은 또한 배움을 바로 하고 익힘을 익숙히 하며 즐거움을 깊이 하여 그치지 않도록 해서다.
○ 程子曰: “樂由說而後得, 非樂不足以語君子.”
정이천(程伊川)이 “즐거움은 기쁜 이후에 얻어지고, 즐겁지 않으면 군자라고 말하기에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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