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부가 박을 여니, 도깨비들이 나와 놀부를 벌준다.’ 『흥부놀부』에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을 보고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걸 눈치 챘는가? 아마 한 명도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나오는 책에도 이런 내용은 들어있기 때문이다.
『흥부놀부』를 통해본 도깨비의 원래 모습
이런 내용을 읽는 사람들은 도깨비는 ‘징벌자(벌주는 존재)’라고만 생각하게 되고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도깨비라는 이미지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도깨비는 잘한 사람에겐 상을 주고 못한 사람에겐 벌을 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도깨비를 징벌자로만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일본의 귀신인 ‘오니おに’의 영향이 컸다. 그건 곧 일제시대 당시 일본이 우리의 민족정기를 끊고자 옛이야기를 일본문화에 맞게 고쳐 쓰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들이 대부분의 일본식 정서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요즘도 일제문화청산을 외치며 ‘국어순화운동’을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급히 해야 할 일은 왜곡된 옛이야기의 가치를 되찾는 ‘민담순화운동’이지 않을까.
▲ 아이앤비본 '흥부와놀부'에 나오는 도깨비들. 이젠 이 장면이 왜 잘못됐는지 보일 것이다.
『흥부놀부』를 통해 본 문화순결주의의 폐해
그런데 도깨비가 오니로 바뀐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건 민담에선 아예 도깨비가 나오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도깨비가 나와 벌을 줬다는 민담은 극히 소수고 대부분의 민담은 ‘장비가 나와 놀부를 벌주었다’고 되어 있다. 우리의 옛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훼손되었는지 이런 예를 통해 볼 수 있다.
박에서 나온 장비는 분명히 중국 문학작품인 『삼국지(연의)』를 통해 유명해진 인물이다. 우리의 문화라기보다 외국문화를 나타내는 인물이라고 평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으레 다음과 같이 생각하며 문제제기를 할 것이다.
‘장비라는 명칭을 쓴 것은 문화사대주의의 한 예다. 그러니 후대에 장비를 도깨비로 바꾼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흥부놀부』는 판소리계 소설이라는 점에 유의해서 봐야하기 때문이다. 판소리로 불리기 위해선 언어유희가 중요하다. 언어유희에 대해 모르겠으면 ‘우리는 제도권 킬러 / 동서로 갈라 여야로 갈라 / 싸움은 똑같고 사람만 달라 / 이러지 말라는 모두의 바램은 / 말짱 꽝 빛바랜지 오래야~ / 코리아~이게 무슨 꼴이야~ 아이구 골이야 –싸이 「환희」’라는 식의 라임을 생각하면 쉽다. 랩을 맛깔스럽게 만들어주는 건, 반복구를 통한 리듬감이 있기 때문인데, 그처럼 판소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랩에 들어 있는 라임이 옛 이야기에도 그대로 들어 있다. 그리고 이걸 살려야 옛 이야기가 산다.
‘장비’나 ‘양귀비’의 중국적인 이름이 나오느냐고 뭐라고 할 게 아니라, 왜 그런 ‘비’자 돌림의 단어들이 쓰였는지를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동산으로 올라가서 박 한 통 따다놓고,
“이번 박은 겉을 보건대 빛이 희고 좋으니 이 속엔 응당 보화가 들었을 것이니 정성 들여 타보자!” 하고 한동안 켜보다가 궁금증이 나서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어보니 박속에서 우뢰같은 소리가 진동하며,
“비로라! 비로라!”하므로 무더기로 큰 탈이 또 나는 줄 알고서 톱을 내던지고 달아나려 하자 다시 박 속에서 우뢰같은 호령이 터져 나왔다.
“너희가 왜 박을 아니 타느냐. 내가 답답하여 한때를 못 견디겠으니 어서 켜라!” 놀부가 겁을 먹고 물었다.
“‘비’라 하시니 무슨 비인지 자세히 말씀하시오.”
“이놈, 비로라!”
놀부가 다시 물었다.
“비라 하시니 양귀비입니까? 누구신 줄이나 먼저 알고 박을 마저 켜겠습니다.”
“나는 그런 ‘비’가 아니라 연나라 사람 장비거니와 네가 만일 박을 아니 켜면 무사하지 못하리라.”
놀부가 장비라는 말을 듣더니 매우 놀란 듯 목 안의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 장차 어찌하면 좋은가? 이번엔 바칠 돈도 없으니 죽는 도리밖에 없나 보다.” -『흥부전』
양귀비는 당태종을 치마폭에 싸고 한 시대를 풍미한 절세가인이다. 놀부는 박을 타다 불길한 예감을 하고서 박타기를 멈춘다. 그때 박 속에서 ‘비로라!’하는 소리가 나서 놀부는 ‘양귀비’가 아닐까 기대해보지만, 곧 ‘장비’라는 소릴 듣고 실망한다. ‘비’라는 반복구를 통해 위급하며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유희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제비가 물어다준 박씨에서 장비가 나올 수밖에 없음을 장비의 고향이 연나라(燕-제비연)라는 것과 그의 턱모양이 제비모양이라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미 ‘제비-장비의 고향인 燕나라-장비의 제비모양 턱수염’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며 제비가 물어다준 박에선 장비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판소리계 소설의 맛이며, 언어를 가지고 놀 줄 알았던 우리 조상의 문화적 품격의 멋이다.
그런데도 그런 전체적인 흐름은 보지 않고 ‘장비’나 ‘양귀비’가 중국출신이라며 그런 장면을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없다. 순수한 자국의 문화란 건 있을 수 없다. 문화는 흘러들어와 자국의 특수성과 섞이며 변형ㆍ발전되는 것이니 말이다. 더욱이 근대국가가 지닌 분명한 국경, 한국민이라는 자의식, 우리 것이라는 분별지가 없던 조선시대에는 중원의 문화를 함께 공유하며 커왔던 것이다. 공자는 동양 사회 전체의 성인이었고 한자는 동양 사회 구성원의 문자였으며 유교는 동양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원칙이었다.
바로 이런 관점으로 우리의 과거 문화유산을 바라보아야만 우리 문화에 대해 올바른 평가가 가능해지며, 올바른 계승이 가능해진다. 우리의 옛이야기를 현대에 새롭게 쓰기 위해서도 바로 그와 같은 담겨 있는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려는 온고지신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
▲ 웅진씽크빅본 '흥부전'의 장비 모습. 생생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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