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걱정에 대해
03년 4월 14일(월)
오늘 MS 장대용, 유준희가 전역하기에 상남이와 내가 중대의 왕고가 되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저번처럼 2월초 군번 애들이 나갈 때와는 달리 별 부럽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아무래도 군 생활이 이제 12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이번 주엔 인터넷 교육을 받고 다음 주엔 말년휴가까지 있어 그 시간은 더 적기에 그런 거겠지. 그러다 복귀해봐야 하루 정도만 지나면 되기에 군 생활이 끝난 거나 진배없다 할 것이다.
저번에 쓴 ‘한숨 쉴 틈이 없는 빡빡한 군대일정’라는 글을 보니 겪어보지도 않고 그냥 작계 시행 훈련에, 자상합동훈련까지 내 군 생활은 전역하는 그 날까지 되게 빡셀거라 생각하며 모든 걱정을 혼자서 다 하고 있더라. 근데 막상 지금에 이르러보니까 그런 모든 걱정들이 기우(杞憂)일 뿐이었다. 직계 시행 훈련도 뒤로 밀려 하지 않아도 됐으며, 지상합동훈련 또한 밀리다가 아예 없어져 버린 것이다! 더더욱 작년과 마찬가지로 21일이 있는 주간엔 19R RCT로 인한 경계지원을 나가게 된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월 때리는 한 달이란 뜻이다. 근데 막상 겪어보지도 않고서 세상 걱정을 다했으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경험 밖에 있는 것은, 그래서 그저 의식 속에서 관념화된 것은 사람에게 긴장 내지는 걱정을 유발시킬 뿐이다. 쉬운 예로 군대를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군대라는 곳이 지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 갔다 온 사람은 그곳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란 걸 알기에 한번 정도는 가볼 만한 곳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경험 밖의 군대는 지옥일 뿐이지만 경험 속의 군대는 그저 현실일 뿐이라는 거다. 얼마나 기막힌 의식 속의 괴리인가! 이와 마찬가지로 4월을 경험해보지 않았을 땐, 지옥처럼 상상되다가 막상 경험해보고 나서야 별거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것을 보니 더욱 그렇다. 결국 ‘어떤 일이든 닥치기 전에 쓸 데 없이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쓰잘데기 없는 걱정을 사서 할 바에야 그 미래를 대비하여 자기의 능력을 키우는 게 더 나올 것이다. 걱정은 해결의 지름길이 아니라 망설이게 하며 삶에서 도망치게 만드는 요소일 뿐이다.
곧 있으면 전역하는데 악운이 겹쳤다. 바로 전역할 때 아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19R RCT로 인해 연대 경계지원을 나가는 통에 아이들이 중대에 없다. 아쉬운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은 아이들과 인사 한마디 정도는 나누고 헤어지는 게 인지상정인에도 상남이와 난 그러질 못하니 말이다. 예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이곳을 떠나는 것은 환영하고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늘 죽기살기로 살았던 아이들하고 어느 순가 갑자기 영영 헤어지라고 한다면 얼마나 섭섭하겠는가. 더욱이 얼굴도 못 보고 헤어진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이 아쉬운 일이다. 어쩔 수 없이 20일에 말년휴가 가면서 아이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해야할 것 같다. 진짜 전역하는 것도 아닌데 인사하려면 얼마나 어색할까. 하지만 서로 좋은 모습으로 3CO원들에게 다가가야 겠다. 그동안 2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 해준 이들에게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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