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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불안, 해법 - Ⅲ. 정치 본문

책/철학(哲學)

불안, 해법 - Ⅲ. 정치

건방진방랑자 2023. 1. 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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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이성적인 인간형

 

1

사회마다 각기 특정한 종류의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또 기술, 억 양, 기질, 성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단죄하거나 무시한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영원한 것도 아니고 보편적인 것도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이나 자질이 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역사의 몇 층을 파고 들어가보면 여러 시대 여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을 명예로운 사람으로 간주했는지 그 다채로운 양상이 드러난다.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자격

 

기원전 400, 그리스 반도 스파르타

고대 스파르타 사회에서 가장 큰 명예를 얻었던 구성원은 남자 특히 근육질에 싸움을 잘하고, (양성애적) 성욕이 왕성하고, 가족생활에 별 관심이 없고, 장사와 사치를 싫어하고, 전장에서는 특히 아테네인을 죽이는 데 열의를 보이는 남자였다. 스파르타의 투사는 돈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미용사와 연예인을 피했고, 처자식에게 감상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장터에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는 것 자체가 수치였다. 심지어 셈을 할 줄 아는 것도 상업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져 경멸을 당했다. 스파르타의 모든 남자는 일곱 살 때부터 군인이 되는 훈련을 받았으며, 병영에서 먹고 자면서 전투 연습을 했다. 결혼을 해도 부인과 집에서 함께 살지 않았다. 자식을 낳기 위해 한 달에 하룻밤을 함께 지낼 뿐이었다. 약한 아이가 태어나면 황량한 타이게투스 산기슭에 내다 버려 죽이는 것이 관례였다.

 

476~1096, 서유럽

로마 제국이 붕괴하자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모범으로 삼았다. 교회가 성자로 여긴 이 사람들은 절대 무기를 들지 않았고 다른 인간을 죽이지 않았고, 짐승을 죽이는 것도 피하려 했다(성 베르나르는 다른 많은 성자들처럼 채식주의자였으며, 개미 역시 사람 과 마찬가지로 신의 피조물로 여겨 밟지 않으려고 땅을 살피면서 아주 천천히 걸었다고 한다). 성자들은 물질적인 부를 피했다. 그들은 집이나 말을 소유하지 않았다. 성 힐라리온은 가로 1.5미터 세로 1.2미터의 작은 방에서 살았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가난 부인과 결혼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추종자들과 함께 초벽으로 둘러싸인 오두막에서 살았으며, 탁자나 의자 없이 지내면서 바닥에서 잠을 잤다. 파두아의 성 안토니우스는 뿌리와 풀만 먹었다.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창시자 성 도밍고 데 구스만은 부유한 상인의 집을 지날 때는 눈길을 돌렸다. 성자들은 성적인 감정을 억누르려 했으며, 신체적 절제를 극단으로 밀고 나가는 것으로 유명했다. 성 카시미르는 가족이 침대에 넣어준 처녀를 돌려보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미모와 향수로 그를 유혹하려는 여자와 탑에 갇혔으나 잠시 흥분을 했을 뿐 곧 그녀를 밀어내고 신으로부터 영원한 동정이라는 띠를 받았다.

 

1096~1500, 서유럽

1십자군 이후의 시기로 이때는 기사가 서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기사는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성에서 살았고, 침대에서 잠을 잤으며, 고기를 먹었고, 기독교인이 아니라 고 여기면(특히 이슬람 사람들) 죽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을 때는 짐승에게 눈길을 돌렸다. 장 드 그라이는 멧돼지를 4,000마리나 죽였다고 전해진다. 기사들은 또 능숙한 연인 노릇을 하여 궁정에서 여자를 유혹했으며, 이때 시를 세련되게 이용하기도 했다. 그들은 처녀를 특히 높이 쳤다. 기사는 돈에 관심을 가졌지만, 장사가 아니라 땅에서 나오는 돈만을 높이 쳤다. 그들은 말도 좋아했다. 정복되지 않은 기사(The Unconquered Knight)(1431년경)의 저자 구티에레 디아스 데 가메스(1379~1450)는 이렇게 말했다. “기사는 나귀나 노새를 타는 사람이 아니다. 기사는 약하고 소심하고 겁 많은 사람이 아니다. 기사는 강하고 힘이 넘치며, 담대하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사에게 어울리는 짐승은 좋은 말밖에 없다.”

 

1750~1890, 잉글랜드

1750년이 되자 잉글랜드에서는 이제 싸우는 방법을 안다는 것만으로 존경을 받지는 못하게 되었다. 차라리 춤이 더 중요했다.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신사였다. 신사는 부유했고, 자신의 소유지를 관리하는 일 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었으며, 장난 삼아 산업이나 무역(특히 인도와 서인도제도 무역)에 손을 대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상인이나 산업가 등 열등한 계급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들은 가족을 사랑해야 하고 자식들을 산비탈에 버려 죽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했다. 그럼에도 시내에 정부를 두는 것은 상관없었다.

 

이 시대에는 늘쩍지근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을 멋지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머리 손질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이발소에도 정기적으로 드나들어야 했다. 체스터필드 경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Letters to His Son)(1751)에서 신사의 대화는 엉뚱한 열의를 보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래야 “‘내 아주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겠소하는 식으로 멍청하게 허두를 꺼내놓고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하찮은 일화를 늘어놓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체스터필드는 또 신사라면 모름지기 미뉴에트를 출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아하게 팔을 움직이고, 손을 내밀고, 점잖게 모자를 쓰고 벗는 것이 신사의 춤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기억해라.” 체스터필드는 또 여자관계에 대해서 충고하면서, 신사는 결혼을 해야 하지만, “여자는 다 큰 애일 뿐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여자 옆에 앉게 되면 신사는 입을 다물기보다는 재잘거려야한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여자한테서 둔감하거나 오만하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00~1960, 브라질

아마존 북서부 쿠베오 부족에게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은 과묵하고(주절거리면 속의 힘이 다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다), 춤을 추지 않고, 자식을 키우는 데는 관여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재규어를 죽이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낚시꾼으로 전락했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사냥에 나섰다. 재규어를 죽인 사람은 그 이빨을 매단 목걸이를 걸었다. 재규어를 많이 죽일수록 부족의 추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추장은 재규어 이빨이 달린 커다란 목걸이를 걸 뿐 아니라 아르마딜로 허리띠도 찼다. 여자는 밀림의 빈터에서 카사바 뿌리를 재배해야 했다. 이 부족의 남자들에게 부인이 카사바 뿌리로 음식을 만드는 일을 돕다가 들키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은 없었다.

 

2

지위를 분배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왜 어떤 사회에서는 군인이 찬사를 받고, 다른 사회에서는 토지를 소유한 신사가 찬사를 받는가? 일단 네 가지 답이 떠오른다. 어떤 집단은 남에게 신체적인 해를 줄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해서. 또는 괴롭힘이나 협박으로 굴복시켜서 원하는 지위를 얻는다.

 

힘으로 보호해주거나 식량을 조달해주어 원하는 지위를 얻을 수도 있다. 안전이 문제가 될 때는(고대 스파르타, 12세기 유럽) 용기 있는 투사나 말을 탄 기사가 존경을 받는다. 재빠른 동물의 고기에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는 공동체에게는(아마존 지역) 재규어를 죽이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고, 더불어 그 상징인 아르마딜로 허리띠를 얻는다. 교역과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나라에서는 기업가와 과학자가 존경의 대상이 된다(현대의 구미 지역).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지 못하는 집단은 지위를 잃게 된다. 안전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의 근육질 남자들이나 정착을 한 농업 사회의 재규어 사냥꾼들의 운명이 그런 경우다.

 

어떤 집단은 선한 태도, 신체적 재능, 예술적 솜씨, 지혜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어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도 있다. 기독교 유럽의 성자나 현대 유럽의 축구선수가 그런 경우다.

 

어떤 집단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양심이나 도덕적 품위에 호소하여 지위를 얻을 수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명분이 정의롭다는 것을 매우 정교하게 설파하기 때문에 자기 이미지를 훌륭하게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도 지위를 재분배하자는 그들의 요청에 귀를 막을 수 없다.

 

높은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계속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지위에 대한 불안을 촉발하는 요인들도 바뀌어간다. 어떤 집단에서는 짐승의 옆구리에 창을 꽂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전투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신에게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자본 시장에서 이윤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한다.

 

3

자신이 사는 사회의 이상 때문에 불안이나 실망을 느낀 사람이라면 이렇게 대충 살펴본 지위의 역사에서도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실을 간파할 것이다. 그런 이상이 돌로 만들어져 굳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집단이 스스로 존엄을 얻고자 이전 체제에서 이익을 보던 사람들과 맞서 공동체의 명예 체제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집단은 투표함, , 파업, 때로는 책을 이용해 높은 지위를 누릴 정당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 누구냐에 대한 공동체의 관념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현대의 지위 불안에 대한 정치적 관심

 

1

재규어를 잡는 능력, 미뉴에트를 추는 능력. 전장에서 말을 달리는 능력, 그리스도의 삶을 모방하는 능력으로는 이제 성공했다는 말을 듣기 어렵다면, 현대 서양에서 사람들을 판단하고 지위를 분배하는 기준이 되는 지배적인 이상은 무엇일까?

 

과학적인 분석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과거의 전사, 성자, 기사, 토지를 소유한 귀족 신사가 한때 누렸던 높은 지위를 상속한 현대의 성공적 인물의 관심이나 자질 몇 가지는 제시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자격

 

2005,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드니

성공한 사람이란 인종과 성별을 막론하고, 상업적 세계의 무수한 분야(스포츠, 예술, 과학 연구를 포함하여)의 어느 한 곳에서 자신의 활동(물려받은 유산이 아니라)을 통해서 돈, 권력, 명성을 축적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 사회의 기반은 능력주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성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거둔 것이라고 이해한다. 부를 축적한 사람은 일단 주요한 미덕이 적어도 네 가지는 있다고 칭송을 받는다. 그 네 가지란 창의성, 용기, 지능, 체력이다. 다른 미덕, 예컨대 겸손이나 경건은 이제 눈길을 끌지 못한다. 성취는 이제 과거 사회에서처럼 행운이나 섭리때문이라고 이야기되지 않는다. 이것은 현대 세속 사회의 개인의 의지력에 대한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적 실패 역시 능력에 따른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실업자는 전사들의 시대에 육체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처럼 수치를 느끼게 되었다. 돈에는 윤리적 가치가 부여된다. 돈은 그 소유자의 미덕의 증거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도 마찬가지다. 쿠베오 부족의 재규어 이빨처럼 부자로 살아가는 것은 그 사람이 훌륭하다는 증거이며 낡은 차나 허름한 집을 소유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증거다. 부는 단지 높은 지위를 제공할 뿐 아니라, 늘 변하는 광범위한 소비재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여 행복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장려되기도 한다. 그런 소비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전 세대의 제한된 삶을 연상하며 동정심과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2

이런 이상이 아무리 자연스럽게 보인다 해도, 정치적 시각이 우군에게 일깨워주듯이, 이것은 단지 인간이 만든 것일 뿐이다. 실제로 이 이상은 그리 멀지 않은 18세기 중반에 여러 가지 확인 가능한 요인들에 의해 생겨났다. 나아가서 정치적 시각에 따르면, 이런 이상은 가끔 순진하기도 하며, 때로는 불공평하기도 하다. 물론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지도 않다.

 

근대의 이상 가운데 그것이 설정해놓은 부와 미덕의 연결, 뒤집어 말하면 가난과 미답지 않은 태도의 연결만큼 정밀한 조사를 받은 측면도 없다. 소스틴 베블런은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1899)에서 19세기 초에 돈이 상업적 사회가 그 구성원을 평가하는 중심 기준으로 등장했다고 묘사했다. “[부는] 존 중의 관습적 기초가 되었다. 공동체에서 존경받을 만한 자리를 차지하려면 돈이 필수적이었다. 평판을 유지하려면 재산을 획득하는 것이 불가결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부의 기준]에 미달하는 공동체 구성원은 다른 사람들의 존중을 받기 어려우며 그 결과 자기 자신의 존중도 받기 어렵다.”

 

베블런의 이야기에 따르면, 상업 사회에서는 덕은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존재하기 어렵다. 아무리 물질주의적인 태도와 거리가 먼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도 부를 축적하여 그것을 보여줌으로써 불명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요구를 느낄 것이며, 그렇게 하지 못하면 불안한 마음과 책임감에 시달릴 것이다.

 

따라서 물자를 아주 많이 소유하는 것은 이 물자가 쾌락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명예를 제공하기 때문에 필수적인 일이 된다. 고대 세계에서 철학자들 사이에 행복을 위해서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쟁이 붙었다. 예를 들어 에피쿠로스는 소박한 음식과 거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아마 합리적이고 철학적인 사람들이라면 값비싼 집과 사치스러운 요리는 모두 회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애덤 스미스국부론에서 이런 주장을 검토하면서 근대의 물질주의적 사회에는 육체적 생존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필요한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동시에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필수품으로 꼽히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으면 아무도 품위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따라서 심리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필수품이라고 할 때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상품만이 아니라, 나라의 관습에 따라 아무리 계급이 낮다 해도 평판이 좋은 사람으로서 그것이 없으면 품위를 지킬 수 없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아마포 셔츠는 엄격히 말하자면 생활의 필수품은 아니다. 아마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아마포 없이도 매우 안락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날품팔이 노동자라 해도 평판이 좋은 사람이라면 아마포 셔츠를 입지 않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아마포 셔츠가 없다는 것은 수치스러울 정도의 궁핍을 의미하며, 아무도 극단적으로 나쁜 행동을 하지 않고는 그런 상태로 빠져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수품이라고 할 때는 자연적 요구만이 아니라 기존의 품위 유지 규칙 때문에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도 필수적이라고 여기게 된 것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스미스의 시대 이후로 경제학자들은 궁핍한 상태를 규정하고 그것을 속상한 일로 만드는 것은 직접적인 신체적 고통이라기보다는 그 상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에서 나오는 수치감, 즉 가난 때문에 스미스가 말하는 기존의 품위 유지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수치감이라는 데 거의 만장일치로 동의하고 있다. J. K. 갤브레이스는 부유한 사회(The Affluent Society)(1958)에서 스미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이 생존에는 모자라지 않는다 해도 공동체의 소득에 비해 현저하게 뒤처지면 언제나 가난에 시달리게 된다. 그럴 경우 그들은 공동체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최소한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가질 수 없으며, 품위가 없다는 공동체의 심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

 

3

지위와 관련된 근대의 이상에 대한 회의적인 불만의 한 줄기는 바로 이렇게 부에는 품위가 따라붙고 가난에는 상스러움이 따라 붙는다는 생각을 겨냥하고 있다. 돈을 벌지 못하면 어째서 무조건 결합 있는 인간으로 간주해버리는가? 큰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단지 더 크고 더 다채로운 기획의 한 특정한 영역에서 실패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부와 가난을 개인의 도덕성의 핵심적인 표지로 읽는가?

 

그 이유는 신비할 것이 없다. 돈을 버는 것은 실제로 종종 인격적인 미덕을 요구한다. 어떤 일자리든 그것을 유지하려면 지능, , 선견지명, 남들과 협동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사실 소득이 많은 일자리일수록 요구되는 능력도 커진다. 법률가와 의사는 거리의 청소부보다 보수를 더 많이 얻지만, 그들이 하는 일에는 더 지속적인 노력과 기술이 들어간다.

 

애덤 스미스는 날품팔이 노동자라도 아마포 셔츠를 입지 않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다시 강조하자면 스미스와 같은 시대 사람들은 그런 셔츠를 못 입을 정도의 궁핍에 대하여 아무도 극단적으로 나쁜 행동을 하지 않고는 그런 상태로 빠져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타고 난 주정뱅이, 신뢰할 수 없고 도둑질이나 해 대는 유치한 반항자가 아니면 하찮은 일자리라도 얻어 아마포 셔츠 정도는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경우라면 셔츠를 소유한 것이 최소한의 인격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평가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옷장 가득한 아마포 셔츠, 요트, 저택, 보석을 갖추고 사는 사람은 행동이 대단히 훌륭하고 미덕을 많이 갖추었다고 상상하는 것까지는 그리 거리가 멀지 않다. 소유자에게 존경심을 일으키는 비싼 물건이 지위의 상징이라는 관념은 널리 퍼진 그럴듯한 생각, 즉 가장 비싼 물건은 불가피하게 가장 훌륭한 인격적 자질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의존하고 있다.

 

4

그러나 경제적인 능력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진정한 능력이란 연봉이라는 매개 변수로 말끔하게 포착할 수 없는 모호하고 복잡한 특질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태도는 어떤 학생 집단의 지능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측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교육자들의 태도와 비슷하다.

 

다음 네 단어 가운데 반의어를 골라라.

obdurate spurious ductile recondite

 

그렇다고 이런 비판자들이 능력이나 지능은 모두 똑같다거나 측정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당신이나 나는 제대로 측정하는 법을 모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알 수 있다는 가정하에 함부로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경제적 영역에서 부자들에게 매기는 세금을 칠폐하거나(경제적 능력주의의 극단적 옹호자들은 부자들이 자신의 소득을 모두 챙길 자격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국가의 사회보장 제도를 없앤다든가(이런 발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이 겪어 마땅한 빈곤을 더 철저하게 체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할 때는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회의적 태도는 일상생활의 요구와 쉽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교육에서든 경제에서든 진정한 자격이 있는 후보를 뽑아 패자들의 고통에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을 느낄 필요가 없는 체제를 바라는 마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절박한 바람이 건전한 해결책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조지 버나드 쇼지적인 여자를 위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안내(The Intelligent Woman's Guide to Socialism and Capitalism)(1928)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매우 둔감한 위계 결정 체 제가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체제는 누구나 비열한 폭력과 직접적인 사기만 피하면서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을 위하여 벌 수 있는 만큼 돈을 벌도록 내버려두면 부는 자연스럽게 근면, 절제 등 일반적 미덕에 비례하여 분배될 것이며, 착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 나쁜 사람은 가난해질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하여 움직인다.

 

그러나 쇼에 따르면, 무자비하고 야심만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쁜 위스키를 팔거나 밀을 매점하여 원래 값의 세 배로 팔 수도 있고, 기만적인 광고를 싣는 멍청한 신문이나 잡지를 만들어 300~400만 파운드를 움켜쥘 수 있다.” 반면 고귀한 재능을 발휘하거나 인간의 지식이나 복지를 개선하는 데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하찮은 존재로 궁핍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쇼가 현재의 사회 체제에서 선한 사람은 늘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감상적인 목소리 뒤에 줄을 섰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이것이 그 반대의 주장만큼이나 단순하기 짝이 없는 추론이라고 여겼다. 쇼는 소득을 근거로 어떤 사람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일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부의 차이로 인해 비참한 결과가 생기는 것을 가능한 한 막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쇼만큼이나 능력주의적 이념에 문제를 제기하는 데 관심을 가졌던 존 러스킨은 이 최후의 사람에게(Unto This Last)(1862)에서 비꼬는 투로 부자와 빈자의 성격에 대하여 그가 얻은 결론을 이야기했다. 그는 이것이 40년간 여러 나라의 부자와 빈자 수백 명과 만나본 경험을 기초로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부자가 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근면하고, 결단력 있고, 자신만만하고, 열의가 있고, 신속하고, 조직적이고, 분별력 있고, 상상력이 없고, 둔감하고, 무지하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완전히 어리석고, 완전히 지혜롭고, 게으르고, 무모하고, 겸손하고, 사려 깊고, 둔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예민하고, 아는 것이 많고,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예상할 수 없게 충동적으로 사악한 모습을 보이고, 꼴사나운 악당이고, 드러난 도둑이자 완전히 자비롭고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부자가 되는 사람이나 빈자가 되는 사람이나 딱히 범주를 정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으로 정리했고 19세기와 20세기에 정치적 사상가들이 세속적 언어로 되풀이했던 메시지를 따르는 것이다. 즉 소득과 명예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다. 수많은 외적 사건과 내적인 특징이 어떤 사람은 부유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은 가난하게 만든다. 운과 환경도 있고, 병과 공포도 있고, 우연과 뒤늦은 발달도 있고, 적절한 시운과 불행도 있다.

 

러스킨과 쇼보다 300년 전에 미셸 드 몽테뉴는 비슷한 맥락에서 삶의 결과들을 결정하는 우연적 요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변덕스러운 의지에 따라 우리에게 영광을 베푸는 우연의 역할을 잊지 말라고 충고했다. “나는 우연이 능력보다 앞서서, 한참 앞서서 행진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냉정하게 평가해본다면 우리 자신을 자랑하거나 창피해할 이유가 그리 많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 가운데 많은 부분은 우리의 행동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몽테뉴는 힘 있고 부유한 자를 만날 때 흥분을 억제하고 가난하고 미미한 자를 만날 때 판단을 억제할 것을 요구했다. “사람은 종자를 여럿 끌고 다니고, 아름다운 궁에 살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두 그를 둘러싼 것이지 그의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죽마(竹馬)를 떼어내고 그의 키를 재보라, 부와 장식을 벗기고 벌거벗은 몸을 보라…… 그에게는 어떤 종류의 영혼이 있는가? 그의 영혼은 아름다운가? 그 영혼은 능력이 있고, 행복하게 갖출 것을 다 갖추고 있는가? 그 영혼의 부는 자신의 것인가 아니면 빌려온 것인가? 운은 관계가 없는가? ……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들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상업적인 능력주의의 이상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 제기에서는 공통적으로 돈처럼 우연하게 분배되는 것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호소를 읽을 수 있다. 부와 미덕을 교조적으로 연결시키는 관행을 중단하고, 사람을 판단을 하기 전에 반드시 죽마를 떼어내라는 것이다.

 

5

근대의 성공적 삶이라는 이상은 돈과 선()을 연결시킬 뿐 아니라 또 하나의 연결도 시도한다. 즉 돈과 행복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런 관념은 세 가지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첫째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몸이 보통 알고 있어 염분이 필요하면 훈제 생선으로 향하고 혈당이 낮으면 복숭아로 항하듯이, 정신도 번영을 위해서는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 잘 알고 있어 우리를 어떤 일이나 기획으로 자연스럽게 몰고 간다는 것이다. 둘째로 근대 문명에서 접할 수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직업과 소비재가 우리의 행복과 별 관계없이 욕망만 부추기는 번지르르한 소모적 전시품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요구 몇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쏠 수 있는 돈이 많을수록 제품과 용역도 더 많이 이용할 수 있고, 따라서 우리가 행복해질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이런 가정들에 반박하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읽기 쉬운 책은 여전히 -자크 루소인간불평등 기원론이다. 루소는 우선 우리가 아무리 독립적 정신을 갖추고 있다 해도 자신의 요구를 이해하는 능력은 위험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고 전제한다. 우리 영혼은 만족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대로 말하는 경우가 드물며 어설프게 말을 한다해도 근거가 박약하거나 모순될 가능성이 높다. 건강해지기 위해 뭔가를 소비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정신과 신체가 같지만, 루소는 몸도 물이 필요할 때 술을 찾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때 춤을 찾는 것처럼 정신도 모순된 요구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우리의 정신은 만족을 하려면 이런저런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외부의 목소리의 영향력에 민감하다. 이런 목소리는 우리의 영혼이 내는 작은 소리를 삼켜버리고, 긴요한 것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힘들고 까다로운 일을 방해할 수 있다.

 

루소는 세계의 역사가 야만에서 출발하여 유럽의 훌륭한 작업장과 도시로 진보해왔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박하게 살기는 했지만 우리의 요구를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특권적 상태로부터 우리 자신의 인격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생활 방식들에 선망을 느끼는 상태로 퇴보해왔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에서 뒤졌던 선사시대에는 인간이 루소가 말하는 자연 상태에서 살았는데, 이때는 사람들이 숲에 살면서 장을 보지도 신문을 읽지도 않았다. 루소는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더 쉽게 이해했으며, 만족스러운 삶의 핵심적인 특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상상한다. 즉 가족을 사랑하고, 자연을 존중하고, 우주의 아름다움에 경외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품고, 음악과 소박한 오락을 즐기는 것이 그런 특징이었다. 그러나 근대의 상업적 문명은 우리를 이런 상태로부터 떼어냈으며, 우리는 풍요의 세계에서 선망과 갈망에 사로잡혀 고통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터무니없는 낭만적인 이야기로 해석하여 근대성에 비합리적인 분노를 느낀 전원주의자의 공상이라고 분석해버릴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18세기 사람들이 루소의 주장에 키를 기울였던 것은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서 그 주장의 참된 면모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덧붙여두어야 겠다.

 

16세기 미국 인디언 사회에 대한 보고서들은 이들이 물질적으로는 소박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보람있는 생활을 한다고 묘사했다. 공동체는 작고 긴밀하고 평등하고 종교적이고 재미있고 용감했다. 인디언은 물론 경제적인 의미에서는 후진적이었다. 그들은 과일과 야생동물을 먹고 살았으며, 천막에서 자고, 개인 소유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매년 똑같은 가죽옷을 입고 신발을 신었다. 심지어 추장도 소유물이라고는 창 한 자루와 단지 몇 개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소박한 생활에도 아주 높은 수준의 만족감을 느낀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유럽인이 처음 도착하고 나서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인디언 사회의 지위 체계가 혁명적으로 바뀌어버렸다. 유럽 산업의 과학기술이나 사치와 접촉했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지혜나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 장신구, 술의 소유였다. 이제 인디언은 은 귀고리, 구리와 놋쇠 팔찌, 주석 반지, 베네치아 유리로 만든 목걸이, 얼음을 뚫는 끌, , , , 구슬, 호미 거울을 갖고 싶어 안달했다.

 

이런 새로운 열망이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유럽의 상인은 인디언의 내부에서 욕망을 길러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야 그들이 유럽 시장에서 요구하는 동물 가죽을 얻으러 부지런히 사낭을 나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1690년 잉글랜드의 박물학자 존 배니스터 목사는 허드슨 만 지역의 인디언이 상인의 유혹에 완전히 넘어가 전에는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원하지도 않았으나 이제 교역에 의해 그들에게 필수적인 물건이 된 많은 것들을 원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20년 뒤 여행자 로버트 베벌리는 이렇게 말했다. “유럽인이 인디언에게 사치품을 전해주는 바람에 그들의 요구가 늘어났으며, 전에는 꿈도 꾸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을 바라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수많은 것들을 아무리 열심히 모아도 인디언이 더 행복해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들은 더 열심히 일을 했다. 1739년부터 1759년 사이에 체로키 부족 전사 2,000명은 유럽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슴을 125만 마리나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시기에 세인트로런스 강 북쪽 강변의 몽타녜 부족 인디언은 타두사크의 프랑스와 영국 상인들과 1년에 만 2,000에서 만 5,000장의 가죽을 거래했다. 그러나 교역이 증가한다고 행복도 증가했던 것은 아니다. 자살과 알코올중독은 늘었으며, 공동체는 분열되었고, 유럽의 물자를 놓고 자기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다. 부족의 족장들은 루소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했으며,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루소의 분석에 동의했다. 여러 인디언이 나서서 유럽의 사치품에 의존하는 태도를 버리라고 촉구했다. 1760년대에 펜실베이니아 서부와 오하이오 계곡의 델라웨어 부족은 선조의 생활 방식을 다시 살려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인디언 역시 심리적 구조가 다른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근대 문명의 시시한 장신구들의 유혹에 굴복했으며, 공동체 생활의 소박한 즐거움과 어스름녘 텅 빈 협곡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조용한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6

상업사회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미국 인디언에게 공감하는 사람들이나 발달한 경제의 부패한 영향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늘 한 가지 반론을 제시했다. 아무도 인디언에게 베네치아 유리로 만든 목걸이, 얼음을 뚫는 끌, , , 구슬, 호미, 거울을 사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그들이 텐트에 사는 것을 막지 않았으며, 그들이 현관과 와인 창고가 있는 목조 주택 소유를 갈망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인디언은 자발적으로 소박하고 건전한 생활을 떠났다. 이것을 보면 그들의 과거 생활이 사람들이 떠들어대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즐겁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이런 변론은 근대의 광고업자들이나 신문 편집자들이 하는 말과 비슷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명인사의 생활, 유행의 변화, 새로운 제품의 소유에 대한 부적절한 관심을 가지도록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냥 매체의 한 구석에서 혹시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주제와 관련된 정보를 제시하는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가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자신의 영혼을 살펴보고,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Decline and Fall)를 읽고, 자신이 이 땅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생각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이런 대응을 보면 루소가 인간은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결정을 잘 못한다거나, 어느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무엇을 귀중하게 여길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주장특히 이 주장이 신문의 권위나 간판의 시각적 매력을 동반할 때에 혹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왜 그렇게 강조하고 싶어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광고업자나 신문 편집자들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작업의 효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그들은 사람의 정신이 독립적이기 때문에 그들이 세상에 내놓는 기사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지도 않고, 그들이 그렇게 교묘하게 꾸민 간판에서 들려오는 사이렌의 노래에 오랫동안 빠져들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너무 겸손한 것이다. 그들의 결손이 빈말임을 확인하려면, 한때는 가능성일 뿐이었던 것이 적당히 부추기면 필수품으로 바뀌는 신속한 과정을 보여주는 다음 보고서를 읽어보면 될 것이다.

 

다음 물품을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북미인의 비율

  1970 2000
두번째 차 20% 59%
두 번째 텔레비전 3% 45%
한 대 이상의 전화 2% 78%
자동차 냉방장치 11% 65%
가정 냉방장치 22% 70%
식기세척기 8% 44%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은 제품의 결함이나 부적합(이것은 과장하기 쉬운 것이 예를 들어 뒤틀린 사람이 아니라면 캐시미어 스웨터의 아름디움이나 야간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계기판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제품들이 우리에게 제시되는 방식에서 발생하는 우리 욕구의 왜곡에도 맞추어진다. 아마 그것이 더 합당한 태도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제품들이 필수적으로 보이고, 우리에게 행복 을 부여할 특별한 능력을 갖춘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우리가 그 진짜 정체도 우리 자신의 심리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9881214일치 <한겨레> 12면 현대자동차 광고.

 

예를 들어 자동차 광고는 광고에 나온 자동차를 소유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기쁨을 망칠 수 있는, 또는 적어도 약화시킬 수 있는 심리의 여러 측면이라든가 소유의 전반적 과정을 교묘하게 무시해버린다. 어떤 것을 소유하고 나서 얼마 후에는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어떤 것에 계속 눈이 가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것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을 자꾸 보게 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임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 산 자동차는 우리가 이미 소유한 모든 경이로운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곧 우리 생활의 물질적 배경 속으로 사라져, 특별히 눈길을 주게 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강도가 창문을 깨고 라디오를 훔쳐가는 역설적인 봉사를 해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깨달을 것이다.

 

광고는 또 어떤 물품이라도 우리의 행복 수준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이것은 감정적 사건이 발휘하는 압도적인 힘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아무리 우아하고 세련된 자동차라도 그 만족감은 인간관계가 주는 만족감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집에서 싸움을 하거나 버림을 받은 뒤에 그 자동차가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순간이면 오히려 자동차의 냉정한 능률, 그 지시 장치들의 정밀한 딸깍거림, 탑재된 컴퓨터의 꼼꼼한 계산에 화가 치밀어 오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직업이 주는 매력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직업에 포함된 많은 것이 편집되고 오직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눈에 보이는 것이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7

지위와 관련된 근대의 이상에 대한 공격의 핵심은 이것이 우선순위를 엄청나게 왜곡하여, 물질적 축적 과정을 가장 높은 수준의 성취로 치켜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아상을 진실되고 폭넓게 규정한다면, 물질적 축적은 우리 삶의 방향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우선순위를 왜곡하는 것에 격분한 존 러스킨은 19세 기 영국인(그는 미국에 간 적이 없다)이 세계사에서 부에 가장 강한 강박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통렬하게 비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누가 무엇을 어디에서 얻었는가 하는 관심을 결코 버리지 못한다(“이들을 지배하는 여신은 성공의 여신으로 묘사하는 것이 가장 나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부유하지 않으면 수치를 느꼈고, 다른 사람이 부유하면 질투를 했다.

 

그러나 러스킨은 고백했다. 예상과는 반대로 그 역시 부유해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부에 대한 생각이 아침을 먹을 때부터 저녁을 먹을 때까지 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다고 그는 인정했다. 그러나 러스킨은 자신의 동포가 미덕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났는지 강조하기 위해 (wealth)”라는 모호한 말을 가지고 빈정거리듯이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다. 사전에 따르면 부는 단지 많은 액수의 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볼 때 그것이 일차적인 의미도 아니었다. 부란 나비에서부터 책이나 미소에 이르기까지 뭐든지 풍부한 상태를 의미한다. 러스킨은 부에 관심을 가졌고, 심지어 부에 강박감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염두에 두었던 부는 특별한 종류였다. 그는 친절, 호기심, 감수성, 겸손, 경건, 지성그는 이런 일군의 특징을 단순하게 이라고 불렀다에서 부유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이 최후의 사람에게에서 부에 대한 일반적인 금전적 관점을 버리고 에 기초한 관점을 채택하라고 호소했다. 이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러스킨은 말한다. “,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징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의 삶의 기능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하다…… 보통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 그들의 금고 자물쇠만큼이나 부유하지 못하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부유할 수가 없다.”

 

러스킨은 예언자처럼 평범한 진리의 말을 한다. 마치 아이의 말 같다. 어떤 사람들은 비웃기도 했지만(새터데이 리뷰는 러스킨을 미친 가정교사라고 불렀고, 그의 주장을 공허한 히스테리 발작”, “정 말 말도 안 되는 소리”, “견딜 수 없는 허튼 소리라고 묘사했다), 어떤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1906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27명의 노동당 의원들이 의회에 들어갔을 때 그들이 정치를 통한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한 권을 꼽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7명 가운데 17명이 러스킨의 이 최후의 사람에게를 꼽았다. 13년 뒤 조지 버나드 쇼는 러스킨 탄생 백주년 강연에서 블리 디미르 레닌의 독설과 카를 마르크스의 고발은 러스킨의 저작에 비교하면 시골 사제의 진부한 소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물론 러스킨은 낙인을 찍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을 즐겨 자신을 보수파 즉 월터 스콧의 보수파와 호머의 보수파에 속하는 과격한 토리당원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쇼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대단히 혁명적인 인물을 몇 사람 만났다. 내가 당신은 누구의 영향으로 이런 혁명적 노선을 택하게 되었는가? 마르크스인가?’하고 문자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간단하게 아니, 러스킨이오하고 대답했다. 러스킨주의자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기존 질서에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가장 철저한 사람들일지 모른다. 당대의 교양 있는 사람들, 바로 러스킨 자신이 속한 계급에게 보내는 러스킨의 정치적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단순한 심판으로 시작했고 또 끝이 났다. ‘당신들은 도둑떼다.’”

 

러스킨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다. 19세기에는 돈이 완성된 삶의 여러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품위를 결정하는 주된 요소, 입증 가능한 선의 증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때로는 격노한 목소리로 때로는 우울한 목소리로 비판을 퍼붓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부를 그 자체로 귀중한 목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현재 영국에서처럼 그런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다.” 매슈 아널드는 교양과 무질서(1869)에서 이렇게 탄식한다. “오늘날 영국인 가운데 열에 아홉은 큰 부가 위대함이나 행복의 증거라고 믿는데, 사람이 뭔가를 이렇게 굳게 믿기도 힘든 일이다.” 러스킨이 7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널드도 세계 최고의 산업 선진국 백성에게 부는 행복을 확보하는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행복은 내적인 영적 활동이며, 그 특징은 친절과 빛과 삶과 공감이 확대된다는 것이라고 자기 나름으로 정의하여 데일리 텔리그라프의 비판자들로부터 다시 한 번 야유를 받았다.

 

토머스 칼라일도 러스킨이나 아널드의 의견에 동조했는데, 다만 더 성난 목소리였을 뿐이다. 칼라일은 미다스(Midas)(1843)에서 묻는다. “과다한 부를 거느린 영국의 이 성공적인 산업…… 우리 가운데 누가 그것을 부유하게 만들었는가? …… 우리는 삶의 호화로운 장식은 소유하게 되었지만 그 와중에 사는 것은 잊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비싼 술을 마시지만 그 중심을 보라, 과연 어떤 축복이 늘어난 것인가? 더 나아지고, 더 아름다워지고, 더 강해지고, 더 용감해졌는가? 심지어 흔히 하는 이야기대로 더 행복해졌는가’? 이 하느님의 땅에서 사람들이 만족감을 느끼며 바라보는 물건이, 바라보는 얼굴이 늘어났는가? 아니면 반대로 전보다 더 많은 물건이, 더 많은 얼굴이 만족감을 느끼며 그들을 바라보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현금 지불이 인간들의 유일한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칼라일은 근대 기업이 주는 혜택을 모르지 않았다. 회계의 어떤 측면에는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복식 부기는 감탄할 만하며, 정획 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를 기록한다”). 그러나 아널드나 러스킨, 그리고 그 전이나 후의 많은 사회 비판자들과 마찬가지로 칼라일은 그 가 말하는 마몬 숭배”, 즉 배금주의가 하느님의 땅에서 축복만족을 향한 충동을 삼켜버린 생활 방식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치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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