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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청소부 - 제4부, 1. 맑스 : 역사유물론과 근대철학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과 굴뚝청소부 - 제4부, 1. 맑스 : 역사유물론과 근대철학

건방진방랑자 2022. 3. 2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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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맑스 : 역사유물론과 근대철학

 

 

맑스의 유물론 비판

 

 

맑스가 관념론을 비판했다는 사실은, 그가 유물론자였다는 사실만큼이나 유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유물론자맑스가 사실은 유물론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비판을 수행했다는 주장을 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맑스가 근대철학과 근본적인 구획선을 그으면서 달라지는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맑스는 실천이란 개념을 철학에 끌어들인 장본인입니다. 또한 근대 철학을 해체하는 데 맑스가 사용하는 결정적인 개념 역시 실천입니다. 다시 말해 실천이란 개념을 통해 맑스는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을 넘어섭니다.

 

 

빈약한 부엌

브뤼겔(Brueghel/Bruegel)의 그림 빈약한 부엌(Die magere Kiche)이다. 브뤼겔은 장애인이나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런데 정신없는 부엌을 그린 이 그림에서 젖먹는 아이, 식탁 앞에서 무언가를 들고 먹는 아이는 전혀 조명발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다른 많은 인물과 소품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사진을 찍으면 언제나 어린이를 한가운데 앉히는 우리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태도다.

그러나 브뤼겔만 그랬던 건 아니다. 17세기 이전에는 아기 예수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이 그림의 중심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 그런 건 없었다. 아니 어린이나 소년에 대한 특별한 관념 자체기 없었다. 어린아이란 그저 조그만 어른에 불과했다. 그래서 로미오나 줄리엣 같은 열 살 갓 넘은 아이들이 죽자사자 연애를 했고, 르네상스의 유명한 휴머니스트 에라스무스는 아이들을 위한 예절서에서 좋은 창녀 고르는 법을 떡 하니 써 놓았다. 심지어 수상록으로 유명한 몽테뉴는 자기 아이들이 몇 명인지, 그 중 몇 명이 죽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7~8세가 되면 다른 집, 가령 장인(匠人)의 집에 일을 배우러 보내졌고, 거기서 나이 많은 사형들과 섞여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음담을 나누고, 여자를 사러 가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대해 당장 반박할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실천의 개념을 철학에 끌어들인 게 어째서 맑스인가?”라고 말입니다. “바로 앞장에서 나온 칸트는 실천이성 비판이란 제목으로 철학책을 쓰지 않았는가? 근대의 윤리학이란 바로 근대인들의 실천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반박 말입니다.

 

그러나 근대철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실천이란 말은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영역이란 의미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칸트의 실천이성 비판, ‘윤리학이란 이름도 마찬가지지요. 실천이란 말은 다만 서술적인 의미로, 그것도 윤리학이란 영역에 제한되어서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말을 개념이라고 하긴 아직 곤란합니다. 개념이란 대상을 파악하거나, 그 파악 방법과 관련해 다른 개념들을 조직해내고, 그것들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특별한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본유관념이나 연장’ ‘사유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칸트의 선험적 경험적같은 말들뿐만 아니라 감성이니 범주니 하는 말들이 그렇고, 헤겔의 모순’ ‘본질’ ‘생성등도 그렇습니다. 이처럼 특별한 의미와 기능을 갖는 것이라면 분명한’(clare) ‘뚜렷한’(distincte)처럼 평범한 형용사도 개념이 되지만(데카르트 철학에서), 심오해 보이는 어려운 단어도 그런 특징이 없다면 개념이 되지 않습니다. 맑스가 실천을 개념으로 도입한다는 것은 그 말에 바로 이런 기능과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입니다.

 

맑스가 철학적 개념으로 실천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저작은 독일이데올로기와 그 책에 부록으로 실려 출판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였습니다. 여기서 맑스는 포이어바흐 비판이라는 형식으로 실천에 관한 몇 개의 핵심적인 명제를 제출합니다. 그것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지요.

 

 

 오후의 식사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의 그림 오후의 식사(The afternoon meal).

어린이라는 말에 순진무구한 존재하지만 약하고 여리기에 어른들의 더러운 세계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존재라는 생각이 따라다니게 된 것은, 어린이가 어른과 다른 존재라는 구별이 발생한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옷, 어린이를 위한 놀이, 어린이를 위한 방 등등이 따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도 훨씬 나중의 일이며, 크리스마스가 지금처럼 어린이를 위한 축제로 만들어진 것도 19세기 중반의 일이다(물론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된 데는 상인들의 공작이 개재해 있지만), 어린이가 일하고 돈을 버는 경제적 대상이 아니라, 입 맞추고 안고 싶은 감정적 대상이 된 것은 이런 변화와 나란히 발생했다.

이후 어린이는 가정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 근대는 어린이의 시대가 된 것이다. 부세의 그림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에는 애정과 사랑이 가득하다. 이와 나란히 부르주아의 가족 안에서는 새로운 욕망, 즉 가족주의가 나타나고 확산되었다. 사랑과 결혼뿐만 아니라 모든 사적 생활을 가정 안에서 해결하고, 가족적인 내밀성을 무엇보다 먼저 보호되어야 할 프라이버시로 뒤바꾸어 버리고, “모든 것을 가족을 위하여바치려는 욕망이, “, , 스위트 홈이라는 구호는 이런 새로운 욕망을 요약해서 표현하는 것이었다.

 

 

대상으로서의 실천

 

 

첫째는 대상으로서의 실천입니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첫번째 테제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포함하여 의 주요한 결함은 대상, 현실을 객체의 형식으로만 파악했고 그것을 실천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는 대상, 현실을 실천이란 형태로 파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요?

 

포이어바흐는 인간이란 자기가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인간이란 단백질 덩어리란 말이죠. 이 극단적인 문장에서 포이어바흐가 생각하는 유물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래서 그의 유물론을 흔히 기계적 유물론이라고 하지요. 맑스가 보기에 이런 유물론은 대상이나 현실을 단백질처럼,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고정적인 객체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맑스 말대로 대상이나 현실을 실천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요?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예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비지터(The Visitor)란 영화를 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약간 앞의 과거로 돌아가려던 중세의 영주가 마술사의 실수로 수백 년 뒤의 미래인 20세기에 떨어집니다. 그의 시종과 함께 말이죠. 돈키호테를 연상하면 20세기에 떨어진 중세인의 행동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영주와 시종이 20세기로 날아와 처음 한 행동은 지나가다 세워둔 자동차를 괴물로 알고 두들겨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떨어진 곳에는 영주의 후손이 살고 있었지요. 치과 의사의 부인으로 말입니다. 시종의 후손 역시 그 부근에 살고 있었는데, 호텔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호텔은 바로 영주가 원래 갖고 있던 성이었습니다. 영주는 놀라고 분노하지요. 자기의 성을 시종의 후손이 갖고 있고, 호텔로 사용하고 있는데다가, 자기의 후손은 그 밖에서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 이쯤하고 다시 돌아갑시다. 중세에도 20세기에도 성은 그대로 있습니다. 벽돌로 높이 쌓은 담이 있고, 그 안에는 좋은 방과 정원이 있지요. 물론 약간 수리도 하고 개축도 했겠지만, 그거야 대세에 지장 없으니 무시합시다. 포이어바흐가 본다면 20세기에 남아 있는 성은 중세에 있던 영주가 소유한 성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중세의 영주도 단백질이요, 그 후손도 단백질인 데는 차이가 없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두 시기의 성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중세의 성은 영주의 권력이 나오며 어떤 돈을 치르고도 살 수 없는 것이었지만, 20세기의 성은 아무나 돈만 내면 먹고 잘 수 있는 호텔이,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리 잘난 기사가 창을 들고 설쳐도 뺏을 수 없는 건물이 된 것입니다. 돈과 관계없는 어떤 권력도 그 성 안에는 없습니다. 이처럼 완전히 다르기에 우스운 일이 생기고, 또 그래서 영화가 되는 거지요.

 

결국 이 성을 둘러싸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그 성의 본질이 달라지는 겁니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시민혁명이나 산업혁명 같은 변화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모두가 바로 실천에 의해 이루어진 변화이고, 따라서 성의 본질은 이같은 실천의 개입 없이는 올바로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포이어바흐처럼 관조한다면 성은 성일 뿐이지만요.

 

결국 포이어바흐는 대상을 정태적인 것, 지각에 의해 관조하기만 하면 올바로 파악할 수 있는 정적인 것으로 파악했던 것입니다. 대상 자체가 인간의 생활 과정, 실천 과정 속에서 변화되고 변혁되는 것을 보지 못했던 거지요. 성이란 대상을 단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귀족들이 사는 집으로만 파악할 뿐인 것입니다.

 

반면 맑스는 대상의 개념 자체를 바꾸려고 합니다. 맑스는 대상을 활동적인 생활 과정, 실천 과정으로서 파악하려 합니다. 의식과 대비되는 물질, 주체와 대비되는 대상이란 개념에서 벗어나, 물질 혹은 대상 자체를 물질적 생산방식으로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로써 대상은 사회적 맥락과 역사 속에서 정의될 수 있게 됩니다.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성은 성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것은 호텔이 된다는 것입니다.

 

 

탄차 끄는 아이들

18세기 중반쯤 그려진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탄차 끄는 아이들이다.

작은 어른과 구별되는 어린이’, 그것은 그를 둘러싼 관계의 변화와 더불어 그의 삶 자체의 변화를 함축한다. 맑스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이는 아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어린이가 된다.” 그러나 적어도 19세기까지는 아이가 어린이가 되는 것도 단지 부르주아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위 그림은 19세기 중반 이른바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던 영국의 탄광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대체 누가 이들의 순진무구함을 주장했으며, 대체 누가 이들의 순결함을 어른들의 타락한 세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던가! 맑스는 영국의 공장 감독관들의 보고서를 수다하게 인용하면서 심지어 4~5세의 아이들까지 공장에서 14시간 이상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지칠 줄 모르는 꼬마 노동자들”, 그것이 이들의 이름이었다. 거의 동일한 시기, 거의 동일한 곳에서 이토록 다른 삶을 사는 아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맑스는 세상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으며, 국가가 그 통일성과 인륜성의 이념을 대표한다고 하는 헤겔식의 관념을 뒤집어 버린다. 아이들이 , , 스위트 홈을 노래하는 달콤한 가정은 저렇게 처절하게 탄차를 끄는 노동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계급으로 분열된 세계일 뿐 아니라 두 계급이 서로 적대하는 관계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세계인 것이다.

 

 

실천 속에서의 지각

 

 

둘째, 맑스는 포이어바흐를 비롯한 유물론자들이 지각이나 감성, 즉 대상을 단순히 지각ㆍ직관ㆍ감각으로만 파악했다고 비판합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지각을 단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관조하는 행위로만 간주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포이어바흐의 생각은 헤겔의 관념론을 비판하면서 제시된 것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관념론자들은 대상을 주체의 관념 속에서 정의합니다. 이에 대해 포이어바흐는 관념론자들은 사물을 더욱더 잘 보기 위해 인간의 육체에서 눈을 빼버렸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그대로 뒤집어 좀더 잘 보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눈을 갖고 개념을 없애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그는 대상을 눈에 비치는 대상, 직관되는 대상으로 파악하고자 한 것이지요.

 

그러나 맑스에 따르면 지각이나 감성은 대상과 목적을 갖는 활동이요 실천입니다. 지각이란 대상을 그저 수동적으로 비추기만 하는 거울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실천적 맥락에 따라 대상은 다르게 파악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지터(The Visitor)의 예를 들어 봅시다. 중세의 영주와 시종이 20세기로 날아와서 처음 한 행동이 지나가던 자동차를 악마가 보낸 괴물로 알고 처치하는 것이었다고 했지요? 처음에 시종이 덤벼들었다가 폭발음에 놀라서 도망칩니다. 그러나 영주는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어서인지 용감하게 싸워서 그 괴물을 무찌릅니다. 운전수는 도망을 가고, 시종은 영주의 빛나는 용기와 힘에 다시 한번 감복하게 됩니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예지요. 그러나 이 극단적인 예를 통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중세인들로선 그것이 자동차라고 인식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서양인을 신의 사자라고 생각한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원주민들도 마찬가집니다. 부시맨이 발견한 콜라병이 과연 콜라병이겠습니까? 중세의 신부들이 보기에 해는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는 거지요. 지구가 돈다는 건 머리가 돈 사람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거고 말입니다.

 

요컨대 실천적 맥락과 무관하게 어떤 대상을 지각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양식이나 일상적인 실천, 혹은 목적을 갖는 실천 속에서 사물을 지각하게 마련이라는 거지요.

 

 

사우스 피트스톤의 광부들

루이스 하인(Lewis W. Hine)의 사진 펜실바니아, 사우스 피트스톤의 광부들이다.

사회학자 출신의 사진작가인 루이스 하인은 노동자와 노동하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데 평생을 바쳤다. 사진을 유심히 보면 광부들의 대부분이 열 살이나 될까말까 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사진집을 보면 정말 대여섯 살 된 아이들이 공장에서, 혹은 실내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이 많다. 맑스가 공장 감독관 보고서에서 인용한 사실을 하인은 사진에 담아 보여준다.

위 사진의 날짜는 1911년이다! 20세기에 들어와 10년이 지났어도, 아이들은 아직도 광산에서 탄을 캐야 하는 상황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합리성이 극도로 발달하여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게 된 이 자본주의적 근대 세계와 배고프면 수렵ㆍ채집을 하고 배부르면 게으름을 피우며 느긋하게 살던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미개한 원시 사회가운데 어떤 것이 더 진보한 사회고 어떤 것이 더 발전한 사회일까? 정말 역사는 발전과 진보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어쨌든 노동자나 노동하는 아이들을 다룬 루이스 하인의 사진들은 끔찍한 아동노동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증명함으로써, 아동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진위는 실천을 통해서

 

 

셋째는 진리의 문제입니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두번째 테제에서 맑스는 인간이 대상적 진리를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오해가 많이 되는 구절입니다. 흔히 길고 짧은 것은 대보면 안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져, 참인가 아닌가는 실천해 보면 안다라는 식으로 해석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유물론에서 진리를 검증하는 방법으로 간주된다는 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실천 개념은 사실 실증주의자들이 말하는 검증 개념과 별로 다르지 않지요. 그러나 맑스 말대로 대상이나 지각이 실천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혹은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사물도 다른 것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길고 짧은 걸 대보는 것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부시맨의 콜라병 얘기를 했지요? 부시맨에게 그가 들고 있는 게 콜라병이란 걸 말만으로,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사람을 노예로 다루어선 안 된다는 걸 설득하기 위해 휴머니즘이니 뭐니 하는 온갖 이론적 수단을 동원한들 그를 설득할 순 없을 겁니다. 그건 마치 농부에게 소를 노예처럼 일 시키고 부리면 안 된다는 걸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만약 부시맨 A가 콜라 먹는 행위를 자주 보고, 또 자기도 따라 마셔 본다면, 그게 콜라병이란 걸 이해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콜라병이란 판단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다른 부시맨 B가 있어, 그는 그 물건을 호두를 까먹는 데 사용했다고 합시다. 그럼 그는 그 병을 호두 까는 도구로 파악할 겁니다. 즉 그는 실천적으로 그 물건이 호두 까는 도구라는 걸 증명할 수 있겠지요. 또 다른 부시맨 C는 그 병에 입을 대고 불어봤다고 합시다. 그럼 그는 그 병에서 소리가 나는 걸 듣고 그 물건을 물소 뿔피리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그걸 실천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이는 앞서 맑스의 테제에 비추어 본다면 당연한 일입니다. A, B, C 세 부시맨 각각은 나름의 실천속에서 그 물건이 무엇인지(대상) 인식합니다. 그리고 실천 속에서 그것이 콜라병인지, 호두까기인지, 뿔피리인지 검증합니다. 따라서 이 세 사람의 부시맨이 모여서 이 물건은 무엇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면 아마 그 논쟁은 끝없이 계속될 겁니다. 이때 이게 어째서 콜라병인지 이론적으로 증명하려는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각자 자기 식의 실천을 통해 자기 주장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요(여기서 실천을 통해 그게 콜라병이라는 판단이 진리임을 검증할 수 있다는 생각처럼 순진한 게 또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맑스는 이제 진리의 문제를 현실성과 힘, 차안성을 입증하는 문제로 바꿔 버립니다. 그 물건에 대해 영원한 진리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떤 판단이나 지식의 현실성과 타당성(옳음)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예를 든 부시맨 B가 호두까기로 그 물건을 계속 사용한다면, 그리고 그게 매우 훌륭한 도구임을 입증한다면, 그 판단은 현실성과 힘을 입증한 셈이지요. 뿔피리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옳음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면, 그리고 그 문제들이 심각한 것이라면 옳다는 판단은 유지되기 힘들 겁니다.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이는 대상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함께, 근대적인 진리 개념으로부터의 근본적인 전환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이는 나중에 보겠지만, 비트겐슈타인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빈민들의 놀이터

구스타브 도레(Paul Gustave Doré)의 그림 더들리 가(Die Dudley Stree).

더들리 가는 19세기 중반 영국의 빈민 거주지역 중 하나였다. 길거리엔 아이들이 가득하고, 집의 문들은 거리를 향해 열려 있어서, 저 뒤에서 아이들을 헤치며 오고 있는 마차만 없다면 거리인지 집 안인지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거리는 마치 많은 집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거대한 거실처럼 보인다. 이 정도는 아니라 해도, 19세기 건반까지만 해도 거리는 빈민들의 놀이터였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거리에서 공을 가고 노래를 부고 카드놀이를 했다. 사실 내가 살던 1970년대 서울의 골목도 다르지 않았다. 그곳은 적어도 동네 아이들이 만나고 어울리며 함께 놀던 놀이터였고, 생소하고 이질적인 사람과 만나고 어울리는 하나의 세계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박애주의자라고 자칭하던 부르주아들은 골목과 거리에서 사람들의 삶을 몰아내 버렸다. 그들이 보기에 그곳은 빈민의 아이들이 모여서 범죄를 배우고 갱단을 만들기도 하는 범죄의 온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를 깨끗이 청소해 버렸다. 대부분의 도시들이 거리에서 공을 차거나 도박, 음주, 고성방가를 하면 체포하고 구금할 수도 있는 조례(條例)들을 만들었다. 이제 아이들은 집 안으로 쫓겨 들어가고, 기리는 저 아이들에 가려 주춤대고 있는 마차, 아니 자동차들이 다니는 공간, 그리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나가는 통과 공간이 되어버렸다.

 

 

계몽주의 비판

 

 

넷째로 계몽주의 비판입니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세번째 테제에서 맑스는 교육과 환경에 의해 인간이 바뀐다는 생각(이게 바로 계몽주의지요)을 비판합니다. ‘사회를 우월한 부분과 열등한 부분으로 양분하는 것, 가르치는 부분과 가르침을 받아야 할 부분으로 나누는 것,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으로 나누는 것을 비판함으로써 계몽주의의 근본 관점인 이분법 자체를 비판합니다. 이는 계몽주의의 지반 자체를 해체하는 비판입니다. 전위와 대중을 갈라놓고 전위는 교육하는 자, 대중은 그 교육을 따라가면 되는 자로 파악하는 전통적인 관념에 대해, 이미 맑스는 계몽주의적 윤리학이라며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맑스의 이러한 비판은 계몽주의와 반계몽주의 모두를 떠나 계몽주의적 이분법 자체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극히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맑스는 환경은 인간에 의해 변화하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육자도 교육받아야 한다면 그는 누구에게 교육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대중에게서?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계몽주의를 뒤집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에도 계몽주의적인 이분법이 그대로 잔존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로써 그는 근대적 윤리학 자체를 해체하고 있습니다. 이 해체된 자리에 맑스는 혁명적 실천이란 개념을 도입합니다. 혁명적 실천 속에서 교육자 자신도 교육받을 것이라고 말하지요. 사실 혁명적 실천의 상황에서 교육자-피교육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혁명적 실천 과정에서 (대중과 전위를 나누어 얘기하자면) 대중에 의해서 전위가 교육받고 교육자 자신이 바뀌는 경우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대중이 전위를 가르친다는 의미보다는 혁명적 실천 속에서 교육자/피교육자 전체가 다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점에서 계몽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윤리학을, 아니 정치학을 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은 포이어바흐 비판이란 형태로 제출되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헤겔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맑스는 포이어바흐와 헤겔에 대한 이중적 비판을 수행하는 가운데 근대철학의 문제설정 전체를 비판하고 있는 셈입니다.

 

어쩌면 맑스는 이런 방식으로 유물론자체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근대적 문제설정과 개념에 사로잡혀 있는 유물론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비판을 통해 맑스는 유물론 자체를 다른 것으로 치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초 위에서 역사유물론이라 불리는 새로운 유물론의 형성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가족궁전, 파밀리스테르

-밥티스트 고댕(Jean-Baptiste Godin)은 양은 그릇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양심적인 사업가였던 그는 공장이 커지자 노동자들의 기숙사를 지으려 했는데, 이로 인해 코뮨주의자들인 푸리에주의자들과 만나게 된다. 푸리에주의자가 된 고댕은 한쪽에는 생산하는 공장을, 다른 한쪽에는 노동가들이 생활하는 궁전같은 집을 짓는다. 그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형태와 유사한 모습의 집합주택을 만들고 가족궁전이란 뜻의 파밀리스테르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음자 형으로 된 세 개의 집합주택이 있고, 그 가운데의 중정(中庭)에는 유리지붕을 덧붙여서 집회나 결혼식 등의 모임에 사용했다. 건물 뒤에는 아이들을 공동으로 키우는 탁아소가 있고, 건물 앞쪽에는 학교, 식당, 공작실, 무대가 있는 극장까지 포함된 공동 건물들이 있다. 노동자 주거문제가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였던 유럽 전체에 이것이 준 영향력은 매우 컸다. 그때까지 노동자의 주거문제는 위생문제로서 공중 위생법의 대상으로 다루어졌는데, 이는 빈민굴을 전염병의 진원지로 보는 것을 뜻했고, 따라서 철거가 주된 해결방법이었다. 그러나 노동자가 함께 철거될 수 없는 한, 이는 노동자 주거문제를 더욱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밀리 스테르는 코뮨적인 조합의 형태로 집합적인 노동자 주거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사례로 인정되었다. 고탱은 조합을 만들어 이 건물의 소유권을 조합원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가 죽은 후에도 이들은 생산과 생활을 함께 하는 삶을 계속했다.

 

 

역사유물론

 

 

맑스가 실천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야기된 철학적 지반의 변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진리라는 근대철학의 목표는 물론, 대상 자체도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단지 파괴하는 데 머문 것만은 아닙니다. 물질 개념조차 역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이론으로서 역사유물론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역사유물론으로 진전됨에 따라 이제 맑스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주체(또는 인간)개념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맑스는 인간이란 개념 자체를 해체합니다. 그는 인간이란 포이어바흐처럼 사랑이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존재로 정의될 수 없으며, 데카르트처럼 이성정념을 가진 존재로 정의될 수도 없다고 하죠.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갖는 수많은 특성 중 몇 가지를 추출해서 인간의 본질이 그거라고 선언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사람마다 인간은 다르게 정의될 수 있을 겁니다.

 

맑스가 보기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개인들이 어떤 사회적인 특징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단적으로 말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말입니다.

 

앞에서 비지터(The Visitor)란 영화 얘기를 했지요? 그 영화에는 영주의 후손과 시종의 후손이 나왔습니다. 영주는 중세 때 한 지방을 지배하던 귀족이요 지배자입니다. 시종은 그에게 딸린 노예 같은 존재고 말입니다. 한편 20세기에 사는 영주의 후손은 더 이상 귀족도 영주도 아니며 지배자도 아닙니다. 시종의 후손은 호텔을 경영하는 부르주아고요.

 

맑스로서는 이들이 갖는 (생물학적) 공통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종적 공통성으로 말한다면 영주와 시종 간에도 별다른 차이가 없으니까요. 오히려 중요한 건 똑같은 생물인 그들이 누구는 영주로서 지배하고, 누구는 시종으로서 지배당한다는 사실입니다. 또 같은 핏줄을 타고난 후손이 20세기에는 더 이상 귀족으로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개인들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것은 바로 이 차이들입니다. 이런 뜻에서 맑스는 말합니다.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노예가 된다.” 다시 말하면, “톰은 톰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시종이 된다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 말이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란 명제의 뜻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란 선천적이고 항구적인 어떤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관계가 달라지면 다른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비지터(The Visitor)의 끝부분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영주는 시종을 데리고 다시 중세 시절로 돌아가려 하지만, 자유로운 공기를 맛본 시종은 돌아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시종은 자기 후손인 호텔 주인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대신 중세로 돌려보냅니다. 중세로 끌려간시종의 후손은 그를 부리는 영주를 보며 어이없어 하지만,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그가 명령에 따르는 것을 당연시하고, 그걸 요구하기도 하며, 그렇지 않을 때는 비난과 징벌이 날아드니까 말입니다. 그는 이제 싫으나 좋으나 시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는 상이한 사회관계 속으로 밀려들어감에 따라 시종으로서 살아가게 된 겁니다. 마치 아프리카의 자유인이 백인 손에 잡혀 미국으로 옮겨지는 순간, 좋든 싫든 노예가 되듯이 말입니다. 요컨대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면, 사회관계가 달라지면 그 본질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맑스는 순수한 인간’, 항구적이고 불변적인 인간 개념을 해체해 버립니다. 사회적 관계에서 동떨어져 인간을 정의하거나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파밀리스테르의 아이들

파밀리스테르의 탁아소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새로 시작한 공동육아 또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부르주아들은 파밀리스테르를 군대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공산주의적 병영이라고 비난했을 뿐 아니라, 여기서 이루어지는 공동육아에 대해서 아이를 양육할 신성한 권리를 부모로부터 빼앗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 당시는 물론 20세기 들어서까지 노동자의 아이들은 부모에 의해 양육될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공장으로 광산으로 일하러 가야 했고, 일이 끝난 뒤에는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방치되어야 했다. 당시의 노동자들은 누구도 아이를 양육할 신성한 권리는 커녕 양육할 시간도, 양육할 공간(주거), 양육할 돈도 갖지 못했다. 따라서 그 비난은 아마도 양심도 양식도 없는 사람이, ‘공동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느끼는 공포와 증오를 표현한 것이거나, 아니면 이들의 새로운 시도가 갖는 영향력을 시기하여 퍼붓는 욕이었다고 해도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주체철학의 전복

 

 

이러한 주장은 근대철학의 출발점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집어엎는 것입니다. 자명하고 확실한 출발점, 항구적인 기초인 주체가 따로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주체, ‘인간이 그렇듯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구성물이요 결과물이란 겁니다. 동일한 사람이 20세기에 호텔을 경영하는 주체로서 존재하지만, 중세로 밀려가선 시종이란 주체로 존재하게 되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주체가 사고하는 내용이나 방식 역시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주의 성을 사서 호텔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증세로 날아간 시종의 후손에게 과연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반면 20세기의 자유로운 공기를 맛본 시종은 이게 더 이상 영주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되돌아가자는 영주의 명령까지 따르지 않지요. 이래서 맑스는 개인들이 갖고 있는 의식이나 관념은 사회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데카르트의 말처럼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회적 관계에 속하느냐에 따라 사고 자치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구정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전환에 힘입어 근대철학의 출발점을 이루던 주체 개념은 해체되고, 근대적 문제설정에서 연유하는 주체철학은 전복되고 맙니다. 이는 맑스가 근대적 문제설정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주체철학의 지반을 떠나자마자 역사 개념 또한 변하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역사는 어떤 주체 그게 절대정신이든 인간이든 간에 가 자신의 목적에 따라 만들어내는 무엇이 아닙니다. 역사 역시 이제 사회적 관계에 의해 정의되고, 그것의 변화와 대체 과정에 불과한 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란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알튀세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헤겔과는 달리 맑스에게는 소외되거나 실현되어야 할 목적이나 정신같은 것은 없습니다. 물론 초기의 소외론적 저작은 소외의 해체라는 목적을 항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역사를 이해한다는 점에서 목적론적 관점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자본과 같은 맑스적저작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다만 자본주의에서 자본축적의 역사적 경향만을 도출하고 보여줄 뿐입니다.

 

흔히 이러한 입론을 공산주의라는 이상적 상태를 목적으로 가정하는 목적론이라고 비판합니다만, 이는 목적론의 개념을 남용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경향을 말하는 것이나 어떤 상태로 되리라는 서술 자체가 목적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적론은 그러한 경향이 어떤 이념이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죠. 스피노자 말마따나 원인을 목적으로 대체하는 것, 즉 어떤 일의 원인을 정해진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하는 게 목적론이지, 어떤 경향을 갖는다는 게 모두 목적론은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코민테른 기관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Communist International) 1호의 표지

노동자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려는 파밀리스테르의 시도나,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 연합에 의해 공동의 삶을 만들어 가려는 코뮨적인 노력들은 두 가지 방향에서 공격을 받았다. 하나는 자금을 권 부르주아들의 공격이었고, 다른 하나는 입장을 달리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이었다. 당시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식의 해결책이 자본주의라는 근본적인 생산관계는 바꾸지 않은 채, 부분적이고 국지적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즉 노동자의 주거문제나 아이들의 양육문제 등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체를 전복하는 혁명을 통해서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저 그림의 맨위에 새겨진 맑스의 문장은 이처럼 주거문제는 물론 다른 모든 문제에 대해서도 그들이 내리려고 했던 유일한 해답이었다. 그것은 확실히 사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혁명에 의해 자본주의가 타도되기 전에는 노동자의 삶은 코뮨적인 방식으로 조직될 수 없는가? 그것은 여전히 무의미하고 국지적인가? 만약 자본주의의 완전한 타도가 끊임없이 연기된다면,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 연합또한 똑같이 연기되어 마땅한가? 이는 현재의 지배적인 맑스주의에 대해서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으로 보인다.

 

 

맑스철학의 근대성과 탈근대성

 

 

요약합시다. 맑스는 실천이란 개념을 통해 철학적 사고의 틀을 변환시킵니다. 우선 주체와 대상에 대한 근대적 개념을 해체합니다. 주체도, 대상도, 인식도, 진리도 모두 실천이란 개념에 의거해 새로이 정의내리죠. 진리 개념의 변환을 통해서 그는 근대철학이 추구하던 확고하고 불변적인 진리라는 목적 자체를 해체합니다. 또한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자명한 주체 역시 해체해 버립니다. 이제 주체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여기서 주체는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물이란 것이 명확해지고, 그 결과 주체 진리라는 짝에 의해 형성되었던 근대적 문제설정 자체가 해체됩니다. 나아가 인간을 특정한 주체로 만들어내는 사회 역사적 요인을 다루는 새로운 이론적 틀을 제시합니다. ‘역사유물론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맑스의 이러한 해체는 근대적 문제설정 내부에서 그 딜레마와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행해진 게 아니라, 그 외부로부터 새로운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란 점에서 흄의 그것과 성격을 크게 달리합니다. 이처럼 해체가 다른 차원의 개입으로 인해 이루어짐으로써 해체는 파괴(회의주의)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개념과 문제설정의 구성을 통해 예전의 문제설정을 해체하는 식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이 새로운 문제설정은 지식과 주체, 역사 등을 다루는 새로운 방법을 포함하고 있었고, ‘진리’(영원한 진리!)의 문제를 벗어나 현실성과 힘이란 차원에서 지식을 다루는 방법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조건 속에서, 지식의 형성과 기능을 다루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맑스는 진리를 극단의 회의에 몰아넣고 스스로 당황했던 흄과 달랐습니다.

 

다른 한편 주체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 또한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주체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조건 속에서 상이한 형태로 만들어진다는 테제를 통해, 이제 그러한 조건에 대한 연구에 의해 분석적으로 파악되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이는 인간이란 주체를 이해하기 위해선 심리학에 기초해야 한다는 발상(흄조차 여기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지요)과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맑스는 실천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근대적인 문제설정 자체를 해체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것은 근대철학을 벗어나는 개념들과 사고방법을 포함하는 새로운 문제설정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철학적 혁신을 가능하게 한 탈근대적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상경주가 아니라면, 대열에서 벗어나 너무 앞서 나간 사람은 본대를 찾아 뒤돌아오게 되는 법인가 봅니다. 앞서 나간 사람은 언제나 외로움과 고통에 시달리다 미쳐버리거나 죽었지요. 아니면 다시 후퇴하거나요. 철학자도 여기서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맑스 역시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맑스는 헤겔의 영향이 아직 독일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 산업혁명이 독일에서 아직 본격화되지도 않았던 시대에 살고 있었죠. 그러니 근대가 만개하기도 전에 근대를 넘어서 사고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우리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디 그것뿐이었겠습니까? 맑스는 세인들의 이해를 훌쩍 뛰어넘은 탁월한 사상가가 되기를 거부하지요. 그에게 사상이란 대중 자신의 것으로 되어야 할 혁명의 무기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철학을 대중과 결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심지어 정치경제학 비판시리즈를 계획했다가 1권을 내고는 포기하고 말지 않았습니까? 아마 그것은 엥겔스 말고는 그 책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자본1권의 서문에서 우리는 자신의 이론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가공하려는 맑스의 힘겨운 노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맑스의 사상을 더욱더 대중화하려는 노력은 이후 엥겔스가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던 것이기도 하지요.

 

그러기 위해선 근대적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의 사상을 번역해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근대적 개념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사고방법을 설명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즉 맑스 자신이 자신의 사상을 근대화해야 하는 역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번역이 정말 말 그대로 번역이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속에 자신의 사고가 포섭되지 않는 그런 순수한 번역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맑스철학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이런 점에서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맑스는 진리에 대한 근대적 개념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이론이 과학일 것이라는 혹은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과학주의라는 근대적 사고방식에 스스로 갇혀 있습니다. 누구나 어떤 이론이든 과학일 때만 정당한 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자신의 이론은 과학이 안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더구나 그가 대중과의 결합을 추구한 사상가라면 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실천의 개념 역시 근대화됩니다. 즉 진리를 실천의 문제로 파악하려는 맑스의 명제는 물질적 대상과 지식이 일치하는가의 여부를 실천을 통해 검증한다는 지극히 근대적인 의미로 해석되게 됩니다. 레닌이나 심지어 엥겔스 역시도 이 점에서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과학주의 안에서 실천 개념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아마 거기 말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유물론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철학적 유물론이는 근대적인 대상, 물질 개념에 기초하고 있는 근대적 유물론이지요 으로 복귀하게 됩니다(이렇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입니다).

 

반면 이러한 과학주의에 반대하면서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로서 실천 이란 개념을 중심에 두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흔히 실천철학이라고 불리는 흐름이 바로 그것입니다. 루카치, 그람시, 코지크(K. Kosík) 등의 철학자가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이 역시 어떤 불변하는 본질(존재론적 본질!)을 갖는 주체로 인간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주체철학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맑스의 이 탈근대적인 실천개념을 좀더 탈근대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한 번도 맑스주의자였던 적이 없었고, 맑스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한 적이 없는 비트겐슈타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적 탐구로 대표되는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데, 이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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