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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80. 유영길이 한시로 전해주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80. 유영길이 한시로 전해주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

건방진방랑자 2021. 10. 2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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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길이 한시로 전해주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

 

 

落葉鳴廊夜雨懸 낙엽소리 울던 곁채에 밤비가 걸렸는데
佛燈明滅客無眠 불상의 등불 깜빡여 손님은 잠이 없네.
仙山一躡傷遲暮 신선의 산 한번 밟으니 나이 들음이 속상하네.
烏帽欺人二十年 오사모로 사람을 20년이나 속였구나.

 

소화시평권상 80에 두 번째로 소개된 유영길의 시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영길은 직접 복천사에 가서 낙엽소리가 울리던 곁채에서 머물고 있었다. 때마침 비까지 내려 스산한 분위기는 더욱 짙어졌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등불은 바람에 꺼질 듯하다가 다시 피어나고 꺼질 듯하다가 다시 피어나며 심란한 마음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떠나온 이곳이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선계(仙界)처럼 느껴진다. 무얼 꿈꾸며 살았던가? 부귀영달, 그 모든 게 이와 같은 선계(仙界)에 들어가려던 피나는 노력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막상 이곳에 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바삐 살았던 삶의 종착지가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다 보니 관복을 근사하게 입고 온갖 잰 체를 하며 살아왔던 20년의 세월이 여태껏 영예의 순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건 남에게 멋있어 보이도록,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속여 왔지만, 그 이전에 나 자신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더욱 더 아쉬워진다. 젊을 땐 동분서주하느라 누려보지 못했는데, 막상 그걸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보니 거동조차 어려울 정도로 늙어버렸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유영길은 이쯤에서 자신에게 좀 더 여유로워졌을 것이다. ‘그래 무에 있냐? 치열함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내 자신이 가장 중요한 것을이란 생각을 하며 말이다.

 

이쯤에서 재밌는 주제가 하나 나온다. 위의 한시와 그다지 관련은 없지만, 신광한이 조카에게 해주고 싶었던 그 말이나 유영길이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과 관련된 얘기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하는 얘기를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내가 못해봤으니 넌 해봐라.’라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해봤는데 그건 안 좋더라. 그러니 너는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말도록 그런 일은 하지 마라라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자신이 하는 경험을 긍정하며 자신만의 족적을 만들고 가길 바라는 심정이 알알이 박혀 있는 반면에 후자는 자신만의 경험을 맹신한 나머지 그 길만이 옳다고 윽박지르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내가 2009년에 국토종단을 하러 간다고 했을 때 아주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 당시에도 임용을 준비할 때였고 여러 번 낙방했던 터라 보통 같으면 더 맹렬히 공부하라고 할 법한 시기이긴 했다. 그런데도 윤양준 선배님이나 강유정 선배, 미란 선배 같은 경우는 그런 결정에 박수를 쳐주며 또는 선물까지 주며 인생은 어차피 혼자이고 누구도 터치하지 않는 자유로움 속을 거닐다 와라고 응원을 한 가득 해준다. 바로 그 정서가 넌 맘껏 해봐의 정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대부분은 하필 이때 가려 하냐?”, “나중에 교사가 되면 실컷 할 수 있다.”, “너 지금 도망가는 거지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나올 줄 뻔히 알았던 반응이기에 나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지만 가슴이 아팠던 것은 어쩔 수 없다.

 

위의 두 편의 시를 읽으면서 내가 어른이 되어갈수록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더욱 명확히 알게 된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을,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맘껏 해보라라고 말할 수 있고 그걸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거기에 덧붙여 나 또한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하며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며 지금ㆍ바로가 나의 삶에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버나드쇼의 묘비에 쓰여 있는 이 얘기 그대로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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