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5. 한시의 맛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 꽃 속에서 한 호리병 술, 서로 친구 없이 독작한다. |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 잔 들어 밝은 달맞이하고, 그림자 마주하니 세 사람이 되었구나. |
月旣不解飮 影徒隨我伴 | 달은 술을 아예 마시지 못하니, 그림자만 하릴없이 나를 따라 짝하네. |
暫伴月將影 行樂須交春 | 잠시 달과 그림자와 친구 되어, 즐거움을 누리는 이 일 봄에만 가득하지. |
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 내가 노래하면 달도 배회하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춤을 추지. |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 깨어서는 함께 서로 기뻐하고, 취한 뒤엔 각자 나누어 헤어지니 |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 정에 얽매임 없이 길이 결의하여 은하수에서 만나길 서로 기약하네. |
이건 오언고시(五言古詩)입니다. 고시(古詩)는 길기 때문에 한 운(韻)으로 다 깔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 ‘친(親)·인(人)·반(伴)·춘(春)’이 다 운이라는 걸 알 수 있죠. 비슷비슷한 글자들이긴 한데 이 4자가 진운(眞韻)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 다음이 한 운(韻)인데 ‘난(亂)·산(散)·한(漢)’ 이것이 같은 운입니다. 그러나 전부 ‘ㄴ’으로 끝나는 상통하는 무리들입니다. 우리말로 보면 ‘친(親)·인(人)·반(伴)·춘(春)·난(亂)·산(散)·한(漢)’ 다 통하는 운입니다. 전부 같은 운모를 써서 만든 것입니다.
화간(花間)을 보면 평기식(平起式)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간(間)이란 것이 평성(平聲)이고 작(酌)을 보면 입성(入聲)이죠 ㄱ받침이니까 입성이란 걸 딱 알 수 있죠. 평측측평평측 이렇게 나와 있죠. 반대, 같고·반대·같고, 이렇게 치밀한 운을 갖고 있어요.
이태백은 아주 술을 잘 먹은 사람이죠. 나도 이태백처럼 술을 잘 먹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렇게 술을 먹어서는 도저히 하루를 견딜 수 없어요. 그래서 내가 보기에 이태백은 맹렬한 소음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술을 아무리 먹어도 소음이 차기 때문에 얼마든지 술을 받아들이는 그런 특이한 체질입니다. 이 사람은 약을 써도 부자 같은 것을 막 써도 아무 해가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태백을 주선이라고 하는데 술에 있어서는 이태백의 경지를 아무도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그러니 한번 보세요. 이 사람이 술을 먹어도 어떻게 먹었나. 그런데 이 사람은 술꾼이니까 우리 어제도 야회에 가서 지금은 동신대학교 학생인 그 학생이 고려대학교 뒷산에서 매일 올라가서 맹렬한 독공을 했다. 판소리부터 이태리가곡부터. 아마 그런 학생들은 이런 경지를 많이 느꼈을 거예요. 이태백이도 혼자서 술을 먹는 거예요, 월하독작(月下獨酌)이라고. 그런데 혼자 먹는 게 아니란 말이예요. 간단하게 봅시다.
화간(花間)이라고 하니까 정원의 동산에 꽃이 만발해 있고 화창한 봄날이겠지요. 봄날에 나가서 꽃 사이에 호로병에 담긴 술을 탁 걸어놓고 혼자 마시는데 함께 벗할 사람이 없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잔을 들어 명월(明月)을 같이 마시자고 인바이트(invite)하고 그리고 딱 보니까 나에게 그림자가 생겼지요? 그림자와 더불어 갑자기 세 사람이 되었구나. 달은 말이야. 이 새끼에게 술을 주니까 한없이 처먹어[解飮]. 계속 먹었다는 얘기겠죠. 달은 주는 대로 끊임없이 마시고 나의 그림자는 덩달아서 나를 따라서 마신다.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 삼아서【여기의 장(將)은 달‘과’ 그림자라는 뜻의 ‘And’의 의미입니다】 행락(行樂)이란 지금의 행락(行樂)과 같습니다. 즐겁게 노는 것은 반드시 봄을 따라서 해라. 이것은 인생의 전성기, 봄기운도 있겠지만 이렇게 술을 마실 수 있는 화려한 인생의 시기에 이렇게 달과 같이 노래한다. 아름다운 시기를 따라서 이렇게 행락(行樂)을 한다.
내가 노래를 부르니 달이 내 주위를 빙빙 돌고 내가 춤을 추니까 나의 그림자도 개판으로 저 추는구나. 내가 춤을 추니 저 그림자는 마구 춤추고 깨어 있을 때는 같이 서로 정을 나누면서 즐거이 놀더니 술이 취하니 제각기 다 흩어지네. 자 우리 영원히 무정유(無情遊)를 맺자. 여기의 무정은 인간의 세속적 정이 끼지 않은 우정을 영원히 맺자. 우리 영원히 세속에 매이지 않은 우정을 맺자꾸나. 우리는 저 먼 은하수에서 언젠가 또다시 만날 날 있으리. 이렇게 끝나는 겁니다.
상당히 한시의 세계는 자유롭습니다. 우리 저번 야회때에 공부한 『예기』 「악기」에서 ‘음악은 같아지게 하고 예절은 달라지게 한다[樂者爲同 禮者爲異]’라고 했지만 이러한 한문 한시의 세계는 우리가 중용(中庸)에서 보는 그러한 세계와는 상당히 다른 점이 있어요. 굉장히 형식이 있습니다. 이 형식을 무시하고 시를 지으면 안 되고 오히려 이 형식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시가 형식과 내용이 맞아서 멋있는 거지요. 여러분들 이걸 그냥 앉아서 이태백이가 운서보고 지었겠어요? 완전히 술취해서 휘두른 것인데도 이렇게 멋있게 운이 들어맞으면서 이렇게 우주적인 스케일(술을 하나 먹더라도 천지와 더불어 먹으면서 이런 시를 순간적으로 토해낼 수 있는 이 사람의 경지) 그래서 우리가 이 사람을 시선(詩仙)이라고 하는거죠.
그런데 이 형식이 있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으나 여기에 익숙하게 되면은 굉장히 자기의 생각을 더 정확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시들은 정형성이 없기 때문에 괜히 말만 어려워집니다. 정형성이 없어서 말장난이 심해지는데 한시는 오히려 정형성이 있기 때문에 말 내용 그 자체는 어려울 게 없이 심플하고 소박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격이 있는 시들은 내용이 쉬워진다는 말입니다. 지금의 한글 시처럼 아무런 격이 없는 시들은 말장난이 심해지죠? 그런 서로간의 폐단이 있다는 것을 알아 두시고 이 한시의 세계를 조금 깊게 이해를 해 두십시오.
그리고 이 이태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이라던가 유명한 것들 몇 개는 외우세요. 내가 또 좋아하는 것이 유명한 이태백의 「장진주(將進酒)」라던가 두보의 「고백행(古栢行)」이라던가 몇 개는 외워둘 만한 것입니다. 한문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시를 반드시 알아야 하기 때문에 오늘 시를 어떻게 분석할 줄 알고 어떻게 쓸 줄 아는가 하는 걸 배웠습니다. 운서 하나만 있으면 다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또 좋기는 중국어를 하면 대개 운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성이나 2성 같은 건 대개 평성이 많고 3성이나 4성 같은 것은 대개 측성이 많습니다. 지금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므로 중국어의 성조 같은 것을 알아도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러나 시운은 기본적으로 현대 중국어의 통운보다는 당운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일치하지 않는 것도 많지요. 그러나 중국어의 4성 같은 것은 대개 측성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한시의 맛을 배우십시요. 잠깐 쉬고 중용(中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야회에 안 간 학생이 많은데, 야회에 가서 보니까 우리 서원 학생들이 정말 우수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어요. 학교를 불문하고 정말 개성 있고 우수한 학생이 많아요. 서원에서 내 강의를 통해서 수직관계를 통해서 배우는 것과 동등하게 중요한 배움의 길이 있습니다. 도올서원에서 특이한 것은 자기 혼자 어떤 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 비슷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이런 상호관계를 통해서도 배울 점이 많을 겁니다. 재(齋)활동이라는 수평관계를 통해서도 배우는 것, 이것이 도올서원의 정신입니다. 부질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재생들 사이에서 여기 있는 동안이라도 진지하게 토론하고 서로 간의 문제에 대해서 기탄없이 이야기하고 서로 간에 배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인용
'고전 > 대학&학기&중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올선생 중용강의, 16장 - 1. 정약용과 주희의 귀신론 (0) | 2021.09.18 |
---|---|
도올선생 중용강의, 15장 - 6.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다 (0) | 2021.09.18 |
도올선생 중용강의, 15장 - 4. 이발과 감기 (0) | 2021.09.18 |
도올선생 중용강의, 15장 - 3. 증상과 위치에 따른 작전 (0) | 2021.09.18 |
도올선생 중용강의, 15장 - 2. 감기와 면역기능 (0) | 2021.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