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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과 자식교육 - 6. 아이들의 지지자가 되는 방법 본문

연재/배움과 삶

대안교육과 자식교육 - 6. 아이들의 지지자가 되는 방법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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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이들의 지지자가 되는 방법

 

 

 

이렇게까지 강연이 진행되면, 이 강연을 들으러 오면서 품었음직한 그래서 아빠들은 자녀를 어떻게 기르란 것이야?’라는 생각엔 균열이 갈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이 강연이 정답을 알려주고 이 정답대로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성공합니다라는 성격의 강연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이 순간에 이르면 애써 화창하고 포근한 토요일에 강연을 들으러 온 학부모의 입장에선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자식이란 전혀 새로운 존재를 대하며 막연하고 난해하다고 느꼈던 부분이 강연을 들으며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알게 되길 바랐는데, 시원하게 풀어줄 생각은 애초에 없었으니 말이다(작년 10월에 있던 우치다쌤 강연 때의 질의응답 시간에 한 교사는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했는데, 이때 준규쌤 강연 때도 그런 혼란은 비슷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별 것 없네라고 실망하고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제 겨우 강연의 절반 정도만 지나왔으니 말이다. 좀 더 강연을 들어보면 뭔가 기가 막힌 시원한 통찰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지막 반전을 기다리며 영화를 보듯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끈을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

 

 

볕 좋은 봄날에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

 

 

 

개인이 아닌 분인으로 받아들이기

 

역시나 준규쌤은 이런 청중들의 반응을 아셨던지, 시기적절하게 아이들의 지지자가 되는 조건이라는 내용을 이어서 해주신다.

마틴 부버Martin Buber(1878~1965)의 이야기를 하며 지지자가 되는 조건의 서두를 여셨다. 그는 나와 너라는 책을 내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데, 그 내용은 나와 너의 짝말은 분리할 수 없이 늘 붙어 있는 것인데, 자본주의는 그게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간단한 설명만 들었기에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가 개성을 중시하고 개인을 부추기는 현상에 대한 비판임을 알 수는 있었다. 애초에 나는 너를 통해 성립되고,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너를 제거한 나라는 건 있을 수 없고 그건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너의 개성은 뭐야?’, ‘넌 다른 사람과 달라, 너만의 욕망을 추구해봐라며 소비를 부추기고 파편화시키는 것이다. 대가족 시대에 소비는 아빠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각 가정에 티비나 전축은 한 대만 있으면 됐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내수시장을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엄마나 아이들까지 소비의 결정권을 지닌 대상으로 만들며 각 방에 티비가 놓이고 아이들도 핸드폰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을 잘게 잘게 나누어 파편화된 시대지만, 그렇게 아이들을 개성이란 말로 뭉뚱그려 하나의 상이 있을 것이다라는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준규쌤은 개인(個人individual)이란 말보다 분인(分人dividual)이란 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라고 목소리 높이며 아이의 안엔 멀티적인 개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죠. 아이가 집에서 보이는 모습과 바깥에서 보이는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선생님과 상담할 때 아이에 대해 말해주면 집에선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데, 선생님이 잘못 본 거겠지하는 생각도 들게 되는 것이죠라고 말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당연히 멀티적인 개성이다. 바로 이 점이 자식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에게 하는 행동이 다르고, 밖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며, 어느 순간에 태도가 급변했다가 또 어느 순간엔 그렇게 온화할 수가 없다. 이걸 우린 사춘기’, ‘야스퍼거 증후군Asperger’s syndrome’, ‘ADHD’라는 온갖 용어로 붙이며 병증으로 받아들이거나, 하나의 상으로 고착시켜 이해하려 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이해란 이름의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건 이해가 아닌 오해이며, 지지가 아닌 쳐냄이기 때문이다.

 

 

우치다쌤이 말한 낡은 목조건물이란 비유와 멀티 아이덴티티는 통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발신자가 아닌 수신자가 되자

 

이 말은 곧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이해 방식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당연하지만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다. 이미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이해 방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진리가 되었으며 그건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심지어 나의 의식 속에서도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의 그물망이 촘촘히 쳐진 세상은,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게 만든다기보다 오해와 억측을 정당화하게 만든다. 그러니 그걸 버린다는 것은 아예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숨을 건 도전일 수밖에 없다.

강연을 들으면 들을수록 정리된다기보다 더 헝클어지고만 있다. 이래서 동섭쌤은 지적 폐활량이란 말을 통해 이해되지 않고 심지어 거부감까지 드는 상황을 그대로 놔둘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흩어져 있는 것은 정리하고 싶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주류 심리학을 빌려 손쉬운 해결책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알기 때문인지 준규쌤은 지지자가 될 수 있는 마지막 조건으로 발신자가 아닌 수신자가 되자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준규쌤은 지지학교에서 다양한 초등학생들을 만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으로 ‘ADHD’, ‘야스퍼거라 낙인찍힌 아이들을 자주 본다는 것이다. 그들과 2년이 넘게 생활하며 알게 된 것에 대해 말문을 여셨다. “이 친구들도 끊임없이 발신을 하는데 누구도 수신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신하지 않으니 이 친구들은 어느 순간에 발신하지 않게 되고, 발신하지 않게 되면 아이덴티티를 만들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라는 말인데, 중요한 메시지의 발신은 수신자가 있을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발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교사나 어른은 무언가를 말하고 가르치려 하는 발신자의 입장이 아닌, 그 친구들의 발신을 의미 있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하는 수신자의 입장에 서 있어야 한다. 그래서 준규쌤은 내가 너의 자리에 서 있을게. 너는 나의 자리에 오렴. 니가 발신해 그러면 나는 수신자가 될게.”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무지는 더 이상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상태다. 그러니 지적폐활량을 키워야 한다. 

 

 

 

혼란에 빠진 채 강연은 끝나다

 

이렇게 준규쌤이 준비한 50분의 강연은 끝났다. 강연장 곳곳에선 그래서 수신자가 된다는 건 도대체 뭘 말하는 거야?’라고 혼란에 빠진 듯했다. 명확하게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이해되지 않는 말로 장내에 일대 혼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준규쌤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도 예측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50분의 강연 시간과 40분의 질의응답 시간을 둔 것일 터다. 그건 곧 수신자가 되라를 강연의 내용으로만 던지는 것이 아닌, 질의응답을 통해 어떻게 수신자가 되는지를 보여주겠어요라는 것처럼 보였다. 어찌 보면 오늘 강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질의응답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순간을 통해 준규쌤이 준비해온 말이 아닌, 현장의 이야기나 평소의 소신을 더욱 자세히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다음 번 후기엔 열띤 발신과 수신의 장이었던 질의응답 시간의 내용을 담아볼 생각이다.

 

 

40분 정도 진행된 강연은 열기 속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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