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안학교’, ‘자녀교육=엄마의 일’이란 고정관념 벗어나기
지금까지 쓴 세 편의 후기에선 준규쌤 강연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그리고 강연의 총평 등 전체적인 인상을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1편부터 강연 내용을 중심으로 후기를 쓸 경우,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기에 나름 워밍업 차원에서 가볍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강연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물론 다양한 내용을 40분이란 짧은 시간에 한 것이기에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부족한 대로 풀어보려 한다. 그러려면 준규쌤이 던진 메시지가 내 안에 들어와 어떤 반응을 일으켰는지, 그리고 어떻게 정리됐는지 하나하나 정리해갈 수밖에 없다. 마주침과 혼란, 그리고 번뜩임에 대한 기록을 이제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 이제 강연 시작합니다.
‘대안학교’란 단어 벗어나기
이번 강연회는 ‘대안학교 아빠로 산다는 것’이 주제다. 이런 주제를 던지면 일반적으로 ‘대안학교 아빠는 일반학교 아빠와 다르게 사는가 보다’는 인상을 가지기 쉽다. 여기엔 당연히 ‘대안학교는 일반학교와 다르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니 그 둘을 날카롭게 나누고 갖은 편견과 이상을 덧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우려를 알기 때문인지 준규쌤은 강연을 시작하자마자 “‘대안학교’라는 말을 쓰는데, 이젠 (대안)학교라고 괄호를 묶어서 표현해도 되며, 거기서 좀 더 나아간다면 아예 괄호 안의 글자를 제거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안학교가 우리 사회에서 괴물이 아닌데도, 자꾸 ‘대안학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오히려 본질을 왜곡할 우려가 있습니다”라고 못 박았다.
‘크다’라는 말은 ‘작다’라는 말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고, ‘남자’라는 말은 ‘여자’라는 말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으며, ‘이마’라는 말은 ‘이마가 아닌 것(눈썹, 명궁 등)’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 즉, 대립항이 있을 때만 의미를 드러낼 뿐, 홀로 있을 땐 본연의 의미를 드러낼 수 없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독자적인 의미를 갖지 못하고, 대립항을 통해서만 의미를 드러낼 때 그건 불완전한 규정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누고 또 나누어 인위적으로 쪼개다 보면, 말하고자 하는 진심이 드러나기보다 진심은 더 가려지고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초에 ‘대안학교’라는 명칭을 만든 사람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주 특이한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가장 보편타당한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치다쌤이 말하는 최초의 학교인 무인도 학교 이야기나 자본에 넘어가지 않은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번뜩이는 지혜를 주는 이유는 그것 자체가 엄청나게 특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잊어버렸던 교육의 기본을 환기시켜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인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학교’와 대립항으로 규정하고 한계 짓지 않도록 해야 하기에, 준규쌤은 “‘대안학교’라는 말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한 것이다.
▲ '대안학교', '대안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대립항에서 설정되었다는 한계를 지닌 단어다.
‘자녀교육=엄마’라는 틀 인식하기
‘대안학교’란 말이 지닌 편협함을 넘어섰다면 이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아빠’라는 대상에 대한 것이다. 교육의 삼 주체는 ‘교사-학생-학부모’이다. 이때의 학부모는 실상 ‘엄마’를 뜻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강연은 엄마가 아닌 아빠를 대상으로 한 것이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아이의 양육과 교육은 엄마가 맡는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땐 동네 엄마들과 모여 육아에 대한 정보를 함께 나누며, 학교 다닐 땐 아이 학원 스케줄에 따라 학습매니저를 자초하고, 졸업한 후엔 취업박람회나 결혼까지도 관여한다. 이런 상황이니 입시설명회에 엄마들이 대부분 오며, 학교에서 학생 상담을 할 때도 부부가 함께 오는 경우는 거의 없이 엄마들이 대부분 온다. ‘자녀 교육=엄마의 일’이라고 누구도 알려준 적도 없고, 그래야 한다고 강요한 적도 없지만, 알게 모르게 그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야 말았다.
이에 대해 준규쌤은 예전엔 그래도 마을에서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상식이 있었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며 “내 아이는 당연히 내가 무한책임진다. 어른이 된 내 아이의 성공과실을 내가 독차지 한다는 사회적 약속으로 부모의 교육투자가 당연하고 부모의 성격도 양육자에서 관리자로 변하게 된다.”라는 글을 썼다. 하지만 이걸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내 아이의 성공과실을 엄마가 독차지 한다’라고 해야 한다. 아빠는 늘 한 발치 멀리 떨어져 있으며 엄마만이 아이 교육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 마치 자식이 입시생이 아닌 부모가 입시생처럼 느껴진다. 더욱이 아빠보단 엄마들이 말이다.
‘자녀교육=엄마’라는 틀 벗어나기
이런 현실이기에 ‘아빠’를 자녀교육의 주체로 본다는 것은, 일반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자칫 잘못 생각하면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 교육비 버느라 남는 시간도 없는데, 아이들 교육문제까지 신경 써야 된다고라’라는 원성을 살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아빠는 자녀 교육에서 한 걸음 빗겨나 있는 현실임에도 왜 아빠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강연이 진행되며 준규쌤이 자세히 풀어내긴 했지만, 여기서 간단히 정리해보기로 하자. 아이에겐 ‘엄마의 세계’가 필요한 시기와 ‘아빠의 세계’가 필요한 시기가 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의 세계’는 심리적인 안정을 누리며 자신에 대한 불쾌감을 해소할 수 있는 세계를 말하며, ‘아빠의 세계’는 세상의 넓고도 큰 뜻을 품고 도전의식을 지니며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 세계를 말한다.
준규쌤과 예전에 이야기를 나눌 때 “아이들의 문제는 대부분 엄마와의 문제에서 생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빠와의 관계에서 생겨난 것들도 많습니다. 아빠가 아이의 교육문제를 모두 엄마에게 떠넘기고 냉담하거나 아예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엄마의 지극한 관심과 아빠의 극단적 무관심 사이에서 아이들은 혼란에 빠지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이기에 아빠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고, 그래서 ‘아빠학교’라는 곳을 만들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여기서 하나 명확히 해야 하는 부분은 ‘아빠’라는 명칭 때문에 생물학적 아빠만을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자칫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전 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우리는 부모의 양육태도가 아이의 심리발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어렸을 때의 경험이 커서까지도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 하지만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라는 책에서 얘기하고 있듯,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여 설명한다는 한계, 그 도식에 맞춰 모든 과도기적 심리상태를 껴 맞추기에 누구나 ‘정신병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 한 부모 가족이나 조손가족은 애초부터 이러한 논의에서 제외되어 문제투성이로 보일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여기서 ‘아빠’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아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아빠의 세계’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역할은 교사가 맡을 수도 있고, 아이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할 수도 있기에, 생물학적 아빠가 없는 환경이라 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워밍업이 끝났다면,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스타트
이 강연을 듣기 위해서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둔 학부모다’라는 인식과, ‘자녀교육은 엄마가 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의심조차 하지 않던 것들을 벗어버리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강연을 들으면 훨씬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렇게 머리 아파가면서까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나는 하지 않겠네’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만,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자녀의 모든 문제는 당신 탓’이라고 책임전가를 하는 강연도 아니니 겁을 먹거나, 긴장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교육이란 것이 ‘절대 진리의 구현’이거나, ‘완벽에의 구도’가 아닌 ‘삶에 대한 이야기’이며 자녀교육이란 ‘온전한 사람을 기르는 것’이 아닌 ‘완전히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며 그 혼란스러움을 버티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준규쌤이 던진 문제제기나, 상황 판단을 받아들이며 나의 생각을 덧붙이며 들으면 된다.
다음 편에선 준규쌤이 40분간 진행한 강의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교육에 대한 다섯 가지 개념을 소개하며 교육에 대한 생각이 다채롭다는 것을 말하고 난 후, ‘아이들의 지지자가 되는 조건’을 말하며 강연을 마쳤다. 그 일련의 흐름을 살펴볼 것이니, 가볍고 유쾌한 마음으로 ‘이 사람은 무슨 소리를 했나?’하는 궁금증으로 들으면 된다.
▲ 이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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