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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과 자식교육 - 7. 자식에게 필요한 엄마의 세계와 아빠의 세계 본문

연재/배움과 삶

대안교육과 자식교육 - 7. 자식에게 필요한 엄마의 세계와 아빠의 세계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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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식에게 필요한 엄마의 세계와 아빠의 세계

 

 

충격을 한 아름 안겨준 열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을 진행하려 준규쌤은 강연장 밑으로 내려왔다.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눈높이를 맞춰 진솔하게 얘기를 나누고자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20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였다면 오히려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기 좋았을 텐데, 100명이 모이다 보니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고 그만큼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강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수신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40분 간의 질의응답시간은 말이 아닌 행위를 위한 자리다.

 

 

 

무늬를 보기 위해선 기표가 아닌 기의에 가닿아야 한다

 

준규쌤의 강연은 준규쌤만의 무늬가 한껏 묻어난 강연이었다. 무늬란 어쩔 수 없이 생각의 경향성을 담고 있고, 지금껏 살아온 내역이 스미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아파야 청춘이다는 말을 똑같이 할지라도,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강연자에 따라 정반대의 내용일 경우가 허다하다.

말은 같은데 뜻은 다르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미 언어학자인 소쉬르Saussure(1857~1913)가 파이프라는 그림의 기표significant와 파이프라는 단어라는 기의signifier는 전혀 상관없다는 통찰을 보여준 바가 있다. 그처럼 말이라는 기표에 머물러 의미를 한정 지을 게 아니라, 의미인 기의가 뭔지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꽃만 자세히 보아야 예쁘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건 아니다. 말도 그 사람의 무늬가 어떤지 알고 보면 훨씬 많은 것들이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단편적인 강연이란 그 사람의 무늬를 알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 않는다. 왕왕 무늬는 살아온 내역이고 살아낸 흔적이기에 긴 시간동안 마주쳐야 하고 스미어들어야 알 수 있지만, 강연이란 2~3시간 정도의 시간에 풀어내야 하니 수박 겉핥기外舐水匏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전혀 기의로서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기표로만 받아들여질 뿐이다. 아마도 준규쌤의 강연이 끝났을 때, 강연장에 일대 혼란이 일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 거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기표와 기의는 전혀 무관하다는 통찰, 그건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발신자가 되기의 어려움

 

그런 가운데 마련된 40분 동안의 질의응답은 그나마 강연자의 무늬를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준비해온 강연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살아온 무늬와 상관없는 얘기로 꾸며낼 수 있지만, 질의응답은 현장성으로 인해 그러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으면 깊게 고민하여 꾸며 대지 못하고 평소에 생각하던 그대로, 살아온 그대로 말하게 된다. 그러니 이 시간을 제대로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그 사람의 무늬를 볼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을 한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긴 하다. 학교에서부터 우린 질문을 하는 것보다 그냥 이해하고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더욱이 이런 강연의 경우 내가 저걸 이해할 정도의 깜냥도 안 되는데 무얼 안다고 감히 질문을 하랴는 자기검열까지 하게 되어 더욱 질문을 하기가 힘들며, 어떻게든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해도 강연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통속적인 이야기만 하게 된다.

준규쌤은 지금부턴 처음에 말했다시피 질의응답 시간입니다. 질문하실 분들은 질문해주세요라고 말했지만, 강연장엔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대부분 눈치를 보며 시간이 무심히 흐르던 그 때, 준규쌤은 앞줄에 앉은 사람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오늘 강연의 발신자가 되어 주세요라고 주문했다.

 

 

 

아빠의 세계가 필요한 시기는 초4학년 때까지

 

첫 번째 질문하신 분은 자식을 대안초등학교에 보내고 있으며 중학교는 지방의 기숙학교로 보낼 생각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마틴 부버-너는 짝말로 존재한다는 말이 자신에게 와 닿았다며, 이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지방의 기숙학교로 보내려 했단다. 그런데 마틴 부버의 말을 듣고 고민이 생겼다며, 그렇다면 언제까지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지를 준규쌤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준규쌤은 엄마의 세계아빠의 세계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강연은 이론적인 내용이 태반이었는데,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얘기들은 경험한 이야기를 해주기에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아이가 자라는 데 각각의 세계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어나서 24개월이 될 때까지는 엄마의 세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단다. 그땐 굳이 아빠의 세계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까진 엄마의 한정된 언어꾸러미가 아이에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며 작용한단다.

하지만 24개월 이후엔 다른 언어꾸러미를 지닌 사람이 필요해진단다. 바로 그때가 아빠의 세계가 필요해지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네 번째 후기에서도 썼듯이 굳이 생물학적인 아빠가 아닌 엄마와는 다른 언어꾸러미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할아버지, 이모, 고모 등)이면 괜찮다.

그러나 그 또한 무한정 필요한 것은 아니란다. ‘아빠의 세계가 필요한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이며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아빠가 지닌 언어꾸러미도 아이에겐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게 되니 말이다. 바로 그 때가 친구의 세계로 떠나게 되는 시기란다.

 

 

기차를 타고 아스타나로 가는 길에서. 바깥엔 카자흐스탄 무덤이 보인다. 이곳에서 언어꾸러미로 세상을 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때가 되면 아이를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얘기를 듣고 보니 법륜 스님이 쓴 엄마수업이란 책의 띠지에 어릴 때는 따뜻한 게 사랑이고, 사춘기 때는 지켜봐 주는 게 사랑이고, 스무 살이 넘으면 냉정하게 정을 끊어주는 게 사랑이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준규쌤의 말과 법륜 스님의 말이 통하는 지점은 일정 시기가 되면 서서히 관계를 놓아주며 나중엔 아예 끊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선 부모가 된다는 건 뭘까?’하는 질문이 핵심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한 두 자식만 낳다 보니, 당연히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는 공식이 좋은 부모의 모습인양 받아들여진다. 이 말은 분명히 좋은 말이지만, 그게 진정 자식을 위해 좋은 부모의 상인지는 아무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문제는 그게 좋은 부모의 모습이라고 치자, 그렇다며 그걸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가? 아이가 막무가내로 고집만 피우더라도 다 받아줘야 하나?’는 것이다. , 이런 논의는 결코 절대적인 옳은 것일 수 없으며, 상황과 상대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누구도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기에, 준규쌤은 여러 경험을 통해 초등학교 4학년까지를 부모가 부모의 세계가 전해줘야 하는 시기로 제시한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띠지의 문구는 너무나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다.

 

 

 

인용

목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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