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11. 대학과 중용의 스케일
‘사수신 불가이불사친 사사친 불가이부지인(思修身 不可以不事親 思事親 不可以不知人)’
어버이를 섬긴다, 가까운 사람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그 전제로서 인간 보편을 알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사지인 불가이부지천(思知人 不可以不知天)’ 이것이 바로 ‘중용(中庸)’의 스케일(Scale)이다! 단순히 협애한 사친(事親)에 그치는 가족이기주의가 아니라는 걸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유교는 네포티즘(Nepotism)이다, 족벌주의다, 무슨 훼밀리즘이다, 너무 편협한 도덕주의이다”라고들 하는데, 유교는 결코 편협한 도덕주의가 아닙니다. ‘지천(知天)’, 하늘까지 나아간다! 여기에 유교의 특색이 있습니다. 유교의 특색이라고 하는 것은 내 문제가 반드시 지천(知天)의 문제에 닿아 있으며, 수신(修身)-사친(事親)-지인(知人)-지천(知天)의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학(大學)』의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와 비교해볼 때, 중용(中庸)이 『대학(大學)』보다 훨씬 더 스케일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학(大學)』은 기본적으로 ‘평천하(平天下)’라는 사회적 규범 안에서 머무르는 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大學)』의 수신(修身)으로부터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는 하나의 동시적 사태의 연속(continuum)으로서, ‘자천자이지어서인 일시개이수신위본(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대학(大學)』 경1장’에서 말하는 것도 수신(修身)을 끝내고 제가(齊家)하고, 제가(齊家)를 끝내고 치국(治國)하고, 치국(治國) 끝내고 평천하(平天下)한다는 게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알고 있지만 단계적 순서의 개념이 아니라는 걸 명심하기 바랍니다. “수신(修身)도 못하는 놈이 사회에 나올 수 있느냐 어쩌냐 저쩌냐”고들 하는데, 이것은 『대학(大學)』을 잘못 이해한 소치입이다. 수신(修身)으로부터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가 하나의 동시적 과정이고, 또한 거기에 가장 근본은 항상 수신(修身)인 것이죠. 제아무리 평천하(平天下)한 놈이라고 해서 수신(修身)을 끝낸 놈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齊家)를 하면서도 수신(修身)은 계속되는 것이고, 결코 종결될 수 없는 일생의 과제인 것입니다. 평천하(平天下)하면서도 수신(修身)해야 한다!
그러나 평천하(平天下)에서 그치고 있습니다. 『대학(大學)』은 기본적으로 사회철학에서 끝나지만, 중용(中庸)은 자연철학까지 나갑니다. 그래서 ‘중용(中庸)’의 스케일이 더 크다는 겁니다. 주자도 사서(四書)를 읽을 때 『대학(大學)』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논어(論語)』, 『맹자(孟子)』를 읽고 마지막으로 『중용(中庸)』으로 끝내라고 말했습니다. 수신(修身)-사친(事親)-지인(知人)-지천(知天), 지천(知天)까지 가야 한다. ‘중용(中庸)’은 이 천지(天地)의 오묘한 근본법칙까지 느낀 사람만이 들어가는 세계이다! ‘중용(中庸)’은 스케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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