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연암이 선사한 유쾌한 충격
두 번째 서연은 그렇게 빠져들어 여러 책을 읽던 중 찾아왔다. 한동안 평판이 좋은 책들만 찾아 읽었다. 서서히 그런 류의 책들이 질려갈 즈음 전공과 관련된 책을 공부 목적이 아닌 순수한 목적(?)으로 읽고 싶어졌다.
▲ 임고반 나의 책장. 전공책들만 가득하다. 늘 이런 책들만 읽었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유쾌한 충격을 선물하다
그 당시 연암에 매료되어 있던 때라 그의 대표작인 『열하일기』에 자연히 관심이 갔다. 쉽게 쓰인 책을 찾다가 고미숙씨가 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란 책을 찾게 되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게 되기까진 에피소드가 있다. 제목에 나와 있는 시공간을 ‘시공간詩空間’으로 오역한대서 빚어진 일화이다. 나의 전공이 한문인지라 한시漢詩도 공부하는데 할 때마다 그 난해함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발견한 거다. ‘시공간’이란 제목을 보고서, ‘이 책은 열하일기에 나온 한시들만 모아 해석해놓은 책인가 보네.’라고 생각하니 잠시 머리의 지끈거림이 느껴짐과 동시에 ‘이 책은 봐선 안 되는 책’으로 규정지으며 기피하게 되었다. 역시 ‘(잘못) 아는 게 병’이다.
그렇게 멀어져 갔던 서연이었는데, 인터넷에 소개된 책에 대한 내용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고 그걸 보고서 나의 판단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시공간은 ‘시공간時空間’이었던 것이었다. 잘 알지 못하는 자, 감히 안다고 말하지 말지어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읽게 된 것이었으니, 이런 서연이야말로 진정한 서연이라 할 만하다. 그렇게 어렵게 접하게 된 책은 또 한 번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난 이걸 ‘유쾌한 충격’이라 표현하고 싶다. 간혹 정말 좋은 책을 발견하고 읽을 때 이런 기분이 들곤 한다. 내 삶이 전복되는 듯한 느낌이 들고 내가 지금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허물어지는 느낌이 말이다. 그건 어찌 보면 나의 한계와 치부를 여지없이 들춰내는 것이니 불쾌할 만도 하지만 실상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그것이야말로 아는 즐거움이며 새롭게 태어나는 흥분일 테니까(말이 오버스러워도 참아주시길).
왜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 하냐면 이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다방면의 책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내 생각도 다듬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엔 연암의 유머러스한 면과 새로운 문물에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와 같은 순수한 면이 실려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생소한 현대 철학 용어를 빌려 ‘변화무쌍한 현실’을 무한 긍정하고 거기에 상생ㆍ자유ㆍ연대의 철학까지 실려 있다. 그건 지금껏 내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한 길만을 달려온 나에게 많은 혼란을 안겨줬다.
▲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오해하는 바람에 읽지 못했다. 하지만 읽게 될 책은 언젠가는 꼭 다시 찾아온다.
좋은 책은 또 다른 책을 부른다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을 전면적으로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런 깨달음은 연쇄반응을 일으켜 ‘수유+너머’의 다른 책들로 이어졌고 그건 다시 진중권, 한홍구, 박노자, 강신주씨의 책들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역시 ‘생의 길섶에는 무수한 우연들이 숨겨져 있는 법’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독서하다보니, 이제야 ‘왜 독서를 하는지?’에 대해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처음엔 뭣 모르고 시작했지만, 그런 작은 행동으로 나의 삶이 엄청나게 바뀌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작은 차이가 천리의 차이를 낳는 법이다(毫釐之差 千里之繆). 그러면 지금부턴 본격적으로 책을 읽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 사람이 사람을 부르듯 책이 책을 부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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