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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08.12.04(목) - 시절인연 본문

건빵/글쓰기

08.12.04(목) - 시절인연

건방진방랑자 2019. 12. 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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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

 

오전에 비가 오다가 오후에 그침. 꽃샘 추위가 찾아온다.(20:00)

 

 

드디어 내일이면 임용 1차 결과가 나온다. 시험을 본 지 어느덧 3주가 흘렀다는 이야기다. 스터디도 했고 학교에도 나왔고 이래저래 바쁘게 보낸 것 같긴 하지만 솔직히 너무 빨리 지나간 느낌이다. 뭐 솔직한 얘기로 발표날이 빨리 오길 기다리기도 했었다. 확실한 점수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능성 있는 점수였기 때문에 그 결과가 못내 궁금했으니까. 과연 내일 결과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던져진 주사위에 온갖 신경이 집중된다.

 

 

 

법정과 고미숙의 시절인연

 

내일 특별한 일이 있음에도 오늘은 평범하게 보냈다. 모처럼만에 독서를 했다. 하루종일 책을 읽고 맘에 들었던 부분을 발췌해 놓는다. 이건 여유가 어느 정도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시간적 여유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여유를 말하는 것이다.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오늘 쓸데없는 시간을 보낼까 봐서 읽고 싶던 책을 오늘 읽은 것이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명작이었다. 발췌까지 마치고 나니 손이 찌릿찌릿한 게 꽤 통증이 있다. 그만큼 좋은 부분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와닿았던 부분은 시절인연이란 말이다. 이 단어는 이미 이 책에서 뿐아니라 이전에도 접했던 경험이 있다. 하나는 시이고, 하나는 산문이다. 한 편씩 보며 생각을 정리하도록 하자.

 

시절인연

법정

 

산다는 것은 끊임 없이

자기자신을 창조하는 일.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을 만들어 간다.

 

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든 사람이든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온다.

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표정을 잃은 채 덤덤히 서 있는 것 같지만

안으로는 잠시도 창조의 손을 멈추지 않는다.

 

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기울이면서

새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

대지 위에 활짝 펼쳐 보일 것이다.

 

법정 스님의 시에선 자신을 창조하는 일이 계속되다가 시절인연을 만나면 그 창조의 역량이 빈틈 없이 보여진다고 했다. 겨우내내 생명을 땅 속 깊은 곳에서 키워내다가 봄이라는 시절인연이 오면 새싹을 돋우워내는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사람의 어떤 일이든 자기의 노력 못지 않게 그것이 발현될 만한 여건이 갖춰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결별의 진짜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랑할 때 아무 이유가 없었듯이, 헤어질 때 역시 마찬가지다. ……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시절인연이 어긋난 탓이라고밖에는.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듯이 말이다. 사람도, 삶도 마찬가지다. 시절인연이 바뀌면 서로 헤어져야 한다. 심하게 말하면 어떤 사건들 때문에 헤어진다기보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 그런 사건들이 일어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고미숙, 호모 에로스, 그린비, 2008, 17P

 

짝사랑도 이렇게 하면 된다. 일단 인연이 교차하기 시작하면, 수많은 변곡점들이 생기게 되면서 그러다 보면 시절인연을 만나게 된다. “어떤 현장 조건하고 내가 투입하고자 하는 기운하고 만났는데 전기가 바짝 통해서 불이 환하게 들어”(농담) 오면 그게 바로 시절인연이다. 시절인연을 만나면 구체적인 행동방식은 저절로 결정된다. -고미숙, 호모 에로스, 그린비, 2008, 17P

 

법정스님의 이야기와는 달리 고미숙님은 사람의 관계에 그 시절인연을 대입하고 있다. 시절 인연이 오면 그 관계는 자연히 성립되지만 시절 인연이 가면 그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꼭 인간관계는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 , 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오해를 막기 위해 내가 투입하고자 하는 기운을 말했다. 시절인연이 그냥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와 같은 역량을 지녔기에, 조건을 갖췄기에 온다는 얘기다.

 

이렇게 두 가지 내용을 정리해 보니, 둘 다 같은 내용을 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기를 창조하는 노력, 관계를 생성해내려는 노력이 뒷받침이 될 때 시절 인연이란 훈풍이 불어오는 것이고 그렇게 운명인 것처럼 자신이 바라던 일이 현실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운명론에 기초한 자포자기도 아니고 자신의 노력 여하에만 집중한 자기 만능주의도 아니다. 그 둘의 절묘한 조화로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있게 한 배경에도 신경 써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라디오스타>라는 영화에서도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라는 말이 나온다. , 시절 인연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일과 하고 싶은 일에 전심전력하되 시절 인연이 그렇게 흘러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이다.

 

 

빛을 반사하면서 발광한다고 착각하며 자만한 건 아닌가?

 

 

 

결과 발표 전의 두려움을 풀어내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시절 인연인가? 내일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뭔가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 선추지기 위해서인가? 그 말마따나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일 떨어지게 된다면 시절 인연 탓을 할 거니까. 하지만 난 합격할 경우에도 시절 인연 운운할 것이니 그 의외의 반응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분명 임용에 합격하고 안 하고는 나의 실력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 실력이 갖춰졌는데도 떨어졌다고 한다면 그건 시절인연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번엔 성적도 잘 나왔는데 결과는 그렇다고 한다면 어떻게 시절 인연을 운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며칠 전에 형태 형이 이번에 떨어진다면 아직 선생님될 운명은 아닌 걸로 알고 공부해야지. 솔직히 일 년 더 공부해야 한다는 게 싫어서 그렇지, 그게 좋다고 한다면 떨어졌다고 힘들어할 필요는 없잖아. 난 아직까진 공부하는 게 좋으니까.”라는 말을 했었다. 형태 형도 교사가 되고 안 되고는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춰졌다는 전제조건만 있다면 운명 문제라고 보았다. 나 또한 그 말에 동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절 인연이 지금에 이르러선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내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걱정된다. 난 임고반에서 더 있고 싶다. 그리고 합격자 명단에 오른 내 이름도 보고 싶다. 하긴 이건 모든 수험생들의 바람이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괜히 가슴이 떨린다. 시절 인연은 날 찾아올 것인가, 아니면 내년을 기약하게 할 것인가? 내가 그 시절 인연을 맞이할 준비는 되었는가, 아직도 준비되지 않았는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목요일 밤이다. (21:00)

 

 

7월부터 8월까지 온고을중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며. 한문을 가르치는 건 재밌더라.  

 

 

인용

지도 / 월간 / 08 / 12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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