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비야가 알려준 책의 속성
연애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디가 좋아서 사귀나요?”라고 물어보면, 놀랍게도 대부분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제야 부랴부랴 이유를 생각해보는 사람도 있고, “그냥 모든 게 다 좋아요”라거나 “성격이 좋아서요”라고 얼버무리는 사람도 있다. 왜 사귀는지 생각해 본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어찌 어찌하다보니 살아가지는 것, 그렇게 살아가다가 일상이 흔들리는 특별한 일을 겪고 나서야 이런 저런 이유를 끌어대며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나는 ‘왜 책을 읽는지?’에 대해 어떤 거창한 이유를 대며 장황설을 펼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내가 책을 접하게 된 마음이 아닐뿐더러, 훗날에 덧붙여진 의미부여에 불과하다. 처음엔 그냥 책을 집어 들었던 것이고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50권, 150권으로 불어난 것뿐이니 말이다. 특별함이 전혀 없는 일상적인 독서라고 할 수 있다.
▲ 2008년에 호모부커스2.0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이 글을 쓰게 됐고 선정됐다.
우연히 찾아온 책
그렇다면 ‘책을 왜 읽는가?’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애초에 나는 왜 책을 읽게 되었는지, 어떤 과정들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해야 할 듯하다. 거기에 내가 책을 읽은 가장 원초적인 이유가 숨어있을 테니까.
생의 길섶에는 무수한 우연들이 숨겨져 있는 법. (...) 마음이 통하면 천 리도 지척이라고, 보이지 않는 인연의 선들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광대한 시공간도 단숨에 주파할 수 있다는 것.
-『나비와 전사』, 휴머니스트, 2006년, 고미숙,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타인의 글을 인용하는 까닭은 이 글의 내용이 나의 독서 이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생의 길섶에는 무수한 우연들이 숨겨져 있는 법’이라고 했듯이 나에게도 두 번의 책과의 인연(난 이걸 서연書緣이라 부른다)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인해 난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왠지 이렇게 말하고 나니 무슨 ‘신앙간증회’ 같은 분위기다. 그렇다면 이건 ‘독서간증회’라고나 할까. 과연 이 이야기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얼마나 현실적인 이야기인지 한번 귀 기울여 들어 보자.
▲ 정말 재밌게 읽으며 내가 살고 있는 근대란 시대의 '위생관념', '효율성', '균질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 책이다.
『중국견문록』, 책이 반완성품임을 알려주다
첫 번째 서연은 내가 나락에 떨어졌을 때 찾아왔다. 그 당시 난 연거푸 임용고시에서 떨어져 미래가 전혀 없었고, 2년간 잘 사귀어오던 여자 친구와도 헤어져 인생의 쓴 맛을 제대로 맛보고 있었다. 역시 불행은 겹쳐서 찾아온다.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낭패감에 빠져 아무 의욕도 없이 지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내 눈에 띈 것은 책장 한 쪽 구석에 있던 한비야씨가 쓴 『중국견문록』이라는 책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던 책인지라, 그 때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책을 집어 들었다. 그냥 훑어보겠다고 집어든 책에 어느 순간 정신없이 빠져 들었다. 그래서 그 날 하루 종일 그 책을 다 읽었던 거다. 어찌 삶의 의욕도 없었다면서 그런 무지막지한 짓(?)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야말로 알 수 없는 독서의 힘이려니.
아무튼 다 읽고 나서 몇 분간 멍하니 있었다. 짜릿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미 얘기했다시피 예전에도 읽었던 책이다. 하지만 모처럼만에 다시 읽은 ‘그 책’은 예전의 ‘그 책’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비야씨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대로 나의 마음속에 와서 박혔으니 말이다. 더불어 그녀의 진취적이며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그래서 ‘내 맘과 같지 않은 현실’일지라도 맞설 수 있는 용기는 나에게 커다란 귀감이 되었다.
왜 예전에 읽었을 땐 그런 느낌을 못 느꼈던 것일까? 설마 그 사이에 그런 내용이 추가된 게 아닐 테니, 이것이야말로 파랑새가 집에 있었다던 그런 황당함과 비슷한 것이리라. 역시 책이란 완전한 완성품이 아니다. 끊임없이 독자와 소통하며 가치를 생산해 내는 반완성품인 거다. 독자의 마음 상태, 지적 수준에 따라 다르게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비로소 체험해 볼 수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의 나약함을 버리고 얼마 간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다(역시 독서간증회가 맞다).
하지만 그건 시작이었을 뿐이다. 그걸 계기로 한비야씨의 책을 모조리 다 읽기 시작했고 거기서 더 나가 다른 책들도 서서히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인연의 선들이 작동하기 시작’하니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 이미 읽은 책인데, 이 날따라 착착 감기는 맛이 남달랐던 책이다. 책도 필요할 때 나를 찾아온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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