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알 수 없는 세계를 선물해준 책의 매력
두 권의 책은 나를 찾아왔고 나를 읽었다. 그 후로 책이야말로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흔히 ‘타자’라 정의되는 것처럼 책도 ‘타자’라 정의할 수 있으며 어떻게 소통하려 노력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얘기를 건네주기 때문이다.
▲ 두 권의 책은 늘 익숙하던 책이었지만 미끄러진 순간엔 전혀 다른 책처럼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세계를 선물해 주다
나는 ‘나라는 한계를 넘어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이런 걸 흔히 공감능력이라 한다. 보통 우린 나의 마음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마음이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순 없다. 같은 쌍둥이일지라도 타인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여건이 다른 데 나의 생각만으로 타인의 생각이 그러하리라 판단하고 행동할 순 없는 것이다. 결국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이란 그 사람의 마음에 가닿으려는 노력이고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건 단지 마음만 먹었다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해서 형성되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의 맘을 온전히 헤아릴 순 없지만, 그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며 간접 체험할 순 있다. 오토다케乙武洋匡씨가 쓴 『오체불만족』을 읽으며 장애인들의 마음을 느끼며, 윤수종씨가 쓴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읽으며 소수자들의 설움에 동참한다. 그런 공감이 형성될 때 그들을 타자화하지 않게 되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다. 그럴 때 비로소 인간의 주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고 상생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단순히 책을 읽는다고 공감능력이 생긴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생길 법하다. 물론 단순히 읽는 흉내만 내서는 생기지 않는다. 저자와 대화하려는 마음과 책의 내용을 내 입장에 적용하려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을 때 세상을 보는 안목이 길러지며, 사람과 소통하려는 진실성도 커진다.
▲ 책을 읽는다는 건,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내 소통 역량에 따라 좀 더 저자의 말에 가까워질 수도, 오해가 깊어질 수도 있다.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북돋워주다
또한 ‘나만의 철학을 갖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철학’이라는 단어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호사취미쯤으로 여겨지는 현실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철학 없이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살면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위기에 내몰렸을 때 그걸 헤쳐 나가는 데엔 삶의 철학이 작용하는 법이다.
이렇게 중요한 철학을 어떻게 구성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180도 달라진다. ‘반쯤 물이 담긴 컵을 보고 어떻게 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두 가지 답변은 삶의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책에는 저자의 철학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그런 철학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타인의 생각들을 받아들여 나의 생각에 융합하다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철학이 이루어진다. 나의 주체성이 확고해진다면 더 이상 외부조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다.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어 나의 삶을 만들어 가는데 그깟 외부 조건 따위가 나를 어찌하겠는가. 그와 같은 주체성의 철학을 갖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독서를 한다.
▲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은 것인가? 반 '씩이나' 남은 것인가?
인용
'건빵 >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을 읽는 이유 - 목차(08.10.09) (0) | 2019.12.29 |
---|---|
책을 읽는 이유 - 4. 지금의 삶을 위해 책을 펼치다 (0) | 2019.12.29 |
책을 읽는 이유 - 2. 연암이 선사한 유쾌한 충격 (0) | 2019.12.29 |
책을 읽는 이유 - 1. 한비야가 알려준 책의 속성 (0) | 2019.12.29 |
19.10.16 - 애드센스와 PIN번호 (0) | 2019.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