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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4. 작은 차이가 천지의 뒤틀림을 낳는다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4. 작은 차이가 천지의 뒤틀림을 낳는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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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차이가 천지의 뒤틀림을 낳는다

 

 

소화시평권하 64에선 홍만종이 생각하는 최고의 시를 선별하여 수록하고 그에 대한 평을 하고 있다. 시평은 일찍이 ~함에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다[未嘗不歎]’라는 통일된 양식으로 ()’이란 글자 뒤에 감개(感慨)ㆍ장려(壯麗)ㆍ정치(精緻)’와 같은 두 글자의 단어들이 들어간다.

 

이쯤에서 잠시 생각하고 넘어갔으면 하는 게 있다. 그건 당신은 최근에 문학작품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나서 감탄해본 적이 있냐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얘기하자면 예전에 돈도 궁하고 지지리도 궁상 맞게 공부하던 시기엔 꽤나 감명 깊게 본 영화들이 많았었다. 그런데 재밌게도 막상 단재학교에 들어가 영화팀 교사가 되었고 아이들과 매년 전주와 부산의 국제영화제에 다니며 영화를 봤고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들 중 이슈가 있는 영화들을 자주 보게 되었음에도 그때와 같은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래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삶에 대해, 알지 못하던 것에 대해 흥미를 잃고 무료해졌다는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건 너무도 반복되는 일상을 그저 살아내는 통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삶이 시들시들해져 가고 있을 때 홍만종이 감탄했다며 쭉 열거해놓은 시들을 읽고 왜 그와 같은 감상평을 남겼는지를 고민하고 있으니, 학문적 관점에서의 앎이 주는 기쁨보다 작품을 보며 감동할 줄 아는 그 마음이 나를 울리더라. 어쩌면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와 같은 촉촉한 감수성이며 어떤 것을 보고 감동할 줄 아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니 임용공부를 하며 서서히 닫아버렸던 마음들을 불러일으키고, 작은 것에도 감동할 줄 알았던 감수성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지식으로서, 임용공부로서의 한문공부 외에 옛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작품들을 읽으며 그들과 대화하려는 적극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그럴 때 단순히 한 문제를 더 맞고 덜 맞고 하는 지식 단위로서의 한문공부가 아닌 나의 삶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캐취해내는 대화로서의 한문공부가 될 테니 말이다.

 

 

전주영화제와 부산영화제에 함께 다닌 아이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었다.

 

 

더욱이 이번 편은 매우 특별하게 보게 되었다. 소화시평에 수록된 한시 중 이런 식으로 명시를 뽑은 경우는 이미 권상 83에서 본 적이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7언율시의 한시 중에서 자신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두 구절만을 뽑아서 거기에 비평을 다는 방식이었다. 무려 20편이나 인용되어 있어 이곳에 두 구절씩 인용된 한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양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엔 전문을 보지 않고 그것만 보며 왜 홍만종이 그런 평가를 했는지 생각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벅찬 느낌이 있었고 하필 그 주간이 임용시험이 있는 주간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선 후기도 남기질 못했다. 그처럼 이번에도 소화시평에 인용된 구절만을 보고 넘어갈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교수님도 64번을 읽어보셨는지 이번 편 같은 경우는 명편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단순히 인용된 구절만 보기보단 전문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홍만종이 달아놓은 평가는 인용된 구절 외에 전문을 보고 달아놓은 평가들도 상당 수가 되기 때문에 이번 편에 한해선 전문을 함께 보고 그에 대해 왜 이런 평가를 했는지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이번 편은 한 명이 전체를 준비하는 방식이 아닌 한 명 당 하나씩의 시들을 공부해와서 함께 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정해진 순서는 다음과 같다.

 

더보기

소화시평 선독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소화시평 마지막 즈음에 지나쳐 왔던 64번 기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홍만종이 최고라고 여겼던 작품을 열거하고, 그 특징을 간략하게 붙인 글인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제시된 작품 전체를 읽어보려 합니다. 하여 아래와 같이 준비할 부분을 배분하였습니다.

 

崔學士孤雲之潤州慈和寺詩 畵角聲中朝暮浪 靑山影裏古今人 余未嘗不歎其感慨(이종환)

李白雲春卿之元日早朝詩 三呼萬歲神山湧 一熟千年海果來 未嘗不歎其壯麗(전현종)

李益齋仲思之記行詩 雨催寒犢歸漁店 風動輕鷗送客舟 未嘗不歎其精緻(강지인)

李牧隱穎叔之山中詩 風淸竹院逢僧話 草軟陽坡共鹿眠 未嘗不歎其穠贍(민예진)

徐四佳剛中之龍鍾詩 黑雲暗淡葡萄雨 紅霧霏微菡萏風 未嘗不歎其沖融(서의정)

金佔畢齋季溫之淸心樓詩 十年世事苦吟裏 八月秋容亂樹間 未嘗不歎其爽朗(김여경)

金東峰悅卿之山居詩 龍曳洞雲歸遠壑 雁拖秋日下遙岑 未嘗不歎其雅健(김은성)

이상 59일 강독 예정, 준비 자료는 53일까지 업로드

 

成虛白磬叔之延慶宮古基詩 羅綺香消春獨在 笙歌聲盡水空流 未嘗不歎其凄楚(윤한림)

朴挹翠仲說之福靈寺詩 春陰欲雨鳥相語 老樹無情風自哀 未嘗不歎其神奇(김태현)

李容齋擇之之大興道中詩 多情谷鳥勸歸去 一笑野僧無是非 未嘗不其閑淡(강나온)

鄭湖陰雲卿之荒山戰場詩 商聲帶殺林巒肅 鬼燐憑陰堞壘荒 未嘗不歎其勁悍(이종환)

盧蘇齋寡悔之寄尹李詩 日暮林烏啼有血 天寒沙雁影無隣 未嘗不其悽惋(전현종)

黃芝川景文之罷官詩 靑春謾說歸田好 白首猶歌行路難 未嘗不歎其激切(강지인)

崔東皐立之之將赴京詩 劍能射斗誰看氣 衣未朝天已有香 未嘗不歎其矯健(민예진)

張谿谷持國之早發板橋店詩 寒蟲切切草間語 缺月輝輝天際流 未嘗不歎其淸楚(이지윤)

이상은 516일 강독 예정, 준비자료는 510일까지 업로드

분명 계획보다 더 오래 걸릴 테지만, 그래도 미리 준비해 둡시다.

시 전체 꼼꼼히 읽고, 마지막 부분 비평에 대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김형술 드림

 

  

그렇지 않아도 작년 5월에 교수님과 술을 한 잔하며 나눴던 얘기가 있다. “서울대생이나 전주대생이나 한문실력엔 그다지 차이가 없습니다.”라고 포문을 여셨다. 처음 한문을 배울 당시엔 누구 할 것 없이 모르는 게 태반이니 실력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후에 실력 차이가 버젓이 나는 까닭에 대해 교수님은 문장에 접근하고 배워나가는 방식에서 다릅니다. 우린 그저 문장을 볼 때 해석이 되느냐 정도로만 끝나지만 그 친구들은 부분이 인용된 경우엔 전문을 찾아 공부하고 또 거기서 모르는 게 나오면 수많은 자료들을 비교 검토하여 수많은 주석들을 달아 오거든요. 그래서 과제집착력과 몰입도로 인해 결과적인 실력 차이가 빚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작은 차이가 천리의 뒤틀림을 낳는다[毫釐之差, 千里之繆]’라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한문은 어렵고 힘들고 버겁다. 그렇기에 시작지점에서 보면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은 누구나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문공부를 하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실력 차이가 있게 되는 건 바로 한문을 제대로 음미하려 했느냐, 대충 된다 싶으면 넘어갔느냐의 적극성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짧은 인용구를 볼 때에도, 그리고 그곳에서 모르는 게 있을지라도 대충 해석이 된다 싶으면 넘어가기 일쑤였으니 할 말 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그 아이들은 짧은 인용구를 볼 때에도 전문을 보려 노력하며 모르는 게 있으면 전거(典據)를 찾으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건 한문이란 물결에 제대로 몸을 맡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어찌 실력 차이가 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64번 글을 인용구가 아닌 전문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건 정말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혼자 한시든 산문이든 읽으면 그저 주제를 찾고 난해한 부분을 해석하는 정도로 만족하며 넘어가지만 이런 식으로 함께 보면 고민할 거리들이 샘솟고 알고자 하는 욕망이 절로 일렁이기 때문이다. 과연 64번의 길고 긴 한시 감상 투어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앎의 파토스를 일으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제 전문을 함께 보며 나눈 한시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보자.

 

 

 

 

  작년 5월 16일에 있었던 술자리에서 나눈 얘기는 한문공부의 방향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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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권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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