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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년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할배와 이야길 나누다
노옹문답(老翁問答)
이경석(李景奭)
行投葛院宿 有翁年八十 | 길을 가다 갈원에 투숙하니 할배의 나이 팔순이었고 |
復有一老嫗 與之相對泣 | 다시 한 할매가 있어 할배와 할매가 서로 대하며 눈물 쏟고 있었네. |
問翁悲何事 欲答還嗚咽 | “노인께선 무슨 일로 슬퍼하시오?”라고 물으니 대답하려다 도리어 오열하더니, |
拭淚乃吐懷 儂本饒生活 | 눈물을 닦고 곧 회포를 토로했네. “나는 본래 넉넉하게 생활해 |
有男已成丁 有族能相恤 | 아들은 이미 장정이 되었고 친척들이 서로 구휼할 수 있었으며 |
煙火自一村 共保耕鑿樂 | 밥 짓는 연기 1가 절로 한 마을을 이루어 함께 태평성대의 즐거움 보전했죠. |
誰意値大無 賦斂仍刻迫 | 누가 생각했겠어요 흉년 2을 당해 세금 부과함이 여전히 각박해서 |
居難一日支 一朝盡蕩柝 | 거처함에 하루도 버티기 어려워 하루아침에 모두 흩어지리란 걸. |
骨肉不相保 流離各南北 | 골육지간(骨肉之間)도 서로 보존하질 못하여 유리걸식하여 각각 남과 북으로 갔죠. |
嫗乃儂之妻 道路偕行乞 | 할매는 곧 내 아내로 도로에서 함께 구걸을 행합죠. |
嗟來忍羞恥 得以延今日 | 옛다 먹어라 3!라는 모욕적인 부끄러움을 참고 오늘까지 연명할 수 있었죠. |
卽今迫天寒 歲徂何以卒 | 지금은 추운 날씨이 닥쳐 해 가는 것을 어떻게 마칠 수 있겠어요? |
破衣不掩體 霜風吹到骨 | 해진 옷은 몸 가리질 못해서 서리와 바람이 불자 뼈에 사무쳐요. |
欲還舊墻屋 村空但蒿荻 | 옛 집으로 돌아가려 해도 마을은 비어 다만 덤불뿐이죠. |
縱能葺茅茨 無力充徵索 | 가령 초가집 엮을 수 있다해도 세금 4을 충당할 힘이 없어요. |
只應死道路 白骨竟何托 | 다만 응당 도로에서 죽으리니 백골을 마침내 어디에 부탁하겠어요. |
是以心自悲 念之涕橫臆 | 이 때문에 마음은 절로 슬퍼져 그걸 생각하니 눈물이 가슴까지 흐르는 거죠.” |
我聞翁之言 爲之增太息 | 나는 할배의 말을 듣고 그 말 때문에 크게 한숨이 더해졌다. |
翁乎且無悲 此患非爾獨 | 할배여! 또한 슬퍼 말아요. 이 근심 당신만이 홀로 그런 게 아니고 |
人多爲轉屍 翁幸免溝壑 | 사람이 많이 구르는 시체가 되는데 할배는 다행히 골짜기에 시체로 굴러다니는 걸 면했으니. |
試看負戴者 孰云秋已熟 | 시험 삼아 보시오 지고 이는 유랑하는 사람 중 누가 ‘가을이 이미 곡식이 익을 때다.’라고 하는지? |
鄭公雖有圖 苦語未寫得 | 정협(鄭俠)은 비록 유민도가 있지만 괴로운 말은 쓰질 못했으니, |
願借方寸地 披腹達宸極 | 작은 마음이라도 가져다 속을 열어 대궐에 통하길 원하니, |
君王若聞之 聖情應感惻 | 군왕이 만약 그걸 듣는다면 성상의 정으로 응당 감개하며 측은해하시리. 『白軒先生集』 卷之一 |
인용
- 연화(煙火):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서 불을 때어 나는 연기라는 뜻으로, 사람이 사는 기척 또는 인가를 이르는 말 [본문으로]
- 대무지년(大無之年): 대흉년(大凶年)이란 뜻이다. [본문으로]
- 차래(嗟來): 춘추 시대 제(齊)나라에 크게 기근이 들었을 때 금오(黔敖)라는 사람이 길에서 밥을 지어 사람들에게 먹였는데, 어떤 굶주린 사람에게 "불쌍하기도 해라, 어서 와서 먹어라.[嗟來食]"라고 하자, 그가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면서 "나는 오직 불쌍하게 여기면서 무례하게 주는 음식을 받아먹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予唯不食嗟來之食 以至於斯也]"라고 하고는 끝내 음식을 거부하고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下)」 [본문으로]
- 징색(徵索) : '징구토색(徵求討索)'의 준말로 돈이나 곡식 따위를 강제로 요구하는 일을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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