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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 노객부원(老客婦怨) 본문

한시놀이터/서사한시

허균 - 노객부원(老客婦怨)

건방진방랑자 2021. 8. 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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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에 의해 한 가족이 풍비박산나 홀로 남은 할매의 사연

노객부원(老客婦怨)

 

허균(許筠)

 

東州城西寒日曛 동주성[각주:1]의 서쪽은 춥고도 해는 지니
寶蓋山高帶夕雲 보개산[각주:2]은 높아 저녁 구름이 띠를 이루었네.
皤然老嫗衣藍縷 머리 세고 남루한 옷 입은 할매는
迎客出屋開柴戶 손님 맞으러 집을 나와 사립문 열며
自言京城老客婦 스스로 말하네. “서울의 접객 할매는
流離破產依客土 흘러다니며 파산해 타향에 의지했죠.
頃者倭奴陷洛陽 최근에 왜구가 서울을 함락해
提携一子隨姑郞 한 자식 데리고 시어머니와 남편 따랐어라.
重硏百舍竄窮谷 백 리마다 한 번씩 쉬며[각주:3] 물집이 겹으로 생기며 곤궁한 골짜기에 숨어
夜出求食晝潛伏 밤엔 나가 먹을 것 찾고 낮엔 숨었죠.
姑老得病郞負行 시어머니 병 들자 남편이 업고 다녔고
蹠穿峥山不遑息 가파른 산을 밟고 뚫으며 가려니 쉴 겨를도 없었지요.
是時天雨夜深黑 이때에 비가 내려 밤에도 깊은 암흑이라
坑滑足酸顚不測 구덩이 미끄러워 발은 욱신거려 자빠짐은 헤아리질 못했죠.
揮刀二賊從何來 칼을 휘두르는 두 명의 왜적 어디서부터 왔는지,
闖暗躡蹤如相猜 어둠 속에 들어와 쫓아오는데 서로 시기하는 것 같았죠.
怒刃劈脰脰四裂 성난 칼로 정강이 치니 정강이가 네 부분으로 찢어졌고
子母幷命流冤血 남편과 어머니는 목숨을 함께 하며 원통한 피를 흘렸지요.
我挈幼兒伏林藪 나는 어린 아이 끌고 숲속으로 숨었지만
兒啼賊覺驅將去 아이가 울어 적이 발각하여 몰려와선 장차 아이 데리고 갔죠.
只餘一身脫虎口 다만 남은 한 몸 호랑이입에서 벗어났지만
蒼黃不敢高聲語 급작스러워[각주:4] 감히 고성치지 못했죠.
明朝來視二骸遺 다음날 와서 두 구의 시체를 보니
不辨姑屍與郞屍 시어머니의 시체와 남편의 시체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였죠.
烏鳶啄腸狗嚙骼 까마귀와 솔개는 창자를 쪼아대고 개는 뼈를 씹어대서
虆梩欲掩憑伊誰 삼태기로 가리려 해도 의지할 이 누군가요?
辛勤掘得三尺窞 애쓰며 파서 삼 척의 구덩이 만들어
手拾殘骨閉幽坎 손수 남은 뼈를 수습하고서 깊은 구덩이 덮었어라.
隻影終何歸 쓸쓸한 외로운 그림자 끝내 어디로 귀의하겠어요?
隣婦哀憐許相依 이웃집 아낙이 애달파하고 가련히 여겨줘 서로 의지하길 허락해줬죠.
遂從店裏躬井臼 마침내 이때부터 주막에서 몸소 물 깃고 절구질하며
餽以殘飯衣弊衣 남은 밥을 먹고 해진 옷 입었죠.
勞筋煎慮十二年 힘을 쓰고 마음을 졸인 지 12년에
面黧髮禿腰脚頑 얼굴은 탔고 머리는 다 빠졌고 허리와 발은 무뎌졌죠.
近者京城消息傳 최근에 서울에서 소식이 전해지니
孤兒賊中幸生還 남은 아들 왜구 속에서 다행히 생환하여
投入宮家作蒼頭 궁궐에 들어가 시중 드는 일을 하고
餘帛在笥囷倉稠 남은 비단이 상자에 있고 버섯 창고 가득하여
娶婦作舍生計足 장가도 들고 집도 지어 생계가 풍족하다고 하지만
不念阿孃客他州 어미가 객지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하겠죠.
生兒成長不得力 낳은 아이가 성장했지만 힘 쓸 수 없어
念之中宵涕橫臆 그 아이가 생각나면 한밤 중에도 눈물에 가슴까지 비낀답니다.
我形已瘁兒已壯 나의 모습은 이미 노쇠했지만 아이는 이미 장성하니
縱使相逢詎相識 가령 서로 만나더라도 어찌 서로 알아보겠어요?
老身溝壑不足言 몸이 골짜기에 늙는 건 말할 게 없지만
安得汝酒澆父墳 어찌 술을 얻어 아비의 무덤에 부을 수 있으련지요?
嗚呼何代無亂離 ! 어느 시대인들 난리로 인한 유리함이 없었겠냐만은
未若妾身之抱冤 저의 몸이 원통한 일을 당한 것만은 못할 겁니다.”惺所覆瓿稿卷之一

 

 

 

 

인용

목차

해설

 
  1. 동주(東州): 강원도 철원의 고호다. [본문으로]
  2. 보개산(寶蓋山): 철원 남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본문으로]
  3. 백사(百舍): 사(舍)는 거리의 단위로 30리, 백사(百舍)는 먼 거리를 표현한 말이다. 백 리마다 한 번씩 쉰다는 뜻으로, 고생고생을 하며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천도(天道)」에, "사성기(士成綺) 노자(老子)를 찾아뵙고는 말하기를, '백 리마다 한 번씩 쉬면서 발에 물집이 겹으로 생겼어도 쉬지 않고 왔습니다[百舍重趼而不敢息].' 하였다." 하였다. [본문으로]
  4. 창황(蒼黃): 미처 어찌할 사이도 없이 매우 급작스러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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