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서의 공자인 양진이 만년에 신수가 훤해지다
양진관서(楊震關西)
後漢楊震字伯起, 弘農華陰人. 少好學明經, 博覽無不窮究. 諸儒爲之語曰: “關西孔子楊伯起.” 常客居於湖, 不答州郡禮命數十年. 衆謂之晩暮, 而志愈篤.
後有鸛雀, 銜三鱣魚, 飛集講堂前. 都講取魚進曰: “蛇鱣者卿大夫服之象也. 數三者法三台也, 先生自此升矣.” 年五十乃始州郡, 安帝時爲太尉.
해석
後漢楊震字伯起, 弘農華陰人.
후한의 양진의 자는 백기(伯起)로 홍농(弘農) 화음(華陰)의 사람이다.
少好學明經, 博覽無不窮究.
어려서 배우길 좋아하고 경학에 밝아 널리 배워 궁구하지 않음이 없었다.
諸儒爲之語曰: “關西孔子楊伯起.”
뭇 유학자들이 그에게 “관서의 공자인 양백기.”라고 말했다.
常客居於湖, 不答州郡禮命數十年.
항상 호수가에서 객지생활하며 주군(州郡)의 예를 갖춘 초빙 명령에 답하지 않은 지 수십년이었다.
衆謂之晩暮, 而志愈篤.
여럿이 ‘만년’이라고들 했지만 뜻은 더욱 독실해졌다.
後有鸛雀, 銜三鱣魚, 飛集講堂前.
후에 황새가 세 마리의 두렁허리를 물고서 날아와 강당 앞에 모여들었다.
都講取魚進曰: “蛇鱣者卿大夫服之象也.
도강(都講)이 물고기를 취하며 나와서 말했다. “두렁허리는 경대부 관복의 상징입니다.
數三者法三台也, 先生自此升矣.”
숫자 3은 삼태【삼태(三台): 삼공(三公), 곧 태위(太衛)ㆍ사도(司徒)ㆍ사공(司空).】를 본받은 것이니 선생께선 이로부터 오르실 것입니다.”
年五十乃始州郡, 安帝時爲太尉.
나이 쉰에 주군에서 시작하여 안제 때 태위가 되었다.
참고
「양진관서(楊震關西)」과 「정관역동(丁寬易東)」은 학문의 전승(傳承)이 그 주제이다. 『역경(易經)』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에도 점책으로 인정되어 화를 모면하였는데, 유학이 재건되면서 노학(魯學)이니 제학(齊學)이니 하는 전승을 달리하는 학파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역학만은 그런 유파가 없었다. 본디 역은 복서(卜筮)의 글로서 유교의 경전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자는 만년에 역을 파악하는 단전(篆傳) 상하, 상전(象傳)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文言)ㆍ설괘(說卦)ㆍ서괘(序卦)ㆍ잡괘전(雜卦傳)의 10익(十翼)을 만들고, 이를 상구자목(商瞿子木)에게 전하여 자목으로부터 교비자용(橋庇子庸) → 간비자궁(肝臂子弓) → 주추자가(周醜子家) → 손우자승(孫虞子乘)을 거쳐서 전한 초기의 전하(田何)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통적 유가의 해석이다.
-『몽구』, 이한 지음, 권오석 옮김, 홍신문화사, 1998년, 28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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