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을 공부하여 정수를 깨우친 정관
정관역동(丁寬易東)
前漢丁寬字子襄, 梁人. 初梁項生從田何受『易』, 時寬爲項生從者. 讀『易』精敏, 材過項生. 遂事何. 學成東歸, 何謂門人曰: “『易』已東矣.”
寬復從周王孫受古義, 號『周氏傳』. 景帝時, 爲梁孝王將軍. 作『易說』三萬言. 訓詁擧大誼而已.
해석
前漢丁寬字子襄, 梁人.
전한 정관(丁寬)의 자는 자양(子襄)이며 양(梁) 나라 사람이다.
初梁項生從田何受『易』, 時寬爲項生從者.
처음에 양나라 항생(項生)은 전하(田何)를 따라 『역』을 전수받았고 이 당시에 정관은 항생의 따르는 사람이었다.
讀『易』精敏, 材過項生. 遂事何.
『역』을 읽어 정밀해지고 민첩해져 재주가 항생을 넘어서니 마침내 전하를 섬기게 됐다.
學成東歸, 何謂門人曰: “『易』已東矣.”
배움이 이루어져 동쪽으로 돌아가니 전하가 문인들에게 “『역』이 이미 동쪽으로 간다.”라고 말했다.
寬復從周王孫受古義, 號『周氏傳』.
정관이 다시 주나라 왕손을 따라 『주씨전』이라 불리는 옛 뜻을 전수받았고
景帝時, 爲梁孝王將軍.
경제 때에 양나라 효왕의 장군이 되었다.
作『易說』三萬言. 訓詁擧大誼而已.
『역설』 3만언을 지었으니 훈고로 큰 뜻을 열거했을 뿐이다.
참고
「양진관서(楊震關西)」과 「정관역동(丁寬易東)」은 학문의 전승(傳承)이 그 주제이다. 『역경(易經)』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에도 점책으로 인정되어 화를 모면하였는데, 유학이 재건되면서 노학(魯學)이니 제학(齊學)이니 하는 전승을 달리하는 학파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역학만은 그런 유파가 없었다. 본디 역은 복서(卜筮)의 글로서 유교의 경전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자는 만년에 역을 파악하는 단전(篆傳) 상하, 상전(象傳)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文言)ㆍ설괘(說卦)ㆍ서괘(序卦)ㆍ잡괘전(雜卦傳)의 10익(十翼)을 만들고, 이를 상구자목(商瞿子木)에게 전하여 자목으로부터 교비자용(橋庇子庸) → 간비자궁(肝臂子弓) → 주추자가(周醜子家) → 손우자승(孫虞子乘)을 거쳐서 전한 초기의 전하(田何)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통적 유가의 해석이다.
-『몽구』, 이한 지음, 권오석 옮김, 홍신문화사, 1998년, 28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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