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적(李彦迪, 1491 성종22~1553 명종8, 자 復古, 호 晦齋ㆍ紫溪翁)은 중앙관계에 진출한 영남 사림의 선구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직접 선배이다. 사간(司諫)의 직책에 있을 때 당시의 권신인 김안로(金安老)를 논박하다 파직당하자 경주 자옥산(紫玉山)에 독락당(獨樂堂)을 짓고 성리학을 궁구하였으며 을사사화(乙巳士禍)로 강계배소(江界配所)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서경덕(徐敬德)과는 달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하여 음양(陰陽)의 기(氣)보다 태극(太極)의 리(理)가 선행하는 것으로 인륜도덕의 근원이 된다고 파악하였다. 『구인록(求仁錄)』, 『봉선잡의(奉先雜儀)』,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 『중용구경연의(中庸九經衍義)』 등의 저술을 남기고 있는 그는 시작(詩作)에 있어서도 득도(得道)의 즐거움을 직관적으로 노래하지 않고 잠심하여 수양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구도정신(求道精神)을 노래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무의(無爲)」도 그러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萬物變遷無定態 | 만물의 변화는 정해진 모양이 없으니 |
一身閑適自隨時 | 이 한몸 한가하고 절로 때를 따른다. |
年來漸省經營力 | 근래에는 꾸미는 데 힘을 점차 줄여서 |
長對靑山不賦詩 | 길이 푸른 산 마주해도 시를 읊지 않는다. |
이것은 1535년 은거시(隱居時)에 지은 작품이다. 여기서 「무의(無爲)」는 도가(道家)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용(中庸)』에서 유변된 유가적(儒家的)인 개념이다. 만물(萬物)의 현상은 천변만화(千變萬化)하지만 주일무적(住一無適)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자신은 한적(閑適)할 뿐이다. 한적(閑適)은 고요한 마음을 즐기는 것이다. 마음을 엉뚱한 곳에 기울이지 않아 푸른 산을 보고도 시(詩)를 짓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해 이수광(李睟光)은 『지봉유설(芝峯類說)』 「동시(東詩)」에서 “어의가 매우 고상하니 쪼잔하게 시를 짓는 이는 도달할 수 있지 않다[語意甚高, 非區區作詩者所能及也]”라고 평한 바 있고, 신위(申緯)는 「동인논시절구(東人論詩絶句)」 8에서 “晦齋不屑學操觚 長對靑山一句無 好向先生觀所養 一身還有一唐虞”라 하였다. 이러한 평은 이 시가 고도의 수양을 바탕으로 한 이언적(李彦迪)의 정신세계를 보인 것이므로 다시 애써 꾸미려 하는 사장학(詞章學)의 전통에서는 이룩할 수 없는 경지임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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