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색시의 인가
그 다음날 아침, 나는 바지는 중옷을 입고, 윗도리는 흰 난닝구 하나 걸친 채로 별당과의 반대편으로 나있는 계곡(안산으로 올라가는 계곡)을 올라갔습니다. 그 계곡에는 당시 화전민들이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계곡 아래쪽에 서너 채가 있었고 꼭대기에 또 서너 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한 채의 매우 정감이 서린 초가집이 있었습니다. 그곳을 올라가려면 반드시 들를 수밖에 없는 집이었죠. 남서향에 툇마루가 반듯하고 불 때는 부엌이 옆으로 있는 전형적인 초가집이었어요. 저는 그곳 툇마루에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부엌에서 아주 인상이 밝고 젊은 새색시 같은 여인이 나오는 거였어요. 아마도 시집온 지 얼마 안 되는 그 집 며느리 같았어요. 그런데 저를 보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원 세상에, 어떻게 스님이 이렇게도 잘도 생기셨을까? 전 스님처럼 잘생긴 사람 처음 봐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통상적인 관념 속에서 젊은 여인이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예지요. 여기 ‘잘생겼다’하는 것은 나의 골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어요. 나에게서 풍겨 나오는 많은 느낌에 압도적인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죠.
그 여인은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방금 찐 감자 서너 개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 보고 드셔보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것을 손수건에 싸고 툇마루에서 일어섰습니다.
“가봐야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큰 스님 되실 거예요.”
나는 그 순간 더 이상 ‘성철 스님의 인가’가 필요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아낙에게 지고의 오도경지를 인가 받았노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생각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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