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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 4장 『반야바라밀다심경』 주해, 제7강 보리살타에서 삼먁삼보리까지 본문

고전/불경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 4장 『반야바라밀다심경』 주해, 제7강 보리살타에서 삼먁삼보리까지

건방진방랑자 2021. 7. 1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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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 보리살타에서 삼먁삼보리까지

 

 

보리살타 즉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다.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는 고로, 공포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전도된 의식과 꿈같은 생각들을 멀리 벗어나 버리고, 끝내 열반에 도달한다.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무상의 정등각을 얻는다.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공포와 몽상

 

 

이 단락도 현장(玄奘)의 번역에 기준하여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여기 주어가 보리살타(bodhisattva, 깨달음을 지향하는 유정有情. 깨달음의 가능성을 지닌 보통사람, 즉 싯달타와 같은 깨달음을 얻는 사람)’로 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리살타의 약어가 곧 보살이며 그것은 대승운동의 주체입니다. 아라한을 뛰어넘는 새로운 불교의 주체입니다. 결국 반야경의 핵심인 심경이 설파된 것은 보살에게 설파된 것이고, 그 설파된 내용의 최종적 수혜자는 비구가 아닌 보살입니다. 대승의 수혜자가 되려면 비구도 보살이 되어야만 합니다. 보살을 주어로 했을 때, 어떤 일이 최종적으로 벌어지는가?

 

보리살타, 즉 모든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이해했고 그 원리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고로, 마음에 일체의 걸림이나 장애가 없습니다. ‘무가애(無罣礙)’라는 뜻은 걸리거나 장애가 있거나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마음에 뭐가 걸린다’. ‘바위같은 것이 꽉 막고 있다’, 정말 괴로운 인생이지요. 나도 요즈음 고소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 솔직히 평온하고 아름다웠던 마음이 가애(罣礙)로 꽉 차게 되었습니다. 경찰서에 소환당해 조서를 쓸 생각은 가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반야바라밀다의 진정한 실천자라고 한다면 이러한 가애를 극복해야겠지요.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의 종이원고 위에 죽으라고 만년필을 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아~ 가애(罣礙)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보살은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기 때문에, ‘공포(恐怖)’가 사라집니다. 공포란 무엇일까요? 공포란 결국 나의 생명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지요. 다시 말해서 신체적 위협은 매우 직접적인 공포이지요. 다음으로 재산이 없어질 것 같다, 이것도 공포지요. 또 있습니다. 명예가 실추될 것 같다. 이것도 공포지요. 또 있지요. 권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내 아름다운 얼굴이 늙어서 추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공포 때문에 인간은 세속의 악바리 같은 집념에 매달리지요.

 

그러나 반야의 완성을 체득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공포가 없다! 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입니까? 공포가 없을 뿐이 아니지요. 전도(顚倒)된 몽상(夢想)을 멀리 떠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전도란 무엇입니까?? 거꾸로 보인다는 뜻이지요. 몽상이란, 현실이 아닌, 망념에 의하여 지어내는 환상이지요. 공포에는 외마(外魔)가 있고 내마(內魔)가 있습니다. 내마는 꼭 몽상을 지어내게 마련이지요.

 

 

 

 

전도망상에서 멀리멀리 벗어나라

 

 

내가 요즈음 내복을 하도 오래 입다 보니 고무줄이 다 삭아버려서 오랜만에 동네 내복상점에 갔어요. 내복을 좀 사려고요. 그런데 20여년 안면이 있는 주인청년이 날 붙잡고 호소를 해요.

 

선생님! 이거 나라가 잘못되는 거 아닙니까?”

 

?”

 

문 대통령이 너무 정치를 못하는 거 같아요.”

 

?”

 

김정은을 자꾸 만나서 나라를 팔아넘기려고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장사도 안돼요.”

 

팔아넘긴다니 누가 그런 말 하던가?”

 

태극기집회 나가는 사람들이 점포에 많이 오는데 다 그렇게 말해요.”

 

그건 그 사람들 생각이고, 자네가 뭘 확인해본 것이 있나? 자네도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그 자식들이 분열과 전쟁에 시달리는 세월을 살기를 원하는가?”

 

물론 아니죠.”

 

우리가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같은 동포끼리 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되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 그렇게 되면 좋죠.”

 

그렇다면 트럼프가 되었든 김정은이 되었든 문 대통령이 되었든 평화의 달성을 위해 만나고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나? 우리가 그런 노력을 격려해주어야하지 않겠나? 그런데 나라를 팔아먹는다니! 생각해보게! 우리의 국력이 강한가? 북한이 강한가? 자네는 모든 것을 거꾸로 생각하고 있어! 꿈꾸지 말란 말야! 몽상하지 말란 말야! 주도적으로 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이 바로 우리 민중에게 있네. 꿈꾸지 말게! 우리는 남북이 하나가 되어야 하고, 전도몽상에서 멀리멀리 벗어나야 하네.”

 

, 알겠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고쳐 생각하겠습니다.”

 

 

이 마을청년이 궁극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의 공산주의나 남한의 민주주의가 아니겠지요. 단지 요즈음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얘기에요. 시대변화(사회변화)에 수반되는 제반 요소 때문에 초래된 생계와 관련된 현상이지요. 다시 말해서 그 청년의 궁극적 관심은 이념(Ideology)’이 아니라 (Life)’입니다. ‘잘살면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가 잘살기 위해서는 오히려 모든 이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반공이념이 우리에게 밥을 먹여주지는 않지요. 바로 모든 이념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것이 반야의 부정이었습니다. 지혜의 완성을 위해서는 기존의 모든 이념이 부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설해야 할 것은 그냥 살기 좋은 나라이지, 이데올로기적 이데아에 복속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삶이 이념을 지배해야지, 이념이 삶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이념이 삶을 지배하는 사회, 이것을 반야의 지혜는 전도(顚倒)’라고 부르는 것이죠. 프랑스의 심리학자 라캉(Jacgues Lacan, 1901~1981, 프로이드를 재해석한 정신분석학 학자)이 말하는 대타자의 욕망도 이 심경전도를 현대인의 감각에 맞게 표현한 것이죠. 현장(玄奘)도 유식학(唯識學)의 대가로서 라캉 이상의 자세한 식이론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래서 몽상이라는 말을 첨가한 것 같아요.

 

남과 북은 한 민족이며 한 동포이며 한 가족이며, 역사와 풍속, 문화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통일되면(화해ㆍ교류ㆍ주체적 소통) 당장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며, 시장이 확대되고, 외교적 위상이 높아지고, 주체적 활동영역이 늘어나며, 중국과 러시아대륙과의 활로가 활성화되며, 유라시아대륙의 한 기축으로서의 조선대륙의 위엄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구체적 실리를 못 보게 하고 전쟁의 공포와 이념적 잔혹함만을 상기시키는 정치인들을 과연 정치인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현재의 상태에서 이득을 보고있는 세력은 현재의 상태를 고착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보수라고 부릅니다. 무상(無常)을 상()으로 생각하고, 가유(假有)를 진유(眞有)로 생각하고, 변화를 불변으로 착각하는 보수의 그릇된 견해가 중생을 공포(恐怖)에 떨게 하고, 전도(顚倒)된 생각을 갖게 하며 꿈같은 허망한 상념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것이죠. 보수여 가라! 껍데기는 꺼져라!

 

 

 

 

 

구경열반과 무상정등각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전도된 몽상으로부터 멀리 떠난다) 하면 어떻게 될까요? ‘구경열반(究竟涅槃)’케 되는 것입니다. 여기 ()’궁극적으로라는 부사입니다. ‘()’도달한다는 동사입니다. 궁극적으로 열반에 도달케 된다는 것이지요. 열반이란 불이 꺼진 상태를 말합니다. 욕망의 불길, 전쟁의 불길이 다 꺼진 상태, 우리에게 통일이야말로 열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의 불길, 앞서 말한 4가지 공포에서 유래되는 욕심의 불길이 만드는 것입니다.

 

전쟁을 통해서라도 자기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무명(無明)의 인간들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히틀러 같은 사람은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반공을 열렬히 외치고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히틀러 같은 성격이 있습니다. 앞으로 이 나라를 걸머지고 갈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조잡하고 엉뚱하고 야비한 논리로부터 근원적으로 해탈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반야심경이 우리민족의 현실에 제시하는 지혜입니다. 의식의 혁명이 없이는 이 나라의 미래가 없습니다.

 

다음에 삼세제불(三世諸佛)]’라는 말이 나옵니다. 삼세란 과거ㆍ현재ㆍ미래인데, 지금 우리가 쓰는 이 시제용어 자체가 불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삼세제불은 시간과 더불어 영속하는 모든 각자(覺者)들을 말합니다. 보리살타를 주어로 시작하여 구경열반, 열반에 마침내 이르렀으니, 주어는 각자인 삼세제불로 바뀌지요. 삼세제불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단지 ‘anuttarā samyak-saṃbodhi’의 음역이니까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어요. ‘위가 없는 완전한 깨달음이라는 뜻이죠. 최상의 깨달음이라는 뜻이지요.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고 의역됩니다(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라고도 한다). 아가 무()이고, 뇩다라가 상()이고, 삼먁이 정()이고, 삼이 등(), 보리가 각()입니다. 더 이상이 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라는 뜻이지요.

 

일본의 사찰에서 외우는 반야심경에는 원리(遠離)와 전도(顚倒) 사이에 일체(一切)’라는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누구든지 심경을 262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체는 췌언(贅言)입니다. 고려제국 대장경본에도, 대정대장경본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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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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