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공안
나는 그 길로 짐을 쌌습니다. 그리고 스님생활을 청산했습니다. 나는 승복을 입고 옛 스님들이 쓰던 큰 삿갓을 눌러 쓰고 광덕사를 나섰습니다. 그리고 풍세천을 걸어나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저에게 다 공손하게 절을 하는 거예요. 꼬부랑 할머니들까지! 이때 나는 우리나라에 불심이 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선문명의 여파를 절실하게 느껴보았습니다. 풍세에서 천안까지 시외뻐스를 탔고, 천안에서 서울까지 그때 갓 개통이 된 한진고속뻐스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신촌, 어머니가 계신 집까지 승복을 입은 채 달려왔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평생을 기독교에 헌신한, 새벽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하는 독실한 기독교인, 아니 심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나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이 태산 같기도 했습니다. 신촌집 철대문 앞에서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철컥 문이 열렸습니다. 나는 들어섰습니다. 그곳에는 화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화단에서 손질을 하시던 엄마가 그 계단 위에서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불시에 나타난, 승려가 다 된 듯이 보이는 아들의 모습! 얼마나 놀라셨을까?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용옥아! 왔구나!” 그 말씀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눈에는 아들 용옥이만 보였지, 승복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그 순간 종교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의 대오(大悟)였지요. 제도화된 종교의 규범은 인간에게 덮어씌워진 겉껍데기라는 것! 껍데기는 가라! 나는 그 체험을 통하여 목사의 옷도 벗었고 승려의 옷도 벗었습니다. 그리고 무전제의 철학의 길만을 고집하며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2019년 봉은사 법왕루 '반야심경의 시각에서 본 우리민족의 미래전략' 강연회 모습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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