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여자 법사님의 푸대접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여자 법사님의 푸대접

건방진방랑자 2022. 3. 18. 05:26
728x90
반응형

여자 법사님의 푸대접

 

 

수자타 아카데미를 돌아볼 때에도 사실 나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여자 법사님께 점심공양은 하셨습니까 하고 오히려 내 쪽에서 슬쩍 떠봤는데, 그 법사님은 다음과 같이 냉랭하게 내뱉는 것이었다.

 

“11시 반이면 점심공양이 다 끝나요. 학생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기 때문에 인도식 수제비로 점심을 들지요. 그런데 선생이나 학생이나 모두 똑같이 먹습니다. 예외가 없지요. 지금은 공양시간이 지나 부엌에 사람이 없습니다.”

 

예외가 없다는 말의 여운이 좀 께름직 했다. 그러면서 마당에 널린 배추밭을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은 자랑을 늘어놓았다.

 

우리 아카데미에서는 배추를 길러 김치를 담궈 먹습니다. 요번에도 김치를 많이 담궜는데 내일 모레 개교기념행사를 치르려고 항아리를 봉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김치도 없구만요.”

 

그러면서 자기는 행사가 끝나면 곧 귀국할 것이라고 했다. 6년이나 봉사했기 때문에 이제 귀국해서 고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역땅에서 어렵게 지낸 법사님의 노고를 치하했고 후임을 걱정해주었다. 그랬더니 금방 법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는 것이었다.

 

여기는 사람들이 못 와서 안달입니다. 오고 싶은 사람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서 걱정할게 아무것도 없지요.”

 

아주 대단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못 와서 걱정인 듯, 엄청난 자부감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나는 잘 알겠다고 인사하곤 수자타 아카데미를 나왔다. 그리곤 그 앞에서 관광객 상대로 팔고 있는 찐 달걀을 배고픈 김에 꾸역꾸역 뱃속에 여러 개 집어넣었다. 그리고 거지들이 달라붙는 산길을 걸어 유영굴을 올라갔다. 그러면서 나는 수첩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道文之門下,

以法信之恩,

忘法輪之業.

도문의 문하에서

내 법신에게 입은 은혜로써

법륜의 업을 잊으리라!

 

 

나에게 선을 베푸는 자에게서보다 나에게 선을 베풀지 못하는 자로부터 더 많은 선을 배운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나는 전정각산 능선에 있는 스투파(stūpa)의 폐허들을 되돌아보았다. 시타림의 대지에서 뿜어대는 각박한 기운으로 전정각산의 쌍봉우리가 뿌옇게 가리웠다. 두어 시간을 헤매다가 내려왔을 때 자원봉사자라는 어린 학생이 날 계속 기다리고 있다가 법사님께서 짜이나 한잔 들고 가시라고 날 초대한다는 전갈을 전하는 것이었다. 나는 남군에게 응공은 응당한 자리가 아니면 대접받지 아니 한다고 이르라고 말했다. 남군은 차마 내 말을 그대로 옮기지 못하고, 공손하게 일정이 바빠 그냥 떠난다고 말씀드려 달라고 말했다. 나는 고삐의 차에 몸을 실었다. 때마침 보드가야를 가야한다는 티벹승려 두 명이 동승을 원해 같이 태워주었다.

 

조금 지났을 때였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멀지 않은 동네의 아주 작은 다리 하나를 지나려할 때였다. 갑자기 동네 어린이들이 떼지어 다리 위에 서서 우리 차를 막았다. 그리고 몽둥이를 든 괴한 같은 놈들이 분홍빛의 통행료 영수증을 내밀며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영수증은 모두 가짜다. 강탈인 것이다. 우리 차에는 티벹승려가 두 명이나 타고 있었고, 우리는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오는 사람들이었다. 모두 그 동네에 큰 혜택을 주고 있는 기관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나는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일보고 오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대접할 수 있냐 해도 막무가내였다. 나는 차를 확 밀어붙이자고 했다. 신중한 고삐는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돈은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는 갑자기 혜초스님 말씀이 생각났다. ‘물건을 아끼다가는 다치는 수가 있다[如若怯物, 卽有損也].’ 에헤라! 달라는 대로 주어라!

 

이러한 사건은 사소한 문제이지만 이 지역에 8년을 봉사해오신 법륜스님의 노고가 그 동네사람들의 윤리체계와 근원적으로 융합되기에는 본질적인 어떤 괴리감이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더욱 괴로운 문제는 그러한 괴리감이 근원적으로 해소되어야만 할 필연성이 있느냐는 어려운 문명사적 주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개화ㆍ근대화라는 이름 아래서 자행되어온 제국주의의 병폐를 너무도 뼈저리게 절감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륜스님은 학교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11개의 마을을 대상으로 10개의 마을유치원을 개설하였다. 그밖에도 16개 주변 마을 만여 명의 주민들에게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으며, 또 고학년 학생들을 위한 직업기술학교를 일궈나가고 계셨다. 나는 고우영 만화로 읽은 천국의 열쇠의 주인공, 치셤신부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A. J. 크로닌 원작, 고우영 글ㆍ그림, 천국의 열쇠, 서울 : 기쁜소식, 2000..

 

 

 정각산에 오르는 길에 즐비하게 앉아있는 거지가족들, 풀 한 포기 없는 그 척박한 느낌이 싯달타의 고행(苦行)의 리얼리티를 상기시켜 준다. 이 부근이 시타림.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