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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번역과 문명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번역과 문명

건방진방랑자 2022. 3. 18.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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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문명

 

 

2002111일 운명의 날이 밝았다. 다행스럽게도 걱정스러웠던 감기 몸살은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아침, 호텔에 있는 신문들을 들추어보니 어제 수자타 아카데미 살인사건이 사방에 크게 보도되고 있었다. 어젯밤, 수자타호텔을 들어섰을 때 나는 갑자기 부산말을 하는 보살님들 수십 명에게 둘러 싸였다. 나는 우리나라 여자들 중에서 매우 특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이북에서는 평양여자, 이남에서는 부산여자를 꼽는다. 평양여자들은 대체적으로 잘 생겼고 거침이 없으며 말을 잘한다. 그리고 사람을 제압하는 힘이 있다. 부산여자들도 거침이 없이 말을 잘하며, 옆에 있는 사람들을 공연히 들뜨게 만든다. 부산여자들은 신바람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개방적이며 애교가 만점이다. 평양여자들은 20세기 우리나라 기독교문화를, 부산여자들은 불교문화를 상징한다.

 

그들은 부산의 교사불자회인 청림회(靑林會)라는 단체의 순례객들이었다. 부처님의 8대 성지를 다 돌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날 둘러싸더니 KBS 도올의 논어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하여튼 부산여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왁짝찌글해지는 것이다. 나보고 계속 다시 강의를 하라했다. 나는 이제 강의는 할 만큼 했으니 내가 강의에서 얘기한 한두 마디라도 삶의 체험 속에서 음미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던 중, 이들이 무비스님과 같이 온 것을 알게 되었다.

 

 

 청림회 회원들과, 수자타 호텔 로비에서

 

 

난 도올서원에서 재생들의 요청으로 우연히 금강경을 강의하게 되었고, 그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펴내게 되었다. 집필과정에서 기존의 한글번역서 중에서 참고할 만한 마땅한 책을 찾게 되었다. 그때 만난 책이 무비스님의 금강경 강의라는 책이었다무비스님, 금강경 강의, 서울 : 불광출판부, 1995..

 

우리나라의 불전이나 국학자료를 포함한 고전의 번역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우선 자기가 번역하고 있는 텍스트 그 자체에 대한 치밀한 문헌학적인 연구가 선행되고 있질 않다는 것이다. 문헌학적 해제가 없는 번역은 일차적으로 번역의 자격이 없다. 둘째로 번역자는 반드시 번역의 소이연의 대상이 오늘 여기 살아있는 한국사람이라는 사실을 깊게 깨달아야 한다. 텍스트의 의미체계를 반드시 오늘 여기 살아있는 사람들이 모조리 알아들을 수 있는 의미체계로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환은 의미의 대응이 아니라, 의미의 반응체계의 상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로는, 번역은 철저히 오늘 우리 사이에서 통용되는 한국말로 전달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의 견식으로 볼 때, 번역자가 원문에 완벽하게 충실했다고 하는 그 원전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원전성(原典性)이란 원전의 의미맥락에 대한 다각적 고찰, 의미론적ㆍ통사론적ㆍ음운학적ㆍ역사학적ㆍ사회경제사적 제반 고찰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나오는 번역의 상당수가 일차적으로 판본에 대한 고찰이 없고, 원전의 개념의 나열에 파묻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되도 않는 자기 공상을 늘어놓거나 한다. 우리말로 정확히 이해될 수 있으면서도 원전의 오리지날한 의미맥락에 충실한 번역, 그러한 번역이 오늘날 우리에게 아쉬운 것이다. 학자의 스칼라십(Scholarship)의 이정표는 오로지 번역의 수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번역을 기피하거나 낮잡아보는 학자는 모두가 사기꾼이다. 천만개의 논문보다 단 한권의 원전번역이 그의 스칼라십을 판정할 수 있는 정확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번역이 없는 학자는 학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번역에서 그의 학문의 모든 수준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많은 학자들은 그러한 노출을 꺼리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즉 뽀로가 나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학자와 일본의 학자의 가장 큰 차이라 말할 수 있다. 일본의 학문은 번역의 학문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학문은 번역의 학문임을 통해서 세계정상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뉴델리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무굴제국의 제2대 황제 후마윤의 묘(Humayun's Tomb)이다. 무굴제국의 개조 바부르의 아들인 그는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아 무굴제국의 기초를 닦았고 후에 위대한 성군이 된 어린 아들 아크바르에게 바톤을 물려주었지만 그의 생애는 거친 풍광에 휩싸였다. 나라를 잃고 방황하다가 델리를 다시 탈환한 후 1년만에 실족사로 운명하였다. 이 묘는 그의 첫 부인 하지 베감(Haji Begam)의 감독하에 페르시아에서 초청한 건축가 미락 미르자 기야스(Mirak Mirza Ghiyas)가 설계한 것인데 향후 모든 무굴건축의 조형적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따즈 마할은 이 후마윤의 묘의 요소들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 묘는 완벽하게 대칭되는 4각의 건물이며 4방이 같은 형태의 정원(charbagh)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정원은 32개의 구역으로 나뉘는 수로로 분할되어 있다. 거대한 건물의 정중앙 돔 지붕 아래에 정팔각형의 홀이 있고 그 곳에 석관이 놓여있다. 시신은 머리가 북쪽으로 가게 남북으로 놓여있고 고개는 메카를 향하여 서쪽으로 돌려져 있다. 서쪽 벽은 메카를 상징하는 오목한 미흐랍(mihrab)의 양태로 되어 있다. 전구형의 중앙 돔이 여기서 처음 시도되었으며, 그 주변은 우산같이 생긴 차트리스(chhatris)로 둘러싸여 있다. 이 건물의 원형은 페르시아에서 온 것이지만 무굴의 건축은 어디까지나 힌두전통 속에서 피어난 인도인의 독창적인 양식이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번역론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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