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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마복음한글역주, 제36장 -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본문

고전/성경

도마복음한글역주, 제36장 -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건방진방랑자 2023. 3. 2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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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36

1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1Jesus said, “Do not be concerned from morning until evening and from evening until morning about what you will wear.”

 

 

이 로기온도 큐자료(Q51)와 병행된다. 그리고 옥시린쿠스사본에도 나타나고 있다.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12:22~23)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POxy 655)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음식에 관하여서는 무엇을 먹을까, 의복에 관하여서는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실을 보풀리어 길쌈는 수고를 하지도 않고도 저렇게 아름다운 백합보다도 더 고귀하니라. 너희가 옷이 없다한들, 과연 무엇을 너희 스스로 몸에 걸칠 수 있으리오? 누가 과연 너희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으리오? 저들을 기르시는 바로 그 분께서 너희에게 너희 옷을 주시리라.”

 

 

도마와 이 세 자료를 비교해보면, 도마는 옥시린쿠스사본과 가장 근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옥시린쿠스사본에 있는 음식에 관하여서는 무엇을 먹을까라는 구절이 빠져있으며, 또 그 뒤에 이어지는 백합이야기가 없다. 옥시린쿠스의 백합이야기를 보면 그것이 마태ㆍ누가에 나오는 백합-까마귀(공중의 새)’를 운운하는 연접 문장들과 연속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백합이야기가 연접되면 주제의 강조가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로 옮아가 버린다. 도마를 공관복음서보다 후대로 보는 사람들은 공관자료에서 이러한 것들을 다 생략해버리고 단순화 시킴으로써 도마공동체가 소기하는 어떤 목적을 명료하게 만들었다고 강변할 것이다. 도마 로기온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섭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도반들(followers)세속사에 대한 무관심에 있다. 옥시린쿠스 사본 중 음식에 관한 것이 도마에 결여되어 있는 것도 도마 제37의복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그 의미체계의 연속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 모든 자료에 선행하는 어떤 원자료의 원형을 도마가 보존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옥시린쿠스사본도 정확하게 도마복음의 직접 저본일 수는 없으며, 도마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로기온복음서의 다른 전승이라고 간주되는 것이다.

 

도마의 핵심주제는 예수 도반들, 수행자들, 즉 살아있는 예수의 말씀의 해석을 추구하는 자들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 독립된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다. 자유(freedom)는 반드시 무엇무엇으로부터의 자유로움(free from)이다. 상대적 조건을 갖는 것이다. 예수 도반들은 가족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며(Th.16, 54), 사회적ㆍ종교적 의무나 구속감, 그 위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며(Th.14), 어떠한 지역적 고착성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들이다(Th.42). 그러면서도 높은 산 위의 견고한 성채와도 같이 명명백백하게 사는 사람들이며(Th.32), 등경 위의 등불처럼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내면의 빛으로 비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Th.33).

 

여기 이란 추위를 막아주기 위한 생리적인 요구로서의 최소한의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말에도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이, 옷은 사회적 품계나 물질적 풍요의 정도의 상징이다. 특히 예수가 이 말을 했을 때에는 유대교전통에 있어서의 종교적인 신분을 상징하는 예복들을 지칭했을 수도 있다. 예수는 그의 도반들이 일체 이러한 종교적 전통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리고 의복에 관한 초탈의 언사는 예수의 말씀을 추구하는 자들이 사회적 앙가쥬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옷을 벗어버린 인간, 종교적ㆍ사회적 기대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바로 앞 장(Th.35)에서 사회에 대한 앙가쥬망의 방법론이나 기민한 전략에 관해 고민하는 인간과 매우 대조적이다. 그러나 도마복음서의 위대성은 바로 이렇게 대조적이고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로기온들을 엇갈려 편집함으로써, 그렇게 대척점에 있는 것들이 결코 모순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실존 속에서 통합되어야 하는 가치들이라는 것을 예시하는 데 있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사회적 관심과 사회적 무관심은 궁극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는 가치인 것이다. 이러한 가치의 양면성에 대한 예수의 통찰은 노자를 연상하게도 한다.

 

 

성경에 나오는 식물들이 영어번역 그리고 우리말번역 때문에 우리 의식속에서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태복음 6:28에 나오는, 솔로몬의 영광도 못미치는 들판의 백합화는 바로 팔레스타인 들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양귀비 비슷한 야생화인데 학명이 아네모네 코로 나리아(Anemone coronaria)’라고 하는 것이다. 희랍어 성경에는 크리논(κρινον)’으로 표기되어 있다. 1월부터 5월까지 피는데, 매우 얇고 아름다운 빨간색을 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끝낸 후 범 이스라엘 성소(會幕)를 짓고 지파들에게 땅을 분배해준 실로(Shiloh)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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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성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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