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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클리나멘 같은 인연 - 4. 앵두 그늘 아래에선 민들레 피고 본문

연재/만남에 깃든 이야기

클리나멘 같은 인연 - 4. 앵두 그늘 아래에선 민들레 피고

건방진방랑자 2019. 4. 3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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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한복판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났을 땐 약간 다른 것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크루즈 선원이나 다른 게 아닌, 한국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앵두나무 밑엔 민들레가 피어오른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는 것과 코이카에 지원하여 해외자원봉사를 2년 정도 하는 것, 여러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라. 대학원 3년에, 코이카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 5년이란 시간이 후딱 흐르게 된다. 함부로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이야말로 자기 좋아하는 것을 따라 잘도 다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 순간 왠지 모를 한파 때문인지, 인생의 서글픔 때문인지, 막막함 때문인지 비애감에 젖어 있던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하는 약간은 신선한 생각이 스칠 정도였다.

그 후로 나는 전주에 내려와 다시 터를 잡았고 몸에 적응되지도 않은 임용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적응하냐, 낙오하냐 그것이 문제로다같은 주먹구구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공부체질이란 게 따로 없겠지만, 막상 결과가 주어지는 공부를 하려니 좀이 쑤셨고, 7년 만에 한문을 보니 머리는 지끈지끈, 몸은 쑤셔쑤셔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우연하게 근황을 알게 됐고 지금은 청주에 자리를 잡고 대학원에서 할 공부를 미리 보고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매우 놀라운 소식도 들었다. 청주에서 민들레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조직을 하다 보니, 세 사람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시작하기로 했다는 거다. 오 마이갓~ 나 같은 사람은 맘을 먹어도 미적미적대는 데 반해 이 사람은 이미 맘보다도 행동이 훨씬 민첩하고 그냥 내지르는 컨셉이지 않은가.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탓에 뭔가 할 거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아주 칭찬해~’를 여러 번 날려줬다. 한시 중에 우거진 잎사귀에 꽃은 가려져 봄은 뒤에도 남아 있고(密葉翳花春後在)’라는 시가 있던데, 그 구절마냥 앵두나무 밑엔 민들레 가득 피어나네같은 느낌이더라.

 

 

오목대에 올라서 이야기를 했다. 근데 여기에 유방의 '대풍가'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야기란 만병통치약? 소통이란 설렘?

 

그러다 이번엔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친히 전주에 행차하셨다. 이런 경우가 평행선을 그리던 선이 마주친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이럴 때마다 자동적으로 논어벗이 있어 먼 곳에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않으랴?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이 구절에 대해 수많은 해석이 있지만, 그 중에도 =나의 가치를 알아주기에 천리도 마다하지 않고 오는 지음이라는 해석을 가장 좋아한다. 분명 천리든 만리든 물리적인 거리이고, 지금은 공자가 살았던 당시에 비해 교통편이 발달했다 해도 맘을 먹지 않으면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물리적인 거리조차, 가볍게 여겨질 수 있는 그 마음, 바로 그 마음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은 어색한 게 분명하다. 짐짓 쾌활한 척 연기도 하고, 때론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한껏 목소리 톤을 올려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몇 번 만났다고 조금은 편안하게 얘기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번 얘기를 통해 교육청에서 최저임금의 기간제 직원을 뽑는 상황에서도 세 명의 면접관이 마치 대기업 면접관처럼 매우 아주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정식 면접을 진행한다는 것과, 충북대는 거점 대학임에도 조교가 너무 공무원적인 마인드로 일처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기에 덧붙여 IPC세계장애인사격선수권 대회에 자원봉사로 참여했었고 그런 인연으로 체육회 사람들을 알게 되어 그분들과 영어스터디를 시작하게 됐다는 것과 청주에 독립서점이 문을 열어 그 분에게 인사를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것, 그리고 작은 상점 하나를 계약해서 그곳에서 무언가를 해볼 생각이라는 것까지 들었다.

 

 

저돌적이다 싶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간다. 선수권 대회에 자원봉사도, 코이카로의 도전도, 한국어교사로의 도전도.  

 

 

이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얘기였지만, 여기서 멈추질 않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건 바로 앵두님의 대학교 동기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앵두님은 경제학부를 나와 지금은 영어란 매개체로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는, 어쩌면 전공과 아무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 동기라는 분도 학과를 졸업해선 시민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인쇄소 사장이기도 하고, 지금은 일본 어딘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온통 뒤죽박죽이라, 그게 한 사람의 이야기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앵두님만큼이나 다채로운 삶을 사는 이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앵두님은 언젠가 그 사람을 만나 어떤 인생의 스토리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순간들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선택을 했고, 또 어떤 계기들이 있었는지 들어보려 한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나도 몰래 나도 나도!”를 외치게 됐을 정도다. 역시 그 친구에 그 친구인 건가~

이럴 때면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가 떠올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의 비의를 한 몸 가득 안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게 느껴진다. 누구 하나 가벼운 존재가 없다면, 그 존재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하나하나 배워가고 기록해 가고 싶다는 맘도 강렬해지고 말이다.

요즘 연암 박지원을 다시 읽고 있는데, 연암의 우울증 가득했던 20대의 순간들이 절대 남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이 그리도 답답했던 건지, 무에 그리 서글펐던 건지 그는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랬던 그를 살린 것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얘기들을 듣고 지은 기이한 사람들의 기이한 이야기였다. 그게 방경각외전의 여러 소설들로 남아 있는데, 난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걸 기록할 당시의 연암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이야기는 기이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네 이야기며, 나의 이야기라는 동질감이 들었을 것이고, 그걸 기록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무의미해질 대로 무의미해진 관점을 재정립할 수 있게 됐을 것이다. 때론 만 가지 보약보다, 값비싼 명약보다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의 폐부를 찌르고 나를 일거에 바꾸기도 하고, 없던 의욕을 활활 불태우기도 한다. 바로 지금의 순간처럼 말이다.

여담이지만, ‘앵두라는 별명이 왜 생겼는지도 알게 됐다. 그건 어려서 살던 동네에 앵두나무가 있어서 늘 먹던 것이란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댐(달방댐)이 생기면서 그 지역은 수몰되었고 앵두나무는 수몰되지 않고 있었지만, 베어버려졌다는 거다. 아마도 그런 아쉬움의 정조를 담고 있는 별명인 거 같더라.

삶에 정답이 없다면, 그런 좌충우돌, 이랬다저랬다하는 변덕 속에 희망이 있으리라 믿는다. 모처럼 임용이라는 세계에서 벗어나 가슴 뛰는 이야기, 그리고 도전 가득한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게 바로 한 권 사람책을 읽는 맛이다.

 

 

앵두나무 그늘엔 민들레 피고, 연암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준다. 그처럼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인용

목차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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