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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클리나멘 같은 인연 - 3. 건빵이란 선과 앵두란 선의 마주침 본문

연재/만남에 깃든 이야기

클리나멘 같은 인연 - 3. 건빵이란 선과 앵두란 선의 마주침

건방진방랑자 2019. 4. 3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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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반도엔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다음 주면 북미정상회담을 할 것이고, 그 다음 날엔 지방선거도 할 것이다. 어쩌면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역동적이며 모든 희망을 한 아름 품고 있는 가능성의 시기이기도 하다.

 

 

 

남과 북이란 선이 마주치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런 분위기가 되기까지 무수한 과정들을 지나왔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12월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남북의 대결모드는 계속 진행 중이었고, 머지않아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름하야 일촉즉발의 상황, 북한은 핵실험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로켓맨이란 비하발언과 함께 격앙된 반응을 여지없이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죽했으면 다른 나라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해도 선수단을 파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겠는가.

하지만 북한의 1월 신년사에서 북한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고, 그 논의는 아주 급속도로 진행되어 남북 단일팀 구성,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김여정(김일성 일가 남한 최초 방문) 방문과 문대통령 회담, 판문점에서의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일련의, 하지만 무엇 하나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들이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평행선으로만 달려가던 두 개의, 그래서 영영 만나지 않을 것 같던 선이 어느 한 선이 약간 편위를 그리며 휘기 시작하여 어느 순간에 마주쳤고 그게 마주친 후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며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됐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변화의 과정들, 그리고 뒤섞임,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클리나멘의 한 단면이라 할만하다.

 

 

변화는 그렇게 느린 듯 빠른 듯 다가오고 있다. 

 

 

 

굳어버린 신념이 아닌, 탱탱볼 같은 열린 귀가 필요하다

 

남과 북만큼이나 후배가 보내준 전공 관련 서적은 나에게 모처럼 클리나멘이란 무엇인지 충분히 느끼게 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면서 첫 번째 클리나멘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턴 두 번째 클리나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우선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단재학교에서 근무할 때로 돌아가 봐야 한다. 201110월에 단재학교에 수습교사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늘 내 꿈이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며 모르는 것도 알아가고 사람도 알아가는 삶이었다. 다행히도 그 당시 대표교사님도 그런 생각에 동의했기에 나에게 수요일마다 오전에 공부모임이 있는데,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좋아요. 그곳에 가서 공부하도록 하세요.”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었던 것이다. 그래서 참여하게 된 모임이 민들레 읽기 모임이다.

민들레는 격월간 잡지로 학력 경쟁, 성적지상주의, 교과 학습 위주로 휘몰아가는 기존의 교육을 반성하며 여러 다양한 교육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 교육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잡지였다. 이미 그곳에는 여러 해전부터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공부모임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었고, 서울에선 매주 수요일 오전에 함께 모여 과월호 하나씩을 선정해 읽고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내공이 쎈~ 분들과 어우러져 굳어버릴 대로 굳어버린 내 생각을 유들유들하게 펴나가는 과정이었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임용을 공부하면서, 좋은 교사상을 꿈꾸다보니, 생각은 더욱 고정되어 갔고 더욱 자임하는 마음은 커져만 갔다. ‘~~한 교사가 되어야 해라는 생각은 분명히 확고한 자신에 대한 신념이긴 했지만, 그런 생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좋은 교사상나쁜 교사상이 있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한계 지었으니 말이다.

바로 그런 시기에 단재학교의 교사가 되었고, 그리고 이런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니 행운 중 행운이라 할만하다. 내공 쎈 누님들과 한바탕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구축한 교사상이나 교육상이란 게 얼마나 위태로운 절벽 위에 홀로 세워진, 모래 위에 아스라이 세워진 성채인 지를 여지없이 까발렸다. 즉 그 순간 느꼈던 건 확고한 신념이나,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자임하는 마음이 아닌,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배워가며 언제든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단재학교에서 여러 유형의 아이들을 만나는 데에 매우 많은 도움이 됐다.

 

 

운 좋게도 공부도 하고 일도 할 수 있는 곳에 들어왔다. 그래서 처음으로 들어온 곳이 민들레다.  

 

 

 

궁금하던 앵두님을 알게 되다

 

그 모임은 고작 6개월 정도를 나갔고 2012년부턴 나가지 못했다. 학교도 여러 과정들이 정해지면서 나도 영화팀 교사로 새로운 커리큘럼을 만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멀어졌던 게 아쉬워지던 2015년에 불현듯 모임에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요일에 하는 건 정기모임이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엔 12일로 모여 단행본 하나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는 단행본 읽기모임이 열리는데,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이 모임에서 앵두님을 처음으로 만났다. 앵두님이라고 하면 그저 흘러 다니는 여러 얘기를 통해 들어봤을 정도로 민들레 모임에선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민들레에 처음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디 외국에 나가있다는 얘기들 말이다. 그런 얘길 들으면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늘 궁금하긴 했는데, 드디어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보게 됐던 거다. 앵두님에겐 어땠을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겐 익숙했던 그래서 한 번은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난 것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 후에도 단행본 읽기 모임에서 한 번 더 마주쳤고, 크루즈를 선원이 되어 몇 달씩 해외에 다니는 걸 보며 페북에 댓글을 남기는 수준으로 알고 지냈다. 그렇게 두 번의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작년 어느 때엔가 드디어 한국에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도 아예 알지도 못할 땐 그냥 궁금하기만 했지만, 그래도 단행본 모임을 통해 알고 난 후이니 편하게 느껴지더라. 그래서 언제 시간 날 때 서울 좀 오세요. 크루즈 선원이란 게 어떤 건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 어떤지도 궁금해요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그래서 올해 1월에 종로 한복판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나게 됐고 여러 희망 가득 찬 이야기(or 불안 가득 안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6년 간 다니던 단재학교를 그만두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있던 때라 서로 더 긴밀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상황은 달라도 앞날이 불투명하고 지금의 현실에서 헤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서운 한파가 밀려온 1월에 종로 한복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용

목차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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