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험을 보며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다
드디어 2월 3일이 왔다. 잘 때만 해도 잠이 안 올 거 같은 느낌이었다. 적당한 긴장감과 새로운 것을 한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뒤척이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고 5시 30분에 일어나 데스티니 차일드도 돌리고 밥도 챙겨 먹으며 시험 날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험은 날 설레게 만든다
기온은 또 다시 영하로 떨어져 한파가 밀려온 날이다. 올겨울은 유난히 한파가 자주 찾아오고 있다. 저번에 생일잔치 때문에 전주에 갔을 때도 일주일 내내 한파가 찾아와서 서울에 돌아왔을 땐 동파로 인해 수도가 나오지 않는 지경이기까지 했는데, 날이 풀린 지 채 일주일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추위가 찾아온 거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갈까 하다가 맘을 접고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가볍게 가기로 했다. 시험장 입실 시간은 8:30~10:00까지 허용이 된다고 하니, 나는 집에서 8시 30분쯤에 나갈 생각이었다. 천호역에서 거여역까진 14분 정도의 거리였고, 거기서 학교까지는 10분 정도의 거리였으니 생각 이상으로 가까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처음 생각은 천호까지 걸어가서 탈 생각이었는데, 조금 걷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강동구청역으로 갔다. 아침부터 움직이는 사람들이 꽤 있고 다들 무슨 시험을 보는지 문제지 같은 것을 보는 친구들도 있더라. 예전에 임용을 준비할 땐 모든 사람이 임용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지금은 한국사를 보려 하니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한국사시험을 보는 사람처럼 보인다. 역시나 모든 건 나의 시선으로 나의 입장으로 보게 되어 있다.
학교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으니 9시 20분이 되었다. 먼 거리가 아님에도 오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던 것.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은평구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다면 정말 부산히 움직여야 했을 거고, 그만큼 긴장감은 더욱 크게 느꼈을 거다. 정말 여러모로 이번 시험은 천운(天運) 중의 천운이라 할 수 있겠다.
시험 시작 전 고사장에서 느껴보는 두근거림
한 교실에 20명 정도만 배치되었다. 꽤나 널널하게 앉아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명색이 ‘국사편찬위원회’라는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시험이고 웬만한 시험에 응시하려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자격증을 주는 시험이니 이런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는 건 한 번 따면 무한대로 인정해주는 게 아닌, 5년 동안만 공인해준다는 거다. 그동안 역사가 확연하게 바뀌는 게 아닌데도, 5년 만 인정해준다는 건 뭔가? 그건 누가 뭐라 해도 상술일 수밖에 없다. 돈을 벌기 위해 억지춘양으로 끼워 맞춘 것 말이다.
그래도 막상 자리에 앉아 있으니 모처럼 만에 활기가 느껴졌다. 그간 단재학교에서 생활하면서는 너무도 편하고 너무도 익숙해서 그저 시간을 죽여 가며 돈만 번다는 자괴감이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은 무언가를 한다는 자부심이 강하게 드니 말이다. 역시 때로는 시험을 통해 적당한 긴장감을 느끼는 것도, 그리고 그런 설렘을 느끼는 것도 삶을 위해서는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임용과는 달리 가방을 앞으로 내지도, 핸드폰을 반납하지도 않더라. 그저 핸드폰이 시험 시간에 울리면 무효처리가 되니 꺼놓던지, 무음모드로 해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10시 20분 시험 시작 전까지는 편안하게 자신이 가져온 자료를 볼 수 있었고, 그 후엔 자연스럽게 넣고 시험을 보기만 하면 됐다.
지금까지 문제를 풀어본 경우로 예를 들면 문제는 대략 30분 만에 다 풀게 되더라. 물론 지금은 OMR 카드로 옮기기까지 해야 하니, 좀 더 시간이 걸릴 테지만 80분의 시험 시간이 엄청 길기는 했다. 그런데 마지막 15분 정도를 남겨둔 시간엔 다 푼 사람의 경우 그냥 나가도 된다고 하더라. 그러니 실질적인 시험시간은 65분 정도라는 거다.
정답 맞추기 식 시험의 한계와, 그럼에도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시험의 장점
시험지를 펴고 확실하다 싶은 건 바로 바로 OMR카드에 체크를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해보니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지나 않을까 바짝 긴장하게 되더라. 대부분의 문제는 바로 바로 감이 왔는데 3문제 정도는 헛갈려서 다 푼 후에 다시 보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마지막까지 다 풀고 나니 35분 정도가 걸려 55분 밖에 되지 않았더라.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살펴보며 잘 마킹이 되었는지,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없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44번의 답을 고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아직 65분이 되기까진 1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던 터라 고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고작 한 문제 때문에 다시 고치다가 괜히 실수를 하여 다른 문제까지도 여파가 있을까봐 망설여졌다. 마치 소탐대실(小貪大失)과 같은 느낌도 들었고, 44번의 고치려는 답이 맞다는 보장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맘이 든 이상 고치지 않고 후회하느니, 고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다란 생각이 들었고 그에 따라 답안지를 달라고 손을 들어 표시를 했다. 답지를 받자마자 맹렬히 다시 체크하기 시작했고, 어쨌든 65분 안에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정답 맞추기식 시험을 좋아하진 않는다. 너무 편법으로 치우치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이 없이 정답만을 보고 암기하고 요령을 익히며 합격 점수만 어떻게든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역시나 이번에 내가 공부한 방식이 그저 합격만을 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차치하고서 생각해보면 시험이란 것 자체는 나름의 묘미는 있는 게 분명하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적당한 긴장감을 주어 살아간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니 말이다. 정말 모처럼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에 행복을 느꼈다. 이제 다시 임용체제에 몸을 맡겨야 하는데, 지금처럼 적당한 긴장감을 느끼며 슬기롭게 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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