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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클리나멘 같은 인연 - 1. 선과 선은 마주쳐야 한다 본문

연재/만남에 깃든 이야기

클리나멘 같은 인연 - 1. 선과 선은 마주쳐야 한다

건방진방랑자 2019. 4. 3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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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쌍의 오래된 노래 중에 우리 지금 만나당장 만나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가 나왔을 때 처절한 내용임에 비해 흥겨워 엄청 자주 들었고, 오죽했으면 2010년에 마지막 임용을 준비하면서 만든 자료집의 이름에 이 노래 제목으로 쓸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노래에 푹 빠져 있던 때에 난 사람은 선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선은 어떤 것도 아니다. 그저 점과 점을 연결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어떤 지향점도, 어떤 사건도, 어떤 변화도 있지 않다. 하지만 선과 선이 마주치면 접점이 생기고, 거기에 또 다른 선까지 마주치면 삼각형이 되어 완전히 형질이 변화하게 된다. 그걸 도약이라 할 수 있고, 나라는 인간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계기로 들어서는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의 인연은 단순한 수학 공식과 같이 ‘1+1=2’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존재와 마주쳤냐에 따라 ‘1+1=인 경우도 있지만, ‘1+1=-x’가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 노래 정말 좋다. 흥겹고도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수작이라 많이 들었다. 

 

 

 

어긋남은 축복이다

 

일찍이 에피쿠로소는 이런 이야기를 클리나멘을 통해 한 적이 있다. 그는 지구라는 어마무시한 생명체의 활동공간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 수직으로만 떨어지던 한 원자가 약간 사선으로 엇나가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라 보았다. 사선으로 엇나가던 원자는 바로 옆에서 직선으로 떨어지던 원자와 마주쳐 커지고 다시 그 옆의 원자와 연쇄적으로 마주치고 마주쳐서 하나의 큰 덩어리, 즉 지구가 탄생했다고 본 것이다. 작디작은 원자 하나가 기존 법칙을 위배하고 약간 엇나갔을 뿐인데, 그게 지구 탄생의 결정적 계기였으며, 우연이 얼마나 거대한 힘을 내장하고 있는 지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건 좀 더 쉽게 말하면, 리쌍이 말한 당장 만나가 빗어낸 참극이자 희열이다. 그때 내가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것들이 생성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사람이 선인 이상, 선과 선은 마주쳐야 하고, 마주쳐서 면으로, 그리고 또 다른 선과 마주쳐 다각형으로, 그러다 결국엔 원으로 형질을 끊임없이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란 존재는 나를 헝클어버릴 수 있는 저주가 아니라, 예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나로 만들어가고 그렇게 이끌어줄 수 있는 축복이란 사실이다. 그러니 엇나가고 마주치고, 계획을 수시로 무너뜨려 우연의 세계를 한 없이 가볍게 내딛으면 되는 것이다.

재밌게도 5월이 거의 끝나가는 30일에 전혀 다른 두 개의 선과 마주쳤다. 지금부턴 그 두 개의 선이 나와 어떻게 마주쳤고 그게 어떤 변화들을 낳았는지 그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다.

 

 

교수님 연구실에 방문하여 필요한 자료를 받아왔다. 5월은 나에게 뭉클한 한 달이었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 있다

 

막상 다시 한문공부를 하겠다고 호기롭게 맘을 먹고 6년 정도 살았던 서울이란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고향 전주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한문공부란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더라. 더욱이 6년 정도 공부를 아예 놨던 터라 한문은 수학의 기호만큼이나 외계어로 보였고, 임고반의 자리는 면벽수행을 하는 공간만큼이나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가서 힘들 줄은 알았지만 막상 해보니 상상 이상이던데요. 제가 만용이었던 걸까요?”라고 물으면, 임용을 다년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누구는 뭐 공부가 잘 되어서 하나요. 해야 하니까 하죠. 그러니 꾹 참고 해보세요.”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다시 하겠다는 선택도 내가 했고, 결국 적응하는 문제도 나에게 달려 있으니, 이 과정을 넘어가는 것도 내가 해야 하고, 이 과정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도 내가 해야만 한다.

하지만 누군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 있다라고 했듯이 내가 실패했던 바로 이 자리, 뼈저린 아픔을 간직한 이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 있다. 그리고 우연처럼 그 기회는 정말 찾아왔다. 때마침 새로 오신 교수님이 산문과 한시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었고 우연하게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참석하게 됐다. 오랜만에 수업을 듣게 됐고,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번에 발표까지 준비하게 되니 오래도록 잊고 있던 한문의 세계를 유영하는 재미, 깊이 연구할 때 찾아오는 흥분, 사람들과 열띠게 토론할 수 있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 그래 바로 이게 한문 공부를 하는 맛이고, 모르는 걸 알게 될 때에 가슴 시려오는 맛이었다.

 

 

모처럼 발표준비를 했다. 그 과정을 통해 한문 공부를 하는 재미를 다시금 느끼게 됐다. 위의 사진은 첫 발표 자료다.  

 

 

 

인용

목차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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