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처럼 시험을 보려 하니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적어도 한 달 전만 해도 내가 ‘한국사능력시험’을 볼 거란 건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땐 당연히 이 생활이 반복될 줄만 알았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학교에 가서 별다른 일 없이 시간이 보낸 후 집에 와서 한숨 자고 저녁엔 밥을 먹고 편안하게 지내다 잠을 잔다.
너무나 편해져 시간을 낭비하게 된 단재학교의 시간들
단재학교를 떠나기로 정하고 맘이 싱숭생숭하긴 했지만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단재학교는 나에게 새로운 걸 꿈꾸고 맘껏 실행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너무나 편해진 나머지 더 이상 그런 걸 할 필요도, 고군분투할 필요도 없는 공간으로 남았고, 나는 그에 따라 그저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이상을 꿈꿀 필요도, 뭔가를 해야겠다고 바득바득 외칠 필요도 없었던 거다. 그에 따라 시간은 흘러가지만 단지 그뿐, 어떤 가슴에 응어리진 일을 해나갈 게 없었다는 걸 인정한다.
내 삶을 이렇게 낭비하듯,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듯 보내긴 싫으니 말이다. 잘 가꿔가고 싶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맘껏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쨌든 그러지 못한 채 시간만을 보내 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좀 더 진지하게 ‘내 삶은 뭘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임용에 도전해보자라는 것과 그럴 때 내 삶을 얼마나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지 보자라는 것까지 생각하게 되더라.

고사장 매진사태에 따른 우여곡절
그 첫 번째 도전이 바로 한국사능력시험이다. 2012(?)년부터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은 한국사를 준비하게 됐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복수전공이나 지역 가산점, 워드 자격증, 컴활능력 자격증이 있던 때였는데 지금은 달라진 거다. 그런 건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이 되었고 그에 따라 한국사능력시험 3급 이상이 있어야만 임용고시를 볼 수 있게 바뀌었다.
이런 걸 보면서도 그 시대의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어떤 걸 중시하느냐에 따라 시험의 양상은 달라지고, 그게 기본 소양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중앙정부에서 제시하면 우린 그게 옳다 그르다를 따지지 않고 따르게 되어 있고 그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좀 더 중앙정부가 생각 있는 이들이 들어서길, 그래서 그에 따라 우리가 흘러갈 수 있길 바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7년 만에 임용을 보러 맘먹으면서 한국사 능력시험은 당연히 갖춰야 차후를 논할 수 있는 것이기에 봐야만 했다. 단재학교를 그만뒀을 때가 운좋게도 한국사능력시험 1차 모집을 하고 있던 때였다. 그때만 해도 임용공부를 할 생각이 없던 때라 전혀 눈 여겨 보지 않던 때였다. 그런데 준규샘을 만나고 온 이후 맘을 정했고 그에 따라 그 주말에 신청을 하려고 하니, 이미 모든 고사장이 꽉 차서 신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는지 서울뿐 아니라 각 지역별로 사람들이 넘치고도 넘쳐서 도무지 시험을 볼 수 없더라. 그래서 전북은 물론 제주까지 알아보는 데도 신청할 수 있는 자리조차 없었다.

그렇게 물 건너갔나 싶어 연휴가 끝나고 월요일에 시험을 주관하는 곳에 연락을 해봤더니 백방으로 고사장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러면서도 먼저 문자를 보내주거나 할 순 없으니 수시로 들어와서 고사장이 늘었는지 확인해달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끝났다.
그 전화를 받고 오후 시간을 보내다가 낮잠을 잤다. 낮잠이 깬 시간은 3시가 약간 넘었을 땐데, 지금이라도 고사장이 확보됐을까 하고 봤더니, 여러 곳이 확보되어 빠른 신청을 해달라는 공지가 올라와 있더라. 서울은 은평구에 있는 학교 한 곳이 추가로 배치됐다. 그에 따라 부랴부랴 신청을 하고 좀 더 살펴보니, 송파구 쪽에 있는 학교에도 결원이 발생한 거였다. 그래서 은평구 학교를 송파구 학교로 바꿔서 가까스로 신청을 마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천운이라 할 수 있다. 그때 당시엔 어디든 가서 시험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시험 날이 다가오자 은평구였으면 아침부터 엄청난 고생을 할 뻔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강동에서 은평까진 1시간 30분 정도를 각오하고 가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송파면 자전거를 타고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니 에너지도 덜 쓰게 되고 그만큼 맘껏 기량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닥쳐서야 문제지를 사고 공부하다
이번엔 정말 ‘시험 체제에 맞게 합격선만 넘자’란 마음으로 준비했다. 오죽했으면 시험을 보는 주인 화요일(1월 30일)에서야 책을 사러 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건 그만큼 이번 시험을 얕잡아 보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고, 그만큼 아직도 뭔가에 절실해서 미리부터 준비하는 건 아니란 사실이다. 그러니 화요일에 잠실에 있는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살 때 눈 오는 날임에도 혼자 촉박해져서 지하철을 타고 부랴부랴 갔던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샀으면 좀 더 싸게 살 수 있음에도 닥쳐서야 준비를 하니 이 모양이다. 더욱이 잠실엔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당시엔 그런 생각마저 못했으니 참으로 주먹구구로 살아온 이의 비애라 할 만하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미리 준비하고 미리 계획대로 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물론 그 절실함은 덜 할지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절실함의 측면에서 돈의 손해나 어떤 상황들에 체계적으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따를 진 몰라도, 더 이해하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오히려 가장 빠르며 가장 적절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걸 남이 판단해줄 게 아니라(그게 부모든, 나를 더 잘 안다고 하는 사람이든), 자신이 느낀 그 시점이야말로 최고의 시간이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책값이나 지하철 값에서 만 원 정도의 손해를 봤지만 어쩌면 그때야말로 나에겐 적기였을 터다.
그렇게 사온 책으로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일 동안 좀 더 적극적으로 공부를 했다. 오답을 체크하고 어느 정도 일정 수준이 나올 때까지 매달렸으니 말이다. 적어도 화요일에만 해도 낯선 단어나, 무얼 말하는지 몰라 헤매서 ‘이러다 호기롭게 떨어지겠구나’ 했던 게 그렇게 문제 위주로 막고 품으면서 살아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역시 시험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단순하다. 거기엔 문제가 요구하는 걸 알아채 골라내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물론 이 말만큼 시험이란 현실은 단순하진 않지만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되는 문제들은 기출문제를 잘 풀어보는 것만으로도 감이 잡힌다. 그걸 맞춰가는 시간이 3일 동안 지속되었고 그러면서 뭔가 시험에 대한 감이 잡히는 듯도 했다.

2. 시험을 보며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다
드디어 2월 3일이 왔다. 잘 때만 해도 잠이 안 올 거 같은 느낌이었다. 적당한 긴장감과 새로운 것을 한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뒤척이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고 5시 30분에 일어나 데스티니 차일드도 돌리고 밥도 챙겨 먹으며 시험 날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험은 날 설레게 만든다
기온은 또 다시 영하로 떨어져 한파가 밀려온 날이다. 올겨울은 유난히 한파가 자주 찾아오고 있다. 저번에 생일잔치 때문에 전주에 갔을 때도 일주일 내내 한파가 찾아와서 서울에 돌아왔을 땐 동파로 인해 수도가 나오지 않는 지경이기까지 했는데, 날이 풀린 지 채 일주일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추위가 찾아온 거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갈까 하다가 맘을 접고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가볍게 가기로 했다. 시험장 입실 시간은 8:30~10:00까지 허용이 된다고 하니, 나는 집에서 8시 30분쯤에 나갈 생각이었다. 천호역에서 거여역까진 14분 정도의 거리였고, 거기서 학교까지는 10분 정도의 거리였으니 생각 이상으로 가까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처음 생각은 천호까지 걸어가서 탈 생각이었는데, 조금 걷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강동구청역으로 갔다. 아침부터 움직이는 사람들이 꽤 있고 다들 무슨 시험을 보는지 문제지 같은 것을 보는 친구들도 있더라. 예전에 임용을 준비할 땐 모든 사람이 임용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지금은 한국사를 보려 하니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한국사시험을 보는 사람처럼 보인다. 역시나 모든 건 나의 시선으로 나의 입장으로 보게 되어 있다.
학교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으니 9시 20분이 되었다. 먼 거리가 아님에도 오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던 것.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은평구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다면 정말 부산히 움직여야 했을 거고, 그만큼 긴장감은 더욱 크게 느꼈을 거다. 정말 여러모로 이번 시험은 천운(天運) 중의 천운이라 할 수 있겠다.

시험 시작 전 고사장에서 느껴보는 두근거림
한 교실에 20명 정도만 배치되었다. 꽤나 널널하게 앉아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명색이 ‘국사편찬위원회’라는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시험이고 웬만한 시험에 응시하려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자격증을 주는 시험이니 이런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는 건 한 번 따면 무한대로 인정해주는 게 아닌, 5년 동안만 공인해준다는 거다. 그동안 역사가 확연하게 바뀌는 게 아닌데도, 5년 만 인정해준다는 건 뭔가? 그건 누가 뭐라 해도 상술일 수밖에 없다. 돈을 벌기 위해 억지춘양으로 끼워 맞춘 것 말이다.
그래도 막상 자리에 앉아 있으니 모처럼 만에 활기가 느껴졌다. 그간 단재학교에서 생활하면서는 너무도 편하고 너무도 익숙해서 그저 시간을 죽여 가며 돈만 번다는 자괴감이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은 무언가를 한다는 자부심이 강하게 드니 말이다. 역시 때로는 시험을 통해 적당한 긴장감을 느끼는 것도, 그리고 그런 설렘을 느끼는 것도 삶을 위해서는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임용과는 달리 가방을 앞으로 내지도, 핸드폰을 반납하지도 않더라. 그저 핸드폰이 시험 시간에 울리면 무효처리가 되니 꺼놓던지, 무음모드로 해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10시 20분 시험 시작 전까지는 편안하게 자신이 가져온 자료를 볼 수 있었고, 그 후엔 자연스럽게 넣고 시험을 보기만 하면 됐다.
지금까지 문제를 풀어본 경우로 예를 들면 문제는 대략 30분 만에 다 풀게 되더라. 물론 지금은 OMR 카드로 옮기기까지 해야 하니, 좀 더 시간이 걸릴 테지만 80분의 시험 시간이 엄청 길기는 했다. 그런데 마지막 15분 정도를 남겨둔 시간엔 다 푼 사람의 경우 그냥 나가도 된다고 하더라. 그러니 실질적인 시험시간은 65분 정도라는 거다.

정답 맞추기 식 시험의 한계와, 그럼에도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시험의 장점
시험지를 펴고 확실하다 싶은 건 바로 바로 OMR카드에 체크를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해보니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지나 않을까 바짝 긴장하게 되더라. 대부분의 문제는 바로 바로 감이 왔는데 3문제 정도는 헛갈려서 다 푼 후에 다시 보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마지막까지 다 풀고 나니 35분 정도가 걸려 55분 밖에 되지 않았더라.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살펴보며 잘 마킹이 되었는지,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없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44번의 답을 고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아직 65분이 되기까진 1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던 터라 고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고작 한 문제 때문에 다시 고치다가 괜히 실수를 하여 다른 문제까지도 여파가 있을까봐 망설여졌다. 마치 소탐대실(小貪大失)과 같은 느낌도 들었고, 44번의 고치려는 답이 맞다는 보장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맘이 든 이상 고치지 않고 후회하느니, 고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다란 생각이 들었고 그에 따라 답안지를 달라고 손을 들어 표시를 했다. 답지를 받자마자 맹렬히 다시 체크하기 시작했고, 어쨌든 65분 안에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정답 맞추기식 시험을 좋아하진 않는다. 너무 편법으로 치우치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이 없이 정답만을 보고 암기하고 요령을 익히며 합격 점수만 어떻게든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역시나 이번에 내가 공부한 방식이 그저 합격만을 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차치하고서 생각해보면 시험이란 것 자체는 나름의 묘미는 있는 게 분명하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적당한 긴장감을 주어 살아간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니 말이다. 정말 모처럼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에 행복을 느꼈다. 이제 다시 임용체제에 몸을 맡겨야 하는데, 지금처럼 적당한 긴장감을 느끼며 슬기롭게 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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