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편
행군(行軍)
행군이라고 하면 군의 행진을 연상한다. 이 편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다양한 지형 상황에서 용병하는 법이다. 아마 ‘앞에서 나온 내용인데…’하는 생각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7편부터 손자는 같은 원리를 다양한 상황에 대입해서 적용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내용이 중복되는 감도 있지만, 응용문제를 푼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주하면 될 듯하다.
1. 아군 배치와 적군 상대하는 법
무릇 아군을 배치하고 적군을 상대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산을 넘어 골짜기에 의지해서 주둔할 경우 시야가 트인 높은 곳에 주둔한다. 적이 높은 곳에 있으면 아군은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산악지대에서 용병하는 법이다.
孫子曰: 凡處軍·相敵, 絶山依谷, 視生處高, 戰隆無登, 此處山之軍也.
강을 건널 땐 반드시 물가에서 멀리 떨어져서 진을 쳐야 한다. 적군이 강을 건너 공격해 오거든 물에 들어가 있을 때 공격하지 말고, 적을 반쯤 건너오게 한 뒤에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 적군과 맞붙어 싸우고자 할 때는 물가에 붙어서 적과 상대하지 말고, 높은 곳에 자리 잡는다. 물줄기를 거슬러 싸워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하천에서 용병하는 방법이다.
絶水必遠水; 客絶水而來, 勿迎之於水內, 令半濟而擊之利; 欲戰者, 無附於水而迎客; 視生處高, 無迎水流, 此處水上之軍也.
저습지대를 통과할 때는 힘을 다해 행군하고,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전투를 해야 한다면 반드시 수초에 의지하고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곳을 등지고 싸워야 한다. 이것이 저습지대에서 용병하는 방법이다.
絶斥澤, 惟亟去無留; 若交軍於斥澤之中, 必依水草, 而背衆樹, 此處斥澤之軍也.
평지에 주둔할 때는 평탄한 곳을 택하고, 오른편 배후가 높아야 하며 앞은 낮고 뒤는 높은 곳이라야 한다. 이것이 평지에서 용병하는 방법이다.
平陸處易, 而右背高, 前死後生, 此處平陸之軍也.
이 네 가지 이 점을 활용하는 것이 옛날에 황제(黃帝)【중국고대의 전설적인 제왕인 삼황오제 중의 한 명. 본명은 헌원이다. 사마천(司馬遷, BC145?~BC86?)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그가 신농씨를 물리치고 황제가 되었다고 한다.】가 사방의 군주들에게 승리했던 방법이다.
凡此四軍之利, 黃帝之所以勝四帝也.
손자가 ‘행군’ 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군의 위치를 잡는 것으로, 군대가 주둔하거나 행군할 지역에 맞게 군을 배치하는 방법이다. 즉 산지·하천·높지·평지라는 네 가지 경우를 상정하고 각각의 지형에 맞는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손자가 예시한 사례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아군의 시야는 넓히고 적군의 시야는 좁히라는 것이다. 시계 확보는 적을 관측하기 쉽게 하고 습격을 대비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계(射界)를 확보하는 데도 중요하다. 활은 명중률이 떨어지지만, 엄호물이 없으며 움직임이 느리고 적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집중 사격을 가하면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
늪지대에서 숲을 배후에 두고 수초 지역에 위치하라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늪지의 경우 적이 호수나 물을 건너 공격하게 하라는 의미다. 늪지의 지형은 대체로 수풀이 우거진 지역과 호수 지역으로 나뉜다. 상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적군은 사방이 트인 물속에 있고, 아군은 숲과 수풀에 배치하면 수목은 엄폐물이 되어준다.
하천을 건너는 적을 발견했을 때 성급한 지휘관은 적이 물속에 있어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고, 동작도 느려지니 이때가 공격의 호기라고 판단하기 쉽다. 물가로 궁병을 보내 물속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적을 공격하면 아군이 백병전을 벌이지 않아도 되니 여러모로 장점이 많아 보인다.
손자는 이 방법보다는 적이 절반쯤 물을 건너 일부가 육지에 올라왔을 때 공격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적의 병력이 절반으로 분리되고 물을 건너온 적은 배수진의 상황이 되어서 이동하거나 후퇴하기도 쉽지 않다. 백병전을 벌이는 부담이 있지만, 물속에 있는 적을 활로 공격하는 것보다 적에게 훨씬 더 강력하고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전쟁사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가 바로 도하(渡河) 작전의 원리를 이용한 승리였다. 고구려군이 수나라의 30만 대군을 전멸시킨 살수대첩은 댐을 쌓아 살수를 막았다가 터트려서 수공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고구려군은 수나라군의 도하를 지켜보다가 그들이 차례로 건너던 중에 후위를 맡았던 제9군만이 강가에 남아 고립되자 공격해서 섬멸한다.
절반은 건너가고 절반이 남았을 때 공격하라는 『손자병법』의 내용과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수나라 군대는 워낙 대군이었다. 이미 손실이 커서 후위의 9군이 병력의 절반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9군이 순식간에 전멸하자 이미 건너갔던 수나라 병사들이 공황을 일으켰고, 대열을 무시하며 마구 달아나기 시작했다. 고구려군은 이들을 추격해 공격하거나 포로로 잡았다. 살아서 도망친 수나라군은 겨우 2,000명 정도였다.
도하하는 적을 대하는 손자의 사고방식
손자는 도하를 시도하는 적이 물속에 있을 때 공격하지 말고 절반쯤 도 하한 뒤에 공격하라고 했다. 이들을 공격할 때도 물가에 붙어서 싸우지 말고 주변의 고지대를 이용하라고 충고한다.
이 말에 반대하는 지휘관도 있을 것이다. 도하 작전이나 상륙 작전의 성패는 교두보의 확보에 달려 있다. 교두보를 허용하지 않고, 적의 후속 부대가 계속 건너오지 못하게 하려면 아군을 물가에 붙여서 교두보를 설치할 여지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물가에 붙어서 싸우면 결국 전투는 아군 맨 앞 열과 적군 맨 앞 열의 싸움이 된다.
한마디로 손자는 지형을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물가 주변에는 비탈이나 고지대가 있게 마련이다. 손자는 그 지형을 이용하라고 말한다. 교두보의 확보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교두보에만 집착해서 스스로 전술을 제한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전략과 전술을 구상할 때 ‘교두보’와 같이 형식적인 것들에 집착해서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병 전성시대에는 적진을 향해 돌격을 감행할 수 있는 ‘강인한 심장’ 또는 공포를 잊을 정도로 ‘술에 취한 심장’이 절대적 지표였다. 총과 대포가 전장을 지배하자 완전무장한 병사의 집중 투입이 절대적 과제가 되었다. 두 가지 성격이 혼재되었을 때는 강인한 심장을 가진 전사들이 집중 포격과 돌격을 감행하면서 대규모 학살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영학에도 생산성이나 경쟁 우위와 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개념들이 있다. 개별 업계를 들여다보면 그 세계에도 나름대로 절대적 법칙들이 있다. 탄탄해 보였던 대기업과 한 시대를 지배했던 인기 제품들이 그 절대적 기준에만 집착하다가 허무하게 몰락했다.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보이는 기준이 있고, 그것이 반세기 이상 지속되었을 뿐, 그 배경에는 유한하고 상대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전술을 수립하는 출발점이다. 적의 상륙을 막겠다고 물과 땅의 경계선으로 달려갈 것이 아니라, 고지대를 찾아 적을 제압하는 방법을 찾아내라는 손자의 시각과 사고방식을 습득해야 한다
2. 군대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
군대는 높은 곳을 좋아하고 낮은 곳을 싫어한다. 양지를 소중히 여기고 음지를 기피한다. 위생을 증진하고 견실한 위치를 점거하면 부대에 아무런 질병도 생기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필승의 방법이다.
凡軍喜高而惡下, 貴陽而賤陰, 養生而處實, 軍無百疾, 是謂必勝.
구릉과 제방에서는 반드시 양지에 주둔하고 오른쪽을 등져야 한다. 이렇게 해야 용병에 유리하고 지형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상류에 비가 와서 물살이 물거품을 내며 내려오면 도하하고 싶어도 물살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邱陵隄防, 必處其陽, 而右背之. 此兵之利, 地之助也. 上雨, 水沫至, 欲涉者, 待其定也.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향해가던 시기에 독감이 발생했다. 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세계 각국으로 번졌다. 전쟁으로 대군이 징집되어 집단생활을 하는 데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가 뒤섞여 있는 상황이라 독감은 더욱 빠르게 퍼졌다. 독감이 퍼지자 전투로 죽는 병사보다 병으로 죽는 병사가 더 많았다.
손자가 양지를 중시하는 이유는 군대의 위생을 유지하고 각종 질병과 추위로 인한 체력 저하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습하고, 그늘지고, 환기가 잘 안 되는 지역에서 질병의 발생률이 높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병이 세균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은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에 의해 19세기나 되어서 과학적으로 증명됐기 때문에 고대인의 지혜로 병을 예방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전국에서 병사를 동원해서 군을 편성하면 각지에서 온 바이러스가 뒤섞인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반드시 질병에 걸릴 만한 환경이었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실패한 이유도 전투 이전에 전염병으로 많은 병사를 잃었기 때문이다.
전쟁사를 살펴보면 손자가 위생 관리에 승리하는 것이 필승의 비결이라고 말한 것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질병 관리에 성공하면 전투를 이기는 것보다 더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어쩌면 기발한 전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균에 의해 싸우기도 전에 승부가 갈렸을 전투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손자가 속전속결을 강력하게 주장한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고 생각된다. 지구전을 하면 포위한 측이나 포위당한 측이나 전염병에 패배할 수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패권을 두고 벌였던 용호상박(龍虎相搏)의 대결이었다. 이 전쟁에는 몇 차례의 극적인 전환점이 있었는데, 개전 초에는 아테네가 승리할 가능성이 분명히 컸다.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Perikles. BC495?~BC429)는 군대를 보내 스파르타군을 격퇴하는 전술적 승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경제 봉쇄를 이용한 전략적 승부를 택하면 아테네가 반드시 승리한다고 확신했다.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해로를 봉쇄하고 동맹국을 지속적으로 늘려갔다. 스파르타의 재정은 점점 말라갔다. 페리클레스는 육상에서의 단기 승부를 피하기 위해 아테네 성벽을 보강하고 아티카반도의 주민들을 성벽 안으로 이주시켰다. 막강한 육군을 가진 스파르타는 추수철이 되면 아테네 일대로 출격해 농작물을 태우는 청야 전술로 아테네에 고통을 안기려 했다. 하지만 아테네는 무역으로 벌어들인 재정으로 곡물을 수입하고 피해를 보상하며 버렸다. 페리클레스의 통찰이 빛을 발했다.
그런데 아테네 성안의 인구가 조밀해지자 전염병이 발생했다.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지만 흑사병부터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이질, 독감 등이 병명으로 거론되고 그 중 몇 개가 동시에 발병했다고 보기도 한다. 펄펄 끓는 열에 고통받던 어떤 이는 저수지로 뛰어들었다. 결국 식수원마저 오염되었고, 페리클레스도 전염병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이 참혹한 비극으로 전쟁 1라운드는 아테네의 패배로 끝났다.
▲ 페리클레스, 투키디데스는 그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가로 묘사했다.
우측을 등진다
구릉이나 언덕 같은 고지를 우측 등 뒤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조선시대까지도 준수되던 병법의 기본이다. 등 뒤에 고지를 두면 유리한 이유에 관해서는 명확한 해석이 없다. 경사면을 따라 보병과 궁수를 배치하면 적이 공격해올 때 보병은 경사면을 따라 비탈의 위쪽에서 전투를 벌일 수 있고, 궁수는 지속적으로 시계와 사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본다. 그런데 확률상 오른손잡이가 많기 때문에 활을 쏠 때도 동남쪽 방향으로 사격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칼이나 창을 사용할 때도 오른손잡이의 경우 우측에서 몸의 45도 방향, 즉 동남쪽으로 내려치는 것이 가장 위력적이다.
상류에 비가 와서 물이 거품을 일으키며 내려오면 도하를 중단하고 기다리라는 말은 갑자기 거대한 홍수가 닥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계곡물은 급격하게 불어난다. 전장이 화북평원이라면 우리가 예상치 못한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있는데, 여기서 도하를 중지하라는 것은그냥 물가에서 기다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평원은 대표적인 천정천(天井川) 지역이다. 주변에 산은커녕 언덕도 없는 곳에 물이 범람하면 1미터 이하의 수심만 되어도 매우 넓은 지역이 물에 잠긴다. 며칠을 걸어가도 앉아서 쉴 곳도 잠잘 곳도 없다. 수인성 전염병이 번지기 좋은 환경이다. 도하 중단을 결심하는 즉시 홍수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신속히 행군해야 한다.
3. 길은 좁은 곳은 빨리 지나가라
지형 중에 절벽에 둘러싸인 깊은 계곡인 절간(絶澗), 높고 가파른 절벽에 둘러싸인 깊은 계곡인 천정(天井), 우물처럼 주변에는 산이 둘러 있고 안은 움푹 들어간 분지인 천뢰(天牢), 험난하고 높은 산 사이에 끼어 협로가 나 있는 감옥 같은 곳인 천라(天羅). 울창한 숲과 풀이 엉켜 있어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곳인 천합(天陷), 낮은 진흙 수렁인 천극(天隙) 등 길이 좁고 위태로운 곳은 반드시 빨리 지나가고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 아군은 이런 곳을 멀리하고 적군이 이런 곳을 가까이 하게 하며, 아군은 이런 곳을 마주 보게 하고 적은 등지게 해야 한다.
凡地有絶澗·天井·天牢·天羅·天陷·天隙, 必亟去之, 勿近也. 吾遠之, 敵近之; 吾迎之, 敵背之.
행군하는 옆에 험한 지형이 있거나 수초가 우거진 택지. 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곳, 삼림이 빽빽한 곳, 수출이 우거진 곳이 있으면 반드시 여러 번 수색해야 한다. 이런 곳은 적의 복병과 정찰병이 습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軍旁. 有險阻蔣潢, 井生葭葦, 山林蘙薈, 必謹覆索之, 此伏姦之所處也.
절간(絶澗)·천정(天井)·천뢰(天牢)·천라(天羅) 등 손자가 열거하는 지형의 공통점은 수비와 관측에 불리한 지형이다. 손자는 이런 곳을 피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실전에서 이런 지형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전투에서 진지는 배산임수형을 취하는 것이 정석이다. 산을 등진 적의 뒤 습격하려면 산지와 계곡을 통과해야만 한다.
평원에서 접전을 벌이는 동안 몰래 부대를 우회시켜 적을 습격하려면 좁은 산골짜기 길을 이용해야만 한다. 적의 경계가 소홀한 지역은 대개 지형 자체의 방어력을 믿는 곳이다. 손자가 6편에서 말한 대로 적의 허점을 찌르려면 이런 험하고 위험한 지형으로 들어가야 한다.
손자의 지형론은 보편적인 위험성을 지적할 뿐이다. 전쟁은 승부고, 승부는 도전이다. 적이 이런 곳에 위치하도록 몰아넣고, 아군은 이런 험지를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이 도전이자 필승의 전술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코만도 부대(최초의 현대식 영국 육군 특수부대) 대원이었던 데이비드 스털링(David Stirling, 1915~1990) 대위는 크레타에서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무적 같았던 그의 코만도 부대는 허무하게 붕괴되었다. 이후 북아프리카로 파견된 그는 사막 지형을 이용한 특수전을 구상했다. 이때까지 사막은 전쟁이 불가능한 땅으로 간주되었다. 사하라 사막 깊은 곳은 기갑부대도 발붙이기 어려운 곳이었다. 스털링은 처음에 낙하산을 이용한 코만도식 습격 작전을 구상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대실패로 끝났다. 사막 낙하가 의외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막에는 늘 광풍이 불었고, 낙하한 낙하산병은 붙잡을 나무도 돌도 없는 모래 위에서 원치 않는 윈드서핑을 해야 했다.
처절한 실패 후 스털링은 특수한 집단을 알게 된다. 사하라의 진정한 무서움은 일단 깊이 들어가면 방향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원주민조차도 방향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영국에는 전쟁 전부터 사막에서 길을 찾는 방법을 연구하는 팀이 있었다. 지리학자, 천문학자 등으로 구성된 팀과 스털링이 만났다. 스털링은 이들을 길잡이로 삼아 사막을 이용하기로 했다. 트럭과 지프차로 사막 깊숙이 들어가 위장 진지를 설치하고, 그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독일군 진지를 공격하고 빠졌다.
스털링의 구상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은 통신시설, 공항, 전투기, 급유시설을 공격해 파괴하고 사막으로 도주했다. 추격하던 독일군들은 차마 사막으로 뛰어들 수가 없었다. 이들을 찾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항공 수색인데, 사막의 위장술에 뛰어난 스털링의 부대는 탐색을 교묘하게 피했다. 사하라에서 출몰하는 영국군 특공대는 로멜의 아프리카 군단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까지 특수부대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SAS(Special Air Service)의 시작이다.
사막의 SAS만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은 바다, 정글, 산악, 빙원에서 활약하는 각종 특수부대를 탄생시켰다. 오늘날의 특수전 개념도 모두 제2차 세계대전 때 정립되었다. 특수전의 발달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위험 지형에 대한 기존 개념과 자세를 바꾸었다는 것이 중요한 전기다. 과거엔 기피 지역이었던 지형을 고난도의 훈련과 첨단 장비로 극복해낸 것이다.
▲ 지프차에 탄 SAS 대원과 대화하고 있는 스털링. 그는 독일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종전 후 생환했다.
4. 험한 지형을 믿는 적군
적군과 아군이 근접해도 적이 평정을 유지하는 것은 적이 혐한 지형을 믿기 때문이다. 멀리 나와서 아군에게 도전하는 것은 아군의 진격을 유도하려는 의도다. 고지를 버리고 평탄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평지에 있는 것이 자신들에게 무언가 이로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敵近而靜者, 恃其險也; 遠而挑戰者, 欲人之進也; 其所居者, 易利也.
많은 나무가 움직이는 것은 적군이 오고 있는 증거다. 풀을 엮어 많은 장애물을 만들어놓은 것은 적이 아군을 의심하게 하려는 것이다【풀로 엮어 만드는 것은 큰 노력이나 자재 투입 없이 급조한 장애물이다. 이것은 적이 강력한 방어 진지를 구축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단지 매복에 대해 경계심을 품게 함으로써 적군의 진격을 저지시키려는 시도라는 뜻이다.】. 새 떼가 갑자기 날아 달아나는 것은 거기에 복병이 있다는 증거이며, 짐승들이 놀라 달아나는 것은 아군을 공격하려는 적병이 있다는 증거다. 먼지가 높고 날카롭게 오르는 것은 전차대가 오는 것이다. 먼지가 낮고 넘게 일어나는 것은 보병부대가 오는 것이다. 먼지가 흩어져 여기저기서 오르는 것은 적군이 땔감을 조달하는 것이다. 작은 먼지가 왔다갔다하며 움직이는 것은 적군이 숙영을 준비하는 것이다.
衆樹動者, 來也; 衆草多障者, 疑也; 鳥起者, 伏也; 獸駭者, 覆也; 塵高而銳者, 車來也; 卑而廣者, 徒來也; 散而條達者, 樵採也; 少而往來者, 營軍也.
적이 말로는 저자세를 취하면서 뒤로는 장비를 집결하는 것은 진격하려는 의도다. 적의 언사가 완고하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퇴각하려는 의사가 있는 것이다. 경전차를 먼저 내보내 자신들의 측면에 위치시키는 것은 진을 치려는 것이다. 사전에 약속한 적이 없는데 갑자기 강화를 청하면 음모가 있는 것이다. 적이 분주하게 달리면서 전차를 진열하는 짓은 공격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적이 절반쯤 전진하고 절반쯤 퇴각하는 것은 아군을 유인하려는 것이다. 병사들이 병장기에 몸을 기대고 서 있는 것은 적군이 굶주렸다는 증거다. 물을 길어서 서로 먼저 마시려 하는 것은 적병이 목말라 있다는 증거다. 아군이 적에게 유리한 것을 보여주어도 전진하지 않는 것은 적군이 피로한 것이다. 적의 막사 위에 새들이 모여드는 것은 막사가 비어 있다는 의미다.
辭卑而益備者, 進也; 辭詭而强進驅者, 退也; 輕車先出居其側者, 陳也; 無約而請和者, 謀也; 奔走而陳兵車者, 期也; 半進半退者, 誘也. 倚仗而立者, 飢也; 汲而先飮者, 渴也; 見利而不進者, 勞也; 鳥集者, 虛也;
밤에 부르짖는 것은 적군이 겁에 질려 있는 증거다. 군사들이 질서 없이 요란하게 구는 것은 적의 장수가 위엄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적의 군기가 질서없이 움직이는 것은 적의 부대가 혼란하다는 의미다. 장교들이 화를 내는 것은 적군이 싸움에 지쳐 있다는 증거다. 말을 죽여 고기를 먹는 것은 군량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물동이를 뒤집어 걸고 막사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막다른 궁지에 몰린 적이 최후의 결전을 하려는 것이다.
夜呼者, 恐也; 軍擾者, 將不重也; 旌旗動者, 亂也; 吏怒者, 倦也; 粟馬肉食, 軍無懸缻, 不返其舍者, 窮寇也;
전략과 전술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적의 의도와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손자는 적정을 관찰해 적의 의도를 파악하는 사례를 열거했다. 여기서 기준이 되는 것은 지형, 적의 행동과 반응, 먼지, 동물들의 행동, 지휘관과 병사들의 동태 등이다.
이런 지표를 역으로 이용해서 적을 속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적정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숙련된 정찰병, 반복된 관찰, 지속적인 자극을 통해 적의 동태를 점검하고, 조작할 수 없는 현상을 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꾸로 속이는 쪽에서도 적에게 이런 상황은 간파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속이기 힘든 징조 중 대표적인 것이 동물들의 반응이다. 마을의 개들이 일제히 짖기 시작했다거나, 풀벌레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면 반드시 중요한 이유가 있다. 전쟁사를 보면 의외로 이런 반웅을 소홀히 했다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족제비가 개들을 흥분시키는 경우도 있고, 개구리는 울다가 뚝 그치기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평소에 동물들의 생태를 깊이 관찰해서 다른 징후를 포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병사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상황에 따른 병사들의 보편적 행동과 이상 징후를 구별하는 능력은 아군을 관찰하는 훈련만으로도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이런 능력을 가진 장병은 드물다. 대부분의 군대가 관리에만 치중하다 보니 병사들을 통제하기 위해 지나친 군기를 강조하고 관리에 따른 행정잡무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장병들은 처벌에 대한 압박 때문에 자신들의 삶을 관찰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군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스스로를 관찰함으로써 경험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이 전술 능력과 전투력을 신장시키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평소의 군대는 관리가 핵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전장에서는 적응력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적정을 관측하고 파악하는 데 유효한 방법이 삶의 경험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 민족이 일원화된 교육 및 관리 체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개인의 인종적, 환경적 차이가 크지 않다. 반면 미군과 같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조직에서는 개인의 특성과 능력이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전쟁사를 살펴보면 사냥꾼 출신들이 저격이나 수색-탐지 임무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곤 한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모델인 101공수사단 506연대 2대대 5중대, 이지(Easy) 중대의 전사록을 보면, 매복해 있는 적을 탐지하거나 적진에 숨어 들어가 적의 초병을 저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병사가 둘 있었는데, 모두 인디언 혼혈 병사였다. 그들은 시골 농장에서 태어나 사냥을 즐기는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 인디언에게 어떤 인종적 특징이 있다기보다는 전통적 환경 속에서 자연히 추적·탐지·은폐·사격 기술을 숙련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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