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편
구지(九地)
구지는 아홉 가지(즉 모든) 지리 또는 위치라는 의미다. 전략적 혹은 전술적 위치에 따른 용병법으로, 아군의 위치에 따라 아군이 처할 수 있는 상황과 그에 따른 용병법을 논한 것이다. 물론 이것을 역으로 적용하면 수비의 입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전략전술적 판단을 내릴 항상 중요한 것이 지금 내 위치다. 내 가치는 내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우주가 나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지만, 내가 위치한 곳에 따라서 전략·전술적 가치는 달라지는 것이다. 우주 속의 나 격렬한 전투 속에서 내 위치와 내 가치를 늘 염두에 두고 정확하고 탁월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1. 9가지 지형
용병하는 법에는 산지 경지, 지과과 교지.구지 중지벤, 비지,위지사 있다.
孫子曰: 用兵之法, 有散地, 有輕地, 有爭地, 有交地, 有衢地, 有重地, 有圮地, 有圍地, 有死地.
제후가 자기 땅에서 싸우는 것이 산지다.
諸侯自戰其地, 爲散地.
다른 나라에 들어왔지만 아직 깊이 들어가지 않은 땅을 경지라고 한다.
入人之地不深者, 爲輕地.
내가 장악하면 내게 유리하고 적이 장악하면 적이 유리한 요충지를 쟁지라고 한다.
我得則利, 彼得亦利者, 爲爭地.
아군이 이곳을 통해 적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적도 아군에게 쉽게 접근해올 수 있는 교통요충지를 교지라고 한다.
我可以往, 彼可以來者, 爲交地.
제후의 땅이 세 방향으로 만나 이곳을 차지하면 천하의 중망을 얻을 수 있는 요지를 구지라고 한다.
諸侯之地三屬, 先至而得天下衆者, 爲衢地.
적의 땅에 깊이 들어가 많은 성읍을 배후에 두고 있는 지역을 중지라고 한다.
入人之地深, 背城邑多者, 爲重地.
산림, 험지, 늪지가 섞여 통행에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곳을 비지라고 한다.
行山林·險阻·沮澤, 凡難行之道者, 爲圮地.
들어가기에는 길이 좁고 돌아올 때는 우회해야 하며, 적이 소수의 병력으로 아군을 공격할 수 있는 곳을 위지라고 한다.
所由入者隘, 所從歸者迂, 彼寡可以擊吾之衆者, 爲圍地.
신속하게 결전하면 생존할 수 있으나, 신속하게 싸우지 않으면 멸망할 위험이 있는 곳을 사지라고 한다.
疾戰則存, 不疾戰則亡者, 爲死地.
그러므로 산지에서는 전투하지 말아야 하며. 경지에서는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쟁지에서는 공격하지 말아야 하고, 교지에서는 각 부대 사이의 연락을 유지해야 한다. 구지에서는 외교를 맺어야 하며, 중지에서는 식량·군수품 등을 약탈해야 한다. 비지는 신속히 통과해야 하며, 위지에서는 기계(奇計)를 써서 탈출해야 하며, 사지에서는 사력을 다해 싸우는 일밖에 없다.
是故散地則無以戰, 輕地則無止, 爭地則無攻, 交地則無絶, 衢地則合交, 重地則掠, 圮地則行, 圍地則謀, 死地則戰.
이 편에는 산지, 경지 등 단어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특이한 용어들이 나온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산지는 자국 국경 안에 있는 전투지다. 직역하면 ‘흩어지는 땅’이라는 뜻이다. 해석이 난해해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다수설에 따르면, 국내에서 전투를 할 경우 병사들의 고향에서 가깝고 지리를 잘 알기 때문에 도망칠 생각만 하니 몸과 마음이 흩어진다고 해서 산지라고 한다.
두 번째, 경지는 국경을 넘어왔으나 아직 깊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경(輕)은 이(易), 즉 ‘쉽다’는 뜻이다. 아직은 국경이 가까워 도망쳐서 고향으로 돌아가기 쉬우므로 경지라고 했다.
세 번째, 쟁지는 전략 요충지다. 아군이나 적군이나 서로 점령하려고 다투는 곳이며, 교지는 도로가 교차해서 교통이 편한 지역을 말한다.
구지에서 구(衢)는 가(街)란 뜻으로, 시가지나 사람들이 많아 번잡한 지역이다.
중지는 적국의 깊숙한 지역으로, 병사들이 흩어지거나 돌아갈 마음이 없어지는 곳이다. 경지와 대비되는 의미라서 중지라고 했다.
비지의 비(圮)는 손상을 입었거나 허물어졌다는 뜻이다. 험산이나 늪지같이 기후와 지형이 좋지 않은 지역을 말한다. 이런 지역에서는 병사들의 전장을 해치기 쉬우므로 비지라고 한다.
위지는 험하고 막힌 지형, 험지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위험한 지역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사지는 죽음의 지형으로, 전진이나 후퇴도 힘들고 전투하기에 불리한 지형이다.
구지의 분류에는 자국 영토와 적국 영토라는 입지적인 의미와 지형이라는 기준이 중첩되어 있다. 손자는 예리하고 분석적인 사고력을 지닌 인물이지만 이상하게 지형이나 기타 개념을 나누어 제시할 때는 중첩되는 기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교훈적인 내용도 표면적 교훈과 내면적 교훈이 항상 중첩되어 있다.
이것은 동양적 사고의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양인들은 현상을 정밀하게 분류하는 것을 좋아한다. 비유법으로 치면 직유를 좋아하는 것이다. 동양 고전은 매뉴얼식 설명 방식을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복합적이고 다의적이고 은유를 사용해서 심오해 보이는 표현을 좋아한다. 게다가 『손자병법』은 전술, 작전용 지침서가 아니라 병법의 원리와 통찰을 다룬 책이다. 당연히 후자의 표현 방식을 선호했던 것 같다.
침략 전쟁과 방어 전쟁의 차이
부대가 처음 보는 희한한 지형으로 접어들었다. 나무도 바위도 고향에서는 보지 못하던 형태다. 이 앞에 어떤 지형이 펼쳐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이 더 깊은 계곡이나 오지로 들어가는 중인지, 갑자기 앞이 트이면서 풍요한 마을이나 도시가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국경을 넘어 적지로 들어온 지 열흘이 지났다. 이 나라는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강국이었다. 이번에도 적이 대규모로 침공해 왔는데, 결사적인 방어로 대승을 거두었다. 장군은 승리에 고무되어 적군을 추격하다가 아예 국경을 넘었다. 들리는 말로는 수도까지 간다고 한다.
그런 나라를 침공하다니, 드디어 복수한다는 속 시원한 마음도 있지만 불안하기도 하다. 썩어도 준치라는데, 고국에서 벌이는 방어전이라면 몰라도 적국에 들어와서 이 나라를 이길 수 있을까? 옆을 보니 병사들 모두 불안해한다. 고향에서 갑자기 소집되어 방어전을 펼 때는 결사적인 감정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불안할 뿐이다. 과거에 장사한다고 이 나라를 들락거렸다는 병사가 하는 말이, 대로를 놔두고 이런 미로 같은 지형으로 행군하는 이유는 병사들이 고향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적의 대군에 쫓겨 산속으로 숨어들고 있는 건 아닐까? 장군이 길은 알고 있는 걸까? 길은 점점 험난해져서 수레를 밀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군량 수레는 제대로 따라오고 있을까? 후방과 끊어져 우리만 고립된 것은 아닐까?
습한 바람이 불어오고 죽은 고목 사이로 뿌연 안개가 스며들기 시작하자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열흘 전 승리의 환호가 가물가물하다. 장군은 적군을 몰아냈으면 됐지, 왜 여기까지 쫓아 들어왔을까?
이 상황은 손자가 이 장에서 고국에서의 전투와 원정 전투라는 또 하나의 분류를 사용한 이유를 설명해주기 위한 가상의 상황이다. 같은 공격·수비 전술이라도 고국을 침략한 적에 대항하는 전쟁의 절박함은 침략 전쟁과 차원이 다르다. 병사들의 전투 의지, 동기부여에 장점이 확실하다.
훈련되지 않은 군대도 도망치지 않고 싸우려는 의지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군대로 적국을 침공하려고 하면 도망자가 속출할 수도 있다. 중국처럼 넓은 땅, 행정망이 허술했던 고대에 이런 탈영은 손쉽게 일어났고 치명적이었다. 그러므로 침공 작전을 시행할 때 병사들의 사기는 절박함이 아니라 욕구로 견인해야 한다.
전쟁사를 보면 루거우차오 사건【1937년, 루거우차오 주변에서 일본군과 중국군이 대치하고 있을 때 밤중에 수십 발의 총성이 울리고 일본군 병사 한 명이 실종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일본과 중국이 무력 충돌했고 중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이 충돌의 원인 중 하나였던 일본군 병사는 점호 20분 후에 부대에 복귀했다고 한다】처럼 적을 일부러 도발하고는 기다렸다는 듯 쳐들어가는 사례가 많다. 아예 없는 사건을 조작해서 적이 먼저 공격했다고 우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단지 도덕적 명분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적이 일으킨 전쟁이고, 우리는 방어하려고 시작했으며,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적지로 쳐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해야 아군의 동기부여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효과 역시 일시적이다. 원정 전투에서는 여러 가지 새로운 어려움이 생긴다. 병사들의 의지와 절박감이 홈에서 하는 전쟁과 달리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라서 그런 난관들을 이겨내기 쉽지 않다. 국경 가까운 지역을 경지라고 했는데 국경 근처 지역에서 징발한 군대에는 경지이겠지만, 멀리 내지에서 출발한 군대는 경지가 중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리더는 이렇게 상항에 따른 변수를 파악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손자는 지형이라는 상황을 선정해서 원정 전투에서 발생하는 변수와 대처 방식을 시연하고 있다. 이것이 ‘구지’ 편의 본질이다.
산지 : 자국 영토 안에서의 전쟁은 가능한 한 피한다
손자는 산지, 즉 자국 영토 안에서의 전쟁을 피하라고 했다. 그러면 적이 침공해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손자가 말하고자 하는 산지는 아군이 주도적으로 전장을 선택할 수 있을 때를 전제로 한다.
자국 영토에서 싸우면 세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지형과 지리에 익숙하다. 둘째, 보급과 수송이 편하며 경비가 크게 절감된다. 셋째, 원거리 이동으로 적은 지치고 아군은 편하다. 결국 인접국과 전쟁을 할 때는 자국 영토로 끌어들여서 싸우려는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손자는 이 홈그라운드의 유혹을 경계한다. 자국 영토에서 싸우면 엄청난 추가 피해가 발생한다. 그 피해는 국경 밖으로 나가서 싸우는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전쟁 피해는 후유증도 오래간다. 승리하더라도 백성들이 전쟁에 넌덜머리를 내고, 승전의 기쁨을 백성과 공유하지 못하게 된다. 패배하면 산업중심지, 심지어 수도가 함락될 수도 있다.
반대로 적국에서 싸우면 크게 승리하지 못해도 적국에 피해를 줄 수 있다. 패전해도 아군의 영토에서 다시 한번 싸울 기회가 있다. 중립국에서 싸우면 전쟁을 빌미로 동맹국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
원정의 두려움에 눌려 홈그라운드의 장점에 안주하면 더 큰 피해를 입게 되고, 백성은 군주와 장수의 지도력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치명적 단점을 고려해 원정의 위험과 두려움을 극복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 원칙을 전쟁에 철저하게 적용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전쟁 원칙은 선제공격으로 적의 영토에서 싸운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스라엘 영토가 너무 작아서 단 한 번의 패배로도 수도가 함락되고, 국가가 멸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방식 덕분에 군대는 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했다. 다른 국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양심 없고 이기적이긴 하지만 능력치가 올라가는 건 사실이다.
적을 공격할 용기가 없는 국가는 방어에도 성공할 수 없다. 원정 전투는 홈에서 하는 방어전보다 훨씬 어렵고, 기동, 정찰, 군수 등 모든 분야에서 더 향상된 능력을 요구한다. 당연히 이런 군대가 국토 방어도 잘한다. 자국 영토에서 싸우지 말라는 손자의 충고는 승리해도 피해가 크다는 계산적 이유도 있지만, 방어만 하는 반쪽짜리 군대가 되려고 하지 말라는 뜻도 있다. 공세적 전투력과 진취적인 기상을 가진 군대만이 온전한 군대, 강군이 될 수 있다.
경지 : 국경에 머무르지 마라
용기를 내서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눈앞에는 적에게 유리한 낯선 땅이 펼쳐져 있다. 사람은 불안하면 관망세로 돌아서는 경향이 있다. 이때 초보 장수는 이렇게 결정한다. “미지의 땅이다. 성급하게 깊이 들어가지 말고 국경 근처에서 대기하며 탐색하자.” 국경 근처에 주둔하면 군량이 끊어질 우려도 적고 자국 영토로 후퇴하기도 쉽다.
맹목적인 관망과 망설임은 적에게 주도권을 양보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사전에 분석과 준비가 충분하지 않거나, 겁이 많은 리더들이 이런 행동을 한다. 그러나 사전에 아무리 충분히 숙고했더라도 완전한 준비는 없다. 전환은 항상 유동적이고 적의 행동은 예측 불가다. 이 불안감을 감당하지 못하면 늘 관망세가 된다.
적의 홈그라운드에서 적은 익숙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니 주도권을 양보하면 더 불리해진다. 이는 패배를 재촉하는 행동이다. 침공 작전은 적의 영토 안에서 적보다 더 빠르고 확신에 차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준비해서 시작하고 몇 배는 더 대담하게 움직여야 한다.
앞서 6편에서 언급한 카이사르와 베르킨게토릭스의 전쟁에서 갈리아 추장 베르킨게토릭스는 갈리아 부족이 봉기하면 카이사르가 국경 근처인 프로빈키아에 웅거하며 전세를 관망할 거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경지에 머무르다가는 적에게 주도권이 넘어갈 거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 반대로 행동했다. 이것이 판세를 역전시켰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노르망디 방어 사령관이었던 로멜은 미군이 상륙하면 즉시 기갑부대를 투입해 해안에서 연합군을 격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적을 경지에 머무르게 하자는 것이다.
상륙부대에게 해안은 경지인 동시에 배수진이다. 해상 지원과 보급도 어렵다. 반면 상륙 작전은 처음부터 경지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시작하는 전투다. 상륙부대가 해안 교두보를 확보하고, 병력과 보급 체제를 정비하면 전력을 다해 바로 치고 나가야 한다.
결국 상륙 작전은 경지에 머무르게 하느냐, 경지를 벗어나느냐의 싸움이다. 로멜의 해안전투론은 경지는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손자의 지적을 반대 입장에서 응용한 경우라고 하겠다.
쟁지 : 요충지도 기술과 상황에 따라 바뀐다
쟁지를 피하라는 손자의 경고는 리델 하트의 간접 접근론, 전격전, 기동전의 핵심 논리와 통한다. 지형적으로 공격군에게 불리한 지역을 무리하게 공격하면 큰 피해를 입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요충지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개념으로는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처럼 산지가 많고 도로가 좁은 나라는 전쟁이 벌어지는 요충지가 제한되어 있기에, 시대를 뛰어넘어 같은 곳에서 전투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중국 대륙에도 역사적으로 변함없는 요충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지가 넓다 보니 우회 전술이 우리보다는 많이 활용되었다.
로멜은 늘 쟁지를 피했다. 기동으로 피하고, 피할 수 없으면 기발한 계략으로 끝내 공략법을 찾아냈다. 쟁지를 피하거나 쟁지로서의 특징을 없애버렸다. 그의 전투 이력은 이런 점에서 경이롭고 화려하다.
하지만 로멜도 쟁지에 직접적으로 도전한 적이 있다. 북아프리카 리비아에 위치한 토부루크 요새는 아프리카에서 로멜의 이집트 공략을 두 번이나 좌절시킨 곳이다. 로멜은 기동전의 대가였지만 토부루크에 관해서는 정면 공격을 택했다. 그는 아프리카 군단의 최대 약점인 보급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토부루크 항구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희생이 있더라도 이집트와 중동의 유전지대를 석권하면 그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로멜도 실패했다.
의외로 많은 장군들이 이렇게 쟁지에 집착한다. 전략적 요충지는 점령에 희생이 많이 따르지만 점령하면 그 효과와 가치도 크다. 그래서 전투는 이런 곳에서 오히려 더 무모하게 벌어진다.
쟁지가 전쟁을 승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해도, 얻을 수 없다면 무의미하다. 얻더라도 피를 너무 많이 흘리면 전쟁 전체를 망친다. 쟁지를 보는 시각을 바꾸자. 쟁지를 획득하면 좋지만, 획득하기 힘들다면 쟁지가 쟁지가 되지 않게 하면 그만이다.
패튼의 브르타뉴 반도 전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패튼이 브르타뉴 반도를 점령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필요한 창구는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일례로 브르타뉴의 대표적 항구인 캉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함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패튼의 입장에서 보면 캉은 1944년에는 요충이 아니다. 브르타뉴의 항구가 없어도 연합군이 북쪽 항구들을 확보했기 때문에 항구로서의 가치도 없다. 독일군이 캉 항구에서 버티고는 있지만, 봉쇄를 뚫고 나와 파리와 베를린을 향해 진격하는 연합군의 뒤를 공격할 능력은 없었다. 캉의 독일군은 전선 뒤쪽에 고립된 무용의 군대였다. 패튼이 무리하게 캉을 공격하지 않고, 대병력을 투입할 필요도 없었다. 봉쇄로 족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캉이 버틴다고 해도 전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교지·구지·중지
현대전에서는 교통수단의 발달로 역이나 항구 같은 교통 요지의 중요성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더구나 요즘은 항공 수송과 미사일, 폭격 등의 능력이 발달해서 전쟁이 벌어지면 남아날 철도가 있을지 모르겠다. 손자 시대에도 교통의 요지는 전쟁의 승부를 좌우하는 요충지였다. 손자는 교지에서의 승부는 부대 간 연락망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우리는 손자의 발상법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바다에서 싸운다면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자원은 무엇일까? 바닷물이다. 바닷물을 어디에 쓰느냐고 묻지 말고 최고의 자원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손자의 발상법이 이런 식이다. 교통 요지의 장점은 교통이다. 당연히 이런 장점을 이용한 전략을 구상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부대 간 연락을 유지하라는 것은 신속한 로테이션이나 병력 집결을 이용한 전술이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교통 요지에서는 부대를 멀리, 넓게 운용할 수 있다.
구지와 중지의 경우도 교지와 같다. 구지에서는 외교를 맺어야 한다고 했다. 트라이앵글 지점은 중립지대 혹은 사각지대가 형성되기 쉽고, 전쟁이 벌어지기도 쉽다. 유럽의 십자로인 스위스 같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강대국 사이에서 늘 고통받았다. 한반도 역시 비슷한 경우다. 손자는 구지의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외교 관계 수립에 노력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자간 충돌로 전쟁이 확대되어 기존 전략을 폐기해야 할 수도 있고 불만 세력이나 반군의 온상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지란 적진 깊숙이 들어온 지역이다. 적의 배후에는 도심지가 많다. 당연히 아군은 보급이 어렵고, 적군은 보급에서 아주 우위에 있다. 식량을 약탈하는 것은 적의 장점을 약화시키고, 아군의 단점은 보완하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이런 지역은 적군의 병력 보충도 쉽고, 아군을 좌우에서 공격하거나 포위하기도 쉽다. 그러므로 적진 깊이 뛰어들수록 주도권을 쥐고 움직여야지 적에게 휘둘리면 끝장이다. 중지에서 보급 문제를 방치하면 적에게 휘둘리게 되지만 손자의 말대로, 약탈하면 적을 원하는 위치로 끌어내서 싸우는 데 도움이 된다.
비지·위지·사지
지금까지 언급한 지형이 인문지리적 구분이라면 비지, 위지, 사지의 구분은 지형적 특성에 근거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손자의 경고와 대책을 맹종할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적절한 대처법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손자는 비지는 빨리 통과하라고 했다. 그러면 빨리 통과할 방법은 무엇일까? 비지는 산림, 산지, 늪지가 섞인 지형을 말한다. 이런 곳이 악지형인 이유는 지역마다 적절한 장비와 무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늪지를 통과하려면 수레는 소용이 없다. 수레가 통과할 길을 닦으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드는 탓이다. 당태종은 요하의 진창지대를 통과하기 위해 당나라 최고의 토목기술자인 염입덕(閻立德, 596?~656?)을 투입했다. 몇 달에 걸친 공사 끝에 임시 도로를 가설했지만 당군은 여기서 주어진 시간의 절반을 소모해버렸다.
이런 늪지에 숲과 산지까지 있다면 또 다른 장비와 토목 공사가 필요하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군은 당태종(唐太宗, 599~649)이 고구려와 싸웠던 전장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러시아군은 원래 평원 전투의 비중이 높아서 이곳 산악 지형에 필요한 개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산지에서 포를 사용하려면 가볍고 바퀴를 작게 개량한 야포가 필요했는데, 제작과 공급이 제때 되지 않았다. 서류상의 야포 수와 현지에 투입해서 사용할 수 있는 수가 전혀 달랐다.
러시아는 엄청난 인구와 자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경선이 너무 넓고지형도 천차만별이다. 국경 방어에 투입할 병력조차 부족했다. 방어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철도를 이용해서 병사들을 전투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수송 능력을 갖추어야만 했다. 더구나 철도로 병력을 수송할 수 있다고 해도 장비 개량이 쉽지 않았다. 다시 말해 러시아는 사방의 지형적 특성에 맞게 군수 산업 단지도 개편해서 각 지역에서 적절한 무기와 장비를 생산·개조하거나 어떤 지형에서도 쓸 수 있는 전천후 무기를 개발해야 했다. 러시아가 잇따라 벌어진 세계대전에서 큰 고통을 겪었던 이유다. 러시아 전체가 비지였다.
손자 시대에는 아무리 대병력이라도 좁은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지역을 이동해 가며 지속적인 전투를 벌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따라서 비지, 위지, 사지의 구분이 명확했다. 오늘날에는 무기와 수송 능력의 발달로 전후방 구분이 없다고 할 정도다. 전장이 확대되면 모든 지역이 비지고 위지며, 사지가 된다.
한국전쟁에 투입된 미군은 한국의 산악 지형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들은 비탈을 오르기 싫어서 도로만 따라 움직이려 했다. 전투 경험이 풍부했던 한 장교는 어느 중대가 본부를 도로변에 설치한 것을 보고 인민군의 포격을 받을 수 있으니 산비탈에 설치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그 중대장은 비탈을 흘깃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다리가 긴 서구인의 체형이 한국의 산지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보다는 훈련 부족에 따른 체력 저하가 환경에 적응하려는 도전적인 자세를 약화시킨 것이다.
엘리트 특수부대가 아닌 한 군대가 세계의 모든 지형에 맞춰 사전 훈련을 할 수는 없다. 훈련받지 않은 지형이라 해도 적극적인 자세와 기초 체력이 있으면 경험을 통해 적용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전쟁의 양상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의 스타일에서도 시사하는 점이 많은 부분이다.
2. 적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방법
소위 용병을 잘한다고 하는 사람은 능히 적을 혼란하게 만들고, 적의 부대가 서로 이어지지 않게 하며, 대부대와 소부대가 서로 의지하지 못하게 한다. 장교와 사병이 서로 구하지 못하게 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병사들은 한 번 흩어지면 모이지 않게 하고, 병사가 모여도 체계적이지 못하게 하며 자기들의 이익이 맞으면 움직이고 이익에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게 만든다.
所謂古之善用兵者, 能使敵人前後不相及, 衆寡不相恃, 貴賤不相救, 上下不相扶, 卒離而不集, 兵合而不齊. 合於利而動, 不合於利而止.
혼란과 단절은 적의 전력 효율을 떨어트리는 최상의 방법이다. 군이 둘로 분열되면 전력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하로 떨어진다. 전투력 자체를 상실하기도 한다. 전투기와 야포는 막강한 화력을 지닌 현대전의 중추다. 그러나 이들이 보병부대와 분리되면 당장 후퇴해야 한다. 전차는 단독 수행능력을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보병과 분리된 전차는 대단히 취약하다.
더 구조적인 분열도 있다. 보급을 예로 들면, 패키지 보급 체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처음 고안했다. 하나의 장비를 구성하는 여러 부품을 묶어서 관리하고 보급하는 것이다. 그전까지 여러 부품을 따로 관리하고 수송하다 보니 황당한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SAS의 창시자인 데이비드 스털링은 최초의 특공작전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병력과 함께 장비도 산산이 흩어졌다. 집결지로 모인 건 절반도 안 되는 병력이었고,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가 없는 식으로 부품이 서로 맞지 않았다. 그 이전에 영국은 노르웨이로 기동력을 이용한 특수타격부대를 파견한 적이 있다. 이들의 기동을 보장하는 무기는 스키였다. 노르웨이에 상륙한 특공대가 장비를 풀자 스키는 있는데 발을 스키에 고정해주는 끈이 오지 않았다. 끈 하나 때문에 특공대는 스키를 포기했고, 기동력을 상실한 특공대는 중화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부실한 소총부대로 전락했다. 그들의 운명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분열을 일으키는 곳을 먼저 타격한다
손자는 다양한 분열에 관해 논했다. 부대의 분열, 대부대와 소부대 등 병종의 분열, 장교와 사병의 분열, 위와 아래의 분열, 병사들의 분열, 목적의식의 분열이다.
손자가 열거한 분열을 형태론적으로 분류하면 내면적·심리적 분열과 부대 간의 단절 같은 물리적 분열로 나눌 수 있다. 어떤 유형의 분열이든 그것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심리전, 선전술, 유언비어, 물리적 차단과 분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전쟁터란 기본적으로 분열을 일으키기 쉬운 곳이다. 공포와 충격, 극단적 이기심이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공격지점을 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힘은 적게 들고 효과는 큰 곳은 어디일까? 손자의 충고를 따르면 두 가지 기준으로 접근한다. 감제고지, 적의 보급선 같은 직접적 타격점과 적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지점이다.
춘추시대는 지역마다 영주에 해당하는 제후나 대부가 영지를 지니고 있고, 군대를 소집하면 각자 자기 군대를 이끌고 모였다. 이런 형태의 군대는 기본적으로 분열에 취약했다. 예를 들어 서로 사이가 나쁜 두 부대가 있는데, 아군이 기습적으로 도로를 끊어 이들을 포위했다. 만약 적의 지원 부대가 둘 중 한 부대만 구출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두 부대는 서로 협력해 저항하기보다는 동시에 흩어져 달아날 것이다.
적이 B지역을 방어하고 있는데, 아군이 A라는 도시를 공격하려고 하면 A지역 출신의 군인들은 진에서 이탈해서 고향을 지키려 할 것이다. 아군이 A지역과 그쪽 출신 부대만 집요하게 괴롭히고 B는 방치하면 적은 서로 의심하고 분열할 것이다. 한니발은 이런 작전으로 로마인을 분열시켰다.
아군이 A의 곡창지대를 공격하려 하면 평소에 A와 반목하던 B는 구원병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적군의 사회 구조와 갈등 구조를 파악하면 물리적 요충만이 아니라 이런 내적 구조를 타격할 수 있다.
10편의 함병에서 언급한 조직의 분열도 있다. 장교와 부사관이 부족하면 병사들이 방황한다. 고참병이 많은 부대는 장교와 부사관이 전사해도 현지임관 등으로 대체할 병사들이 많지만 신병이 많은 부대일수록 공황에 잘 빠진다. ‘약한 적을 먼저 친다’는 병법의 원칙은 승리를 거두고 사기를 올리기 쉽다는 이유도 있지만, 적의 부대 내의 분열, 부대 간의 분열을 유도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3. 속도를 이용한 전술 원리
감히 묻건대 적의 대부대가 정돈해 곧 도달할 것 같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 그 답은 이렇다.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곳을 먼저 탈취하면, 아군이 주도하는 대로 적이 따르게 된다.
敢問: “敵衆整而將來, 待之若何?” 曰: “先奪其所愛, 則聽矣.”
용병의 정수는 속도다. 적이 아직 미지 못한 틈을 타서 적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길을 경유해 적이 경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는 것이다.
兵之情主速, 乘人之不及, 由不虞之道, 攻其所不戒也.
용병의 정수는 속도라는 이 통찰은 『손자병법』에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서양에서도 나폴레옹 시대 이전에 이미 『손자병법』을 번역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현대까지도 동서양 장군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고대의 병서임에도 현대전에서까지 존중받은 결정적 요인은 손자가 병서 곳곳에서 속도를 이용한 전술 원리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손자가 살았던 시대는 분열과 반목이 횡행했다. 한나라의 군대는 여러 반목하는 집단과 거들먹거리는 귀족 집단의 군대 연합체였다. 손자는 그런 시대를 살았기에 분열의 위력에 일찍 주목했고, 이를 전술에 적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열의 수단으로 속도와 기동을 제시한 것은 놀라운 통찰이다. 당시는 중원에 아직 기병이 등장하지도 않았고, 전차는 활용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기병은 유목민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도 손자는 기병전이 가능할 때나 상상할 수 있는 개념인 속도의 전술을 이론으로 전개시켰다. 이런 통찰력이 『손자병법』의 진정한 생명력이다. 전략·전술의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손자처럼 시대를 뛰어넘어야 한다. 작은 변화의 가능성에서 미래를 좌우할 거대한 힘의 징조를 찾아내는 것이다.
4.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환경 조성
타국에서 전쟁하는 방법은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깊이 들어가 생존을 위해 하나가 되어 싸우면 적이 이기지 못한다. 깊이 들어가게 되면 풍요로운 들판을 약탈할 수 있으므로 삼국의 식량이 풍족해진다. 병사들을 휴식시키고 피로하지 않게 해서 기운을 모으고 힘을 축적한다.
凡爲客之道: 深入則專, 主人不克. 掠於饒野, 三軍足食. 謹養而勿勞, 倂氣積力,
병사를 이동시킬 때는 계략을 사용해 적이 예측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군을 이동할 수 없는 곳에 투입하면 병사들은 죽을지언정 달아나지 않을 것이다. 죽고 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 군사들은 죽을 힘을 다해 싸우게 된다. 군사들은 빠져나올 곳이 없는 곳에 들어가면 두려워하지 않는다. 벗어날 길이 없으므로 단절해서 견고해진다. 적진 깊숙이 들어가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으므로 싸우지 않을 수 없다.
運兵計謀, 爲不可測. 投之無所往, 死且不北. 死焉不得, 士人盡力. 兵士甚陷則不懼, 無所往則固, 深入則拘, 不得已則鬪.
그러므로 적지에 깊숙이 들어간 군대는 훈련시키지 않아도 경계하게 되고 요구하지 않아도 찾아서 얻어낸다. 포상을 약속하지 않아도 친해지고, 명령을 가하지 않아도 신뢰하게 되며, 길조와 흉조에 얽매이지 않고 죽을 때까지 맡은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是故其兵不修而戒, 不求而得, 不約而親, 不令而信. 禁祥去疑, 至死無所之.
아군 병사들이 재물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재물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며,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은 오래 사는 일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다. 전투 명령을 내리는 날이면 사졸들 중 앉은 자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고, 드러누운 자는 두 줄의 눈물이 턱 밑에서 교차한다. 벗어날 수 있는 지역에 투입된 자는 전제(專諸)【사마천(司馬遷, BC145?~BC86?)의 『사기(史記)』 「자객 열전」에 수록된 용사다. 오나라 공자 광은 오나라 왕 요와 왕위를 다투고 있었다. 이때 오자서가 전제를 공자 광에게 소개해 부하로 삼게 했다, 공자 광은 술자리를 마련하고 요를 초청했다. 전제는 요리사가 되어 왕에게 생선 요리를 올렸는데 생선의 배에 비수를 감췄다가 왕을 찔러 죽였다. 전제는 경호원에게 바로 살해되었지만 공자 광은 왕이 될 수 있었다. 그가 오나라 왕 합려(闔閭, ?~BC496)다. 손자는 합려가 왕이 된 후 그에게 등용되었고 오자서와 함께 초나라·월나라와 싸웠다. 손자가 전제를 예로 든 것은 당시 오나라 사람들에게 그가 생생하게 기억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와 조귀(曺劌)【전제와 마찬가지로 「자객 열전」에 기록된 노나라 사람으로, 노장공에게 등용되었다. 강국인 제나라가 노나라를 압박해 땅을 떼어받으려 했을 때 조귀는 조약을 맺는 자리에 비수를 품고 들어가 제환공을 위협해서 땅을 돌려받았다. 손자는 제나라 출신이었으므로 조귀의 고사에도 역시 익숙했을 것이다.】같은 용맹을 발휘한다.
吾士無餘財, 非惡貨也; 無餘命, 非惡壽也. 令發之日, 士卒坐者涕霑襟, 偃臥者淚交頤. 投之無所往者, 諸劌之勇也.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병사들이 최선을 다하고, 조직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적이 우리를 침공했을 때와 우리가 적국을 침공했을 때, 병사들의 동기와 의지는 다르다. 손자는 이런 점을 고려해서 정복 군대가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환경에 관해 거론한다.
적진에 깊이 들어가면 성취하고 얻을 것도 많지만, 퇴로는 멀고 적에게 포위되어 사지에 몰릴 가능성도 커진다. 손자는 이 모순된 조건에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나누지 않는다. 모든 조건, 장점과 단점이 최선의 결과에 기여하게 하라고 말한다.
진취적인 집단은 모험을 할 줄 아는 집단이다. 1등 기업, 세계적인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궁지와 좋은 보수만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적진 깊이 들어가는 것을 기대하고 환영한다. 1등 기업 선호에는 그 반대의 이유도 있다. 직장생활을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전자는 회사를 살리고 후자는 회사를 망친다.
그렇다고 후자의 기대를 경멸하지 말고 그들을 분발시킬 수 있는 요소를 찾아야 한다. 안정 지향형 사원, 적국에 깊이 진공하기를 무서워하는 병사의 공통된 심리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다. 손자는 사람을 개조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이용하라고 조언한다. 최악의 상황에서 스스로 분발해서 싸우게 한다. 그런 전투를 벌이다 보면 변한다. 끝내 변하지 않는 병사도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병사들에게 또 다른 자극과 교훈이 된다. 스스로 깨닫는 과정만큼 훌륭한 교육은 없다. 사지에서 사투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병사들은 이렇게 변한다.
‘적지에 깊숙이 들어간 군대는 훈련시키지 않아도 경계하게 되고 요구하지 않아도 찾아서 얻어낸다. 포상을 약속하지 않아도 친해지고, 명령을 가하지 않아도 신뢰하게 되며, 길조와 흉조에 얽매이지 않고 죽을 때까지 맡은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손자의 이 말은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 사지에서 싸우면 이렇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이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위기에 몰렸을 때 병사들의 대응은 두 가지다. 적에게 항복하거나 손자의 말처럼 변한다. 아무리 신병들이라도 사전에 준비된 부대만이 위기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한국전쟁 당시 이천-원주 라인에서 중공군과 대치하던 미군은 중공군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두 개 소대를 정찰조로 내보냈다. 정찰대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남방 쌍굴터널 근처에서 중공군의 습격을 받았다. 생존자들은 간신히 좁은 능선 위로 올라갔다. 포위한 적과 사투를 벌이며 가까스로 하루를 버렸다. 밤이 되자 몇몇은 도주했다, 어떤 병사가 항복하자고 말했다. 고참 중사가 단호하게 잘랐다. 두 명의 소대장 중 전투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중위는 부상으로 지휘를 할 수 없었지만, 신참 소대장 미첼(James Mitchell) 중위는 굳건한 항전 의지를 보였다. 이렇게 끝까지 버틴 덕에 소대 생존자들은 구출될 수 있었다.
과거부터 현대까지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단호한 리더십을 보이는 지휘관, 일부 노련한 병사, 전투 경험은 없어도 군인의 자세와 부대에 대한 긍지가 심어진 병사가 있는 부대는 싸우면서 성장한다. 이런 자원을 배합하는 것도 조직의 중요한 원리다.
조직에 불만이 많고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도 조직과 단체정신에 대한 기본적 공감이 있는 사람과 조직을 악으로 보거나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로 무장한 사람으로 나뉜다. 전자에게는 손자가 말한 체험을 할 기회를 조성해주어야 한다. 모든 구성원 이하, 변화와 발전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후자로 인해 조직이 더 깊은 곳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게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5. 목표달성을 위해 하나가 되는 군대
용병을 잘하는 자를 비유하자면 솔연(率然)과 같다. 솔연은 상산(常山)에 있는 뱀이다. 그 머리를 치면 꼬리가 달려든다. 그 꼬리를 치면 머리가 달려든다. 그 허리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달려든다. 군대를 솔연처럼 움직이게 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 원래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하는 사이다. 그러나 그들이 한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풍랑을 만나면 서로 돕기를 왼손과 오른손처럼 하게 된다.
故善用兵, 譬如率然. 率然者, 常山之蛇也, 擊其首則尾至, 擊其尾則首至, 擊其中則首尾俱至. 敢問: “兵可使如率然乎?” 曰: “可.” 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遇風, 其相救也, 如左右手.
그런 까닭에 말을 묶어두고, 수레를 파묻어 결사의 각오를 하는 것은 믿을 것이 못된다. 전군을 한 사람같이 용감하게 만드는 것은 다스리는 방법에 달려 있다. 강건한 자나 유약한 자나 모두 싸울 수 있게 하는 것은 지리에 달려있다. 그런 까닭에 용병을 잘하는 자가 한 사람의 손을 이끌 듯 군대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병사들이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是故方馬埋輪, 未足恃也. 齊勇若一, 政之道也, 剛柔皆得, 地之理也. 故善用兵者, 攜手若使一人, 不得已也.
장수가 지휘하는 법은, 생각을 깊고 조용히 해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다스림은 공정해야 한다. 능히 사졸들의 눈과 귀를 어리석게 만들어 아는 것이 없게 한다. 수시로 일을 바꾸고 계획을 변혁해서 적이 알지 못하게 한다. 주둔지를 바꾸고 가던 길을 우회해서 적이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하게 한다.
將軍之事: 靜以幽, 正以治. 能愚士卒之耳目, 使之無知. 易其事, 革其謀, 使人無識. 易其居, 迂其途, 使人不得慮.
장수가 병사들과 전투 날짜를 잡을 때는 마치 사람을 높은 데 오르게 하고 사다리를 떼어버리는 것처럼 한다. 장수가 사졸들과 더불어 적국의 땅에 깊숙이 들어가서 전투태세에 돌입할 때는 배를 불태우고 가마솥을 깨뜨린다.
帥與之期, 如登高而去其梯. 帥與之深入諸侯之地, 而發其機, 焚舟破釜,
마치 목동이 양 떼를 몰 듯 가고 오지만 군사들은 그가는 곳을 알지 못한다. 삼국의 군사를 모두 모아 험지로 투입한다. 이것이 장수의 일이다. 장수는 구지(九地)의 변화나 지형과 상황에 따라 응용해서 적용하는 법과 사람의 심리를 깊이 통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若驅群羊而往, 驅而來, 莫知所之. 聚三軍之衆, 投之於險, 此謂將軍之事也. 九地之變, 屈伸之利, 人情之理, 不可不察也.
손자는 가상의 동물인 솔연을 뱀이라고 했는데, 묘사를 보면 강력한 이빨까지 갖춘 전갈 같다. 솔연의 정체가 무엇이든 손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대는 여기서 언급한 그대로다. 장병들이 개인의 이해관계를 잊고 목표 달성을 위해 하나가 되어 싸우는 군대다. 솔연처럼 머리를 공격하면 꼬리가 달려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달려든다. 지휘관, 부대와 동료에 대한 신뢰, 군인정신, 직업정신이 한데 어우러져야 가능한 행동이다.
솔연 같은 조직은 모든 군대의 이상이다. 보통의 조직은 꼬리가 위험하면 머리는 물러서고, 머리가 위험하면 꼬리는 궤주(潰走)한다. 솔연 같은 군대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던 전술가들은 특별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엘리트 부대를 창설했다. 머리와 꼬리, 또는 중앙에 특별한 엘리트 부대를 배치한다. 머리가 위험하든 꼬리가 위험하든 엘리트 부대가 구원한다. 그러면 머리와 꼬리도 엘리트 부대의 뒤를 따르거나 최소한 도주하지는 않는다
기업에서도 큰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테스크포스(task force, TF)를 꾸린다. TF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전 조직을 솔연처럼 만들 수가 없어서 TF를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방식은 효과적이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머리와 꼬리를 엘리트가 구원하는 것과 조직이 솔연이 되어 머리와 꼬리가 서로 구원하는 것은 염연히 다르다. 엘리트 집단의 활약은 고맙기도 하지만 시기와 질투를 낳고, 타성을 키운다. 엘리트 집단은 광야에서 소리쳐서 조직에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조직을 대신해주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솔연처럼 싸우는 군대와 붕괴하는 군대
죽기살기로 최선을 다해 싸울 자세가 되어 있는 군대를 거느린 장수는 돌발 상황, 위기 상황을 즐기고 활용한다. 역경과 고난이 이들의 에너지 레벨을 높이고 더욱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독일이 소련 침공을 시작했던 초기인 1941년 9월, 독일군 490연대가 레닌그라드 교외에서 강력한 소련군의 방어진지에 봉착했다. 소련군은 지형을 정확히 파악하고 고지에 요새를, 중간중간에 강력한 벙커와 보조진지를 구축해 놓았다. 병력도 연대 규모로 부족하지 않았다. 독일군은 적진의 상황을 알 수 없었고, 지도는 부정확했다. 490연대에게 이 고지는 어둠 속에 놓인 절지였다.
490연대의 대대장들은 한 가지 조건에 승부를 걸었다. 소련의 대지는 너무나 광활해서 독일군은 돌아갈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병사들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싸울 자세가 되어 있었고, 솔연처럼 파트마다 훈련이 잘되어 있었다.
전위의 3대대에서 전투정찰 소대를 파견했다. 정찰소대의 임무는 지형을 파악하는 동시에 발견하는 소련군 벙커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소대마다 화염방사기조와 성형장약을 소지한 폭파조를 투입했다.
소대는 지형지물을 이용해 은폐하며 벙커에 접근했다. 벙커를 발견하면 바로 포대에 좌표를 전송해 파괴했다. 포격을 피한 곳을 발견하면 망설임 없이 폭파조를 투입해 파괴했다. 독일군은 잘 훈련된 덕에 낯선 지형이라도 지형지물을 이용한 은폐, 엄폐에 능숙했다. 폭파조 역시 마찬가지여서 벙커 하나 해치우는 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무척이나 신속한 기동과 파괴에 소련군은 자신들의 벙커가 날아가고 순식간에 방어선이 붕괴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독일군은 정찰, 포격 지원, 폭파, 엄호, 인접 부대 지원을 모두 소련군보다 빠르고 능숙하게 했다. 소련군은 병력은 많았지만, 독일군의 속도와 기동에 완전히 밀렸다. 돌발 상황이 벌어지면 사기가 급격히 저하되고, 벙커 하나가 파괴되면 독일군에 맞서기는커녕 공황에 빠져 도주했다.
이것이 솔연처럼 싸우는 군대와 그렇지 않은 군대의 차이다. 다만 이런 차이는 오래가지 못했는데, 해가 바뀌자 소련군도 솔연 같은 부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결사의 각오와 분주파부
손자는 수레를 파묻는 일 같은 괜한 의식을 벌이면서 결사전의 각오를 하는 행동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말한다. 요즘은 덜해졌지만 궐기대회를 좋아하던 우리의 과거를 부끄럽게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분주파부(焚舟破釜)는 칭찬한다. 분주파부는 강을 건너면 배를 불태우고 가마솥은 부숴 버리는 행동이다. 돌아갈 배는 없고, 식사를 해결할 가마솥도 없으니 적을 무찌르고 적성을 함락해서 끼니를 때워야만 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수레를 파묻는 것이나 가마솥을 부수는 것이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 차이점을 손자는 병사의 관점에서 보라고 설명한다. 병사는 인간이고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결사전의 이벤트는 지휘관 입장에서는 비장해 보이지만 병사들 스스로를 절박하게 만들지 않는다. 약간의 감정적 흥분은 생기겠지만, 전투 현장에서 병사들에게 요구하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반면 분주파부는 병사들 개개인에게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시키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사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결단과 공감을 요구한다.
진나라 말기 주변국의 군웅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호랑이는 늙어도 호랑이다. 진나라는 만만치 않았다. 진나라 명장 장한(章邯, ?~BC204)은 반란군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초나라의 항량(項梁, ?~BC208)군을 격파하고, 거록에서 진여(陳餘, ?~BC205)의 조나라 군대를 포위했다. 항량의 조카 항우(項羽, BC232~BC202)는 항량이 전사했고 진여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출병을 결심한다.
초군을 거느리고 강을 건넌 항우는 밥을 지어 먹을 가마솥을 깨트리고 타고 온 배를 강에 가라앉혔다. 전군에게 사흘 치 식량만을 휴대하게 했다. 돌아갈 배도 없고, 밥을 해 먹을 식량도 솥도 없다.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사흘 안에 적진을 함락하는 것뿐이다. 절박해진 초나라 병사들은 사흘 동안 아홉 번의 전투를 강행하는 초인적인 전투력을 발휘해 진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이것이 유명한 파부침주의 고사다.
항우의 ‘파부침주’와 손자의 ‘분주파부’는 거의 같은 뜻이다. 한신(韓信, ?~BC196)의 배수진에 관한 고사도 비슷한 의미지만 보통 배수진은 방어 상황을, 파부침주는 공격군의 상황을 말한다.
파부침주나 배수진이 항상 같은 효과를 주지는 않는다. 지휘관은 방법을 무조건 베껴서는 안 된다. 병사들의 상황에 대입해서 그 방법이 효과를 가져다줄지, 역효과를 불러올지 판단해야 한다.
강감찬의 고려군이 거란군을 격파한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은 배수진이란 형태에 집착하다가 오히려 전의를 상실했다. 거란군은 고려 땅에서 탈출 중이었고, 국경까지는 하루가 남았다. 극도로 지치고 굶주렸지만, 전투 경험은 풍부한 최정예부대여서 손자가 말한 결사전의 공감대는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거란군은 방어에 유리한 언덕의 비탈을 포기하고 스스로 평지로 내려와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병사들에게 결사항전의 의지가 생기기는커녕 불안감이 치솟았다. 이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강력한 비바람이 거란군을 향해 몰아쳤다. 고려군은 기세가 올라 함성을 울리며 돌진했다.
자신감이 넘쳤을 때의 거란군이라면 이 정도 기상 이변은 이겨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듭된 작전 실패로 지휘관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을 쳤고, 스스로 생지를 버리고 사지로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날씨마저 불길해지자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배수진의 잘못된 사용법 중에 하나다.
손자가 병사들을 몰아갈 때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하고, 막상 전투가 벌어진 지역에 도달하면 스스로 분발하게 하라고 말한 이유가 행군 중에 우리가 사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지휘관에 대한 불만이 싹트면 위기 상황에서 단합하고 분발하기는커녕 리더를 잘못 만난 불운을 탓하며 체념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그런 생각을 떠들면서 군중을동요시키는 사람이 꼭 있다. 아무리 민주적인 군대라고 해도 건의하는 내용과 형식은 갖추고 지켜야 하고, 내어놓을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구분해야 한다.
6. 적국에 들어간 군대는 깊숙이 들어가라
적국에 들어간 군대는 적지 깊숙이 들어가면 마음이 하나로 통일되고, 얇게 들어가면 산만해진다. 나라를 떠나 국경을 넘어 들어간 곳은 절지라고 한다. 사방에 도로가 트인 곳을 구지라고 한다. 적지 깊숙이 들어간 곳을 중지라고 하며, 얕게 들어간 곳을 경지라고 한다. 험한 곳을 등지고 좁은 통로를 앞에 둔 곳을 위지라고 한다. 탈출할 길 없는 곳을 사지라고 한다.
凡爲客之道: 深則專, 淺則散. 去國越境而師者, 絶地也; 四達者, 衢地也; 入深者, 重地也; 入淺者, 輕地也; 背固前隘者, 圍地也; 無所往者, 死地也.
그런 까닭에 산지에서는 장수가 병사들의 의지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경지에서는 병사들이 장군의 뜻에 속하게 해야 한다. 쟁지에서는 빨리 기동해 적의 후방을 공격한다. 교지에서는 수비를 신중하게 한다. 구지에서는 외교 관계를 굳게 결속한다. 중지에서는 아군의 식량을 확보한다. 비지에서는 행진을 빨리해 신속히 통과한다. 위지에서는 병사들의 탈출을 막고 군사들로 하여금 결사 분전하게 한다. 사지에서는 목숨을 버릴 각오로 싸울 것을 지시한다.
是故散地, 吾將一其志; 輕地, 吾將使之屬; 爭地, 吾將趨其後; 交地, 吾將謹其守; 衢地, 吾將固其結; 重地, 吾將繼其食; 圮地, 吾將進其塗; 圍地, 吾將塞其闕; 死地, 吾將示之以不活.
병사들의 심리는 포위를 당하면 방어하게 되고, 이길 수 없게 되면 싸우고, 위험이 지나치면 복종하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제후들의 속셈을 모르면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산림·험지·늪지의 지형을 알지 못하는 자는 행군할 수 없다. 적지에서 선발한 향도를 쓰지 않는 자는 지리의 이득을 얻을 수 없다. 이 네댓 가지 중 하나만 몰라도 천하의 패권을 다툴 군대가 될 수 없다.
故兵之情: 圍則禦, 不得已則鬪, 過則從. 是故不知諸侯之謀者, 不能預交. 不知山林·險阻·沮澤之形者, 不能行軍. 不用鄕導者, 不能得地利. 四五者, 不知一, 非霸·王之兵也.
지형에 관한 손자의 서술을 보면 A라는 지형은 좋고 B라는 지형은 나쁘고, 사지는 절대로 피해야만 한다라는 교훈으로 읽기 쉽다. 그런데 전쟁을 하면서 사지를 피할 수 있을까? 국경을 넘는 순간 모든 지형이 절지고, 사이다
손자의 본의는 지형에 따른 병사의 심리를 파악해서 역으로 이용하고, 적절한 전술을 택해서 불리한 지형을 이기는 지형으로 바꾸라는 말이다. 사지를 피하는 대신, 사지를 이용한다는 발상의 궁극체가 공정부대다.
현대전에서 항공기와 낙하산이 등장하자, 이를 이용해서 적의 후방을 습격하고 사지에 떨어졌다는 각오로 맹렬하게 싸우도록 만든 부대가 공정부대다. 독일이 창설한 공수부대인 팔슈름야거는 개전 초의 벨기에 침공과 1942년 크레타섬 공격 작전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무엇이든 최초의 시도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팔슈름야거는 경장비만 휴대할 수 있었고, 목표지점으로 바로 강하하다가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충격을 받은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는 크레타 전투 후 팔슈름야거는 존속시켰지만 공정 작전을 금지했다. 팔슈름야거는 낙하산을 버리고, 정예 지상군 부대로 활동하게 된다.
반면 영국과 미국은 팔슈름야거에 자극을 받아 자신들도 서둘러 공정부대를 창설하고 전술을 발전시켰다. 미국의 공정부대인 82, 101 사단은 아프리카에서는 실패했지만, 그 경험을 토대로 오버로드 작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벌지 전투에서는 두 공수사단이 공포에 질린 육군사단을 대신해서 포위망 안으로 걸어들어가 거점을 끝까지 사수했다. 사지에서 벌인 이들의 저항이 없었다면 독일군의 도박이 성공했을 수도 있었다.
백번의 훈련보다 한 번의 실전
한국전쟁 중에 급파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오산 지역에서 처음으로 북한군과 조우했다. 언덕과 도로를 차단하고 북한군을 기다리는 스미스 부대를 향해 북한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진격해왔다. 도로변에 있던 참호에는 하필 신병이 두 명 있었다. 탱크가 다가오자 근처에 있던 고참병이 그들을 향해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얼어붙은 신병들은 꼼짝하지 못했다. 탱크가 그들을 밟고 지나갈 때까지.
아무리 강하게 단련된 병사라 할지라도 진짜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실전을 겪어봐야 한다. 병사가 첫 전투에서 생존하는 비율은 변수가 워낙 많아서 일괄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전사자의 대부분은 언제나 신병이다. 한 번이라도 실전을 제대로 겪어본 소대와 그렇지 않은 소대의 전투력은 10배 이상의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아무리 용감한 병사라도 첫 전투에서는 공황 상태에 빠질 확률이 높고, 적어도 절반 이상이 공황에 빠져 팀워크가 마비된다. 처음부터 남다른 전사가 간혹 있긴 하지만, 최소한 소대원의 60~70퍼센트는 정신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조직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한 번이라도 실전을 겪어본 병사들의 사상률은 뚝 떨어진다. 과거에 어떤 영국군 소대장의 일기가 소개된 적이 있는데 ‘그날 이후 우리는 비로소 소년에서 군인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아마도 전쟁에 참전해본 장병들의 일기를 뒤져보면 유사한 문장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눈과 머리로 익히는 공부, 안전한 교육만으로는 결코 완성된 수준에 이를 수 없다. 어떤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군인이든 실패하고 상처를 입고, 때로 목숨까지 위험할 수도 있는 실전을 겪어야 한 사람의 온전한 병사가 된다.
리더는 이런 과정을 최대한 슬기롭고 효과적으로 넘길 수 있는 조직 구성 원리를 찾고, 현장에서 병사들을 지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첫 전투에서 생존율을 높이는 항법 가운데 하나가 부사관과 고참병에게 적절한 재량권을 주고 그들의 경험을 신병들에게 전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의 군사 전문가는 부사관 제도의 효율성이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력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군은 부사관과 고참병의 실전경험을 훈련과 전투에 최대한 반영하려고 했다.
그런 시스템 중 하나가 훈련소를 수료한 병사들을 전선에 투입하기 전에 전투 경험자에게 맡겨서 그들의 노하우를 마음껏 전수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독일군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는데, 병력 소모가 극심하고 신병을 하루빨리 전선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런 과정을 가능한한 준수했다. 장교들도 전투경험자를 존중하고, 장교의 권위는 지키되 현장에서 적절한 업무분담이 되도록 유도했다.
반면 일본군 장교들은 부사관을 잠재적인 라이벌로 간주했다고 한다. 그들을 견제하고 억압했으며, 명령 전달자 정도로만 활용했다.
부사관 같은 중간관리자를 잘 양성하고 활용한다는 것은 조직의 권한 위임이 잘 되어 있고 다양한 인재들이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활용할 시스템이 구성되어 있으며, 개개인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부사관이나 고참이 병사들의 군기나 잡는 심술 궂은 존재로만 각인되고 있다면 조직은 경직되고 이기주의가 만연하며 공은 상사가 가로채고 인재는 억압하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7. 크고 강한 나라를 공격하는 방법
패자(覇者)의 군대【춘추시대의 강자였던 주나라가 실권을 상실함에 따라 제후 중의 강자가 제후국 회의를 주관하고 실질적인 통치자 역할을 했다. 이를 패자·패왕이라고 했다. 춘추시대에 패권을 차지했던 다섯 명의 제후를 춘추5패라고 한다.】가 자기보다 큰 나라를 정벌할 때는 그 나라가 미처 군대를 집결시킬 여유가 없도록 신속하게 공격하고, 그 나라에 위압을 가해 주변국과 협력을 맺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천하와 외교관계로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주변국을 향해 권력을 키우려 하지 않고 자신의 힘만 믿어도 위세가 적에게 가해진다. 고로 그 나라의 성을 빼앗을 수 있고, 그 나라를 파멸시킬 수 있다.
夫霸·王之兵, 伐大國, 則其衆不得聚; 威加於敵, 則其交不得合. 是故不爭天下之交, 不養天下之權, 信己之私, 威加於敵, 故其城可拔, 其國可隳.
손자가 활동했던 오나라는 춘추시대의 최대 강국인 초나라를 옆에 두고 있었다. 오나라가 패권을 차지하고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초나라를 제압해야 했다. 이 부분의 내용은 손자가 초나라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거나 이런 전술로 초나라에 승리한 뒤에서 서술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크고 강한 나라를 공격할 때 군대가 집결할 여유를 주지 말고 주변국과의 협력을 차단한다. 크고 강한 나라는 인구와 병력이 많지만, 그만큼 땅이 넓고 병력 집결에 시간이 걸린다. 강한 자는 평소에 따르는 자가 많다. 강자가 유리하다고 생각되면 강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너도나도 도움을 주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강자를 공격할 때는 그들의 추종 세력도 끊어야 한다.
강대국은 장점이 많다. 이 말은 단점도 많다는 말이 된다. 영토가 넓고 병력이 많은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추종 세력이 많으면 이해관계도 복잡하고, 속으로는 불만인 나라도 많다. 강대국이 조금만 불리해지면 순식간에 등을 돌릴 것이니, 속국 간에 이간질도 쉽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서쪽의 영국과 프랑스 동쪽의 러시아와 양면 전쟁을 벌인다는 엄청난 전략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러시아의 느린 동원력을 이용한 시간차 공격이었다.
독일의 전략은 성공 일보 직전까지 갔지만, 외교로 적을 고립시키지 못해서 결국 실패했다. 러시아 참전에 6주가 걸릴 거라는 예상을 깨고 프랑스의 간절한 요청으로 인해 러시아가 4주 만에 병력을 이동시켜 독일을 침공했다. 러시아군은 타넨베르크에서 대패했지만, 프랑스는 구원을 받았다.
강대국은 느리고 둔해도 매사에 중량이 있다. 한 가지 장점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독일 참모부가 손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행했더라면 제1차 세계대전의 향방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8. 법에 얽매이지 않기
법에 없는 상을 내리고, 전례에 없던 명령을 내려 삼군을 다스리는 것을 한 사람을 다스리는 것같이 한다. 말로써 다스리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어 다스리며 해로움을 주어 다스리지 않고 이익을 주어 다스린다.
施無法之賞, 懸無政之令, 犯三軍之衆, 若使一人. 犯之以事, 勿告以言. 犯之以利, 勿告以害.
병사들은 죽음의 땅에 들어가 본 뒤에야 생존하게 되며, 사지에 빠져본 뒤에야 생존력을 가지게 된다. 병사들이 피해를 입을 상황을 겪어본 뒤에야 능히 승패를 이룰 수 있다.
投之亡地, 然後存; 陷之死地, 然後生. 夫衆陷於害, 然後能爲勝敗.
사회나 조직을 유지하려면 법을 지키고 자의적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법에만 의존하면 융통성이 사라지고 경직된다. 모순되는 말 같지만 법을 잘 지키고, 부조리가 없는 조직이 법 규정에 기계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융통성을 더 발휘한다. 법과 규칙을 잘 지키는 행동은 법과 규칙을 묵수(墨守)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융통성과 맞춤형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전쟁은 기존의 세계가 다른 세계로 이행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각이 변동할 때 화산이 터지고, 지진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전 세계에서 만든 법과 규칙은 효용성이 떨어지고 어떤 때는 방해가 된다. 안정되고 틀이 잘 잡힌 조직일수록 원활하게 작동하는 모든 규정이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긴장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라가 조금씩 국가의 모습을 갖추고,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해나가자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이 등장했다. 기존 특권층이 더욱 공고하게 뭉쳐 늘어난 이익을 향유하자는 주장과 특권을 개방하고 확대해서 진취적인 집단과 인재를 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진흥왕(眞興王, 534~576) 대에 신흥 종교집단에 빙의해서 화랑제도를 만든 이유는 특권층의 눈을 피해 인재 발굴 기구를 운영하려는 의도였다. 이 제도를 통해 지배층 중에서 혁신적 인재들이 인맥을 만들고, 눈에 띄는 인재를 전례를 뛰어넘어 등용함으로써 삼국항쟁에서 승리했다. 화랑제도가 성공했던 이유는 세속오계(世俗五戒), 임전무퇴(臨戰無退) 같은 구호나 규율 덕분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이유다.
9. 의도를 간파하라
용병하는 법은 적의 의도를 따르며 살피는 데 있다. 적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1,000리를 달려 적장을 살해한다. 이것을 교묘함으로 일을 성사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故爲兵之事, 在於順詳敵之意, 幷敵一向, 千里殺將, 此謂巧能成事者也.
이런 까닭에 군대의 동원을 선포하는 날이면 국경의 관문을 막고 증명을 꺾어버려 적 사자들의 통행을 막는다. 왕은 정청에 높이 올라 백성을 격려하고, 적의 죽을 죄를 성토한다. 적이 관문을 열고 담으며 전쟁을 치를 의지를 보이면 전력을 다해 뚫고 들어가 먼저 적이 중시하는 곳을 탈취한다. 그다음에 결전의 날짜를 감추고 은밀히 적의 태도에 따라주며 움직이다가 결전을 벌인다.
是故政擧之日, 夷關折符, 無通其使; 勵於廊廟之上, 以誅其事. 敵人開闔, 必亟入之, 先其所愛, 微與之期. 踐墨隨敵, 以決戰事.
이것은 처음에는 마치 처녀처럼 수줍고 조용하게 움직이다가 적이 빈틈을 보였을 때, 도망치는 토끼처럼(빠르게) 달려 들어가면 적군은 아군에게 저항도 못 해보고 패배할 것이다.
是故始如處女, 敵人開戶, 後如脫兎, 敵不及拒.
『삼국지』의 제갈량(諸葛亮)처럼 앉은 자리에서 상대의 의도를 알아내는 건 소설에서나 가능하다. 그런 예측이 정확하더라도, 주관적인 판단으로 결행하는 일에는 위험이 따른다. 어떤 무술가가 한 말처럼,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는 방법은 대련밖에 없다.
상대의 의도를 알아내려면 적당한 희생을 감내하고 적과 부딪쳐 보거나 적의 의도대로 움직여주면서 탐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사전에 충분한 가설을 세우고 확신이 들 때 신속하게 결정적인 타격을 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반대편 입장에서는 일이 너무 잘 풀리면 의심해야 한다. 상대가 내 뜻대로 순순히 움직여줄 때는 정말로 조심해야 한다. 국가 간의 전쟁에서 멍청한 상대를 만나는 건 보기 드문 행운이다. 항상 상대의 수준을 정상 이상으로 전제하고, 적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콤플렉스가 있고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일수록 어떻게든 상대를 무시함으로써 자기 자존감을 높이려 한다. 그런 사람이 대부분 적에게 더 잘 속아 넘어간다.

예상치 못한 기습은 언제나 효과적이다
선전포고를 하는 날 관문을 막고 적의 사자를 구류해서 정보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상대하는 적이 도시나 작은 성 정도라면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나라와 제나라 같은 대국끼리 전쟁할 때 사자나 외교관을 구속하는 것은 기습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전면전을 벌인다면 전국에 동원령을 내려야 한다. 병사를 모집하는 데만 몇 주는 걸린다. 노출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전국시대의 대국이라고 하면 첩보를 사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이미 스파이를 심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면 손자는 왜 이런 극적인 선전포고 장면을 구상했을까? 이것은 이벤트의 성격이 짙다. 1편에서 전쟁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이 걸린 중대사라고 했다. 전쟁을 시작하려면, 이 정도 이벤트는 있어야 국민도 실감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갖는다. 전쟁 초기에 국민의 사기 진작에도 효과가 크다. 이런 이벤트와 사기 진작 사이에 논리적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 쌍의 연인이 결혼하는데, 가난하든 부유하든 화려하든 검소하든 한쪽이 자신들만의 아름답고 인상적인 결혼식을 만들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결혼에 대한 의지나 사랑 고백의 진정성에 의심이 들 것이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아주 무미건조하고 담담하게 전쟁을 시작한다면 국민들은 국가의 의지나 전쟁 수행 능력, 승리에 대한 자신감에 의문이 생긴다. 형식과 의례가 곁치레에 불과하다고 해도 사람들이 겉치레를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간은 논리적이지 않다. 일상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큰 사건일수록 감성에 의지해 판단한다. 리더가 이벤트를 남용해서 진실을 속여서도 안 되지만, 필요할 때는 대중의 감정을 이해하고 충족시킬 줄도 알아야 한다.
처녀처럼. 토끼처럼
1780년 미국 독립전쟁이 절정에 이르고 있을 무렵, 영국군 사령관 콘월리스(Charles Cornwallis, 1738~1805)가 찰스턴 항구로 상륙해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장악했다. 미군은 이곳을 탈환하기 위해 허레이쇼 게이츠(Horatio Gates. 1727~1806) 장군의 부대를 내려보냈다. 영국군 장교 출신인 게이츠는 게릴라전을 혐오했다. 영국 신사답게 정면 대결을 벌인 그는 보기 좋게 패한다.
대륙회의는 게이츠를 해고하고 너대니얼 그린(Nathanael Greene, 1742~1786)으로 대체했다. 그린은 게릴라전으로 영국군을 물고 늘어졌다. 제대로 된 승리는 없었지만 계속해서 영국군을 괴롭혔다. 끈질긴 게릴라전이 지겨워진 콘월리스는 끝장을 보는 소탕전으로 승부를 내려 했다. 그는 그린의 주력군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그린은 도주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노스캐롤라이나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추격전이었다. 그린은 싸울 생각을 않고 악착같이 도주했다. 아직 대륙의 4분의 1도 개척되지 않은 광활한 미국 땅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콘월리스는 포기하지 않았지만, 도망치는 데는 무장이 형편없는 미국군이 유리했다. 기나긴 추격전 끝에 지친 콘월리스는 미군을 붙잡으려면 영국군도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병사들에게 최소한의 장비만 유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말은 영국군을 미군과 똑같은 상태로 만든다는 말이었다.
1,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추격전으로 영국군은 기진맥진했다. 텐트도 부족해 야지에서 자야 했고 보급마저 원활하지 않아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그린이 노리던 상황이었다. 도망치면서도 비밀리에 병력을 계속 보충한 그린은 습격의 기회를 포착했다.
1781년 3월 15일, 노스캐롤라이나 길퍼드 코트 하우스에서 그린은 영국군을 포위하고 공격했다. 영국군은 미국군을 격퇴했지만, 사상자가2배였다. 게다가 전투의 절정에서 양군이 백병전을 벌일 때 콘월리스는 패배가 두려워 영국군 포병에게 무차별 포격을 지시했다. 한데 뒤엉켜 싸우고 있는 병사들 사이로 포탄이 작렬했다. 이 명령은 콘월리스의 신망과 리더십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콘월리스는 자신이 이겼다고 선언했지만, 전투로 입은 손상이 너무 커서 두 개의 캐롤라이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영국군 사령관 콜월리스는 2년간 추격하던 그린의 군대가 길퍼트 코트 하우스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서둘러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민병대를 포함해 3열로 방어하던 미군과의 접전 끝에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나서야 상처뿐인 승리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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