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봄이 부르던 날에 강연장에 모인 사람들
금요일 오후부터 날씨가 확 풀리기 시작하더니, 이젠 두꺼운 외투보단 가벼운 옷차림, 장갑보단 맨손이 훨씬 어울리는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 이런 계절이면 당연히 몸도 맘도 불어오는 봄바람 따라 살랑살랑 요동칠 수밖에 없다. 이럴 땐 어느 곳이든 떠나 한껏 놀고 싶고 어떤 것에도 미련을 두지 않고 푹 쉬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나는 한낮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경기소리전수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2시부터 강의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토요일이고 봄이 어느덧 가장 가까이 왔다고 느껴지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에 봄나들이가 아닌 강의를 들으러 간 것이니, 의아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을 보다가 몇 번 눈에 띄어 마음이 동하던 끝에 가야겠다고 맘을 먹었기에 가게 된 것이다.
▲ 이 글을 봤을 때, 마음에 미동이 일었다.
아빠들을 위한 강연장에서 드러날 준규쌤의 무늬
이번 강의의 강사는 준규쌤이다. 준규쌤과는 사석에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며 조언을 얻고, 그걸 후기로 남기기까지 했으니 어느 정도 잘 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강의를 들으러 온 이유는, 사석에서 나누는 이야기와 대중 강연장에서 하는 이야기 사이엔 일정한 간극이 있어서 대중 강연장에서의 준규쌤의 무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달변가이고 아는 게 많아 몇 시간씩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2시간을 이끌어야 한다는 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무대의 압박을 이겨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까지 감수해야 되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준규쌤의 무늬는 이런 곳에서 더욱 자세히 드러날 것이라 보았고, 그래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더욱이 오늘 강연의 대상은 ‘아빠’들이기 때문에 흥미가 일었다. 준규쌤은 신호승쌤 외 몇 분과 ‘아빠학교’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데, 오늘 강연은 바로 그 단체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강의다. 단재학교에서도 학부모 상담을 할 때, 대부분 어머니들이 오신다. 아버지들은 바깥일로 바쁘기도 하지만, 거기엔 ‘자녀 교육은 엄마의 일’이란 관념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아버지들의 시간이 남더라도, “당신이 아이들에 대해 더 많이 아니까, 당신이 가서 상담해”라고 당당하게 말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아버지가 육아와 자녀교육에서 배제된 상황이 문제다’라는 인식이 이런 강연을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다. 준규쌤은 어떤 말을 할지 매우 궁금했다.
과천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었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엊그제까지 따뜻하게 입었던 외투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며 땀까지 나더라. 봄바람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대지를 대우며 생명의 씨앗을 피워낸다. 그처럼 봄바람은 자의식으로 꽁꽁 싸매진 마음에 빈틈을 만들며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그 때 한옥모양으로 만들어진 건물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오늘 강연이 있을 경기소리전수관이다. 장소를 정한 대엔 특별한 의미는 없겠지만, 왠지 전수傳受란 단어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들도 무언가를 ‘전하여 받고자하는 마음’으로 오는 것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 드디어 강의를 들으러 들어간다. 어떨지 매우 매우 기대된다.
날씨가 좋은 주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겠어?
요즘 무한도전은 ‘봄날은 온다-시청률 특공대’라는 특집을 통해 날씨가 풀려 토요일 저녁에 티비를 보지 않고 나들이를 가서 시청률이 떨어지기에,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코믹하게 다뤘다. 그때 ‘놀이공원의 입장료를 120만원으로 올린다’, ‘무도 다시보기의 가격을 62만원으로 올리자’ 등등의 얼토당토 않는 대책이 나왔지만, 황금 시간대에 강연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정말 그런 대책대로 했으면 좋겠네’라는 생각이 살짝 들 정도로 나들이 가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과연 이런 유혹들을 뿌리치고 몇 명의 사람들이 강연장에 모일까?
이번 강연에 참석하며 알고 있었던 내용은 준규쌤이 강사라는 것과 ‘아빠학교’라는 협동조합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강의라는 것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지는 몰랐다. 단순히 ‘문의: 더불어 가는 배움터길’이라 쓰인 포스터만 보고, 길학교 신입생 학부모를 위한 강연회인 줄만 알았다. 아무래도 하나의 학교만 대상이다 보니 적은 인원이 모일 것이고, 그러면 편안하게 얘기 나누듯 진행될 거라 짐작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건물에 들어가 강연장이 있는 지하에 내려가니, 들어가는 입구엔 주최 측에서 준비한 떡과 음료가 놓여 있고, 그 앞엔 몇 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더라. 떡을 받아 들어가서 보니, 장소는 생각보다 훨씬 컸지만 온 사람이 별로 없어 자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아직 1시 48분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많은 자리가 차긴 할까?’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 주말에 봄이 어느덧 곁에 다가온 시기에, 그것도 2시에 강연을 하다니.... 이거 이거 사람들이 오겠어~~~
날씨와 주말에 상관없이 모일 사람들은 모인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준규쌤이 오시더라. 그렇지 않아도 준규쌤은 아침에 부랴부랴 페이스북에 강연 내용과 관련 있는 내용을 ‘발작적(이건 동섭쌤이 주로 쓰는 표현인데, 그만큼 고민이 깊어질수록 어느 순간 톡 튀어나오듯 정리된다는 표현임)’으로 쓰셨는데, 그건 그만큼 밤새도록 고민이 깊었다는 것을, 그만큼 긴장을 하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준규쌤은 강연을 준비하는 그 순간을 ‘즐거운 고민을 하는 시간’이라 표현했는데, 거기엔 다양한 감정이 얽히고설켜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준규쌤에게 “오랜만에 대중 강연을 하시는 거네요. 오늘 어떤 분들이 오시는 거예요?”라고 물으니, “경인지역의 대안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건데, 아마 100명 정도 온다고 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 지금까지 했던 강연 중에 가장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인 셈이죠”라고 대답해주신다. 그쯤 되니 내가 봄나들이 운운하며, ‘이 자리가 꽉 차긴 하려나?’라고 했던 걱정이 ‘씨잘데기’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몇 명의 지인들만 의기투합하여 모이는 자리가 아닌, 일면식도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대중강연의 자리였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준규쌤에게도 나에게도 이 강연의 의미는 남다르게 느껴질 거라는 직감(?)이 들면서, 강연 중 어떤 마주침과 울림이 있을지 사뭇 기대되었다.
원래 강연은 2시부터였는데, 늦게 오시는 분들이 많아 20분 정도 지연되고서야 시작되었다. 점차 강연장이 차기 시작하더니, 강연을 시작할 땐 몇 자리만 빼곤 거의 꽉 찼으며, 끝날 땐 뒤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보통 어떤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 날씨 탓, 환경 탓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합리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오늘처럼 날씨도 좋고 주말이란 특수성까지 있음에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엔 사람들이 이렇게 만사를 제쳐두고 모이니 말이다.
▲ 강연장 밖의 모습. 푸짐한 간식과 많고 많은 사람들.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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