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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4. 새벽에 출발하며 울적한 심사를 표현한 장유의 한시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4. 새벽에 출발하며 울적한 심사를 표현한 장유의 한시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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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출발하며 울적한 심사를 표현한 장유의 한시

 

 

晨發板橋官路脩 새벽에 판교를 출발하니 관로는 아득하네.
客子弊衣風露秋 나그네의 해진 옷이 가을바람 맞고 이슬에 젖는다네.
寒蟲切切草間語 추위벌레들은 절절하게 풀 사이에서 울어대고
缺月輝輝天際流 조각만 환하게 하늘가로 흐르네.
馬上瞌睡不成夢 말 위의 말뚝잠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眼中景物添却愁 눈에 들어온 경물들은 도리어 시름만 더하네.
人生百年各形役 우리네 한 평생 각자 육신의 부림받기 마련이나
南去北來何日休 남북으로 오가는 일, 어느 때나 그치려나. 谿谷先生集卷之三十

 

수련에선 새벽에 출발하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다. 어찌 보면 수련에선 감정이 드러난다기보다 사실 그대로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새벽에 출발했지만 아직 대로에 접어들기까진 한참이나 남아 있고 가는 길엔 가을바람이 뼈마디로 파고들고 이슬이 내 옷가지를 적셔놓는다. 객관적인 사실 묘사처럼 들리지만 이미 이 구절에 작가의 심정이 여실히 담겨 있다. 작가는 지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을 떠나는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반대로 작가가 이 길 자체가 좋았고 희망찼다면 이런 식의 표현이 아니라 대로 아득히 멀어도 걷는 맛 좋았고 가을바람과 이슬에 몸을 침범해와도 절로 행복했네.’라고 썼을 것이다. 예전에 국토종단을 했을 때 둘째 날에 엄청나게 비가 내렸다. 그렇지만 그토록 바라던 여행을 떠났고 비를 흠뻑 맞으며 걷는다는 게 너무도 행복해서 그때 여행기엔 다음과 같이 썼었다.

 

뚝뚝 떨어지는 비를 온 몸으로 맞고 세차게 부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맛보며 걷는 기분은 상상 이상이었다. -국토종단기

 

이처럼 기쁘게 떠날 때 느껴지는 감상과 그렇지 않을 때 느껴지는 감상은 천지차이다. 기쁠 땐 궂은 날씨조차 행복하게 느껴지는 반면, 그렇지 않을 땐 아무리 볕 좋은 날씨일지라도 찬란한 슬픔의 봄처럼 서글프게 느껴진다.

 

이미 서글픔의 정조를 지닌 장유였기에 함련에서도 그런 정도는 그대로 이어진다. 그가 지나가는 곳엔 가을벌레들이 울었나 보다. 평소 같으면 풀벌레 잘도 운다정도의 감상만이 있을 테지만, 지금의 장유에겐 그런 풀벌레 소리조차 가볍지가 않다. 매우 절절하게 우는 것처럼 들리니 말이다. 그러니 휘영청 떠 있는 밝은 달조차 음울을 간직한 표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달이 기울긴 했지만 이 새벽의 거리를 밝혀줄 정도로 밝기만 함에도 그런 달은 곧바로 나를 비춰주지 못하고 하늘가를 흘러가고 있다.

 

 

 

 

이미 수련과 함련을 통해 장유의 심기가 편하지 않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러니 그는 말에 타서 말뚝잠을 자려 하지만 잠도 제대로 오지 않을뿐더러 기껏 잠이 들긴 했지만 꿈은 꿔지지도 않는 것이다. 무엇 하나 결코 편하지가 않다.

 

그래서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보지만 주변에 보이는 경물들은 생기를 불어넣어주지 않고 오히려 시름만 더할 뿐이다. 우리 또한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 돌아올 때, 그토록 기대했던 시험에서 처절하게 떨어졌을 때 눈에 보이는 온갖 것들은 절망스럽기만 하다. 해가 떠 있어도 그처럼 시름겨운 햇살은 없고, 사람들이 활기차게 살아가는 걸 보더라도 저들만 빼고 나만 가장 힘겨운 것 같이 느껴지니 말이다. 어떤 연유로 장유가 이렇게 시름겨워 하는 진 알지 못하지만, 장유 또한 이런 상태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가 시름겨워하는 이유는 미련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육체에 부림당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이 그토록 싫었던 것이다. 늘 바쁘게 남과 북으로 오가며 관리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 갖게 된 소감은 열심히 살았기에 후회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리 헛헛하지라는 감상이었던 것이다. 교수님은 이 시가 부임하러 가는 길에 쓰여졌을 거라고 말했다. 확인을 해본 건 아닌데, 정황 상 그렇게 읽힐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지금 벼슬길에 올라 생활을 하며 무척 지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소화시평을 공부하며 그때 그때 공부한 것들을 올린 후기를 마칠 때가 왔다. 소화시평 전체를 공부한 건 아니고 선집한 내용을 공부했지만 권상 30에서부터 참여한 이래 짧게라도 스터디를 하며 배운 내용이나 느낀 것들을 정리하려 노력했다. 그 중에 두 편의 후기가 빠져있긴 하다. 권상 83은 임용고사를 보던 주에 스터디를 했기 때문에, 양도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후기를 남기지 못했고 권하 66은 새 학기가 시작되며 자연스레 건너뛰게 되며 스터디를 하지 못했다. 이 두 편만 빼면 나머지는 모두 기록에 남겼으니 이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해 스터디를 했고 최선을 다해 정리를 했다고 자평할 수 있겠다. 그러니 적어도 오늘만은 장유의 시에서 어느 날이나 쉬려나[何日休]’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의 자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며 소화시평 정리를 마치도록 하겠다.

 

바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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