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론티의 꿈을 그린 난삽한 이민구의 관어대시
『소화시평』 권하 72번은 다른 편에서 그저 시만을 평가하는 정도에 그친 것과는 다르게 홍만종이 이민구 어르신과 겪었던 에피소드가 아주 생생한 필치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니 다른 글에 비해 양이 꽤나 길었고, 더욱이 여기에 인용된 시들이 꽤나 어렵다보니 스터디 시간 내내 초집중 상태여야 했다. 권상 102번에 인용된 지천의 「차기윤자앙(次寄尹子仰)」이라는 시를 통해 그렇지 않아도 강서시파의 시는 정말 어렵다 못해 너무도 머리를 잔뜩 써서 글자 안배에 신경 쓴 지은 나머지 마치 퍼즐을 맞추듯 해석해나가야 한다고 손발을 다 들었었는데 이번 편에서 나오는 이민구의 시나, 그걸 차운한 홍만종의 시도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얼핏 봐서는 도무지 해석할 엄두조차 안 날 정도로 전고 투성이에 난삽하까지 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앞에서 잠시 말했다시피 이미 하나의 글을 더 보고 오는 통에 72번을 하기도 전에 시간은 벌써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72번은 다음 주에 하고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주면 정말 좋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전혀 그럴 맘이 없으셨다. 그래서 준비도 해오지 않은 우리들을 이끌고 어렵고 힘겨운 이번 편에 나온 한시들을 해석해주시며 결국 끝냈으니 말이다. 애초에 준비조차 하지 않았기에 현장에서 느껴야만 하는 답답함은 어쩔 수 없다고 치지만, 그것보다 더 힘겨운 건 여기서 나오는 시 자체는 아무리 이해해보려 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강서시의 난삽함을 그대로 간직한 시라는 점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난 지금까지도 이번 편에서 인용된 시를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올 정도이니 스터디 시간에 느꼈을 답답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소화시평』 권하 72번에 나오는 관어대는 영덕에 있는 정자로 바다를 실컷 볼 수 있고, 잘하면 그 밑에서 노니는 물고기들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내면적인 공통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관어대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엔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편의 ‘영대(靈臺)’가 떠올랐다. 통치자의 여가활동을 위한 정자임에도 맹자는 그걸 독점하고서 자신만 즐기는 것이라면 아예 없는 만도 못하지만, 그걸 백성들과 함께 즐기면 오히려 백성들이 두 손 두 발 벗고 찾아와 함께 만들어주며 그 기쁨을 더불어 만끽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이 구절에서 ‘백성과 함께 즐겨라[與民偕樂]’라는 말이 나왔다. 아마 관어대에도 이런 맹자의 일갈이 깊이 관여되어 있을 것 같다.
觀魚臺下海茫茫 | 관어대 아래의 바다는 아득하고 |
羊角秋風鶴背長 | 가을 회오리바람은 붕새의 등에서 길게 불어오네. |
倚蓋天隨鰲極庳 | 자라 등처럼 둥그스런 하늘은 아주 낮은데(倚蓋天은 鱉을 隨해서 極庳하고) |
旋磨人比蟻行忙 | 도는 멧돌의 개미처럼 사람이 경황없네(旋磨人은 蟻에 견주어 行이 忙하네). |
陶將萬壑蛟龍水 | 온 골짜기는 교룡의 물을 가지고 일어서 |
洗出重宵日月光 | 하늘의 해와 달의 빛을 씻어서 내네. |
欲掛雲帆乘漭沆 | 구름 돛을 걸고 망망대해 타고 가 |
扶桑東畔試方羊 | 부상의 동쪽 편에서 솟구쳐 날고 싶어라. |
우선 이민구의 시를 보면 이 시는 누대에 올라 바다를 보며 느껴진 정감을 서술하고 있다. 1~2구에선 단순히 누대에 올라 보이는 광경,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들을 그대로 읊고 있다. 망망하게 보이는 바다, 그리고 그때 느껴지는 거친 바닷바람까지 생생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나 3~4구가 문제다. 보통의 시는 함련(頷聯)이나 경련(頸聯)에선 대구법을 쓰기 때문에 오히려 한 구절만 풀어내면 다른 구절은 쉽게 풀어져 어렵지 않게 해석되는데 여기선 두 군데 모두 전고를 썼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 3구에선 ‘의개(倚蓋)’라는 게 하늘을 뜻한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 이걸 아는 상황에서 보자면 이민구는 매우 친절하게도 ‘의개천(倚蓋天)’이란 표현을 통해 ‘의개(倚蓋)라는 하늘은’이라고 친절하게 한자까지 붙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관어대에서 보면 ‘기울어진 수레 덮개 같이 생긴 하늘은 자라를 따라 낮기만 하고’라는 의미가 된다. 즉 바다와 하늘이 수평선에서 마주치는 모습을 표현한 거라 볼 수 있다. 이제 문제가 되는 건 4구다. 4구엔 ‘의선마(蟻旋磨)’라는 전고가 있어 맷돌이 돌 때 그 위에서 반대로 힘껏 달리며 제자리에 있으려는 개미를 표현하고 있다. 즉 『슬램덩크』에서 나오는 명대사처럼 ‘포기하면 편해!’일 텐데 개미는 부질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며 맷돌이 속도만큼 반대방향으로 힘껏 달리며 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걸 빗대어 ‘선마인(旋磨人)’이라 칭한 것이다. 그렇게 개미처럼 권력의 자리든, 현상태의 자기든 유지하려 애쓰는 사람은 개미에 비하면 달리는 게 더 바쁘기만 하다는 표현이다. 3구는 관어대에서 보여지는 광경을 노래한 거라면, 4구는 시선을 갑자기 인간의 욕망을 꾸짖는 것으로 시인의 시선이 별안간 바뀐 것이다. 이러니 이해도 되지 않았고 뭔 말인지도 몰랐던 거다.
그러다 다시 5~6구에선 현재의 시선으로 돌아온다. 관어대에서 본 일출과 월출을 담아낸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해와 달이 솟았다는 표현이 아니라 마치 바다는 교룡이 살고 있는 물처럼 보이고 그곳에서 떠오른 해와 달은 마치 쌀을 일 듯 바다물로 깨끗이 씻어낸 후엔 내보낸 것처럼 선명해 보인다고 표현했다. 아주 멋진 표현일 수도 있지만 담백함보단 문식이 많이 가미된 표현이다.
7~8구엔 그런 광경을 보고서 자신이 지향하는 것을 표현했다. 바로 ‘망망대해에 돛을 걸고 해가 뜨는 부상의 동쪽 편으로 가고 싶다’라고 바람을 얘기했다. 예전 실론티 광고의 문구처럼 ‘마음속에 그리던 그곳에 가고 싶다’라는 말이 마구 생각날 정도다. 아마 4구에서 ‘의선마(蟻旋磨)’라는 전고를 굳이 사용한 건 그 말을 통해 자신도 맷돌 위의 개미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걸 테고, 그렇기에 미련(尾聯)에서 말한 것과 같은 바람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걸 테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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