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문자에 갇히지 않은 지식
답경지지이(答京之之二)
박지원(朴趾源)
글자와 책이 아닌 문자, 글자와 책에 갇힌 문자
讀書精勤, 孰與庖犧? 其神精意態, 佈羅六合, 散在萬物, 是特不字不書之文耳. 後世號勤讀書者, 以麁心淺識. 蒿目於枯墨爛楮之間, 討掇其蟫溺鼠渤. 是所謂哺糟醨而醉欲死. 豈不哀哉!
삶을 글자에 구속시켜 생동감을 말살시키다
彼空裡飛鳴, 何等生意? 而寂寞以一‘鳥’字, 抹摋沒郤彩色, 遺落容聲. 奚异乎赴社邨翁杖頭之物耶? 或復嫌其道常, 思變輕淸, 換箇禽字, 此讀書作文者之過也.
새소리를 들으니,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은 것 같네
朝起, 綠樹蔭庭, 時鳥鳴嚶. 擧扇拍案胡叫曰 : “是吾飛去飛來之字, 相鳴相和之書.” 五釆之謂文章, 則文章莫過於此. 今日僕讀書矣. 『燕巖集』 卷之五
해석
글자와 책이 아닌 문자, 글자와 책에 갇힌 문자
讀書精勤, 孰與庖犧?
독서가 정밀하고 부지런하기를 누가 포희씨와 나란히 하겠습니까?
其神精意態, 佈羅六合, 散在萬物,
그의 정신과 뜻은 펴지면 천지사방의 육합에 나열되고 흩어지면 만물에 있었으니,
是特不字不書之文耳.
이것은 다만 글자도 아니고 책도 아닌 문자일 뿐입니다.
後世號勤讀書者,
후세에 독서를 부지런히 한다고 불려지는 사람들은
以麁心淺識.
마음을 거칠게 하고 앎을 천박하게 합니다.
蒿目於枯墨爛楮之間,
그래서 마른 먹과 거친 종이 사이에서 눈을 비비고서
討掇其蟫溺鼠渤.
빈대의 오줌과 쥐의 똥을 찾아 모은 것입니다.
是所謂哺糟醨而醉欲死.
이것은 술지게미나 묽은 술을 마시면서 취해 죽어버리겠다고 하는 것이니,
豈不哀哉!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삶을 글자에 구속시켜 생동감을 말살시키다
彼空裡飛鳴, 何等生意?
저 공중에 날고 우는 것이 얼마나 생동감 넘치는 뜻입니까.
而寂寞以一‘鳥’字,
그러나 적막하게 하나의 ‘鳥’라는 글자로
抹摋沒郤彩色, 遺落容聲.
말살시켜 색채도 사라지고 형용되는 소리도 쇠퇴하여 사라졌습니다.
奚异乎赴社邨翁杖頭之物耶?
어찌 제사 지내러 가는 시골 노인의 지팡이 머리에 새겨진 새와 다르겠습니까?
或復嫌其道常, 思變輕淸, 換箇禽字,
혹은 다시 道의 일상적인 것을 싫어하여 산뜻하게 바꾼다면서
此讀書作文者之過也.
‘禽’이라는 글자로 바꾸니, 이것이 독서하거나 글 짓는 사람들의 병폐입니다.
새소리를 들으니,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은 것 같네
朝起, 綠樹蔭庭, 時鳥鳴嚶.
아침에 일어나 푸른 나무와 그늘진 뜰에서 때때로 새가 지저귑니다.
擧扇拍案胡叫曰:
그제야 부채를 들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是吾飛去飛來之字, 相鳴相和之書.”
“이것이 나의 날아가고 날아오는 문자이고 서로 지저귀고 화답하는 책이로다.”
五釆之謂文章, 則文章莫過於此.
오색 채색이 문장이라 한다면 문장이 이보다 나은 건 없을 것입니다.
今日僕讀書矣. 『燕巖集』 卷之五
오늘 저는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인용
3. 새를 글자 속에 가두다
5.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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