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새를 글자 속에 가두다
저 하늘을 날아가며 우는 새는 얼마나 생기가 있습니까? 그렇건만 적막하게도 새 ‘조鳥’자 한 글자로 그것을 말살하여 새의 고운 빛깔을 없애버리고 그 울음소리마저 지워 버리지요. 이는 마을 모임에 가는 촌 늙은이의 지팡이 머리에 새겨진 새 모양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새 ‘조鳥’자의 진부함이 싫어 산뜻한 느낌을 내고자 새 ‘조鳥’자 대신에 새 ‘금禽’자를 쓰기도 하지만, 이는 책만 읽고서 문장을 짓는 자들의 잘못이라 할 거외다. 彼空裡飛鳴, 何等生意? 而寂寞以一‘鳥’字, 抹摋沒郤彩色, 遺落容聲. 奚异乎赴社邨翁杖頭之物耶? 或復嫌其道常, 思變輕淸, 換箇禽字, 此讀書作文者之過也. |
연암은 시선을 갑자기 하늘로 돌리고 있다. 그리하여 앞 단락에서 언급한 천지 사방 혹은 만물의 한 예로서 ‘새’를 들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새’라는 것은 하나의 글자이다. 우리는 ‘새’라는 이 글자를 어떻게 읽는가? 그냥 ‘새’로 읽을 뿐이다. 이 경우 ‘새’는 형해화形骸化 된다. 그리하여 ‘새’가 가진 구체성과 저 발랄한 개체성, 그 생명의 율동이 모두 소거掃去 되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는 사물로서의 새가 지닌 자태라든가 빛깔이라든가 울음소리,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동작들을 얼른 떠올릴 수 없다. 연암은 이런 ‘새’는 죽은 새이고 형해화된 새인바, 그건 비유컨대 촌 늙은이의 지팡이 머리에 새겨놓은 새 모양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라는 말을 다른 말로 슬쩍 바꾸면 어떨까? 이를테면 ‘새’라는 말 대신에 ‘날짐승’이라는 말을 쓰면 어떨까? 그런 잔꾀를 쓴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그래서 글은 다음 단락으로 넘어간다.
이 단락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맨 마지막 구절, 즉 “이는 책만 읽고서 문장을 짓는 자들의 잘못이라 할 거외다(此讀書作文者之過也)”를 통해 글 읽기의 문제를 글쓰기의 문제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독서의 문제가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창작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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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3. 새를 글자 속에 가두다
5.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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