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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文心과 文情 - 5. 세상을 관찰함으로 읽는 책 본문

책/한문(漢文)

文心과 文情 - 5. 세상을 관찰함으로 읽는 책

건방진방랑자 2020. 3. 2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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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상을 관찰함으로 읽는 책

 

 

여기서 다시 연암의 글 한편을 읽기로 하자. 제목은 답경지지이答京之之二이다.

 

독서를 정밀하고 부지런히 하기로는 포희씨만한 이가 없다. 그 정신과 의태意態는 천지만물을 포괄망라하고 만물에 흩어져 있으니, 이것은 다만 글자로 쓰이지 않고 글로 되지 않은 글일 뿐이다. 후세에 독서를 부지런히 한다고 하는 자들은 거친 마음과 얕은 식견으로 마른 먹과 썩어 문드러진 종이 사이에 눈을 부비며 그 좀오줌과 쥐똥을 엮어 토론하니, 이는 이른바 술지게미와 묽은 술을 먹고 취해 죽겠다는 꼴이다.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讀書精勤, 孰與庖犧? 其神精意態, 佈羅六合, 散在萬物, 是特不字不書之文耳. 後世號勤讀書者, 以麤心淺識, 蒿目於枯墨爛楮之間, 討掇其蟫溺鼠渤, 是所謂哺糟醨而醉欲死. 豈不哀哉!

 

저 허공 속을 울며 나는 것은 얼마나 생의로운가? 그런데 이를 적막하게 란 한 글자로 말살시켜 버리니, 빛깔도 볼 수 없고 그 모습과 소리도 찾을 수 없다. 이 어찌 마을 제사에 나아가는 시골 늙은이의 지팡이 위에 새겨진 새와 다르랴! 어떤 이는 그것이 너무 평범하니 산뜻하게 바꾼다하여 자로 고친다. 이것은 책 읽고 글 짓는 자의 잘못이다.

彼空裡飛鳴, 何等生意? 而寂寞以一鳥字抹摋, 沒却彩色, 遺落容聲, 奚異乎赴社邨翁杖頭之物耶? 或復嫌其道常, 思變輕淸, 換箇禽字, 此讀書作文者之過也.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진 뜨락에서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외쳐 말하기를, “이것은 내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이고,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글이로다하였다. 오색 채색을 문장이라고 한다면 문장으로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책을 읽었다.

朝起綠樹蔭庭, 時鳥鳴嚶. 擧扇拍案胡呌曰: “是吾飛去飛來之字, 相鳴相和之書. 五采之謂文章, 則文章莫過於此. 今日僕讀書矣.

오늘 나는 책을 읽었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질 않는가? 포희씨가 읽었던 책은 글자로 씌여지지도 않고, 글로 엮어지지도 않은 글이었다. 육합六合을 포괄하고 여태도 만물에 흩어져 있는 그런 문장이었다. 우주만물이라는 살아있는 텍스트였다. 그것은 날아가는 새의 푸득이는 날갯짓에서 느끼는 약동하는 생명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의 독서는 옛 사람의 말라비틀어진 종이 위에 머리를 묻고, 그 좀오줌과 쥐똥에 코를 박고서 이미 용도 폐기된 죽은 지식의 껍데기만을 찾아 헤매이는 것이다. 펄펄 날며 우짖는 저 새의 생의로움을 시골 늙은이 지팡이 위에 새겨 놓은 새 마냥 가두어두고도 그들은 쉽게 만족하고 흐뭇해한다. 술에 취해 죽으려거든 깡술을 마실 일이지, 왜 술지게미만 배가 터지게 먹어대는가? 사물과 만나고 싶으면 가슴을 활짝 열어 그것들을 받아들일 일이지, 왜 낡은 책갈피만 뒤적이고 있는가?

글속에 담긴 교훈적 의미나 끄집어내는 사람과는 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 구도와 색채만을 말하는 자와는 그림을 이야기 하지 말 일이다. 과 색만 보고 광과 태는 읽을 줄 모르는 자와는 예술을 말할 수 없다. 외피만 보고 판단치 말라. 거기에 담긴 시인의 마음, 화가의 의도를 읽어라. 그림 속에 깃든 소리, 글 속에 담긴 메아리를 읽어라. 마음의 귀로 들어라. 눈앞에 있는 그대로를 그림같이 묘사한다하여 좋은 글이 아니다. 눈앞의 광경을 사실같이 모사模寫한다하여 좋은 그림일수가 없다. 저울질이 있어야 한다. 미묘한 저울질, 그 저울질로 하여 사물의 본질이 드러난다.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온갖 다채로운 빛깔로 반사되듯이, 사물은 시인의 눈을 통과하면서 제각금의 빛깔을 드러내야 한다.

아픈 사랑의 이별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시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연암은 말한다. 그런데도 정작 그는 가슴이 아프다고 쓰지 않고 새가 울고 꽃이 피었다고 쓰고 있구나. 먼데 사람까지도 이목구비를 단정히 그려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화가는 이발소 그림이나 그려서 좋을 화가다. 이런 자들과 어찌 문장의 정경情境을 말하랴. 사랑을 모르는 자 문학을 말하지 말라. 그 사랑의 마음을 담담히 감정의 체로 걸러 사물에 얹어낼 수 없는 자 문학을 말하지 말라. 그림에 먼 뜻이 담길 때라야 경은 살아난다. 할 말을 다 해버리면 경은 사라진다. 이 이치를 모르고서는 문장의 정경情境을 운위하지 말라. 벌레의 더듬이를 보고, 꽃술을 보며 즐거워하는 자는 문심文心이 있는 자이다. 솥과 그릇의 형상을 보고 무릎을 치는 사람은 글자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사물과 만나 그 의미를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다.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도 사물을 보는 눈이 열리지 않는 사람은 장님이나 진배없다. 아름다운 새 소리에 아무 느낌도 일지 않는 사람은 귀머거리나 한 가지다. 정신의 귀가 멀고, 가슴의 눈이 멀고 보면 예술은 빛을 잃는다. 성색정경聲色情境은 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물들 속에 녹아 있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한시미학산책

1. 세상을 보며 글자를 만들었던 포희씨

2. 글로 드러나는 소리와 빛깔

3. 글로 드러나는

4. 통해야만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한다

5. 세상을 관찰함으로 읽는 책

6. 아깝구나, 연암이 세초하여 없앤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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