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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영 - 답장생서(答張生書) 본문

산문놀이터/편지글

김택영 - 답장생서(答張生書)

건방진방랑자 2019. 8. 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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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희사에 들어갈 수 없음을 이해해주게

답장생서(答張生書)

 

김택영(金澤榮)

 

 

중국 친구 장생이 상해희사에 들어오라 하네

足下辱書, 以僕入南通籍爲喜, 因勸入上海希社, 使得列於中國學士之林. 其意若曰吾但知子之爲中國, 而不知其本非中國人也, 誠廓廓乎其弘度, 而溫溫乎其厚意也, 不亦盛哉. 然若僕之私則似有未盡相悉者, 請有以陳之.

 

당나라에서 인정받은 최치원

惟僕之故邦, 箕子子孫以來, 世爲中國藩臣者三千年, 則其民卽其藩民也. 然在之末, 新羅人有崔致遠, 十二歲隨賈舶入中國, 力學登進士. 隨充高騈之幕, 黃巢, 令巢震動下床, 名振天下. 所著桂苑筆耕之屬, 載在唐史藝文志, 則東人以爲榮.

 

원나라에서 급제한 최해와 이곡이 부끄럽다

高麗崔瀣李穀等登元科, 則東人以爲耻何也. 所以榮者, 也中國也; 所以耻者, 元也胡虜也.

 

을사늑약을 피해 청나라로 갔지만 청나라 백성이 되진 않았다

若僕當乙巳之歲, 見本國之爲强有力者所噬, 恐一朝俘虜之辱及於身. 棄官至居數年. 而噬者果竟下之腹, 則僕之一身, 尤倀倀何所依. 然而不忍爲民者, 班故也.

 

최치원 같이 하고 싶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曾未幾日, 武漢兵興, 中國復還舊觀. 故僕於是得爲中華民國之民, 以還其本分, 而如足下所引勸之事, 卽僕之追躡致遠故跡, 而爲莫大之榮者也. 千載一轍, 寧不奇哉. 致遠之登唐科, 新羅未亡之前, 而僕之入通籍, 在本邦已喪之後, 則其與致遠所同之中, 又有所大不同者矣.

 

옛 기록을 통해 희사에 들어갈 수 없는 마음을 표현하다

孔子旣祥, 彈琴不成聲, 哀未盡也, 哭日不歌, 情不忍也. 僕雖罷駑無狀, 亦嘗跪讀孔氏之書, 寧能朝哭於故邦, 而暮歌於希社.

且夫君子貴知禮讓. 相鼠之詩曰: “相鼠有體, 人而無禮.”人而無禮, 胡不遄死.

 

족하께서 살펴보아주어 제 상황을 헤아려주소서

今僕縱爲中國君子所哀憐, 得分其一廛, 以與中國人同其衣服飮食, 旅進旅退, 而其實乃俘虜, 交手足受木索之族之幸免者也. 其又安敢肆然據希社之一椅, 揚眉扼腕, 以與天下豪俊之流, 上下其論議也哉. 足下其亦察之.

嗟乎悲夫! 僕賦命不幸, 不能爲致遠之未嘗哭, 而徒抱區區一鼠之義以自割, 其無窮之大榮也. 韶濩堂文集定本卷一

 

 

해석

 

중국 친구 장생이 상해희사에 들어오라 하네

 

足下辱書, 以僕入南通籍爲喜,

족하께서 편지에서 욕되게 제가 남통적에 들어간 것을 기뻐하였으며,

 

因勸入上海希社, 使得列於中國學士之林.

상해희사에 들어가서 중국학사의 문단에 나란히 서길 권했습니다.

 

其意若曰吾但知子之爲中國,

그 뜻인 즉은 나는 다만 자네가 중국인인 줄 알았는데,

 

而不知其本非中國人也,

본래 중국인이 아니라는 건 알지 못했습니다라는 것이니,

 

誠廓廓乎其弘度, 而溫溫乎其厚意也,

참으로 너그럽고 너그럽구려! 큰 헤아림이며, 온화하고 온화하구려! 두터운 뜻이니.

 

不亦盛哉.

또한 성대하지 않습니까.

 

然若僕之私則似有未盡相悉者,

그러나 저의 사사로운 뜻이라면 비슷하긴 하나 서로의 생각을 다한 것은 아닙니다.

 

請有以陳之.

청컨대 그 뜻을 진술하겠습니다.

 

 

 

당나라에서 인정받은 최치원

 

惟僕之故邦, 箕子子孫以來,

오직 우리나라는 기자로부터 자손 이래로

 

世爲中國藩臣者三千年, 則其民卽其藩民也.

세상에서 중국 속국으로 신하가 된 지 3000년이니, 여기 사는 백성들이 곧 속국의 백성입니다.

 

然在之末, 新羅人有崔致遠,

그러나 당나라 말기에 신라 사람 최치원이라는 사람이

 

十二歲隨賈舶入中國, 力學登進士.

12살에 상인의 배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가 힘써 배워 진사에 급제했습니다.

 

隨充高騈之幕, 討黃巢檄,

고변을 따라 막하에서 고변을 위해 격황소서(檄黃巢書)를 지어

 

令巢震動下床, 名振天下.

황소로 하여금 놀라 침상에서 떨어지게 만들어 명성이 천하에 드날렸습니다.

 

所著桂苑筆耕之屬, 載在唐史藝文志,

그래서 저술한 계원필경의 부류들이 당나라 역사서인 예문지에 실리게 됐으니,

 

則東人以爲榮.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원나라에서 급제한 최해와 이곡이 부끄럽다

 

高麗崔瀣李穀等登元科,

원나라 때 고려인인 최해와 이곡 등이 원나라 과거에 급제했는데

 

則東人以爲耻何也.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끄럽게 여긴 것은 왜이겠습니까?

 

所以榮者, 也中國也;

영화로웠던 이유는 당나라가 중국이었다는 것이고,

 

所以耻者, 元也胡虜也.

부끄러웠던 이유는 원나라는 오랑캐였다는 것입니다.

 

 

 

을사늑약을 피해 청나라로 갔지만 청나라 백성이 되진 않았다

 

若僕當乙巳之歲, 見本國之爲强有力者所噬,

만약 제가 을사년(을사늑약)에 남아 대한제국이 강한 힘이 있는 자들에게 삼켜지는 것을 보았더라면,

 

恐一朝俘虜之辱及於身.

하루아침에 포로가 되는 욕됨이 몸에 미칠까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棄官至居數年.

그래서 벼슬을 버리고 남통에 와서 살 게 된 지 수년이나 지났습니다.

 

而噬者果竟下之腹, 則僕之一身, 尤倀倀何所依.

삼켜진 대한제국이 과연 마침내 항복했었다면 더욱 홀로 서서 어디에 의지하겠습니까?

 

然而不忍爲民者, 班故也.

그렇다 해도 차마 청나라의 백성이 되지 않았던 것은 청나라는 원나라와 같기 때문입니다.

 

 

 

최치원 같이 하고 싶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曾未幾日, 武漢兵興,

일찍이 얼마 지나지 않아 무한이 병사를 일으켜

 

中國復還舊觀.

중국은 다시 옛날의 경관으로 돌아갔습니다.

 

故僕於是得爲中華民國之民, 以還其本分,

그러므로 저는 이에 중화민국의 백성이 되어 본분을 되돌려

 

而如足下所引勸之事, 卽僕之追躡致遠故跡,

족하께서 권한 것처럼 제가 최치원의 옛 자취를 밟았더라면

 

而爲莫大之榮者也.

막대한 영광이 되었을 것입니다.

 

千載一轍, 寧不奇哉.

1000년이 하나의 궤적이니 어찌 기이하지 않겠습니까.

 

致遠之登唐科, 新羅未亡之前,

그러나 최치원이 당나라의 과거에서 급제했을 때는 신라가 망하기 전이었고,

 

而僕之入通籍, 在本邦已喪之後,

제가 통적에 들어온 이때는 대한제국이 이미 사라진 후이니

 

則其與致遠所同之中, 又有所大不同者矣.

최치원과 같은 상황이면서 또한 크게 다른 것이 있습니다.

 

 

 

옛 기록을 통해 희사에 들어갈 수 없는 마음을 표현하다

 

孔子旣祥, 彈琴不成聲,

옛적에 공자는 상을 당하여서 비파를 탔지만 소리를 완성하지 못했으니공자는 大祥을 지내고 나서 5일 뒤에 거문고를 탔는데 그때는 하나의 곡을 끝까지 다 연주하지 않았다. 그 뒤 10일이 지나서 생황을 불며 노래하였는데 그때는 끝까지 다 마쳤다. 孔子旣祥, 五日彈琴, 而不成聲. 十日而成笙歌.라는 말이 禮記』「檀弓上에 나온다.,

 

哀未盡也,

슬픔이 미진한 것입니다.

 

哭日不歌, 情不忍也.

곡하는 날에도 노래를 부르지 못했으니 정이 차마 그러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僕雖罷駑無狀, 亦嘗跪讀孔氏之書,

제가 비록 늙고 노둔하여 드러낼 만한 게 없지만 또한 일찍이 공자의 책을 정중히 읽었었는데

 

寧能朝哭於故邦, 而暮歌於希社.

어찌 아침에는 대한제국에서 곡하고 저녁에는 희사에서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且夫君子貴知禮讓.

또한 군자는 예()와 사양함을 아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相鼠之詩曰: “相鼠有體, 人而無禮.”

그러므로 상서라는 시에선 쥐는 체가 있는데, 사람은 예가 없구나.”라고 했습니다詩經』「相鼠쥐를 보아도 가죽이 있는데, 사람으로서 예의가 없단 말인가. 사람으로서 예의가 없다면, 죽지 않고 또 무엇하리오[相鼠有皮 人而無儀 人而無儀 不死何爲].”라는 말이 나온다.

 

人而無禮, 胡不遄死.

사람이 예의가 없다면 어찌 빠르게 죽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족하께서 살펴보아주어 제 상황을 헤아려주소서

 

今僕縱爲中國君子所哀憐, 得分其一廛,

이제 제가 만약 중국 군자들의 측은지심을 받아 한 자리를 나누어 가져

 

以與中國人同其衣服飮食, 旅進旅退,

중국 사람과 같이 옷 입고 음식을 먹으며 함께 나가고 함께 물러나더라도,

 

而其實乃俘虜, 交手足受木索之族之幸免者也.

실제로는 곧 포로로 손발을 교차시켜 결박당하고서도 족멸(族滅)은 요행히 면한 것입니다.

 

其又安敢肆然據希社之一椅, 揚眉扼腕,

그리고 또한 어찌 감히 멋대로 희사의 한 자리를 점거하여 눈썹에 힘을 주고 팔짱을 낀 채

 

以與天下豪俊之流, 上下其論議也哉.

천하호걸한 무리들과 상하를 논의할 수 있겠습니까.

 

足下其亦察之.

족하께서는 또한 살펴봐주십시오.

 

嗟乎悲夫! 僕賦命不幸,

! 슬프구나. 제가 천명을 받은 것이 불행하여

 

不能爲致遠之未嘗哭,

최치원이 일찍 곡하지 못한 것조차도 할 수 없었고,

 

而徒抱區區一鼠之義以自割, 其無窮之大榮也. 韶濩堂文集定本卷一

다만 하찮은 한 마리 쥐의 뜻을 품고 스스로 할복한다면 무궁한 영광이겠습니다.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17B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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