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의 기근을 구휼한 김만덕 이야기
만덕전(萬德傳)
채제공(蔡濟恭)
만덕의 파란만장한 어릴 적 이야기
萬德者, 姓金. 耽羅良家女也, 幼失母無所歸依, 托妓女爲生. 稍長, 官府籍萬德名妓案, 萬德雖屈首妓於役. 其自待不以妓也. 年二十餘, 以其情泣訴於官, 官矜之除妓案, 復歸之良. 萬德雖家居乎庸奴, 耽羅丈夫不迎夫. 其才長於殖貨, 能時物之貴賤, 以廢以居. 至數十年, 頗以積著名.
탐라 대기근과 만덕의 활약
聖上十九年乙卯, 耽羅大饑, 民相枕死. 上命船粟往哺, 鯨海八百里, 風檣來往如梭, 猶有未及時者. 於是萬德捐千金貿米, 陸地諸郡縣棹夫以時至, 萬德取十之一, 以活親族, 其餘盡輸之官. 浮黃者聞之, 集官庭如雲. 官劑其緩急, 分與之有差. 男若女出而頌萬德之恩, 咸以爲活我者萬德.
만덕의 이야기, 정조를 감동시키다
賑訖, 牧臣上其事于朝. 上大奇之, 回諭曰: “萬德如有願, 無問難與易, 特施之.” 牧臣招萬德以, 上諭諭之曰: “若有何願?” 萬德對曰: “無所願. 願一入京都, 瞻望聖人在處, 仍入金剛山, 觀萬二千峯, 死無恨矣.” 盖耽羅女人之禁不得越海而陸, 國法也. 牧臣又以其願上, 上命如其願, 官給舖馬遞供饋.
임금을 뵙고 금강산에 오르다
萬德一帆踔雲海萬頃, 以丙辰秋入京師, 一再見蔡相國. 相國以其狀白, 上命宣惠廳月給粮. 居數日, 命爲內醫院醫女, 俾居諸醫女班首. 萬德依例詣, 內閤門, 問安殿宮, 各以女侍. 傳敎曰: “爾以一女子, 出義氣救饑餓千百名, 奇哉!” 賞賜甚厚. 居半載, 用丁巳暮春, 入金剛山. 歷探萬瀑ㆍ衆香奇勝. 遇金佛輒頂禮, 供養盡其誠. 盖佛法不入耽羅國, 萬德時年五十八, 始見有梵宇佛像也. 卒乃踰鴈門嶺, 由楡岾下高城, 泛舟三日浦, 登通川之叢石亭, 以盡天下瑰觀.
만덕 또한 눈물 많고 정 많은 사람이었네
然後還入京, 留若干日. 將歸故國, 詣內院告以歸, 殿宮皆賞賜如前. 當是時, 萬德名滿王城, 公卿大夫士無不願一見萬德面. 萬德臨行, 辭蔡相國哽咽曰: “此生不可復瞻相公顔貌,” 仍潸然泣下. 相國曰: “秦皇ㆍ漢武皆稱海外有三神山, 世言‘我國之漢挐, 卽所謂瀛洲; 金剛, 卽所謂蓬萊.’ 若生長耽羅登漢挐, 㪺白鹿潭水, 今又踏遍金剛, 三神之中, 其二皆爲若所包攬. 天下之億兆男子, 有能是者否. 今臨別, 乃反有兒女子刺刺態何也?” 於是敍其事, 爲「萬德傳」, 笑而與之. 聖上二十一年丁巳夏至日, 樊巖蔡相國七十八, 書于忠肝義膽軒. 『樊巖先生集』 卷之五十五
해석
만덕의 파란만장한 어릴 적 이야기
萬德者, 姓金. 耽羅良家女也,
만덕의 성은 김이다. 탐라 양가집 딸로,
幼失母無所歸依, 托妓女爲生.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의지할 곳이 없어 기녀에게 더부살이하며 생을 도모했다.
稍長, 官府籍萬德名妓案,
조금 자라서는 관부에서 만덕의 이름을 기적(妓籍)에 올렸고,
萬德雖屈首妓於役. 其自待不以妓也.
만덕은 비록 머리를 숙여 기생으로 일했지만 스스로 대우하길 기녀라 여기진 않았다.
年二十餘, 以其情泣訴於官,
나이 20여 살 때 실정에 호소하며 눈물로 관아에 호소하니,
官矜之除妓案, 復歸之良.
관아에선 그녀를 불쌍히 여겨 기적(妓籍)에서 이름을 지워줘 다시 양가의 자제로 복귀되었다.
萬德雖家居乎庸奴,
만덕은 비록 집에 노예로 고용되어 거하였지만
耽羅丈夫不迎夫.
탐라의 장부로 남편을 맞이하여 결혼하진 않았다.
其才長於殖貨, 能時物之貴賤,
그녀는 재화를 불리는 데에 장기가 있었기에 당시 물건에 가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간파하여
以廢以居.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폐거(廢居): 폐(廢)는 ‘내다 팖[出賣]’의 뜻이고, 거(居)는 ‘저장하여 쌓아둠[囤積]’의 뜻이다.】 이문을 남겼다.
至數十年, 頗以積著名.
수십 년이 흘러 많은 재산이 쌓여 이름이 알려질 정도였다.
탐라 대기근과 만덕의 활약
聖上十九年乙卯, 耽羅大饑,
정조 19년 을묘(1795)년에 탐라엔 대기근이 들어
民相枕死.
백성들이 서로를 베개처럼 베고 죽을 정도였다.
上命船粟往哺, 鯨海八百里,
임금께선 구휼선을 보내 가서 먹이도록 하셨으나 한양에서 탐라까지 800리라
風檣來往如梭, 猶有未及時者.
바람이 돛에 불어와 작은 배[梭船]로 잽싸게 가더라도 오히려 제때에 도착하지 못했다.
於是萬德捐千金貿米,
이에 만덕은 천금을 내어 쌀을 사오도록 하니,
陸地諸郡縣棹夫以時至.
육지 모든 군현(郡縣)의 뱃사공이 열심히 노를 저어 제때에 도착했다.
萬德取十之一, 以活親族, 其餘盡輸之官.
만덕은 그중에 1/10을 취하여 일가친척을 살렸고, 나머지는 모두 관아로 보냈다.
浮黃者聞之,
굶주려 살가죽이 누렇게 뜬 병[浮黃病]에 걸린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集官庭如雲.
관아로 모여드니 마치 구름 같았다.
官劑其緩急, 分與之有差.
관아에선 완급을 조절하였고 구제하여 그들에게 나누어줄 적에 차등이 있게 하였다.
男若女出而頌萬德之恩,
그러니 남녀 할 것 없이 밖으로 나와 만덕의 은혜를 칭송하며,
咸以爲活我者萬德.
‘우리를 살린 사람은 만덕님이시다.’라고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
만덕의 이야기, 정조를 감동시키다
賑訖, 牧臣上其事于朝.
진휼이 끝나자 탐라목사는 그 일을 조정에 알렸다.
上大奇之, 回諭曰:
그러자 임금께선 크게 기이하게 여겨 회답하시며 교지를 내리셨다.
“萬德如有願, 無問難與易,
“만덕이 원하는 게 있거든, 쉽고 어려운 것을 가리지 말고
特施之.”
다만 시행토록 하라.”
牧臣招萬德以, 上諭諭之曰:
탐라목사는 만덕을 초정하여 임금의 교지로 그녀에게 말해줬다.
“若有何願?”
“그대는 어떤 바람이 있는가?”
萬德對曰: “無所願.
만덕이 대답했다. “달리 바라는 것은 없사옵니다.
願一入京都, 瞻望聖人在處,
그럼에도 원하는 것은 한 번 한양에 들어가 성군께서 계신 곳을 바라보는 것이고,
仍入金剛山, 觀萬二千峯,
그 다음엔 금강산에 들어가 일 만 이천 봉을 보는 것이니,
死無恨矣.”
그리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사옵니다.”
盖耽羅女人之禁不得越海而陸, 國法也.
대개 탐라의 여인은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 때문에 바다를 건너 육지로 갈 수 없는 것이 국법이었다.
牧臣又以其願上,
탐라목사는 또한 만덕의 바람을 알리니,
上命如其願, 官給舖馬遞供饋.
임금께서 그 바람대로 하고 관아에선 역마를 내어주고 먹을 음식을 번갈아 주도록 명하셨다.
임금을 뵙고 금강산에 오르다
萬德一帆踔雲海萬頃,
만덕의 돛단배는 운해 같은 만경창파(萬頃蒼波)를 헤치고 가서
以丙辰秋入京師, 一再見蔡相國.
병진(1796)년 가을에 한양에 들어와 한두 번 상국 체제공을 만나 뵈었다.
相國以其狀白, 上命宣惠廳月給粮.
상국이 나눈 얘기들을 아뢰니, 주상께서 선혜청(宣惠廳)에서 달마다 곡식을 제공하라 명하셨다.
居數日, 命爲內醫院醫女,
또한 수일 후엔 내의원 의녀가 되도록 명하셨고
俾居諸醫女班首.
모든 의녀들의 우두머리가 되도록 하셨다.
萬德依例詣, 內閤門,
만덕은 전례에 따라 대궐에 들어가
問安殿宮, 各以女侍.
문안을 올렸고 각각 의녀로서 시중을 들었다.
傳敎曰:
그러자 주상께서 전교를 내리셨다.
“爾以一女子, 出義氣救饑餓千百名, 奇哉!”
“너는 일개 아녀자로 의기로 천백 명을 구해냈으니, 기이하구나!”
賞賜甚厚.
그러고선 상으로 하사한 것이 매우 많았다.
居半載, 用丁巳暮春, 入金剛山.
궁궐에 머문 지 반 년만인 정사(1797)년 3월에 금강산에 들어갔다.
歷探萬瀑ㆍ衆香奇勝.
깊이 만폭동과 중향성의 기이한 명승지를 두루 찾아다녔다.
遇金佛輒頂禮,
그러다 금동불상을 만나면 이마를 땅에 대고 공경히 절을 하며
供養盡其誠.
공양하며 정성을 다했다.
盖佛法不入耽羅國,
대개 불법이 탐라국에 유입되지 않았기에
萬德時年五十八, 始見有梵宇佛像也.
만덕은 당시 나이 58세에 처음으로 사찰과 불상을 본 것이다.
卒乃踰鴈門嶺, 由楡岾下高城,
마침내 안문령을 넘어 유점사를 거쳐 고성에서 내려가
泛舟三日浦, 登通川之叢石亭, 以盡天下瑰觀.
삼일포에서 배를 타고 통천의 총석정에 올라 천하의 아름다운 경관을 다 보았다.
만덕 또한 눈물 많고 정 많은 사람이었네
然後還入京, 留若干日.
그런 후에 다시 한양으로 들어와 며칠 동안 머물렀다.
將歸故國, 詣內院告以歸,
장차 탐라로 돌아가려 할 때 내원 궁궐에 이르러 복귀할 것을 알리니,
殿宮皆賞賜如前.
대궐에서 모두 상을 하사하길 한양에 처음 왔을 때처럼 하였다.
當是時, 萬德名滿王城,
이때에 만덕의 소문이 한양에 자자하여
公卿大夫士無不願一見萬德面.
공경대부와 선비들이 한 번이라도 만덕의 얼굴을 보고자 하지 않음이 없었다.
萬德臨行, 辭蔡相國哽咽曰:
만덕이 떠나려 할 때 체상국에게 목 멘 상태로
“此生不可復瞻相公顔貌,” 仍潸然泣下.
“이번 생에서 다시금 상공의 얼굴을 뵐 수 없겠죠.”라고 말하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체상국이 말씀하셨다. “진시황제나 한무제 모두 해외에 삼신산이 있다고 말해왔네.
世言‘我國之漢挐, 卽所謂瀛洲;
세상 사람들은 말들 하지. ‘우리나라의 한라산, 곧 영주산이라 하는 것이 그 중 하나이고,
金剛, 卽所謂蓬萊.’
금강산 곧 봉래산이 그 중 하나다’
若生長耽羅登漢挐, 㪺白鹿潭水,
자네는 탐라에서 태어나서 자라 한라산에 올라갔고 백록담 물을 떠서 마셨으며,
今又踏遍金剛, 三神之中,
이번엔 또한 두루 금강산을 다녔으니, 삼신산 중에
其二皆爲若所包攬.
두 산을 자네는 두루 관람한 것이네.
天下之億兆男子, 有能是者否.
천하의 뭇 사내들 중에 이렇게 했던 사람이 없었지.
今臨別, 乃反有兒女子刺刺態何也?”
그런데 지금 이별할 때가 되어 도리어 아녀자의 수다스런 태도라니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於是敍其事, 爲「萬德傳」, 笑而與之.
이에 그때의 일을 서술하여 「만덕전」을 짓고 웃으며 그녀에게 주었다.
聖上二十一年丁巳夏至日, 樊巖蔡相國七十八, 書于忠肝義膽軒. 『樊巖先生集』 卷之五十五
성상 21년 정사년 하지일에 번암 체상공의 나이 78세로 나의 서재인 충간의담헌(忠肝義膽軒)에서 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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