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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109. 일찍 끝내지 않기 & 음미하며 걷기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109. 일찍 끝내지 않기 & 음미하며 걷기

건방진방랑자 2021. 2. 1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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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끝내지 않기 & 음미하며 걷기

 

 

어제 지나쳤던 군부대가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한참이나 거슬러왔나보다.

어제 봤던 낯익은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모든 게 달랐다. 어젠 비 오는 우중충한 날씨였고 오늘은 햇살이 반갑게 인사하는 날씨다. 어제 내린 비로 세상의 온갖 티끌이 깨끗이 씻기기라도 한 듯 세상은 한결 또렷하고 선명하게 보인다. 세상이 달라 보이는 건 날씨 탓만은 아니다. 바로 내 기분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제 이 길을 걸을 땐 온갖 불안과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삶의 비극을 온몸으로 맛보았지만 지금은 기쁨ㆍ행복을 만끽하며 삶이 주는 위안을 맛보고 있다.

날씨와 마음이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지금 이 순간 꿈속을 거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난 그렇게 같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 오늘은 볕 좋은 날에 막바지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간다.

 

 

 

건빵이 만난 사람: 답답한 원칙임에도 응원하다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아침에 슈퍼 앞 버스정류장에서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아저씨가 계신 게 아닌가. 그 아저씨도 화들짝 놀라셔서 나에게 무슨 일인지 묻는다. 실컷 버스를 타고 진부령쪽으로 간다며 버스 노선을 물어봐 놓고선 버스를 타서 떠났나 싶었는데 몇 시간 정도가 흐른 후에 다시 고성쪽으로 되돌아오고 있었으니 자초지종을 모르는 아저씨 입장에선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그래서 왜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인지, 그리고 왜 이 길을 다시 걸어서 가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말씀드렸다. 국토종단 중에 차를 타지 않기로 했고 어제 어쩔 수 없이 히치하이킹을 하는 바람에 도보여행이 멈춘 그 자리에서부터 걸어오기 위해 버스를 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런 규칙은 누가 정한 거냐고 물으신다. 일반적으론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도보여행자들의 원칙이예요라는 말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 버스를 타고 어제 멈췄던 자리로 돌아왔다. 여기서부터 걸어간다.

 

이 여행 자체가 나와의 약속이며 지금 여기까지 걸어온 것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걸 고집하며 한 달동안 여행을 했고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누가 보면 이상해보일지라도 견지한 것이다. 이럴 경우 원통의 향하던 음식점에서 반주를 하던 아저씨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미친 사람이라 생각해라는 반응이 나오듯, “뭔 대단한 원칙이라고 이럴 땐 그냥 고성에서부터 걸어가도 상관없잖아.”라는 반응이 나올 만하다. 답답한 원칙주의자로 보이는 것 또한 당연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주셨다. 아저씨는 그런 내 모습에 흡족해하시며 한참이나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인상이 참 좋다며 음료수를 사주셨다.

그렇지 않아도 이래저래 기분이 좋았는데 이런 뜻밖의 호의를 받으니 뛸 듯이 기쁘더라. 기분도 좋고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고, 오늘은 삼박자가 다 갖춰진 최고의 여행이 될 듯하다.^^

 

 

▲ 여유로우니 이렇게 한가하게 앉아서 쉴 수도 있다.

 

 

 

마지막이기에 천천히 음미하듯

 

오늘 걸을 양은 많지 않다. 어제와는 다르게 즐기면서 걸을 생각이다. 엄청 빨리 걸으면 통일 전망대까지 하루만에 갈 수는 있을 테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결말을 빨리 보려 떠난 여행도 아닐뿐더러, 무언가에 쫓기듯 후다닥 끝내긴 싫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지막 여행의 운치를 즐겨볼 참이다. 끝나간다는 안도감, 기쁨을 만끽하며 걷는 즐거움에 푹 빠져보려는 것이다. 이 국토종단이 끝나면 언제 다시 이러한 기회를 얻게 될지 모르는데 끝난다는 기분에만 심취하여 이 기회를 그렇게 날려 보내는 건 싫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몸도 한결 가볍고 발바닥 통증도 덜 하더라. 더욱이 오늘은 동해를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지금껏 바다는 서해와 남해밖에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동해에 대해서는 은근히 환상 같은 게 있다. 미지의 바다에 대한 향수라고나 할까.

 

 

▲ 맘껏 사진을 찍고 여유를 부린다. 그러기에 최적인 날씨이자 최적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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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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