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을 찾아가며
방속리산(訪俗離山)
김창흡(金昌翕)
江南遊子不知還 古寺秋風杖屨閒
笑別鷄龍餘興在 馬前猶有俗離山 『三淵集拾遺』 卷之一
해석
江南遊子不知還 강남유자부지환 |
강남에서 놀던 이 돌아올 줄 모르고 |
古寺秋風杖屨閒 고사추풍장구한 |
옛 사찰의 가을바람에 행장은 한가해. |
笑別鷄龍餘興在 소별계룡여흥재 |
웃으며 계룡을 떠나니 흥은 남아 있었는데 |
馬前猶有俗離山 마전유유속리산 |
말 앞에는 오히려 속리산이 있구나. 『三淵集拾遺』 卷之一 |
해설
이 시는 길을 나서기 좋아하던 김창흡이 갓 20살이 넘은 젊은 시절에 계룡산을 떠나 속리산을 찾아가며 지은 시이다.
한강 남쪽으로 여행을 떠난 나그네는 돌아올 줄을 모른다. 오래된 고즈넉한 절에 가을이 찾아와 바람이 일자, 집으로 돌아갈 생각 없이 지팡이 짚고 한가로이 거닌다. 산이 좋아 계룡산에 왔다가 이제 떠날 시점에 되어 떠나야만 하는데, 그래도 웃으며 떠날 수 있다. 왜냐하면 말 앞에 또 다른 속리산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으니까.
이덕무(李德懋)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선조조(宣祖朝) 이하에 나온 문장은 볼만한 것이 많다. 시와 문을 겸한 이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이고, 시로는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을 제일로 친다는 것이 확고한 논평이나,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에 이르러 대가(大家)를 이루었으니, 이는 어느 체제이든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화려하여 명가(名家)를 이룬 이는 유하(柳下) 최혜길(崔惠吉)이고 당(唐)을 모방하는 데 고질화된 이는 손곡(蓀谷) 이달(李達)이며,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옛사람의 말만 전용한 것이 많으니 유감스럽다. 귀봉(龜峯) 송익필(宋翼弼)은 염락(廉洛)의 풍미를 띤데다 색향(色香)에 신화(神化)를 이룬 분이고,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시는 정밀한 데다 식견이 있고 전아(典雅)하여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宣廟朝以下文章, 多可觀也. 詩文幷均者, 其農岩乎. 詩推挹翠軒爲第一, 是不易之論. 然至淵翁而後, 成大家藪, 葢無軆不有也. 纖麗而成名家者, 其柳下乎. 痼疾於模唐者, 其蓀谷乎. 蘭雪, 全用古人語者多, 是可恨也. 龜峯, 帶濂洛而神化於色香者. 澤堂之詩, 精緻有識且典雅, 不可多得也].”라 하여, 김창흡의 시(詩)가 체제를 다 갖추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252~253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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