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파릉(菠薐)
민가에선 시근채라고 말한다[俗名時根菜]
김창업(金昌業)
菠薐傳數名 其始出波羅
파릉전수명 기시출파라
我國有俗稱 恐是赤根訛
아국유속칭 공시적근와 『老稼齋集』 卷之二
해석
菠薐傳數名 其始出波羅 | 시금치는 여러 이름이 전해지는데 처음에 페르시아에서 나왔네. |
我國有俗稱 恐是赤根訛 | 우리나라에선 속칭이 있는데 아마도 적근의 와전인 듯. 『老稼齋集』 卷之二 |
해설
이 시는 특이하게도 시금치를 소재로 읊은 시로, 시금치에 대한 기록은 이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파릉은 김창업이 시근채(時根菜)라고 주를 달아놓았다. 시금치는 페르시아에서 들여온 것으로 파사채, 파사초, 파채라고도 했으며, 조선에서는 뿌리가 붉어 적근채(赤根菜)라고도 했다.
이덕무(李德懋)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선조조(宣祖朝) 이하에 나온 문장은 볼만한 것이 많다. 시와 문을 겸한 이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이고, 시로는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을 제일로 친다는 것이 확고한 논평이나,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에 이르러 대가(大家)를 이루었으니, 이는 어느 체제이든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화려하여 명가(名家)를 이룬 이는 유하(柳下) 최혜길(崔惠吉)이고 당(唐)을 모방하는 데 고질화된 이는 손곡(蓀谷) 이달(李達)이며,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옛사람의 말만 전용한 것이 많으니 유감스럽다. 귀봉(龜峯) 송익필(宋翼弼)은 염락(廉洛)의 풍미를 띤데다 색향(色香)에 신화(神化)를 이룬 분이고,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시는 정밀한 데다 식견이 있고 전아(典雅)하여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宣廟朝以下文章, 多可觀也. 詩文幷均者, 其農岩乎. 詩推挹翠軒爲第一, 是不易之論. 然至淵翁而後, 成大家藪, 葢無軆不有也. 纖麗而成名家者, 其柳下乎. 痼疾於模唐者, 其蓀谷乎. 蘭雪, 全用古人語者多, 是可恨也. 龜峯, 帶濂洛而神化於色香者. 澤堂之詩, 精緻有識且典雅, 不可多得也].”라 하여, 김창협의 시(詩)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김창협(金昌協)은 경술(經術)과 문학(文章)이 양미(兩美)하기로 퇴계(退溪) 이후 처음이라 꼽히는 문인이다. 그의 학문은 이이(李珥), 김장생(金長生), 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이으면서 다음 시대 서울 중심의 노론계(老論系) 문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북학사상(北學思想)을 앞에서 창도하였다. 그는 고문(古文)에 특히 뛰어난 솜씨를 보여 전아(典雅)한 그의 문장과 박지원(朴趾源)의 혼후(雄渾)한 문장이 일시(一時)에 쌍벽(雙壁)을 이루었으며, 소단(騷壇)에서도 그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대두된 진시운동(眞詩運動)에 단초를 열었으며, 특히 그가 개진한 천기론적(天氣論的) 시론(詩論)은 그의 아우 김창흡(金昌翕), 그리고 그의 문하(門下)와 위항시인(委巷詩人)들에게까지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민병수, 『한국한시사』)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241~242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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