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명의 만사
정동명만(鄭東溟挽)
남용익(南龍翼)
東方幸有鄭東溟 萬丈光輝燭帝庭
一夜靑臺天象變 文星落並老人星
雷霆霹靂來驚耳 谿谷先生昔所云
敬行一出萬人空 獨繼千秋樂府風
欲問遺音無覓處 淮南鷄犬白雲中
沈冥酒裏亦從容 至愼其惟阮嗣宗
今日一杯雖欲進 只應澆土未澆胸 『壼谷集』 卷之七
해석
東方幸有鄭東溟 동방행유정동명 |
우리나라에 다행히 정동명이 있어 |
萬丈光輝燭帝庭 만장광휘촉제정 |
만 길의 빛줄기가 황제의 뜰을 비추네. |
一夜靑臺天象變 일야청대천상변 |
한 밤의 청대【청대(靑臺): 황천(黃泉)이나 중천(重泉)과 같은 말이다.】에서 하늘의 상이 변하니 |
文星落並老人星 문성락병로인성 |
문성에 아울러 노인성까지 졌네【문장에 뛰어난 노성한 분이 죽었다는 뜻이다. 문성은 규성(奎星)으로,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별이고, 노인성(老人星)은 남극성(南極星) 또는 수성(壽星)이라고도 하는데,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별이다.】. |
工部之詩太史文 공부지시태사문 |
“두보의 시에 사마천의 문장 |
一人兼二古無聞 일인겸이고무문 |
한 사람이 두 사람을 겸했다는 걸 예전엔 듣지 못했지. |
雷霆霹靂來驚耳 뢰정벽력래경이 |
우레가 치고 벼락이 치듯 놀라울 뿐이다.” |
谿谷先生昔所云 계곡선생석소운 |
계곡 장유 선생이 옛적에 했던 말씀. |
敬行一出萬人空 경행일출만인공 |
가행시 한 번 내니 뭇 사람 숨죽였으니 |
獨繼千秋樂府風 독계천추락부풍 |
홀로 천 년의 악부풍을 계승했네【동명이 젊은 시절에 악부시(樂府詩)와 가행을 지어 이름을 드날렸으므로 한 말이다. 동명의 문학에 대해 윤신지(尹新之)는 “정두경의 악부는 한위(漢魏)와 같고, 가행은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와 같으며, 오칠언절구 및 근체시는 모두 초당(初唐)이나 성당(盛唐)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라고 하였으며, 김창협(金昌協)은 “한위의 고시(古詩)와 악부를 본받았고, 가행 장편(歌行長篇)은 이백이나 두보를 보취(步驟)하고, 율절 근체(律絶近體)는 성당을 모의하였다.”라고 평하였다.】. |
欲問遺音無覓處 욕문유음무멱처 |
남긴 소리를 묻고 싶어도 찾을 곳 없었는데 |
淮南鷄犬白雲中 회남계견백운중 |
회남땅의 흰 구름 속에서 닭과 개 소리로 들리네【동명이 신선이 되어 하늘 나라로 올라갔다는 뜻이다. 한(漢)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도술을 배워 온 가족과 함께 하늘로 올라갈 때, 그의 집에서 기르던 짐승까지 선약(仙藥)을 먹고 하늘로 올라가 개가 허공에서 짖고 닭이 구름 속에서 울었다 한다. 『論衡』 卷7 「道虛」】. |
沈冥酒裏亦從容 침명주리역종용 |
술에 거나하게 취한 속에서도 또한 조용했으니 |
至愼其惟阮嗣宗 지신기유원사종 |
지극히 조심하기론 오직 완사종 같았지【동명이 혼탁한 세상에서 술에 의탁해 몸을 잘 보존하였다는 뜻이다. 완사종(阮嗣宗)은 삼국 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을 가리킨다. 완적은 본디 술을 매우 좋아했는데, 이는 그가 세상이 어지러워 몸을 보전하기 위해 짐짓 취중(醉中)의 세계에 의탁한 것이라고 한다. 『晉書』「阮籍列傳」】. |
今日一杯雖欲進 금일일배수욕진 |
오늘 한 잔 비록 올리고 싶어도 |
只應澆土未澆胸 지응요토미요흉 |
다만 응당 땅에 부을 뿐 가슴에 봇진 못하네. 『壼谷集』 卷之七 |
해설
이 시는 동명 정두경(鄭斗卿)의 만사(輓詞)이다.
남용익은 계곡(谿谷) 장유(張維)가 말한 “두보의 시와 사마천의 문장을 겸비하여 그의 글은 우레가 치듯 드세어서 예전에 없었던 일이다.”라고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남용익은 관각체(館閣體)의 대가(大家)로 『홍재전서(弘齋全書)』 「일성록(日省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의 관각체는 양촌(陽村) 권근(權近)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 이후 춘정(春亭) 변계량(卞季亮),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 등이 역시 이 문체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근고(近古)에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 등이 또 서로 그 뒤를 이어 각체가 갖추어졌다. 비유하자면 대장(大匠)이 집을 지을 때 전체 구조를 튼튼하게만 관리하여 짓고 기이하고 교묘한 모양은 요구하지 않지만 사면팔방(四面八方)이 튼튼하게 꽉 짜여서 전혀 도끼 자국 따위의 흠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 역시 한 시대의 거벽(巨擘)이 될 만한 것이다. ‘살아 있는 호곡(壺谷)이 두렵다.’고 한 말은 관각가(館閣家)에 지금까지 전해 오는 미담이다. 언젠가 옥오재(玉吾齋) 송상기(宋相琦)의 문집을 보니, 이러한 각 문체가 역시 호곡과 서하의 규범과 법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만 농숙(濃熟)한 기력은 아무래도 미치지 못하였다[我國館閣體 肇自權陽村 而伊後如卞春亭ㆍ徐四佳輩 亦以此雄視一世 近古則李月沙ㆍ南壺谷ㆍ李西河 又相繼踵武 各體俱備 比若大匠造舍 間架範圍 只管牢實做去 不要奇巧底樣子 而四面八方 井井堂堂 了不見斧鑿痕 此亦可爲一代巨擘生壺谷可怕 館閣家至今傳以爲美談 曾觀玉吾齋宋相琦文集 這箇各體 亦從壺 河規度中出來 而但氣力終不及濃熟].”
당시 유행어인 ‘생호곡사농암(生壺谷死農巖)’에 대해 정조(正祖)는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문장을 말하는 자들이 걸핏하면 ‘산 호곡 죽은 농암’이라고 하더니, 나중에 그 문집을 가져다 보니 참으로 그러하였다[譚文者動稱生壺谷死農巖 後就其文集而觀之 儘然].”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227~228쪽
인용
'한시놀이터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창흡 - 야등연광정 차조정이운(夜登練光亭 次趙定而韻) (0) | 2019.02.27 |
---|---|
김창흡 - 방속리산(訪俗離山) (0) | 2019.02.27 |
권필 - 성산과구용고택(城山過具容故宅) (0) | 2019.02.26 |
권필 - 곡구김화상구우양주지산중 인일모유숙 천명출산(哭具金化喪柩于楊州之山中 因日暮留宿 天明出山) (0) | 2019.02.26 |
권필 - 창랑정(滄浪亭) (0) | 2019.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