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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라] 밀양 - 4. ‘스위트 홈’의 탄생과 근대 본문

연재/시네필

[이 영화를 보라] 밀양 - 4. ‘스위트 홈’의 탄생과 근대

건방진방랑자 2020. 2. 27.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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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위트 홈의 탄생과 근대

 

 

근대국민국가와 가족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이듯, 가족 역시 근대국민국가의 산물이다. 근대국민국가에서 가족은 가장 일차적인 경제단위이자 호명체계에 해당한다. 가족에 편입되어야 애국애족을 할 수 있고, 산업역군이 될 수 있으며, 국가경쟁력의 토대가 될 수 있다. , 잠깐, 우리가 말하는 가족과 중세의 가문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중세적 가문은 대가족일 뿐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와 연계된, 가족이라기보단 마을 개념에 가깝다. 그에 비해 근대적 가족은 핵가족일 뿐 아니라 마을과의 네트워크가 절연된, 지극히 단자화된 단위에 속한다.

일부일처제의 신화가 만들어진 것도 이러한 배치 하에서였다. 남녀 간 사랑의 목표는 결혼이 되었고, 사랑은 곧 결혼으로서만 완성되었다. 가정만이 성애의 특권적 장소로 인증 받은 것이다. 동시에 모성과 교육, 모성과 애국심이 견고하게 유착되었다. 예컨대 자녀교육, 위생, 경제활동 등 모든 것이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서구의 도래와 스위트홈

 

서구의 경우, 19세기 후반에까지도 노동자들은 결코 가족에 묶이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집보다는 선술집이나 카페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고, 아이들은 하루 종일 거리나 골목에서 놀고 몰려다니는 것이 일상사였다. 이들을 가족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박애주의자들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집을 소유하도록 유도했다. 한편으로는 가정적인 안락함에 안주케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집이라는 소유물에 묶어 두고자 한 것이다.’

 

 

그것도 노동자 자신의 근면한 노동과, 금욕적 검약, 개미 같은 저축으로, 즉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집을 사야 하는 것이다.

(……) 집은 이제 가족이 절대적 공간인 만큼, 가족 이외의 사람이 함께 거주해선 안 되며, 출입을 제한해야 하고, 그들에 의해 가족적 통합이 교란되어선 안 된다. (……) 집에 대한 소유를 통해 노동자를 가장으로 만드는 것과 더불어, 새로이 생긴 가족의 공간을 깨끗하고 포근한 보금자리로 꾸미고 유지하는 새로운 임무를 통해 노동자의 아내를 주부로 만든다.

-이진경, 모더니티의 지층들, 근대적 주거공간의 계보학, 226~229

 

 

이것이 근대 가족주의의 대략적 풍경이다. 20세기 초, 서구의 도래와 함께 이러한 표상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되었고, 1920년대가 되면 이미 스위트 홈의 신화가 사회 전체에 유포된다. 이웃과 절연된 핵가족, 언덕 위의 하얀 집과 고급 승용차, 드레스를 차려입은 주부, 고급 사무직에 종사하는 남편, 그리고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치는 자녀 등등. 당시 우리나라 산업화나 도시화의 수준에서 본다면 이런 가족형태는 참으로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문학이나 예술을 통해 이런 식의 욕망의 판타지가 끊임없이 유포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적 변주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이 아니라, 고급 중형 아파트라는 것. 거기다 주식에 펀드, 그리고 부동산이 추가될 수 있겠다.

신애가 밀양에서 이루고자 했던 행복의 내용도 이 표상의 계열 위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녀는 진정, 다시 시작한 게 아니라, 동일한 욕망의 판타지를 반복했을 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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