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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219. 옹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19. 옹

건방진방랑자 2020. 4. 2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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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옹결(臃決)

응어리가 터졌다는 것은 죽은 것을 말한다. 자상호(子桑戶), 맹자반(孟子反), 자금장(子琴張) 세 사람은 매우 절친한 친구였다. 자상호가 죽었는데 장사를 치르지 않고 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한 사람은 거문고를 탔다. 자공(子貢)이 위문하러 갔다가 이러한 광경을 보고 돌아와서 공자(孔子)에게 말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그들은 조물주와 동반하여 천지의 사이에서 노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견해는, 생명체는 기가 응결된 것으로서 마치 몸에 붙어 있는 사마귀와 같고 죽는 것은 기가 흩어진 것으로서 마치 응어리가 터진 것과 같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들이 어찌 생사(生死)의 선후를 아랑곳하겠는가.” 하였다. 이는 장자(莊子)가 지어 낸 우화(寓話)이지, 공자의 말이 아니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옹두향(甕頭香)

독에서 나오는 술 향내를 말한다.

 

옹모위개관(翁姥爲改觀)

유재(劉宰)의 석옹모시(石翁姥詩)어찌 돌할아범이 돌할미를 데리고, 해마다 산길에 마주 서 있는 것만하랴[爭似石翁携石姥 年年對峙夾崗道]”라고 하였다.

 

옹문(雍門)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설공(薛公)맹상군(孟嘗君)에게 거문고의 명인 옹문자주(雍門子周)가 찾아갔을 때, 맹상군이 자신을 비탄(悲嘆)에 젖게 할 음악 연주를 부탁하였는데, 옹문이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당신을 슬프게 만들 도리가 없지만, 한 가지 눈물 흘리게 할 방도가 없지는 않다.” 하고는, 천하의 형세를 논하면서 앞으로 제 나라가 망하고 맹상군의 봉읍(封邑)인 설읍(薛邑)이 파괴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한 뒤 거문고를 연주하자, 맹상군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탄식해 마지않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설원(說苑)』 『선설(善說)

 

옹문가(雍門歌)

제 나라 옹문에 살았던 옹문자주(雍門子周)의 노래라는 말로, 옹문자주는 본디 금곡(琴曲)에 뛰어나서 그가 거문고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는데, 그가 일찍이 맹상군(孟嘗君) 앞에서 인생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소재로 하여 거문고를 한 곡조 타니, 맹상군이 슬퍼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고사가 있다. 설원(說苑)』 『선설(善說)

 

옹문곡(雍門曲)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옹문주(雍門周)의 금곡(琴曲)을 말하는데, 그가 세상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금곡으로 노래하여 맹상군(孟嘗君)을 매우 슬프게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설원(說苑)』 『선설(善說)

 

옹문곡(雍門曲)

옹문(雍門)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성문의 이름인데, 한아(韓娥)라는 사람이 식량이 떨어져 그곳을 지나다가 노래를 팔아 밥을 얻어먹었다는 데서 나온 말로, 객지에서의 곤궁한 처지를 한탄하여 부르는 슬픈 노래를 가리킨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옹문구(雍門謳

)옹문주(雍門周)라는 사람이 거문고를 타면서 부귀 공명의 무상함을 슬피 노래하자, 맹상군(孟嘗君)이 비상(悲傷)하여 눈물을 흘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설원(說苑)』 『선설(善說)

 

옹문주(雍門周)

맹상군(孟嘗君)가 거문고를 잘 탔는데 슬픈 곡조를 타서 사람을 울렸다. 맹상군이 그를 불러 거문고를 타게 하면서, “네가 나도 울게 할 수 있겠는가.” 하니, 옹문주가 거문고를 들고, “맹상군의 천추만세후(千秋萬歲後)에 나무하고 소먹이는 아이들이 맹상군의 무덤에 올라가서, ‘맹상군의 호귀(豪貴)로도 인제 이 무덤이로구나할 것입니다.” 하는 슬픈 곡조를 타니, 맹상군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설원(說苑)』 『선설(善說)

 

옹방강(翁方綱)

청 나라 때 금석학자(金石學者)인데, 고종(高宗)때 진사 급제한 후 벼슬은 내각 학사(內閣學士)에 이르렀다. 그는 특히 금석(金石)ㆍ보록(譜錄)ㆍ서화(書畫)ㆍ사장(詞章)의 학에 정진하였으며, 그의 서법(書法)은 당시 천하제일이었다고 한다.

 

옹북하(甕北河)

우리 나라 사신이 육로로 북경을 오갈 때 건너는 강으로, 소장령(小長嶺)과 대장령(大長嶺) 사이에 있으며, 삼가하(三家河)라고도 한다.

 

옹비음(擁鼻吟)

() 나라 때 사안(謝安)이 낙하서생영(洛下書生詠)을 읊을 적에 비질(鼻疾)이 있는 관계로 소리가 탁()하였는데, 당시의 명류(名流)들이 그것을 본받으려 해도 되지 않으므로, 혹은 손으로 코를 가리어 그 소리를 흉내냈던 데서 온 말이다. 전하여 소리를 길게 빼는 우아한 음영(吟詠)을 말한다. / () 나라 때 사안(謝安)이 비질(鼻疾)이 있어 시를 읊으면 소리가 탁하였는데, 당시의 명류(名流)들이 오히려 그 소리를 좋아하여 흉내를 내려 하였으나 되지 않으므로, 혹자는 일부러 손으로 코를 가리고서 그 소리를 흉내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사안전(謝安傳)

 

옹산(甕算)

망령된 계산을 말한다. 옛날 가난한 옹기 장사가 옹기 속에서 자며 꿈속에 부자가 되어 기뻐하다 옹기가 깨졌다는 고사가 있다.

 

옹산성(甕山城)

신라 태종왕(太宗王) 8년에 백제(百濟)의 남은 세력이 옹산성을 점거하고 있었다. 왕이 사신을 보내 타일렀으나 항복하지 않아 김유신(金庾信)이 가서 포위를 하고 백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당장 항복만 하면 앞으로의 부귀를 약속하겠다.” 하였으나, 성장(城將)이 대답하기를, “성은 비록 작지만 병력도 먹을 것도 다 충분하고 군대들도 다 정의롭고 용감하다. 차라리 싸우다 죽을지언정 맹세코 살아서 항복은 않겠다.” 하니, 유신이 그 성을 함락시키고 그 성장을 잡아 죽였다.

 

옹성산(甕城山)

동복현(同福縣) 북쪽에 있는데, 산에 세 바위가 있어 모양이 독과 같이 우뚝하게 서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하였다 한다.

 

옹성원(翁星原)

성원(星原)은 청 나라 옹수곤(翁樹崑)의 자인데 옹방강의 아들로서 추사와 지교(知交)였으며, 그의 서옥을 성추하벽지재(星秋霞碧之齋)라 하였는데 성은 성원(星原), 추는 추사(秋史), 하는 신자하(申紫霞), 벽은 유정벽(柳貞碧)을 말한다. 그리고 추사를 위하여 홍두산장(紅豆山莊)에 대자(大字)의 편액을 친히 써서 기증하였다.

 

옹손(饔飱)

아침밥과 저녁밥으로 음식 대접을 말한다.

 

옹수양아(擁樹兩兒)

양아(兩兒)는 효혜(孝惠)와 노원(魯元)을 가리킨 말이고, 옹수는 보호하였다는 말이다. 한왕(漢王)항우(項羽)의 공격을 받고 쫓길 때 위급하게 되자 함께 타고 가던 효혜와 노원 두 아이를 버리려 하였는데, 하후 영(夏侯嬰)이 이들을 보호하여 무사하게 되었다. 사기(史記)卷四十一 번역등관열전(樊酈滕灌列傳)

 

옹옹(滃滃)

구름이 성한 모양, 술이 진한 모양

 

옹옹(廱廱)

화락한 모양.

 

옹옹(喁喁)

웃사람의 덕을 기리고 우러러 따르는 모양, 웃사람이 즐거워하는 모양, 입을 위로 쳐들고 몹시 기다리는 모양. 물고기가 입을 위로 내밀고 오물거리는 모양

 

옹유(甕牖)

가난한 집에서 깨어진 독아가리로 낸 창을 말한다. 그래서 가난한 집의 비유로 사용된다. / 인용: 麴先生傳(이규보)

 

옹유승추(甕牖繩樞)

깨진 항아리로 창문을 만들고 새끼로 지도리를 맨다는 뜻으로 미천함을 비유한 말이다. 가의(賈誼), 과진론(過秦論)

 

옹인(甕人)

문견(聞見)이 좁은 사람을 말한다.

 

옹자요장(翁子腰章)

옹자(翁子)는 한() 나라 때 주매신(朱買臣)의 자이다. 주매신이 고향인 회계(會稽)의 태수(太守)가 되어 내려갈 적에 인장(印章)을 숨기고 가서 그곳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고사가 있다.

 

옹절(壅絶)

막혀 끊어지다

 

옹중(翁仲)

보통 능묘(陵墓) 좌우에 서 있는 석물(石物)을 말한다. () 나라 때의 키가 큰 사람이었는데, 뒤에 동상(銅像)이나 석상(石像)을 말하기도 한다. 그의 성은 완씨(阮氏)였는데 키가 12척이나 되었다. 진 나라는 천하를 통일하고는 그에게 임조(臨洮)를 지키게 하였다. 뒤에 그가 죽자 동상을 만들어 함양(咸陽)에 세웠다. 산당사고(山堂肆考)

 

옹중멱서(甕中覓書)

당나라 방관(房琯)이 도사(道士) 형화박(邢和璞)과 같이 어느 폐사(廢寺)에 놀러 가서 늙은 소나무 밑에 앉았더니 형화박이 사람을 시켜 땅을 파서 독 안에 들어 있는 글을 꺼내었는데, 그것은 전일에 누사덕(婁師德)이 영선사(永禪師)에게 보낸 편지였다. 방관은 자기의 전신(前身)이 영선사인 줄을 깨달았다.

 

옹중혜계군(甕中醯雞群)

좁은 지역에 국한되어 살아서 견문이 넓지 못하다는 뜻이다.

 

옹천기지초구(擁千騎之貂裘)

안녹산이 난을 일으키자 현종(玄宗)이 난을 피하여 촉군(蜀郡)에 이르렀을 때 따라온 사람이 군사 1300, 궁녀 24명뿐이었다. 구당서(舊唐書)卷九 玄宗下

 

옹치(雍齒)

한 고조(漢高祖) 때의 장수. 고조가 호감을 갖지 않았으나 전공이 있어 봉후가 되었다. 사기(史記)卷五十八一百九, 전한서(前漢書)卷一五十四

 

옹치봉후(雍齒封侯)

유방(劉邦)이 제위에 오르기 이전에 유방을 늘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옹치(雍齒)라는 자가 있어, 급기야 제위에 오른 유방은 그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으나 그간의 공로 때문에 죽이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서로 자기 공로를 내세워 불평을 토로하고 티격태격하는 제장(諸將)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장량(張良)의 계략대로 우선 옹치를 십방후(什方侯)로 봉하였다.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

 

옹탑(邕塔)

중국 화도사(化度寺)에 있는 옹선사(邕禪師) 사리탑명(舍利塔銘)인데 당 나라 이백약(李百藥)이 글을 짓고 구양순(歐陽詢)이 글씨를 썼다.

 

옹폐(壅蔽)

덮어 버리다는 뜻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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