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옥
옥(屋)
가옥의 꼭대기 덮개를 말한다. 허름한 집이나 아니면 제대로 완성된 형태의 구조를 갖추지 못한 장사하는 집 등, 완전하지 못한 집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주거의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옥가(玉珂)
5품(品) 이상의 관원이 말(馬)에 다는 옥 장식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不寢聽金鑰 因風想玉珂”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6 「춘숙좌성(春宿左省)」
옥가(玉斝)
옥술잔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궁중의 술을 가리킨다.
옥갑(玉匣)
주옥으로 장식한 상자를 말하는데, 한(漢) 나라 때 황제 및 제후왕의 장례(葬禮)에 쓰이던 물품이다.
옥검(玉檢)
보배로운 글. 옥검은 「봉선서(封禪書)」를 담아 보관하는 상자라는 뜻을 지닌 금니옥검(金泥玉檢)의 준말로, 천지신명의 가호를 비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옥검(玉劍)
옥돌도 마치 진흙처럼 자른다는 곤오검(錕鋘劍)으로, 걸출한 재능을 가리키는 말이다.
옥검(獄劍)
진(晋) 나라 장화(張華)가 천문을 살핀 뒤 뇌환(雷煥)에게 말하기를,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사이에 이상한 기운이 있으니 이것은 필시 보검(寶劍)의 정기가 하늘에 비친 것일 것이다. 그 곳은 예장(豫章) 땅의 풍성군(豊城郡)이다.” 하고는 그를 풍성 현령에 임명했는데, 뇌환이 풍성에 이르러 감옥의 밑바닥을 파서 보검 두 자루를 얻으니 이것이 곧 용천검(龍泉劍)과 태아검(太阿劍)이었다.
옥검조궁(玉劍琱弓)
옥검(玉劍)은 자루를 옥으로 장식한 장검이고 조궁은 무늬를 아로새긴 활로, 장수의 소지품을 말한다.
옥견뢰(玉堅牢)
소식(蘇軾)의 눈(雪)을 읊은 시에, “어차피 단단한 옥이 되지는 못 할테니, 잠시 잠깐의 꽃이나 피우는 게 어떠랴.” 하였다.
옥결(玉玦)
갈라진 틈새가 있는 패옥으로, 파직 혹은 좌천을 뜻하는 말로 간언(諫言)을 했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받아 조정에서 축출된 것을 말한다. 『의례(儀禮)』 「상복전소(喪服傳疏)」에 “세 번 간(諫)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지경(地境)에 가서 처분을 기다리는데, 고리가 다 이어진 환(環)을 받으면 조정으로 돌아오고 고리가 끊어진 결(玦)을 받으면 조정 밖으로 나간다.” 하였다.
옥경(玉京)
백옥경(白玉京)의 준말로,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천제(天帝)의 거소(居所)인데, 보통 황제의 도성을 가리킨다.
옥경군제(玉京羣帝)
옥경(玉京)은 천상(天上)을 말함이니 즉 천상의 뭇 임금이란 뜻이다.
옥경대(玉鏡臺)
결혼을 뜻하는 말이다. 진(晉) 나라 온교(溫嶠)가 유총(劉聰)을 정벌하고 얻은 물건으로 결혼할 때에 옥경대를 예물로 삼았다 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가휼(假譎)」
옥계원(玉階怨)
궁인의 원사를 읊은 시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玉階生白露 夜久侵羅襪 却下水晶簾 玲瓏望秋月”
옥골선풍(玉骨仙風)
뛰어난 풍채와 골격.
옥관양생보력개(玉琯陽生寶曆開)
동지(冬至)를 말한다. 옥관(玉琯)은 음률(音律)을 정하기 위해 만든 옛날 악기 이름이다. 절기(節氣)를 미리 예측하기 위하여 율관(律管) 안에 각각 재를 담아 놓는데,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는 동지가 되면 황종(黃鍾)의 율(律)이 응한다고 한다. 보력(寶曆)은 책력(冊曆)으로, 이날 중국 조정에서 만방에 이를 반포하였다.
옥교(玉橋)
아름다운 돌로 만든 다리. 주로 대궐 안 시내에 걸린 다리를 의미한다.
옥구(玉鉤)
강소성(江蘇省) 동산현(銅山縣) 남쪽 희마대(戱馬臺) 아래에 나 있는 가도(街道)의 이름인데, 당(唐) 나라 때 이울(李蔚)이 이 가도를 냈다고 한다.
옥구녹로(玉具鹿盧)
장검(長劍)의 검수(劍首)에 옥으로 장식한 우물 정자(井字) 모양의 문양을 말한다. 그래서 옥구검(玉具劍)ㆍ녹로검(鹿盧劍)ㆍ옥구녹로검(玉具鹿盧劍)이라고 칭하는데, 자객 형가(荊軻)의 습격을 받았을 때 진시황(秦始皇)이 부검(負劍)했던 칼이 바로 녹로검이었다고 한다. 『송서(宋書)』 禮志 5ㆍ『사기(史記)』 刺客 荊軻傳 拔劍劍長 注ㆍ舊唐書 輿服志
옥궤(玉几)
옛날 궁궐에서 사용한 작은 탁자다. 옥으로 장식해서 ‘옥궤’라 부르며, 임금이 기대는 의지를 말한다. / 인용: 詰楊吏(허격)
옥국(玉局)
① 송대(宋代)의 저명한 도관(道觀)인 옥국관(玉局觀)으로, 소동파(蘇東坡)가 영주(永州)에서 사면을 받고 돌아와 옥국관 제거(提擧)가 되어 한가하게 노닐었던 고사가 있다.
② 중국 사천성(四川省) 성도현(成都縣)에 있는 도관(道觀). 송(宋)의 소식(蘇軾)은 옥국제거사(玉局提擧司)의 벼슬을 하였으므로 소식을 가리키기도 한다. 원래는 도관(道觀)을 가리키는데, 사찰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옥국(玉局)
촉중(蜀中)에 산중에 신선이 옥 바둑판에 바둑을 두었다는 유적(遺蹟)이 있다.
옥급(玉笈)
옥으로 장식한 책상「자로(子路)」 진기한 책을 담아 놓은 상자에 대한 미칭이다. 또는 도가의 비결을 말한다.
옥녀(玉女)
① 『시경(詩經)』 대아(大雅) 「민로(民勞)」에 “왕이 너를 보배로 여기시니 내가 이렇게 간하노라[王欲玉女 是用大諫].”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주(周) 나라 소목공(召穆公)이 당시에 못된 소인들이 유왕(幽王)의 마음을 흐리게 하여 총애를 받아 권세를 도둑질하므로 이를 꾸짖어 읊은 노래이다.
②선녀(仙女)를 가리킨다. 아름다운 기생.
옥노(玉奴)
남재(南齋) 동혼후(東昏侯)의 비(妃) 반씨(潘氏)의 소자(小子)이다. 그녀에게 혹하여 나라가 망했으나 그녀는 순절(殉節)했다.
옥당(玉堂)
① 옥으로 꾸민 집으로 ‘신선이 산다는 집’이다.
② 홍문관(弘文館)을 화려한 벼슬이란 뜻으로 옥당(玉堂)이라 한다.
③ 조선 시대, 삼사의 하나로 궁중의 경서와 사적을 관리하고 왕에게 학문적 자문을 하던 관청 / 인용: 夜登練光亭(김창흡)
옥당상화(玉堂賞花)
명(明) 나라 선종(宣宗)이 문연각(文淵閣)에 거동하여 담홍색의 작약 한 그루를 심도록 명했고, 경제(景帝) 초년에 또 순백색(純白色)과 심홍색(深紅色)의 작약 두 그루를 더 심도록 하였는데, 뒤에 학사(學士) 이현(李賢)이 이 세 그루 작약을 두고 여러 사람들과 시를 짓고는 ‘옥당상화집(玉堂賞花集)’이라고 명명했다 한다. 『군방보(群芳譜)』
옥당서(玉堂署)
한(漢) 나라 때 학사(學士)들이 황제의 명을 기다리던 곳이다. 한림원(翰林院) 혹은 한림 학사(翰林學士)를 가리킨다.
옥대(玉帶)
벼루의 일종으로 절강성(浙江省) 상산현(常山縣)에서 생산되는데 자석(紫石) 속에 백색의 무늬 한 가닥이 둘러있으므로 옥대연(玉帶硯)이라 이름을 붙였음. 혹은 자포옥대(紫袍玉帶)라고도 한다.
옥도(玉道)
성곽 주위를 둘러싸고 흐르는 물줄기를 말한다.
옥동(玉童)
선동(仙童)으로, 서왕모(西王母)가 여러 신선들과 원구(員丘)에서 놀 적에 옥동을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옥동서(玉東西)
술잔을 말한다. 송 나라 황정견(黃庭堅)의 ‘차운길로십소시(次韻吉老十小詩)’에, “가인은 두남북이요, 미주는 옥동서라[佳人斗南北 美酒玉東西].”하였다.
옥두(玉斗)
옥으로 만든 술을 뜨는 구기이다.
옥두쇄(玉斗碎)
항우(項羽)와 패공(沛公)이 홍문(鴻門)에 모여서 잔치할 때에, 범증(范增)이 항우에게 패공을 죽이기를 권하였으나 항우가 듣지 않았다. 패공이 빠져 나간 뒤에 장량(張良)을 시켜 옥두(玉斗)를 범중에게 선사하니 범중이 칼로 옥두를 쳐서 깨치며, “항왕(項王)의 천하를 빼앗을 자는 반드시 패공일 것이며, 우리들은 포로가 되고 말 것이다.” 하였다.
옥두쇄시휴백업(玉斗碎時虧伯業)
옥으로 만든 술잔. 항우(項羽)는 이것을 범증(范增)에게 주었었는데, 홍문연(鴻門宴) 잔치에서 범증은 항우에게 유방(劉邦)을 죽일 것을 청했으나 끝내 따르지 않자, 노하여 옥두를 깨뜨렸다. 그 후 항우는 유방에게 패하여 오강(烏江)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옥란(玉鑾)
임금의 수레에 옥 방울이 달렸다.
옥량상월(屋梁霜月)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시 「몽이백(夢李白)」에 “달빛이 들보에 가득 비추니, 흡사 그대 안색을 본 듯하오.(落月滿屋梁 猶疑見顔色)”하였다.
옥량월(屋梁月)
두보(杜甫)가 벗 이백(李白)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시 「몽이백(夢李白)」에 “달빛이 들보에 가득 비추니, 흡사 그대 안색을 본 듯하오[落月滿屋梁 猶疑見顔色].”하였다.
옥려(玉廬)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비강(鼻腔). 콧속.
옥력(玉曆)
책력의 별칭이다.
옥련(玉輦)‘임금의 수레’를 말한다.
옥련환(玉連環)
송 나라 풍애자(馮艾子)가 지은 사패(詞牌)의 이름으로,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그 가사 첫 구절에 “적선은 떠났는데 그 당시의 술자리 벗들은 이제 누가 남았는고[謫仙往矣 問當年飮中儔侶 於今誰在]”하였다. 『사율습유(詞律拾遺)』 卷五
옥련환체(玉聯環體)
앞시의 마지막 끝 글자를 다음 시의 첫 글자로 하여 짓는 시를 말하는데, 회문시(廻文詩)라고도 하며, 시구(詩句)별로 글자를 따서 쓰기도 한다. 본시에서는 첫 시구의 끝 글자가 유(悠)이고 다음 시구의 첫 글자가 심(心)인데, 이는 유(悠) 자의 아랫부분을 따서 쓴 것이고, 다음 시구의 끝 글자가 수(脩)이고 그 다음 시구의 첫 글자가 월(月)인데, 이는 수(脩) 자에서 월(月)을 딴 것으로, 계속해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글자를 따서 썼다.
옥로(玉輅)
옥으로 장식한 임금의 수레.
옥로남순(玉輅南巡)
옥로(玉輅)는 천자가 타는 수레를 이른 것으로, 순(舜) 임금이 남쪽으로 순수(巡狩)를 나갔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어했던 일을 가리킨 말이다.
옥롱송(玉瓏鬆)
꽃 이름이다. 원(元) 나라 원호문(元好問)의 유천단잡시(遊天壇雜詩)에 “비록 사화의 향기가 좋다고 하지만 나는 그중에 옥롱송을 가장 사랑한다오[縱道楂花香氣好 就中偏愛玉瓏鬆]”하였는데, 그 자주(自注)에서 옥롱송을 꽃 이름이라고 하였다.
옥룡린갑(玉龍鱗甲)
옥룡(玉龍)은 눈을 비유하는 시적 표현이다. 송(宋) 나라 장원(張元)의 시 ‘설(雪)’에 “싸움에 진 옥룡 삼백만 마리, 갑옷 비늘 하늘 가득 날려서 떨어지네[戰退玉龍三百萬 敗鱗殘甲萬空飛]”하였다.
옥루(玉壘)
중국의 촉(蜀) 나라 수도인 성도(成都)의 서북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옥루(屋漏)집에서 가장 어두운 서북쪽 방 구석을 가리키는 말이나, 여기서는 아무도 모르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속마음을 의미한다.
옥루(玉漏)밤 시간을 알리는 물시계
옥루(玉樓)
① 사람의 어깨를 말한 것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凍合玉樓寒起粟”이라 하였다.
② 지극히 화려한 누각(樓閣), 곧 ‘신선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겸하여 임금이 사는 궁궐을 뜻하기도 한다.
옥루기(玉樓記)
당(唐) 나라 이하(李賀)가 7세에 문장을 이루고 일찍 죽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상제(上帝)가 백옥루(白玉樓)를 짓고서 이하로 하여금 기(記)를 짓기 위하여 불러갔다 한다.
옥루기문(玉樓記文)
‘문인(文人)의 죽음’을 뜻하는 말이다. 당(唐)의 이하(李賀)가 죽을 때 어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홀판을 들고 와서 부르면서, 지금 상제께서 백옥루(白玉樓)를 지어놓고 그 기문(記文)을 쓰기 위해 그대를 부르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다. 「이하소전(李賀小傳)」
옥루랑(玉樓郞)
당 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죽을 때 하늘에서 붉은 용을 타고 온 사람이 말하기를 “상제가 백옥루(白玉樓)를 완성했는데, 그대에게 글을 짓게 하였다.”고 한 고사에서 인용한 것. 『창곡집(昌谷集)』 「이장길소전(李長吉小傳)」
옥루성(玉樓成)
옥루(玉樓)는 상제(上帝)나 혹은 신선들이 산다고 하는 곳으로,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이장길소전(李長吉小傳)」에, “이장길이 장차 죽을 때 홀연히 낮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웃으면서 말하기를, ‘상제가 백옥루(白玉樓)를 완성하고는 그대를 불러들여 기문(記文)을 지으려고 한다. 하늘나라는 즐겁고 괴롭지가 않다.’ 하니, 이장길이 홀로 눈물을 흘렸는데, 조금 있다가 이장길이 기절하였다.” 하였다.
옥루수(屋漏水)
옥루(屋漏)는 궁중에 있는 옥으로 만든 물시계.
옥루수문(玉樓修文)
당 나라 천재 시인 이하(李賀)가 27세에 죽을 때 천상에서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붉은 용을 타고 내려와서 “상제(上帝)가 백옥루를 완성하고 지금 그대를 불러다가 기(記)를 짓도록 명하였다.” 하고 데려갔다는 전설이 있다. 『창곡집(昌谷集)』 「이장길소전(李長吉小傳)」
옥루역속은해화(玉樓亦粟銀海花)
옥루(玉樓)는 어깨요 은해(銀海)는 눈이다.
옥루최격소(玉樓催檄召)
‘문인의 죽음’을 비유한 말이다. 천제(天帝)의 백옥루(白玉樓)가 완성되자, 당(唐) 나라 시인 이하(李賀)를 불러올려 기문(記文)을 짓게 했다는 이야기가 당 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이하소전(李賀小傳)’에 나온다.
옥루파한속(玉樓播寒粟)
소식(蘇軾)의 설시(雪詩)에 “옥루가 얼어붙으니 추워서 소름이 일고 은해(銀海)에 빛이 일렁이니 현기증이 나 꽃이 생긴다[凍合玉樓寒起栗 光搖銀海眩生花].” 하였는데, 주(註)에 “도가에서 목과 어깨뼈를 ‘옥루’라 하고 눈을 ‘은해’라 한다.” 하였다.
옥루흔시구(玉樓欣始構)
죽어서 하늘나라로 올라갔다는 뜻이다. 옥루는 상제(上帝)나 혹은 신선들이 산다고 하는 곳으로,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이장길소전(李長吉小傳)」에, “이장길이 장차 죽을 때 홀연히 낮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웃으면서 말하기를, ‘상제가 백옥루(白玉樓)를 완성하고는 그대를 불러들여 기문(記文)을 지으려고 한다. 하늘나라는 즐겁고 괴롭지가 않다.’ 하니, 이장길이 홀로 눈물을 흘렸는데, 조금 있다가 이장길이 기절하였다.” 하였다.
옥립(玉立)
① 대나무 줄기가 푸른 옥같이 생겼다고 하여 한 말이다.
② 옥이 서 있다는 말로, ‘사람의 풍채가 청수하고 아름다움’을 말한다.
③ 사위를 말한다. 『진서(晉書)』 「위개전(衛玠傳)」에 “개의 장인 악광(樂廣)이 명망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장인은 얼음처럼 맑고 사위는 옥처럼 윤이 난다.’했다.” 하였다.
옥마(玉麻)
쏟아지는 빗줄기를 말한다. 당 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모옥위추풍소파시(茅屋爲秋風所破詩)」에, “빗줄기 삼대 같아 끊어지지 않는다[雨脚如麻未斷絶].”하였다.
옥마(玉馬)
현신(賢臣)을 말한다. 『논어(論語)』 비고참(比考讖)에 “은(殷) 나라가 달기(妲己)에 현혹되자 옥마가 도망쳤다.” 하였다.
옥무고가욕잠휘(玉無高價欲潛輝)
알아주지 않아 도(道)를 행할 수 없으니 숨어야 한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자공(子貢)이 ‘아름다운 옥이 여기에 있으니 갑 속에 넣어두어야 합니까, 좋은 값을 받고 팔아야 합니까?’ 하였더니 공자는 ‘팔아야 한다 팔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값을 기다리려 한다’ 하였다.” 하였는데 이것은 자공이 공자를 옥에 비하여 세상에 나와 도를 행하여야 함을 은근히 풍자한 말인데, 공자는 ‘값을 기다려야 한다’ 하여 알아주는 임금을 만나야 함을 말한 것이다.
옥문관(玉門關)
서역(西域)의 보화(寶貨)를 실어나르기 위해 한 무제 때 설치한 서역과의 경계에 있는 관문인데, 수졸(戍卒)들이 여기로 끌려가서 수자리 한다.
옥문도호증투필(玉門都護曾投筆)
한(漢) 나라 반초(班超)가 처음에 집이 가난하여 관청에 글씨를 써주고 있다가 하루는, “대장부가 시의(塞外)에 나가서 공을 세울 것이지 어찌 붓과 벼루를 일삼으랴.” 하고 붓을 던지고 가더니 뒤에 옥문관(玉門關)을 나가서 서역(西域)을 평정하고 안서도호(安西都護)가 되고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옥미인(玉美人)
화초의 일종이다.
옥반(玉盤)
이백(李白)의 시에 “어렸을 적에 달을 몰라서 흰 옥소반이라 불렀네[少時不識月呼作白玉盤].”라고 한 구가 있다.
옥반가효(玉盤佳肴)
옥 소반 위의 아름다운 안주. 화려한 그릇에 놓여 있는 맛있는 안주
옥배(玉杯)
동중서(董仲舒)의 저서인 춘추번로(春秋繁露)의 편명인데, 그 내용은 춘추의 대의(大義)를 서술한 것으로 특히 여기서는 노 문공(魯文公)이 상중(喪中)에 장가들었다는 것을 세밀히 비판하였다. 『춘추번로(春秋繁露)』 卷一
옥배번로(玉杯繁露)
모두 책 이름이다. 한(漠) 나라 동중서(董仲舒)가 지음. 『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에, “仲舒所著 皆明經術之意 玉杯繁露淸明竹林之屬 復數十篇十餘萬言 皆傳於後世”라고 보인다.
옥백(玉帛)
옥과 포백(布帛)인데, 고대의 회맹(會盟)이나 조빙(朝聘) 때 제후(諸侯)들이 바치던 예물(禮物). 『좌전(左傳)』 애공(哀公) 7년 조(條)에 “우(禹) 임금이 도산(塗山)에 제후를 모았을 때 옥백(玉帛)을 가진 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하였다.
옥백제항(玉帛梯航)
여러 외국이 옥백(玉帛)의 예물을 가지고 험한 산 길에서는 사닥다리를 타고 물에서는 배를 타고 왔다는 말이다.
옥벽루(屋壁漏)
옥루흔(屋漏痕)인데 필법을 이른다.
옥변(玉弁)
신선이 쓰는 모자를 말한다.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의 호이다.
옥부(玉斧)
칠보(七寶)로 합성된 달을 수리하기 위해 8만 2천 호(戶)가 동원되었다는 “修月玉斧”의 전설과, 오강(吳剛)이라는 사람이 벌을 받아 달 속의 계수나무를 옥도끼로 계속 찍게 되었다는 “吳生玉斧”의 전설이 전해 온다. 『유양잡조(酉陽雜俎)』 前集 卷1
옥부도(玉浮屠)
바다 가운데 흰 모래밭이 10리쯤 가로 걸쳐 있다.
옥부수성(玉斧修成)
『유양잡조(酉陽雜俎)』에 “태화(太和) 연간에 정인본(鄭仁本)이 숭산(嵩山)에서 노니는데, 한 사람이 수건에 물건을 싸서 베고는 그를 부르더니 말하기를 ‘그대는 달이 칠보(七寶)가 합쳐져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가? 항상 8만 2천의 호(戶)가 있어 이것을 닦는다.’ 하고 인하여 수건을 열어 보이는데, 옥도끼 여러 개가 있었다.” 하였다.
옥부수월(玉斧修月)
당나라 정인본의 표제(表弟)가 왕수재(王秀才)와 함께 숭산(嵩山)에 놀러 갔다가, 한 사람이 보따리를 베고 자는 것을 보고 깨워 일으키니, 그 사람이 일어나 말하기를, “달은 칠보(七寶)로 합성(合成)된 것인데 항상 8만 3천 호(戶)가 옥도끼를 가지고 달을 수리(修理)한다.” 하였다. 『서양잡관(西陽雜觀)』
옥비(玉妃)
매화(梅花)의 별칭이다.
옥비금약(玉匙金鑰)
옥시금약(玉匕金籥)이라고도 쓰는데, 옥시는 이(齒)를, 금약은 혀(舌)를 가리키며 전(轉)하여 도가서(道家書)를 말한다.
옥사(玉沙)
남조(南朝) 양(梁) 나라 심약(沈約)의 미타불명(彌陀佛銘)에 “일렁이는 옥 모래, 이리 왔다 저리 갔다.[瀢沱玉沙 乍來乍往]”이라는 구절이 있다.
옥산(玉山)
① 조선 후기의 화가인 장한종(張漢宗)의 호이다.
② 용모(容貌)가 아름다운 사람을 찬미한 말인데, 또는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이 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을 옥산퇴(玉山頹)라고도 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취하면 덜컥 옥산이 무너지려는 것 같다[嵇叔夜之爲人也 巖巖若孤松之獨立 其醉也 峨峨若玉山之將崩].”는 말이 있다.
옥산지잠(玉山之箴)
옥산(玉山)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또 다른 호인 자옥산인(紫玉山人)의 약칭이다. 회재선생문집(晦齋先生文集) 제6권 ‘원조오잠(元朝五箴)’ 중에 세 번째로 경신잠(敬身箴)이 나온다.
옥산최(玉山摧)
혜강(嵇康)이 술이 취하여 넘어질 때에는 옥산이 무너지는 것 같다 하였다.
옥산퇴(玉山頹)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에 “산공(山公)이 말하기를 ‘혜숙야(嵇叔夜)의 사람됨은 외로운 소나무가 우뚝하게 서 있는 듯하며 술에 취하면 높은 옥산(玉山)이 장차 넘어지려는 것 같다.’고 했다[嵇叔夜之爲人也 巖巖若孤松之獨立 其醉也 峨峨若玉山之將崩].”하였다.
옥산화(玉山禾)
옥산은 서왕모(西王母)와 목천자(穆天子)가 연회하던 군옥산(群玉山)을 말한다. 이태백(李太白)의 천마가(天馬歌)에 “비록 옥산의 벼가 있더라도[雖有玉山禾] 오랜 굶주림을 치료하지는 못한다[不能療苦飢]” 하였다.
옥삼(玉糝)
토란에 쌀가루를 섞어 끓인 죽을 옥삼갱(玉糝羹)이라고 한다. 『소식보(蔬食譜)』
옥삼갱(玉糝羹)
토란국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시에 “남해의 금제회가 있다 하지만, 동파의 옥삼갱엔 섣불리 비교 못하리라[莫將南海金虀膾 輕比東坡玉糝羹].”라는 표현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41 過子忽出新意以山芋作玉糝羹…
옥상가옥(屋上架屋)
지붕 위에 또 지붕을 얹는다는 말로, ‘공연한 헛수고를 하거나 필요 없는 일을 계속해서 하는 짓’을 가리키는 말이다.
옥상옥(屋上屋)집 위에 집. ‘필요 없는 부분’을 만들어냄.
옥새(玉塞)중국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 서북쪽에 있는 옥문관(玉門關)의 별칭이다. 중국 장안(長安)에서 서쪽으로 3천 6백 리 떨어진 돈황군(敦煌郡)에 있으며, 중원에서 서역(西域)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옥서(玉書)
수련법(修鍊法)을 적은 도가(道家)의 글이다.
옥서(玉署)
옥당(玉堂)으로 홍문관(弘文館)을 말한다.
옥서향안리(玉署香案吏)
당 나라 원진(元稹)의 장경집(長慶集) 권23 이주댁과어낙천(以州宅夸於樂天)의 “나는 본디 옥황상제 향안 맡은 관리로서 귀양살이 오히려 봉래산에 머무르네[我是玉皇香案吏 謫居猶得住蓬萊].”에서 나온 것으로, 옥서는 본디 대궐이고 향안은 향로를 놓아두는 탁자이다.
옥석(玉舃)
선인(仙人) 안기생(安期生)이 진시황(秦始皇)에게 남겨 주었다는 붉은 색깔의 옥신발[赤玉舃]이다.
옥석구분(玉石俱焚)
옥과 돌이 함께 탄다는 뜻이다. 곧 나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나 다 같이 재앙을 당함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옥석동궤(玉石同匱)
옥과 돌이 한 궤짝 속에 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혹은 똑똑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한데 섞여 있는 경우’를 말한다.
옥석일시분(玉石一時焚)
『서경(書經)』에, “곤강(崑崗)에 불이 붙으면 옥과 돌이 다 탄다.”는 말이 있는데, 선(善)ㆍ악(惡)이 다 해를 입음을 말한다.
옥석장(玉舃藏)
인간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다. 선인(仙人) 안기생(安期生)이 진시황(秦始皇)을 만나 사흘 낮 밤을 이야기하다가 붉은 옥으로 만든 신발[赤玉舃]을 남겨 두고 떠났다는 전설이 있다. 『열산전(列仙傳)』 「안기선생(安期先生)」
옥석혼효(玉石混淆)
훌륭한 것과 쓸데없는 것이 뒤섞여 있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옥섬(玉蟾)
① 달을 옥두꺼비(玉蟾)이라 한다.
② 연적을 이른다. 한(漢) 나라 때 광릉왕(廣陵王)이 진 영공(晉靈公)의 무덤을 파서 큰 주먹만한 옥 두꺼비 하나를 얻었는데, 그 속에는 물을 5홉(合)쯤 담을 수 있고 아주 새것처럼 광택이 있으므로, 이것을 연적으로 사용했던 데서 온 말이다.
옥섬여(玉蟾蜍)
연적(硯滴).
옥성(玉成)
① 고난 끝의 완전한 성취를 뜻하는 말이다. 송(宋) 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빈곤함과 미천함, 근심과 슬픔은 뒤에 그대를 완전하게 이루어 주기 위함이다[貧賤憂戚 庸玉女於成也].”라는 말이 나온다. / 인용: 自撰墓誌銘(정약용)
② ‘옥처럼 뛰어난 인물이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옥수(玉樹)
①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의 “위 명제(魏明帝)가 후비의 아우 모증(毛曾)을 하후현(夏侯玄)과 함께 앉도록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갈대가 옥나무에 의지하였다 했다.”에서 나온 것으로, 자태가 준수하고 재간이 뛰어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② 옥같이 깨끗한 나무로, 외모가 준수하고 재간이 남다른 사람에 대한 미칭이다.
③ 옥수경지(玉樹瓊枝)의 준말로 귀가(貴家)의 자제를 비유하는 표현이다.
④ 자태가 준수하고 재간이 넉넉한 사람을 말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서(傷逝)」에 “유량(庾亮)이 죽자 하충(何充)이 장사지내는 곳에 이르러 말하기를 ‘옥수를 흙 속에 묻으니 어찌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운 정을 끊을 수 있게 하랴.’ 했다. 하였다.
⑤ 좋은 나무 이른다. 병아(騈雅) 석목편(釋木篇)에 “옥수(玉樹)는 느티나무처럼 생겼는데 잎이 가늘다.” 했고, 『진서(晉書)』 「사현전(謝玄傳)」에 “종형(從兄) 사랑(謝朗)과 함께 숙부(叔父)의 중히 여김을 받았는데, 현이 말하기를 ‘저는 한 그루 옥수(玉樹)처럼 우리집 뜰에 서고자 합니다.’ 라고 했다.” 하였는데, 이는 인물이 뛰어남을 비유한 말이다.
옥수가(玉樹歌)
망국(亡國)의 노래를 말한다. 남조 진(南朝陳)의 후주(後主)가 정사는 돌보지 않고 매일 귀비(貴妃) 등과 함께 노닐면서 궁녀들에게 새로 지은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르게 하다가 끝내 나라를 망하게 한 고사가 있는데, 그 곡 가운데 전해 오는 이른바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를 줄여서 보통 옥수가라고 부른다. 『진서(陳書)』 「황후전론(皇后傳論)」
옥수겸가(玉樹蒹葭)
옥수(玉樹)는 뛰어난 사람으로, 상대방을 추켜주는 말이고, 겸가는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서 하는 말로, 미천한 사람이 고귀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말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에, “위(魏)나라 명제(明帝)가 황후(皇后)의 동생 모증(毛曾)으로 하여금 하후현(夏侯玄)과 함께 앉게 하니, 당시 사람들이 겸가가 옥수에 기대었다.[蒹葭依玉樹]고 하였다.” 하였는데, 겸가는 모증을 가리키고 옥수는 하후현을 가리킨다.
옥수경지(玉樹瓊枝)
남의 자제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옥수엄(玉樹掩)
영재(英才)의 죽음을 뜻하는 말이다. 진(晉) 나라 사람 유량(庾亮)이 죽어 하관(下棺)을 할 때, 하충(何充)이 “옥수가 묻힌다.[埋玉樹]”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했던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서(傷逝)」
옥수여도의(玉樹如叨倚)
선목(仙木)으로 사람의 고결한 풍채를 비유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위(魏) 나라 모후(毛后)의 아우 모증(毛曾)이 하후현(夏侯玄)과 자리를 함께 하자 사람들이, 마치 갈대가 옥수에 기댄 것 같다.” 하였다.
옥수지란(玉樹芝蘭)
금옥 같은 나무요 향기 나는 난초라는 뜻으로, 남의 훌륭한 자제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
진 후주(陳後主)가 매양 빈객을 불러 장귀비(張貴妃) 등을 데리고 잔치하고 여러 귀인(貴人)에게 시를 짓도록 하여 그 중에서 잘된 것을 뽑아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 곡조를 만들었는데, 뒤에 옥수ㆍ후정 2곡으로 나뉘었다.
옥순(玉筍)
① 당(唐) 나라 이종민(李宗閔)이 공거(貢擧)를 맡아 뽑은 사람이 풍채 좋은 선비들이었으므로 세상에서 옥순(玉筍)이라 일렀다. 『당서(唐書)』
② 문과(文科)에 급제한 자를 뜻하는 말이다.
③ 미인(美人)의 손가락을 비유한 말로서, 뛰어난 인재가 많이 늘어서 있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옥순(玉笋)
① 차의 별칭이다. 옛날 차의 이명(異名)으로, ‘석화 자순(石花紫笋)’ 혹은 ‘영아 진순(靈芽眞笋)’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 그리고 차를 소재로 읊은 동파(東坡)의 시에 “화유 담긴 물병 하나[一甌花乳]”라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서의 화유(花乳)도 역시 차의 이명이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13 和蔣夔寄茶
② 풍채가 좋은 인물들이 옥으로 뽑아 올린 죽순과 같다는 뜻이다.
옥순반(玉筍班)
영재(英才)들이 늘어서 있는 줄이라는 뜻으로, 옥당의 관원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종민(李宗閔)이 지공거(知貢擧)로 있을 때 그의 문하에 청수하고 준걸스런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어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일러 옥순반이라 하였다. 『인화록(因話錄)』
옥순봉(玉筍峰)
단양 팔경(丹陽八景)의 하나.
옥승(玉繩)
별 이름이다. 즉 북두 제오성(北斗第五星)의 북쪽에 위치한 천을(天乙)ㆍ태을(太乙) 두 작은 별을 가리킨다.
옥식(玉食)
귀한 진미(珍味)를 말한다.
옥신당(玉宸堂)
임금이 있는 궁전.
옥심(沃心)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로 제왕을 깨우쳐 인도하는 것. 『서경(書經)』 「열명(說命)」 上에 “네 마음을 열어 짐의 마음을 깨우치라[啓乃心 沃朕心].” 하였다.
옥안(玉案)
『초한춘추(楚漢春秋)』에, “한왕(漢王)이 나에게 옥소반(玉案)을 내려 먹게 하였다.”이라고 한신(韓信)이 말하였다.
옥액(玉液)
도가(道家)의 말로 먹으면 장생불사(長生不死)한다는 단약(丹藥)이다.
옥양잔월(屋樑殘月)
벗을 그리는 정이 간절함을 말한 것이다. 두보(杜甫)의 「몽이백(夢李白)」에 “지는 달빛이 용마루에 가득하니 그대 낯빛이 비치는가 의심하노라[落月滿屋樑 猶疑見顔色].”에서 나온 말이다.
옥여우성(玉汝于成)
송(宋) 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부귀와 복택은 나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요, 빈천과 우척(憂戚)은 너를 옥처럼 다듬어 완성시키는 것이다.” 하였다.
옥여의(玉如意)
손에 가지면 모든 일이 소원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주(寶珠)를 가리킨다.
옥영(玉英)
① 도가(道家)에서 신령한 진액(津液)을 가리킨 말이다.
② 돌의 정기(精氣)로 피어나는 꽃으로 신선이 먹는다고 한다. 《孝經 『원신계(援神契)』
옥예관(玉蕊觀)
당(唐) 나라의 당창관(唐昌觀), 정원에 옥예화(玉蕊花)가 가득 심어져 있어 이렇게도 불렀다. 옥예화는 덩굴풀인데 새하얀 꽃이 피며 향기가 아름다워서 특히 당(唐) 나라 사람들이 좋아했었다.
옥예단사(玉蘂丹砂)
도가(道家)에서 불로장생용 단약(丹藥)을 제련할 때 쓴다고 하여 귀하게 여겨지는 광물이다.
옥예화(玉蕊花)
덩굴풀인데 새하얀 꽃이 피며 향기가 아름다워서 특히 당(唐) 나라 사람들이 좋아했었다.
옥오제효자(屋烏啼孝子)
까마귀 새끼가 자라면 먹을 것을 물어다가 도로 제 어미를 먹이므로, 반포(反哺)라 하여 효조(孝鳥)라 칭한다.
옥오지애(屋烏之愛)
사람이 사랑스러우면 그 사람의 집에 있는 까마귀까지 귀여워한다. 한번 사람을 좋게 보면 그 사람과 관계된 모든 것을 좋게 보게 됨을 말한다.
옥오징애호(屋烏徵愛好)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그가 사는 집 위의 까마귀까지 귀엽게 보인다는 뜻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사람 주위의 것에까지 미침을 이른 말이다.
옥옥(沃沃)
젊고 아름다운 모양
옥완지(玉碗地)
『유설(類說)』에 의하면, 장안(長安)의 영녕방(永寧坊) 동남쪽은 바로 금잔지인데 이곳은 깨뜨려도 다시 이룰 수가 있고, 안읍리(安邑里)의 서쪽은 바로 옥완지(玉碗地)인데 이곳은 깨뜨리면 완전해질 수가 없다고 한다.
옥우(玉宇)
옥으로 장식한 궁전. 천제(天帝)가 있는 곳, 즉 하늘을 가리킨다.
옥우경루(玉宇瓊樓)
달 속에 있다는 옥으로 지은 궁전. 불사약을 훔쳐 달로 달아난 항아(姮娥)가 여기서 외로이 살고 있다는 전설을 제재로 한 시가가 많은데, 그 내용이 애절하다.
옥월취보(玉鉞翠葆)
옥으로 만든 부월(斧鉞)과 제왕의 푸른 일산(日傘)이라는 뜻이다.
옥유(玉蕤)
옥의 정화로서 신선의 식물이라 한다. 『진고(眞誥)』
옥윤(玉潤)
훌륭한 장인과 사위를 칭찬한 말이다. 진(晉) 나라 때 위개(衛玠)가 장인 악광(樂廣)과 함께 명망이 높았으므로, 당시의 논자(論者)가 “장인은 얼음처럼 청결하고, 사위는 옥처럼 온윤하다[婦公氷淸 女婿玉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卷三十六
옥윤여아(玉潤女兒)
외손녀를 말한다. 진(晉) 나라 위개(衛玠)가 악광(樂廣)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당시에 “장인은 빙청(冰淸)이요 사위는 옥윤(玉潤)이라.”는 평판을 얻었던 고사에서 유래하여, 사위를 옥윤이라고 하게 되었다. 『진서(晉書)』 「위개전(衛玠傳)」
옥의(玉扆)
옥으로 장식한 궁중의 호화로운 병풍을 말한다.
옥의(玉衣)
제왕이나 후비(后妃)를 장사지낼 때 입히는 옥으로 된 옷이나, 또는 능침에 보관하고 있는 옷을 말한다.
옥인(玉人)
① 매화를 은유한 말로, 소동파(蘇東坡)의 시 홍매(紅梅)에 “옥인(玉人)의 붉은 얼굴 교태 더욱 많아라.” 하였다.
② 친한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애칭이다.
옥인수(屋因樹)
나무 끝을 지붕 삼음. 산중에 은거함을 말한다.
옥잠(玉簪)
옥관자(玉貫子)를 단 공경대부(公卿大夫)를 가리킨다.
옥잠주리(玉簪珠履)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은 식객(食客)이 3천 명이고,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도 식객이 3천 명이었다. 평원군이 자기의 식객을 춘신군에게 보냈는데, 호화로움을 자랑하기 위하여 대모잠(玳瑁簪)을 꽂고 칼집도 주옥(珠玉)으로 장식하였더니 춘신군의 식객은 모두 주옥으로 신을 만들어 신었다.
옥장(玉帳)
옥같이 견고한 장막이란 뜻으로, 원수(元帥)가 거처하는 장막을 가리킨다. / 인용: 哀魚將軍(이희풍)
옥장(玉漿)
원래는 선인(仙人)의 음료(飮料)를 뜻하는 말이나, 선인의 몸속의 기혈(氣血)을 가리키기도 한다.
옥장경(玉帳經)
진법(陣法) 등을 기록한 병서(兵書).
옥저(沃沮)
고대 부여(扶餘)계열의 한 부족 사회. 이들은 지금의 함경도(咸鏡道)일원을 중심으로 하여 부족 국가를 형성하고 살았었음.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
옥저(玉筯)
마치 옥 젓가락 모양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魏) 나라 문제(文帝)의 왕후인 견후(甄后)의 얼굴이 희었는데, 그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르면 마치 옥저(玉筯)와 같았다고 한다. / 인용: 薌娘謠(이광정)
옥전(玉田)
남전(藍田). 옥이 많이 나온다는 중국의 고을 이른다.
옥전연(玉田煙)
“남전에 날이 따스해 옥에서 연기가 나는구나.”이 말은 당(唐) 이상은(李商隱)의 금슬시(錦瑟詩)인데, 곡조가 화(和)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옥절(玉節)
① 예전 관찰사는 옥으로 된 절(節)을 가지게 되나니, 절은 깃대 위에 꽂은 것으로 그것은 임금이 하사하는 것이니, 그 사명에 대하여 주는 것이다. / 인용: 端川節婦詩(김만중)
② 옥 부절(玉節)은 곧 ‘봄 소식’을 의미한다.
③ 옥으로 만든 부절(符節)을 말한다. 옛사람이 ‘신(信)을 보여주는 물건’으로 사용하였는데, 『주례(周禮)』 지관(地官) 장절(掌節)에 “방국(邦國)을 지키는 자는 옥절(玉節)을 사용한다.”에서 나온 것으로, 관찰사 등을 가리킨다.
④ 옥으로 만든 부절(符節)인데, 천자의 사신을 옥절사(玉節使) 혹은 옥절랑(玉節郞)이라고 한다.
옥정(玉井)
중국 오악(五岳)의 하나인 화산(華山) 꼭대기에 있는 못 이름이다. 이 못에는 일천 잎새의 연꽃이 피는데, 그 뿌리를 복용하면 우화등선(羽化登仙)한다는 전설이 있다.
옥정련(玉井蓮)
태화산(太華山)에 있다는 신비의 연을 가리키는데, 한유(韓愈)의 고의시(古意詩)에 “태화봉 머리 옥정의 연은, 꽃잎이 열 길이요 잎은 배만하다[太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 하였다.
옥제(玉除)
옥으로 꾸민 계단으로, 중국 조정을 가리킨다.
옥제(玉帝)
옥황상제의 준말이다.
옥제(玉啼)
좋은 시문을 지은 것을 말한다. 한유(韓愈)의 성남 연구(城南聯句)에 “구슬 침은 주워 다하지 못하고 옥 눈물은 떨어져도 쟁그랑하네(寶唾拾未盡 玉啼墮猶鎗)”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 卷八
옥제(玉帝)
중국 동진(東晉)의 왕족(王族)인 주도(周鍍)를 가리킨다. 주도는 자칭 후주천황(後周天皇)이라 하면서 당 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압록강을 건너 이곳으로 와 은둔하였다고 한다.
옥조(玉兆)
점치는 법의 한 가지. 거북껍질을 불에 구워 모양이 옥처럼 벌어지는 것.
옥주(沃州)
경치가 아름다운 고지대에 사는 것을 말한다. 옥주(沃州)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신창현(新昌縣) 동쪽에 있는 명산으로 이 위에는 방학봉(放鶴峯)과 양마파(養馬坡)가 있는데, 이것은 옛날 진(晉)의 고승(高僧) 지둔(支遁)이 학을 놓아주고 말을 기른 곳이라 한다.
옥주(玉麈)
① 옥 불자[玉麈]는 아름다운 먼지떨이를 가리키는데,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청담(淸淡)을 하는 선비들이 백옥주미(白玉麈尾)를 손에 들고 휘저으며 담론(談論)하였는데, 백옥주미는 사슴의 꼬리에 옥으로 자루를 한 것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談辯如雲玉麈麾”라는 것이 보인다.
② 아름다운 불자(拂子)라는 뜻이다. 고라니[麈]의 꼬리는 먼지가 잘 떨린다 하여, 이 고라니의 꼬리털로 만든 먼지떨이는 청담(淸談)을 하던 고사(高士)들이 많이 가지고 다녔으며 뒤에 불도(佛徒)들도 많이 가지고 다녔다 한다. 『진서(晉書)』 卷四十三 「왕연전(王衍傳)」
옥지(玉墀)
① 옥돌로 꾸며진 땅바닥.
② 옥돌을 깔아 만든 아름다운 섬돌로 대궐을 말한다.
옥지(玉芝)
① 옥수(玉樹)ㆍ지란(芝蘭)인데, 아름다운 인물(人物)을 말함이다.
② 신선이 먹는다는 신초(神草)이다.
옥진(玉津)
선약(仙藥)의 이름이다. 한무고사(漢武故事)에 “서왕모(西王母)의 말에 의하면, 최고의 약은 옥진(玉津)과 금장(金漿)이요, 그 다음 약으로는 오운(五雲)의 장(漿)이 있다 한다.” 하였다.
옥진(玉塵)
아름다운 먼지라는 뜻으로 눈을 가리킨다.
옥진(玉軫)
옥으로 만든 거문고 줄을 받치는 장치, 즉 기러기발을 말한다.
옥진(玉鎭)
옥으로 만든 아름다운 그릇.
옥찬(玉瓚)
고대 제사에서 강신(降神)할 때 술을 담은 그릇인데 옥으로 장식하였다.
옥찬황류(玉瓚黃流)
옥찬은 옥으로 만든 술잔이고 황류는 누른빛의 술인데 귀한 인재라는 뜻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에 “귀중한 저 옥찬에 황류가 담겨 있도다[瑟彼玉瓚 黃流在中].” 하였다.
옥천(玉川)
옥천자(玉川子)로 당(唐) 나라 시인 노동(盧仝)의 호이다. 그는 차(茶) 품평을 잘했으며 그의 다가(茶歌)가 유명한다. 소실산(少室山)에 은거하였는데, 학식이 풍부하고 시문에 능하였으며,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신당서(新唐書)』 「노동전(盧仝傳)」
옥천자(玉川子)
당 나라 시인 노동(盧仝)의 호이다. 박학하고 시를 잘하였다. 집이 몹시 가난하였는데, 차 마시는 것을 몹시 즐겼다. 차를 품평한 차노래(茶歌)ㆍ월식시(月蝕詩) 등 경귀 외에 대(竹)를 몹시 사랑하여 죽제(竹第)라 불렀다. 그의 다가(茶歌)에, “여섯 잔 째에는 통령(通靈)하고 일곱 잔 째는 먹을 수도 없고 두 겨드랑에 바람이 난다.” 하였다.
옥천칠완(玉川七椀)
당 나라 시인 노동(盧仝)을 말한다. 일곱 사발(七椀)은 노동의 다가(茶歌)에 “七椀喫不得 唯覺兩腋習習淸風生”이라 하였다.
옥첩(玉牒)
① 왕실의 계보를 가리킨다.
② 제왕(帝王)이 봉선례(封禪禮)를 행할 때 쓰는 고천문(告天文). 상고 시대 하늘에게 고하는 글을 간책(簡策)에 쓰고는 함봉을 하는데 옥으로 장식을 하기 때문에 ‘옥첩’이라 한 것이다. 남산 부근에는 옛날 제왕들이 천지에 봉선(封禪)한 곳이 많은데 봉선을 하려면 옥첩을 땅에 묻는다. 『사기(史記)』 「무제기(武帝記)」에 “천자가 태산(泰山)에 봉선(封禪)할 때 너비 2척(尺), 높이 9척의 단을 만들고 여기에다 옥첩서(玉牒書)를 간직하였다.” 했다.
옥초(沃焦)
불가(佛家)에서 비유로 쓰는 바다 밑에 있다는 불타는 돌. 그 돌 밑은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거기서 나오는 불기운 때문에 물이 모두 말라 버린다고 한다.
옥촉(玉燭)
임금의 덕화. 사철의 기후가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하는데, 임금의 덕이 옥처럼 아름다워서 사시 화기의 상서를 이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아(爾雅)』 「석천(釋天)」에 “임금의 덕이 따스하기 옥과 같고 밝기는 촛불 같다.”에서 온 말이다. 일설에는 춘하추동 사시의 기운이 조화를 이룸을 말한다고도 한다.
옥촉가진차제회(玉燭佳辰次第回)
사시(四時)의 기후(氣候)가 잘 조화되어 만물에 광휘가 있음을 이른 말이다.
옥촉태계고(玉燭泰階高)
천하가 태평함을 말한다. 옥촉은 사시의 기후가 잘 조화됨으로써 만물에 광휘(光輝)가 나는 것이 마치 옥촛불처럼 환하다는 뜻이고, 태계(泰階)는 상ㆍ중ㆍ하 세 계급으로 나누어진 별이름으로서 이 세 계급이 다 평탄하면 오곡이 풍요하고 천하가 태평하다고 한다.
옥충(玉蟲)
등불 심지 끝이 타서 맺힌 불똥. 등화(燈花)를 가리킨다.
옥충(玉虫)
올챙이 머리 모양의 등화(燈花)를 말한다.
옥토(玉兎)
① 달에 있다는 토끼.
② 달의 별칭이다.
옥판(玉板)
송(宋) 나라 때 염경사(簾景寺)에 있었던 옥판화상(玉板和尙)을 가리키는데, 소식(蘇軾)이 일찍이 유안세(劉安世)와 함께 그를 찾아가 노닌 적이 있었다.
옥판(玉版)
죽순의 이칭.
옥판회(玉版回)
송(宋) 나라 유기지(劉器之)가 선(禪)에 대한 이야기를 곧잘 하면서도 산을 좋아하지 않자, 죽순(竹筍)을 옥판장로(玉版長老)라고 둘러댄 뒤 함께 만나러 가자고 유혹했던 고사가 전해 온다. 참고로 이때의 시 가운데 “叢林眞百丈 法嗣有橫枝 不怕石頭路 來參玉版師”라는 구절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45, 器之好談禪 不喜游山 山中筍出 戱語器之 可同參玉版長老 作此詩
옥패(玉佩)
관원들이 패용(佩用)하는 옥제(玉制) 수식품(修飾品)으로, 금관조복(金冠朝服)에 늘이어 차는데 흰 옥을 서로 연하여 무릎 밑까지 내려가도록 하며, 사(紗)로 긴 주머니를 만들어 그 속에 넣어 찬다. 이 옥 울리는 소리로 위엄의 정(正) 부정(不正)을 가름한다고 한다. 『시경(詩經)』 진풍(秦風) 「위양(渭陽)」에 “진강공(秦康公)이 진(晉)의 중이(重耳)를 전송하면서 ‘내가 외삼촌을 전송하니 유유한 마음이로다. 무엇을 드릴까 경괴(瓊琚)와 옥패(玉佩)로다[我送舅氏, 悠悠我思. 何以贈之, 瓊瑰玉佩].’ 하였다.” 한다.
옥패명경거(玉佩鳴瓊琚)
한유(韓愈)가 유종원(柳宗元)의 문장을 칭찬하기를, “옥패(玉佩)와 경거(瓊琚)로 그 소리를 크게 낸다.” 하였다.
옥패주린각(玉貝柱麟閣)
한 선제(漢宣帝) 때 기린각(麒麟閣)에 공신(功臣)들의 초상(肖像)을 걸었었으므로, 전하여 공신에 책록되었음을 의미한다.
옥하(玉河)
① 연경에 있는 강 이름이다.
② 외국 사신이 묵던 연경(燕京)의 관소(館所) 이름이다.
옥하가옥(屋下架屋)
집 아래 집을 다시 짓는다. ‘부질없이 모방만 하고 새로운 발전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옥하관(玉河館)
외국 사신이 머물던 연경(燕京)의 관소(館所).
옥함문(玉函文)
옥으로 장식한 상자에 든 진귀한 서책을 이르는 말로, 선술(仙術)에 관한 서책을 의미한다.
옥현(玉鉉)
“솥에 옥발(玉鉉)”이란 구절이 『주역(周易)』에 있다. 솥이 발이 셋이므로 3정승의 벼슬에 비하곤 한다.
옥형(玉衡)
깊은 샘물을 자아올리는 옥형거(玉衡車). 『농정전서(農政全書)』
선기옥형(璇璣玉衡)으로 혼천의(渾天儀)를 말한다.
옥호(玉毫)
32상(相)의 하나인 부처의 백호상(白毫相)을 말한다.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은 깨끗하고 부드러워 세향(細香)과 같으며, 오른쪽으로 말린 데서 끊임없이 광명(光明)을 방사한다고 한다. 옥호에서 광명이 난다 하여 옥호광명(玉毫光明)이라고도 한다.
옥호(玉壺)
① 물을 담는 옥병인데, 그처럼 깨끗한 인품을 말한다.
② 술의 별칭이다.
옥호광(玉毫光)
부처의 미간(眉間)에 흰 털이 있는데, 거기에서 밝은 빛이 난다고 한다.
옥호빙(玉壺氷)
인품이 청백(淸白)하고 염결(廉潔)한 것을 말한다. 남조 송(宋) 포조(鮑照)의 백두음(白頭吟)에 “곧기는 붉은 먹줄과 같고, 맑기는 옥호 속의 얼음 같아라[直如朱絲繩 淸如玉壺氷].”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포참군집(鮑參軍集)』 卷3 「대백두음(大白頭吟)」
옥호성(玉壺醒)
옥으로 만든 병. 옛날 오(吳) 나라 임금이 신녀(神女)인 반 부인(潘夫人)과 소선(昭宣)의 대(臺)에서 노닐다가 술에 잔뜩 취하자 옥호(玉壺) 속에 토해 놓아 술에서 깨어났다 한다. 「술정기(述征記)」
옥호천(玉壺天)
비장방(費長房)이 한 노인을 따라 병 속(壺中)에 들어가니 별천지(別天地)가 있었다 한다.
옥홍(玉虹)
옥무지개로 다리에 대한 미칭이다.
옥환(玉環)
① 양귀비(楊貴妃)의 소자(小字).
② 옥으로 된 고리. 자색 인끈(紫綬)을 찬 상국(相國)ㆍ승상(丞相) 이상이라야 그 끈 중간에다 옥고리를 매었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여복지(輿服志)」
옥황가(玉皇家)옥황의 집이란 옥황상제(玉皇上帝)의 거소(居所)란 뜻으로, 즉 오얏꽃이 만발한 곳을 아름답게 형용한 것인데, 한유(韓愈)가 노동(盧仝)의 집에 가서 오얏꽃 구경을 하며 지은 이화시(李花詩)에 “밤에 장철을 데리고 노동을 찾아가서 구름을 타고 함께 옥황의 집에 이르렀네[夜領張徹投盧仝 乘雲共至玉皇家].”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 卷五
옥황상제(玉皇上帝)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하느님.
옥황향안(玉皇香案)
임금 곁을 떠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 나라 원진(元稹)의 시에 “나는 바로 옥황상제향안의 이(吏)라, 귀양살이도 오히려 봉래산과 가깝다오[我是玉皇香案吏 謫居猶得近蓬萊].”하였다.
옥황향안리(玉皇香按吏)
당 나라 원미지(元微之)는 월주 자사(越州刺史)로서 회계(會稽)에 있고, 백낙천(白樂天)은 항주 자사(杭州刺史)로 있었는데, 미지가 회계의 산수(山水)를 자랑하여 시를 지어 낙천에게 보낸 끝에, “나는 옥황의 향안 아전이라, 인간에 귀양와서도 오히려 작은 봉래산에 사네[我是玉皇香案吏 謫居猶得小蓬萊].” 하였다.
옥횡(玉橫)
횡(橫)은 배의 좌우에 벌여져 있는 노를 이른다.
옥휘(玉徽)
옥으로 만든 현악기를 가리킨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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