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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것은 가짜다, 서문 - 독연방필서(讀燕放筆序) 본문

책/한문(漢文)

비슷한 것은 가짜다, 서문 - 독연방필서(讀燕放筆序)

건방진방랑자 2020. 3. 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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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의 글을 읽고 붓 가는 대로 쓴 서문

독연암필서(讀燕放筆序)

 

 

연암의 글은 한군데 못질 한 흔적이 없는데도 꽉 짜여져 빈틈이 없다. 그의 글은 난공불락의 성채다. 방심하고 돌진한 장수는 도처에서 복병과 만나고 미로와 만나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책갈피에 써둔 메모다. 92727일이란 날짜가 쓰여 있다. 97620일의 메모에는 서늘함은 사마천을 닮았고 넉살 좋음은 장자에게서 배운 솜씨다. 소동파의 능청스러움, 한유의 깐깐함도 있다. 불가에 빠진 사람인가 싶어 보면 어느새 노장으로 압도하고, 다시금 유자의 근엄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고 적혀 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란 이름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두 메모 사이에 놓인 몇 해의 시간들이 나는 당혹스럽다. 지난 여러 해 동안 그를 곁에 끼고 살아왔지만 정작 그를 가지고서 번듯한 논문 한 편 써낼 용기는 가져보지 못하였다. 그는 내게 언제나 오리무중이다. 막상 그의 글은 달콤하다. 늘 사람을 긴장시킨다. 그러나 정작 글을 손에서 놓고 나면 그는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없다. 내 손에 남는 것은 손끝을 스쳐간 나비의 날갯짓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글에서 중세가 힘을 잃고, 근대는 미처 제 자리를 잡지 못해 어수선하던 그 시대의 풍경을 보았다. 그럼에도 여태 쩌렁쩌렁한 울림이 가시지 않는 맑은 음성을 들었다. 오늘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생취(生趣), 현상의 저편을 투시하는 형형한 눈빛을 보았다.

 

함께 나누고픈 그의 글은 반드시 문학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술론과 인생론, 그밖에 세상 살아가는 애환이나, 우정에 얽힌 담론, 시대를 향한 신랄한 풍자와 우언, 인간적 체취가 넘치는 편지글도 있다. 원문을 나란히 실은 것은 대역(對譯)의 기쁨도 함께 나누었으면 해서이다. 사실 그의 글은 번역이 참 어렵다. 이따금 그 시대 다른 이들의 글도 함께 얹기로 한다.

 

나는 지금 신토불이의 토종 건강 상품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그 어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바래가기는커녕 늘 새로운 힘으로 그 정신의 광휘를 드리우고 있는 어떤 위대한 정신과의 만남을 주선해보려는 것이다.

 

연암의 글을 꼼꼼히 읽어 나가는 동안, 나는 불분명하던 나의 사고들이 명확하게 그 방향을 얻고 추동력을 얻어나가는 느낌을 갖곤 하였다. 300년 전의 지성이 이미 사문화(死文化)된 한자의 숲을 뚜벅뚜벅 걸어 나와, 타성에 젖은 내 뒤통수를 죽비로 내려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한편 한편의 글은 연암과 만나 나눈 대화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연암은 그의 글에서 상우천고(尙友千古)’란 현재에 벗이 없어 답답해서 하는 넋두리라고 한바 있지만, 반대로 연암과의 대화는 내게 이런 맛난 만남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하였다. 연암은 가도 가도 난공불락이다. 나는 그 성 밑자락을 공연히 낡은 사다리만 들고서 이리저리 기웃거려본 것일 뿐이다.

 

이 글은 시 전문지 현대시학19979월부터 19997월까지 독연방필(讀燕放筆)’이란 제목 아래 2년간 연재한 글에 두 편 글을 더하여 한 자리에 묶은 것이다.

 

19998월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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